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73
제 273화
진천희가 신호하자 간호 상의원들과 부술 상의원들이 곧바로 수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링 위로 올라갈 때는 언제나 고기 요리가 그만이지.’
인간은 어찌 보면 짐승의 한 종류일 뿐이라.
싸움 앞두고 고기 이야기만큼 사기가 오르는 이야기도 드물다.
이번에도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 긴 싸움이 될 터.
진천희는 마음속으로 자기만의 주문을 외쳤다.
‘오늘 저녁! 닭볶음탕!! 팔팔 끓여서! ……감자 많이!’
남들이 들으면 웃을 이야기지만 긴 싸움에서 이것만큼 힘이 되는 주문도 없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라든가, ‘환자의 목숨이 내게 달려 있다’라든가.
‘환자의 웃는 얼굴이 다시 보고 싶다’라든가.
인간의 마음이란 생각보다 마모되기가 쉬워서 ‘생명’ 하나만 되뇌며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 손이 멈춰서 움직일 수 없게 되는 때가 있다.
생명에 비해 내 의술이 얼마나 하찮은지.
내 알량한 실력은 결국 거대한 병마 앞에서 얼마나 위선인지.
인간은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 같은데, 그에 비해 쫓아오는 죽음은 한겨울의 눈보라 같아서.
그런 걸 깨닫게 된 순간, 그때는 제아무리 베테랑 외과의도 사고가 멈추고 만다.
-그때는 잠깐 시선을 돌려도 돼. 손만 움직이면 되니까.
선배가 그런 진천희에게 말했다.
당시 진천희는 피로와 부담감에 무너졌던 흔하디흔한 인턴 중의 하나였다.
-어차피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하게 만들어진 생물이 아니야. 만물의 영장은 무슨…… 까마귀도 도구 쓴다.
그때 진천희는 화장실 변기 뚜껑 위에 앉아서 한참이나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직원 화장실도 아니고 굳이 환자 화장실까지 도망 온 거냐?
그것도 한 손에는 콜이 올까 싶어 삐삐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젖은 눈가만 매만지고 있던 때.
요즘은 병원용 2G폰을 쓴다고 하던데, 진천희 때에는 삐삐였다.
정신은 무너져도 호출이 오면 달려가야 하니 결국 울면서도 삐삐를 놓을 수가 없다.
-야, 여기 귀신 나온다더라.
병원 풍수가 별로인 걸까.
피로에 찌든 의료인들이 가끔 여기서 헛것을 보곤 한다던데 진천희는 한 번도 그런 걸 본 일이 없었고.
애초에 그런 걸 생각할 정신조차 없었던 시절이었다.
-오늘 뭐 먹을 거야?
네? 하고, 뜬금없는 질문에 되물었다.
-맛있는 걸로. 네가 생각하는 가장 먹고 싶은 걸 상상해. 이 일이 끝나고 생길 작은 상이지.
고작 저녁 식사 따위가 생명의 무게에 대한 부담감을 감당할 수 있는 걸까.
좀처럼 와닿지 않았다.
그날 아이가 죽었다.
아버지가 아이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무슨 생각인지 고속도로 터널을 내달렸고.
오토바이란 본디 커다란 덤프트럭이 내는 바람에도 흔들리는 녀석.
갑작스레 일어나는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즉사했고, 아이는 간신히 살아남아 힘겹게 분투하다 결국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했다.
아버지는 헬멧도 바이크 점프도 전부 아이에게 입혀 준 채로 달렸지만.
그러나 그런 안전 장비도 진짜 사고 앞에서는 태풍을 국자로 막아 보겠다는 시도일 뿐이다.
아이가 응급실로 들어왔을 때 모두의 표정이 어떤 빛이었는지가 눈에 박혔다.
인턴인 진천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고, 병원에 있는 누구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산다고 한들, 평생 심각한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 거고.
죽게 된다면…… 그 무게를 누가 감당해야 할까.
아이의 손등에는 공룡 전시회 관람 도장이 찍혀 있었다.
티라노사우루스였다.
‘선배, 전 오토바이가 가장 싫어요.’
훗날 진짜 보스인 킥보드가 나오게 되는 걸 몰랐던 청년 진천희는 그놈의 오토바이가 지구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두 손 모아 빌었다.
선배는 정신이 나가서 우는 진천희를 무시하려고 애쓰면서 이리 말했다.
-저녁은 닭이 가장 좋지. 닭 튀겨서는 망하기 어렵다.
선배는 끝까지 자기가 쏘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다만.
-거창한 목표는 잠시 접어 둬. 눈앞의 소소한 기쁨에 집중해. 가야 할 길이 먼데 그러다 지친다.
이윽고 똑똑똑,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되물었다.
-……자, 생각했어?
그때 진천희가 생각한 저녁은 패스트푸드 닭튀김이었다.
진천희는 결국 저녁까지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는 생각 하나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선배가 그렇게 나온 진천희의 양어깨를 붙잡으며 비장하게 말했다.
-좋아. 네가 쏴라.
선배는 기어이 후배에게서 닭튀김을 뜯어냈다.
그리고 그때의 조언 덕을.
무림에 온 진천희가 톡톡히 보고 있다.
‘힘들 때는 닭이지.’
외교니, 전쟁이니 하는 압박 때문에 당장이라도 무너져 버릴 것 같지만.
당장 오늘 저녁 뜯을 닭다리가 있기에.
‘그래도 사람이 하루를 버틸 수 있는 거겠지.’
* * *
수술은 은왕야께서 직접 참관하시기로 했다.
‘뭐어,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해야 하나.’
곁에 보호자가 없는 VIP다.
이 수술로 인해 많은 일의 향방이 바뀌게 될 터.
은왕야가 직접 참관하겠다 하는 것도, 환자 본인이 참관을 허락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의원들도 처음에는 단순히 거상(巨商)을 치료하는 줄 알았으나 다두 왕국의 삼왕자라는 말을 듣고 모두가 바짝 긴장에 들어간 상태.
수술에 필요한 모든 준비가 끝나고, 환자는 마취에 들어가 수면 상태로 들어갔으나.
역시나 의원들 모두의 표정이 불안에 차 있다.
그리고 그들을 부른 진천희는 이렇게 말했다.
“완농에서 치료술사를 만났는데요, 완전 골 때리더라고. 끝나고 돌아가기 전에 꼭 한번 견식하고 가세요. 구경할 만한 가치가 있어요. 진짜 용하다니까?”
일부러 과장되게 웃어 보였다.
“잘 끝나면 내가 맛있는 거 하나 해 줄게요. 아, 그냥 유명한 식당 소개가 좋으려나?”
그 말에 간호의원 하나가 입을 열었다.
“소각주님 요리 솜씨가 일절이란 말은 들었어요.”
“먹고 싶습니다!”
“저도요!”
와하하하하!
다들 억지로 기운을 내서 분위기를 만들었다.
“네. 부술 잘 끝내고 다 같이 맛있는 거나 먹읍시다. 제가 잘할게요.”
진천희는 조금 뻔뻔하다 싶을 만큼 거만하게 웃어 주고는 메스를 집어 들었다.
“그러면 개복할게요.”
* * *
환자의 배를 열고 가장 먼저 간에 붙어 있는 포낭을 찾아냈다.
“혹시 반위……?”
“아닙니다. 기생충입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기생충 마을?”
포충과 종양은 일견 유사한 점이 있어서 검사 때도 비슷하게 보일 때가 많다.
거기다 외형으로 보자면 둘 다 정상 세포와 다른 혹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니 충분히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
상의원이라 하더라도 이제 백린의각 본산에서 배출한 상의원일 뿐, 수술 경험은 더 많이 쌓여야 할 터.
심지어 다른 지역의 풍토병을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되었으니 혼란스러운 건 당연했다.
진천희는 나이프로 포낭 주변을 슥슥 한번 벌려 주었다.
가르는 게 아닌, 그저 벌리는 게 목적이다.
“이런 건 절대로 터뜨리면 안 되죠. 긴장도…… 하면 안 되고……. 서둘러도 안 되고.”
이 포낭이 찢어졌을 때 무슨 일이 생길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자칫 알이라도 흩어지게 되면 도로 아미타불이니까.
능숙하게 벌린 후에 생리식염수를 포낭 주변에 밀어 넣었다.
“아, 수압으로……?!”
“네. 때로는 물이 칼보다 좋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나 이런 녀석을 처리할 때는요. 마침 형태가 좋게 잡혀서 다행이긴 한데…….”
포낭이 수압에 밀려 떠오른다.
그 순간, 진천희가 손짓하자 옆에서 재빨리 쇠그릇을 건넸다.
댕그랑.
포낭이 그대로 쇠그릇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
의원들이 놀라서 진천희를 바라본다.
“과연, 치유 주술을 먹어서 그런지 아주 통통하게 잘 컸네. 우량아야.”
진천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을 하며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다.
“이것도 교과 과정에 추가해야겠네요. 나중에 이거 갈라 볼 사람? 그러면 오늘 저녁 다 먹은 건데. 혹시 오늘 저녁 먹기 싫은 사람 있어요? 오늘 나는 좀 살을 빼고 싶다. 손?”
포낭이 꿈틀거렸다.
확실히 일반 종양과는 달랐다.
핼쑥해진 얼굴로 상의원들이 진 교수님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 누구도 손을 드는 이가 없었다.
“하하하, 나중에 연구용 표본으로 써야 해서 갈라 보긴 해야 하는데, 그건 밥 먹고 해야겠네요.”
그리 말하고는 곧바로 다른 부위로 넘어갔다.
“자아, 기왕 가른 거, 오늘 안에 다 끝냅시다. 환자가 지병이 있으신 분이셔서 수술을 여러 번 못 버텨요. 한번 가를 거면 제대로 끝내야지.”
* * *
진천희는 차분하게, 그리고 빠르게 포낭을 제거해 나갔다.
단순히 포낭을 제거하는 것 자체는 할 만했으나, 삼음절맥.
환자의 지병 때문에 제한 시간이 있는 수술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천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때로는 농담을 하고, 때로는 의원들을 가르쳐 가며 수술을 이끌어 나갔다.
땡그랑-
“어디 보자아. 아들인가, 딸인가.”
그리 말하며 마지막 포낭까지 적출하는 데 성공했다.
“환자는?”
“맥은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대로 닫으시면 될 것 같아요.”
“시간은 얼마나 지났죠?”
“한 시진(약 두 시간) 지났습니다.”
“오,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 포낭이 많아서 걱정했는데. 저녁 차릴 시간 넉넉하겠네요.”
상의원들 눈에 진천희는 흡사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다두 왕국의 삼왕자, 그것도 삼음절맥의 환자를 치료함에도 긴장하거나 중압감에 질리는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고.
도리어 주변을 챙겨 가며 움직이는 모습이 도무지 인간이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소각주님은 타고나기를 대범한 사람 같습니다.”
“하하하, 그래 보여요?”
그리 말하고는 일부러 크게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작게, ‘그러면 성공이군요.’라고 대꾸했다.
존경에 가득 찬 상의원들의 시선과, 만족한 듯한 은왕야의 표정을 확인하고는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 봉합합시다.”
* * *
저녁은 고기 파티였다.
원래면 소박하게 닭볶음탕을 할 예정이었으나 먼 곳에서 온 분타 상의원들에게 감사도 할 겸.
결국 닭도 잡고, 소도 잡고, 돼지도 잡았다.
‘오우, 나도 이제 발골도 슬슬 손에 익는 듯?’
보통 소 한 마리를 해체할 때 쓰이는 칼은 수십 가지.
숙련된 도축업자일수록 쓰는 칼의 가짓수는 점점 더 줄어들고, 최후에는 식칼 하나만이 남는다고 한다.
그렇게 식칼 하나로 모든 부위를 발골해 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비로소 명인이라고 할 수 있다.
진천희는 이제 세 개의 칼로 발골을 할 수 있는 경지까지 왔다.
‘나도 무리하면 식칼 하나로 가능이야 할 것 같긴 한데…….’
아직은 그래도 칼 세 자루 정도가 편하다.
소 한 마리 해체해서 화르륵 장작에 구워 버리고.
닭은 밀가루와 후추로 튀김옷을 만들어 튀겼다.
돼지는 삶았고.
상의원들이 진천희가 만들어 준 고기를 젓가락 가득 집어 들며 눈물을 흘렸다.
“소각주님…… 제가 이걸 먹으러 이 먼 길을 왔나 봅니다. 크흐흑!”
이런 맛있는 요리에는 술이 있어야 금상첨화인 법.
이 지역 특산물인 양젖을 이용한 술을 한 잔씩 돌리니 노래가 절로 나오는 모양이다.
그렇게 먹는 상의원들을 지켜보며 진천희도 자기가 먹을 것들을 접시에 덜어서 구석에 앉았다.
이제 잔치도 무르익어서 저마다 이야기꽃을 피울 때가 되었으니 슬쩍 빠져도 괜찮을 터.
그렇게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먹는 진천희 옆에 누군가가 앉았다.
은왕야였다.
“사람 많은 건 사실 그리 안 좋아하는가 보구나.”
“뭐…… 좋을 때는 좋고, 피곤할 때는 또 피곤하죠.”
진천희는 일부러 애매하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