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67
제 267화
그다음 날. 진천희는 다른 치료사들도 만나 보면서 어떻게 치료하는지를 면밀히 관찰했다.
그러다 한 가지 발견한 건데.
‘의외로 실패 확률이 있네. 이거.’
확실히 처음 만났던 치료술사가 상당히 유능한 자였다.
그 후부터 만났던 치료술사들 중에는 더러 환자의 치료를 실패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 경우에는 치료 실패뿐만 아니라 악화되는 경우도 있었다.
‘재생의 술을 쓰니 염증이 도리어 커졌어?’
정화의 술이 미숙하거나 정화의 술로도 죽지 않는 균은 재생의 술을 받았을 때 자신들도 크게 번식한다.
결국 부패란 균의 번식을 뜻한다.
치료술사가 다급하게 말했다.
“이, 이는 신의 뜻이오! 신께서 치료를 허락지 않은 것이니 지난날의 죄를 고하셔야 합니다!”
‘그렇군. 확률상 망하면 일단 하늘 탓을 하는군.’
진천희는 그렇게 견식한 김에 치료술이 실패한 환자 몇을 대신 치료했다.
이 또한 의술에 보탬이 됐다.
치료 실패를 지켜보고, 그 치료 실패를 치료하면서 도리어 그 주술의 구동 원리를 알 수 있었다.
‘으음. 재생의 술은 거기다 종양까지 같이 키워 버리는 수가 있군. 반대로 정화의 술을 받고나면 한동안은 몸의 저항력이 크게 떨어지고 말이지.’
정화의 술을 받고 나서 얼마 후, 감기로 사망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지만 또 존재했다.
결국.
정화의 술이란 광범위한 항생제 효과를 주는 주술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다만 면밀히 관찰해 본 바에 따르면, 질병에 따라서는 이 주술에 저항하는 힘이 있기도 한 모양이다.
주술력의 고하에 따라서, 감염성 질병을 치료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다.
더 많은 주술력을 쏟아부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주술력이라는 게 무한한 것도 아니었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럴 거면 그냥 진짜 항생제 쓰는 게 답이겠는걸. 약은 대량생산이 되니까. 음~ 물론 항생제도 종류가 다양하니 범용성 면에서는 주술이 좀 더 나을지도…… 하지만 위력과 대량생산에서는 약이 더 낫고…….’
그에 반해서 치료의 술은 아주 명확했다. 주술력으로 세포 자체를 재생하는 힘.
때문에 종양도 세포이니 같이 증가하고, 세균도 세포이니 같이 번식하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장단점이 있는 법.
‘그래도 일단 배울 수 있다면 배우고 싶은데 말이지.’
부술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부족한 부분은 항생제로 해결하면 되고.
‘그런데 주술이라는 게 배운다고 배워지나?’
거기다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야 하는 게 심히 걸렸다.
‘노래를 부를 일이 별로 없었는데?’
평생 그 흔한 노래방도 잘 가지 않았던 삶이었다.
거기에 춤은 말할 것도 없다.
‘음악 시간에 노래 부르라는 건 그냥 했는데…….’
어쨌든 진천희는 실기시험보다는 필기시험파였다.
‘혹시 좀 덜 추고 덜 부른다면 배워 볼 만해.’
아무리 그래도 수술실에서 저렇게까지 퍼덕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술 기자재에 사람까지 모여 있는 그곳이면 공간도 문제고.
‘무엇보다 내가 흥을…… 모르겠다.’
주술사들 모두 다 한리듬 했다.
한국의 아이돌 댄스 같은 건 아니었고, 분류하자면 인도 발리우드의 춤신춤왕 리듬인데, 머릿속으로 아무리 복기해 봐도 그 특유의 두둠칫 둠칫 둠칫 리듬을 따라 하기가 어렵다.
‘크으윽. 무리다. 노래까지는 어떻게 외워서 한다고 해도 역시 그 춤이 장벽이야.’
차라리 검무였다면 나았을지 모른다.
불혹의 영혼은 그렇게 좌절했다.
진 교수의 첫 좌절이었다.
그때 첫날 보았던 그 심부름꾼이 달려왔다.
“소협! 진 소협! 은 상단주님께서 부르십니다.”
* * *
심부름꾼의 말을 듣고 왕야가 머무는 휴양 저택에 도착하니, 역시나 이번에도 시종은 보이지 않았다.
심부름꾼도 더는 들어가지 않고 ‘진 소협, 들어가시지요.’라는 말만 하는 걸 보니.
우리의 ‘은 상주’님께서는 여기서도 비밀이 많은 이미지인 모양이다.
안으로 들어가 길고 개방된 복도를 지나 한참 걸어가니, 그 끝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세외식 대실이 있었고.
은왕야는 어떤 사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왔느냐.”
이번에는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계셨다.
“네, 네. 왔습니다.”
왕야의 맞은편에는 창백한 피부의 미공자가 앉아 있었는데 절세미남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이국적인 미모에 색이 있는 눈동자.
거기에 동양적인 선도 섞여 있어 보기 드문 빼어난 미남임이 확실했다.
‘삼왕자? 아이돌상이었어?’
그랬다. 그냥 미남도 아니고, 이것은 진천희가 지구에서 가끔씩 티비에서 보던 ‘픽미, 픽미, 픽미~’ 하던 애들처럼 생겼다.
바빠서 방송을 챙겨보는 일은 없었으나 같이 ER을 뛰던 동료가 제발 투표해 달라면서 캔 커피를 사준 적이 있었다.
결국 누가 일등을 했는지, 진천희가 그때 눌러준 표가 보람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나.
일단 커피값은 그것으로 마감하고.
그때 보여준 영상을 보면서 요즘 애들 참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딱 그렇게 생겼다.
‘이런데 취미가 요리고 악기 연주라고……?’
아무리 그래도 첫 폐하의 복심으로서 시작한 일이 바로 밀실살인인 한이정도 보통 멘탈은 아니지만.
이왕자가 동생과의 결혼식 전에 신속하게 밀실살인당한 것은 어쩌면 저런 요소들이 한몫했을지도 모른다.
‘한이정은 정말 동생을 사랑하는구나.’
덕분에 동생은 술 마시면 사람 패는 개망나니와 말 한마디 나눌 필요 없게 되었다.
삼왕자가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번 용봉지회의 우승자인 백의신룡을 만나게 되어 반갑군요.”
그는 거들먹거리는 법 없이 곧바로 포권하고는 말을 이었다.
“아, 저는…….”
자신을 왕자라고 밝힐지 어쩔지 망설이는 기색이 보인다. 이윽고 결심을 했는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라만이라고 합니다.”
구태여 성을 밝히지 않은 것은 왕자에게 갖추는 예를 원치 않기 때문이리라.
“라만 소협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진천희가 마주 포권했다.
‘왕자인데 되게 사근사근한데? 이게 바로 다두 왕국 상계의 기둥이 가진 영업력인가? 아니야. 겉으로는 수더분해 보여도 속은 그렇지 않겠지.’
한이정, 한소정 자매를 만났기 때문일까.
아재의 마음인지 저도 모르게 왕자가 아니라 사윗감을 보듯 뜯어보게 된다.
그렇게 몇 마디 나누고 나서 은 왕야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 이만 저는 가 보겠습니다. 진료가 잘되었으면 좋겠군요.”
“네. 상단주님도 푹 쉬시지요.”
은왕야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비웠다.
아마 몸을 진맥하다 보면 환자의 사적인 이야기도 하게 될 터이니 일부러 자리를 비운 모양이다.
삼왕자 라만이 말했다.
“은 상단주님은 저희 다두 왕국에서도 큰손이시지요. 제가 처음으로 상행을 결심했을 때 곁에서 많은 조언을 해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도와주셨다고요?”
“네. 대단한 은인이시죠. 중원 말을 배운 것도 상단주 덕분입니다. 저희 왕…… 아니 저희 집안사람들 중에 중원어를 아는 사람은 저뿐이니까요.”
‘방금 실수로 왕족이라고 말할 뻔한 거 같은데?’
진천희는 모르는 척 답했다.
“와, 어떻게 그리 연이 닿았군요.”
“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인연입니다. 마적 떼에 죽는가 했는데 마침 상단이 지나가지 뭡니까. 얼마나 다행인지.”
‘혹시 그 마적 떼들 중원어를 유창하게 하고, 묘하게 절도 있어 보여서 도적이 아니라 군병 같은 느낌이 있지 않았습니까?’라고 묻고 싶어졌지만 참기로 하자.
어쩌면 진짜! 도적이! 출몰하여! 황궁도 버리고! 마침 취미 삼아 상행을 하던 은왕야께서 놀랍게도 삼왕자의 첫 상행을 도와줬을지 누가 알겠나.
‘차라리 로또가 이 확률보다 현실성이 있겠다. 진심.’
그래. 뭐 깊이 생각할 게 뭐있나.
의원은 의원의 일을 하는 거지. 빨리 치료하고.
그 치료 주술인가 뭔가를 배울 수 있는지 확인하고.
여기 주변 토양이나 좀 더 채취해서 그냥 신속하게 돌아가면 될 일 아닌가.
‘내 일도 벅찬데 윗분들 사정 생각해서 뭐 하나. 잘 치료해서 전쟁을 막을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지.’
그 생각을 하니 다시 명치가 답답해지기 시작했지만 고개를 저어서 밀어낸다.
일단 삼왕자의 증세 및 어디가 불편한지를 들었다.
“열과 복통이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쪽도 상당히 아프고요.”
그는 명치 옆을 가리켰다.
“치료술사를 만나 보셨습니까.”
“네. 만나 보긴 했습니다만 왠지 치료를 받고 나니 낫기는커녕 더 심해져서…….”
안색이 나쁘고, 음식 섭취가 어렵다.
‘명치 옆을 누르면 심한 통증이 있고.’
일단 이것만으로는 생각나는 병증이 너무 많았다.
삼왕자는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좀 있습니다.”
“뭐죠?”
“사막의 오아시스 물을 함부로 마시면 안 된다는 이야기 있잖습니까. 사막이 노하여 저주를 내린다고.”
“네, 네. 그렇죠.”
“과거 상행 중에 물이 떨어져 그만 마신 일이 있습니다. 물론 그 즉시 뭔가 저주에 걸릴 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몸은 건강하고요.”
그래도 토착민들에게 있어 이런 민간신앙은 때로는 법보다도 중한 법.
계속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것과 관계가 있을까요? 그래서 치료 주술을 할 때마다 더 악화되는 거라면…….”
신의 저주인지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진기진맥을 해 보죠. 그래야 알 것 같습니다.”
이 세계에 정말로 사막의 신이 있나?
상식을 깨는 세계이니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만 든다.
무언가를 확신하기 어려운 세계이니.
진천희는 그의 손목을 붙잡고 천천히 기운을 불어 넣었다.
“…….”
삼왕자는 초조한 눈으로 진천희를 바라본다.
그렇게 십여 분이 흐른 후, 이번에는 배에 손을 얹고 진맥을 한다.
이후, 촉진을 하며 장기를 눌러 보았다.
“으윽!”
역시 복통이 큰 모양이다.
복통이 있는 부분에 다시 손을 얹고 진맥하기를 반복.
한참을 진맥하던 진천희가 고개만 갸우뚱했다.
‘왜 회임한 맥이 느껴지는 거지?’
눈앞에 있는 건 남자다.
이 세계에서는 진천희도 모르는 남자도 임신하는 경우가 있…….
불현듯 뭔가 떠올랐는지 다시 진맥을 하다 퍼뜩 떠올렸다.
‘아, 이거…… 기생충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