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68
제 268화
보통 기생충이라고 하면 회충약을 먹고 끝내는 걸 떠올린다. 그러나 기생충에 따라서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도 존재했다.
‘포충증(Hydatid disease) 같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드나,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걸리기 쉬운 기생충 중의 하나다.
짐승과 인간이 함께 걸리는 기생충으로.
양이나 소의 분변에 들어있는 기생충 알을 인간이 음식이나 물로 섭취하면서 감염된다.
이렇게 들어온 기생충은 몸속을 떠돌며 장이나 신장, 뇌, 안구 같은 곳에 도착해 주머니 같은 것을 만들고 기생한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별 이상이 없으나 수년 동안 그 안에서 종양처럼 자라면서 장기를 압박하게 되는데.
이걸 알고 있는 이유는 진천희가 봉사활동을 하러 외국에 나갔었기 때문으로, 그 당시에 이런 종류의 병에 대해서도 제법 공부를 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의사들은 쉽게 뭉뚱그려서 조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심각한데…….’
진천희의 안색이 나빠졌다.
‘이미 간하고 십이지장 쪽에 포낭을 만들고 자리를 잡았잖아? 이 사람…….’
환자를 슬쩍 보면서 진천희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안 왔으면 확실히 죽었겠는걸…… 그렇다면 본래 역사에서는 이 사람은 죽었을 사람이라는 건데.’
진천희는 정확한 미래를 알지 못한다.
한이정도 진천희가 아니었다면 치료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망나니 둘째가 암살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 눈앞의 아이돌 얼굴의 미남자와 한소정이 혼인을 할 일도 없었을 것이며, 은왕도 어쩌면 지금쯤 암으로 죽었을 수도 있다.
미래는 너무나도 많이 바뀌었다.
‘후…….’
진천희는 생각을 정리하면서 진맥을 계속해 나갔다. 그리고 눈살을 작게 찌푸렸다.
‘이 사람… 지병이 있다더니. 절맥이었어?’
스승님의 구음절맥에 비할 바는 아니다.
삼음절맥.
세 개의 맥이 끊겨 있는 것으로.
내공을 모으는 데 문제가 있는 데다가 건강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가끔 이유 모를 통증이 어릴 때부터 계속되어 왔을 터였다.
평민의 몸으로 태어났다면 요절했을 터나 왕국의 왕자로 태어난 게 천운이었다.
* * *
절맥증.
맥이 끊어지는 증상이라고는 하나, 막히는 증상도 절맥이라고 부른다.
그중 최악은 스승님의 구음절맥이고.
아홉 개의 혈이 모두 음기로 인해 통하지 않아 구음절맥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삼음절맥이란?’
단순히 맥 세 개가 끊어져 있다고 설명할 수 있지만.
그래도 완전히 끊어진 건 아니다. 완전히 폐쇄된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좁아져서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겠다.
늘 먹는 것과 돌아다니는 것에 주의가 필요한데, 그래도 사계절이 전부 여름인 겨울 없는 동네다 보니 한기로 인해 사망할 걱정은 없다.
‘수술할 때 신경 써야 할 게 많겠는걸?’
몸속에서 기생충이 만들어 낸 낭종을 제거해야 하는데 가장 큰 곳은 두 곳.
여기에 좀 더 집중적으로 진맥을 하니 두 곳이 추가로 더 발견되었다.
총 네 곳이다.
‘절맥을 신경 써 가면서 제거해야 한다는 건데…….’
스승님은 워낙 무골인 데다 무공의 고수다 보니 수술을 견뎌낼 체력이 있었다.
삼왕자는 양생을 위해 무공을 익히긴 했으나 스승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결국 수술 시간이 길어질 것 같다는 게 문제네. 거기다 출혈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고. 혈압 관리부터 무엇 하나 쉬운 게 없겠는걸.’
백린의각 의원들이 필요하다.
본산급의 실력은 아니어도 분타의 상의원 수준은 되어야 한다.
다행히도 아직 시간이 있다.
일단 이 사정을 삼왕자에게 설명해야 한다.
‘어…… 어디서부터 증상을 이야기해야 하지? 기생충에 대한 개념이 이 시대에 있나? 아니, 그 전에 이분은 왕자인데 그런 걸 배울 기회는 있었나?’
우선 진천희는 차근차근 기생충에 대한 기본 지식과 감염 경로를 초보자 수준으로 설명했다.
2각(약 30분)의 시간이 소모되었지만 일단 이해를 시켜야 하지 않나.
그 후, 곧바로 말했다.
“삼왕자께서는 이 기생충에 감염되었습니다. 보통은 장에 살아가며 별 해는 끼치지 않지만 가끔 길을 잘못 찾아들어 가는 애들이 있어요. 특히 이 지역은 사계절이 더운 지방이다 보니까 겨울이 있는 지역과는 달리 치명적인 기생충들이 서식하고 있으리라 추측합니다.”
이것을 박멸하기 위해서는 화장실 정비와 상하수도 여과 시설이 필요하지만 어차피 남의 땅.
몽상가가 되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래도 이 지역 사람들은 옛 조상들의 지혜로 오아시스의 물은 바로 먹지 않는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쪽이 주 서식지가 아닐까 생각은 합니다.”
물론 여기 우물물에도 해당 기생충이 있긴 할 거다.
허나 정해진 우물에서만 물을 먹고, 그렇게 뜬 물도 반드시 끓여 먹는 전통이 이 지역 사람들을 살렸다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수술이 필요한데, 삼음절맥이시니 출혈량이 많으리라 예상이 되고요. 자칫 수술 중 출혈로 사망할 수도 있어요. 사망하지 않는다고 해도 뇌에 장애가 남을 수도 있고.”
“…….”
삼왕자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허나, 위험을 알지 못하면 선택도 할 수 없는 법. 진실을 말해 주는 건 의원의 기본 의무다.
허나 그 대응법 역시 생각해 두었다.
진천희는 말을 이었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수혈과 인력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걸 준비하려면 백린의각 분타가 필요합니다.”
삼왕자가 고개를 저었다.
“허나, 완농에는 분타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치료 주술사가 득세하는 뉴 메디컬 시티 완농에는 올드한 중원 의방이 자리 잡을 기회가 없다.
치료에 성공하든 덧나서 골로 가든 ‘결과는 5분 후에 보여 드립니다!’를 해주는 이 기적의 치료술 맛을 한번 보면 진맥하고, 탕약 끓이는 중원 의방은 사골 곰탕 우리는 속도로 보이기 마련.
거기다 아파 죽겠는데 옆에서 나뭇잎을 들고 둠칫둠칫 댄스를 춰주는 쇼맨십도 갖추지 않았나.
느긋한 치료 따위는 이곳 사람들에게 안 맞는다.
그래서 백린의각이 완농에 진출을 못 하고 있고, 그건 경쟁 의각인 화주의각도 마찬가지다.
흑전의각은 원래 분타도 별로 없는 데다가 각자도생이다.
환자가 의방 못 찾아 들어와서 죽으면 그건 지 인생이다.
“그러니 배달해 주십시오!”
“네?”
“이제 중원도 새로운 시대가 올 때가 되었습니다. 옆 도시에 가서 제 스태프…… 아, 아니 상의원들을 배달해 주시면 됩니다!”
“의원 배달이라니…… 그… 제가 부술을 받지 않으면 어찌 되나요?”
음…… 낭종은 점점 더 자랄 거고, 큰 충격이라도 받아서 톡 터지면 그 안에 있는 베이비 포충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올 거고.
다음번에는 낭종의 숫자가 족히 두 배는 되어 부활할 것이다.
그중에 하나라도 뇌 같은 중요 장기에 들어가면 몹시 위험해지는 거고.
일단 이 과정을 자세히 말하자니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진 교수는 환자의 정신 건강을 배려하기로 했다.
“음… 죽을 겁니다. 다소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요.”
“……그렇군요.”
많은 과정들을 생략했음을 눈치챈 걸까.
일단 삼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돈을 쓴다면 시간을 벌 수 있겠지요. 즉시 상단의 무인들과 표사들을 수배하여 배달하도록 하겠습니다.”
“필요한 사람들 명단과 자재들을 적어 드리겠습니다.”
“다만…… 사막을 건너야 할 거고, 백린의각 분타가 있는 지역까지 가려면 이십 일은 쉬지 않고 달려야 할 겁니다. 그때까지…….”
그때까지 자기가 살아 있을지 묻고 계신다.
하긴 걱정이 되기야 하겠지.
“매일 진맥을 하면서 상태를 검사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지금부터는 무리한 일은 절대 하지 말고 충격에도 주의하십시오. 계속 이곳에 머물러 주신다면 제일 좋고요.”
상태를 계속 지켜봐야 하겠지만 당장 생명이 위험해 보이진 않았다.
뭐 왕자님이 어디 가서 비무 같은 걸 할 것도 아니고 아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강조하는 걸 잊으면 안 되겠지.
이 시대 사람들의 ‘무리하지 않는다’는 현대와 개념이 너무 다르니까.
삼왕자도 뭔가 생각한 바가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주술 치료는 더는 받으시면 안 됩니다.”
“어째서입니까?”
“정화의 술에도 살아남은 기생충들이 재생의 술에 무럭무럭 자라기 때문입니다.”
“윽……!”
그동안 잘 모르고 주술 치료를 받았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는지 삼왕자는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하긴, 치료를 받으면 낫기는커녕 더 아파지기만 하니 이상하긴 하더군요.”
주술 치료가 잘 쓰면 의술로는 할 수 없는 것을 해내기도 하지만, 잘못 쓰면 그냥 훅 가는 수가 있다.
그동안 삼왕자께서는 주술 치료를 태교 삼아 포충을 곱게 잘 키워 오셨다.
잘 자라, 우리 포충. 앞뜰과 뒷동산에~ 낙타도, 마적 떼도~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진천희가 말했다.
“뭐든 말해 주십시오.”
목숨이 걸리니 삼왕자의 표정이 자못 비장해진다.
* * *
은왕야의 벌모세수.
독액에 가까운 욕조에 몸을 담근 후, 전신 기혈에 금침을 꽂아 노폐물을 배출한다.
벌모세수는 문파마다 방법은 조금씩 다르나, 그것을 해주는 시전자도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는 점은 동일한데.
그 점에 있어서만큼은 지금의 진천희 혼자로도 문제가 없었다.
“크윽…….”
“재갈이라도 물려 드릴까요?”
“살살 한다는 말은 끝까지 하지 않는 게냐?”
“좀 덜 아프고 오래 아프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화끈하게 아프고 빠르게 끝내고 싶으십니까.”
“정말 얄밉구나.”
“하하하.”
진천희는 어색하게 웃으며 침을 꽂아 나갔다.
“뭔가 재미있는 농담거리라도 해 볼까요?”
“차라리… 크윽…… 그편이 낫겠구나.”
으음,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까.
진천희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것도 잠시, 일단 생각나는 거 아무 말이나 뱉어내기로 했다.
“제가 용봉지회 갔을 때 이야기, 아십니까?”
“우승한 것은 알고 있다. 나름대로 정보를 듣기야 했지만 당사자가 풀어 주는 이야기만큼은…… 큭… 안 되겠……!”
“……아, 여기는 매우 아픈 혈이었습니다. 그래도 찌를 거면 갑자기 하는 게 낫잖습니까.”
“보통은 기절을 시키거나 수면제를 먹인 다음 하지 않느냐.”
“애라면 그렇게 하는데. 은왕야는 좀 크셔야죠. 그만큼 쌓이는 탁기도 많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죽겠군…… 이거!”
“거기서 게살 탕수를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습니다. 언제 또 한번 먹으러 가야 하는데, 다음 용봉지회 때나 한번 먹어 보겠지요.”
다음 침을 꽂아 나간다.
“요리도 일절이라 들었는데 직접 만드는 것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은왕야는 신음을 참는다.
“그게, 그 맛이 안 납니다. 분명 주방장만의 비법이 숨겨져 있는 것 같은데 도통 모르겠단 말이죠. 아, 그래도 망한 게들로 꽃게탕을 끓였는데 아주 끝내줬죠.”
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