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83
제 283화
일카나가 배교했다는 전언을 받았을 때.
‘아버지’를 비롯한 휘하 살수들은 꽤 여유로웠다.
일카나가 살수로서 썩 뛰어난 것은 사실이나, 그건 어디까지나 암살일 때의 이야기.
적당한 때를 잡아 숨어서 목표를 제거하는 것은 일절이긴 했다.
허나, 순수한 전투 실력 그 자체는 떨어지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채앵!
일카나의 단도가 차크람을 튕겨냈다.
분명 반 박자 느린 호흡으로 싸우고 있음에도 그녀의 공격은 적재적소를 파고들어 막아내고, 찔러 들어갔다.
‘어째서?’
다섯의 공격을 단숨에 막아내는 것을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바라본다.
컹!
거기다가 소처럼 거대한 개가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 엄호했다.
일카나가 말했다.
“개입하지 말라고 분명 말했을 텐데요. 형제님?”
그 말에 진천희가 답했다.
“이건 제가 명령한 게 아닙니다. 황구가 제멋대로 하는걸요?”
콰르르릉!
푸른 번개가 후열에 있던 살수 하나를 지진다.
“이것도 마음대로 하고 있는 겁니까?”
진천희가 억울하다는 듯 답했다.
“엄, 그게 싫었으면 얘들한테 육포를 주지 마셨어야죠……?”
삐이익!
그녀가 어금니를 꽉 물며 말했다.
“적어도 ‘아버님’은 제가 직접 상대할 테니 그건 건드리지 말라고 명령하십시오. 형제님.”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얘들아! 들었지?”
삑! 컹컹!
“알았답니다.”
미치겠다. 이 의원과 두 마리의 영물들은.
아무리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지 할 일을 귀신같이 하고 만다.
움직임을 보아하니, 직접적인 전투에는 개입하지 않되, 그녀가 다치는 것만은 막아 주는 모양이다.
‘얼마나 자상할 셈이야? 이 인간…… 아니 동물들은!’
천연덕스러운 게 더 얄밉다.
‘사막에서 크게 다칠 게 걱정이 되는 거겠지.’
진천희라는 인간이 무인의 감성 같은 건 쥐뿔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이미 눈치챘다.
보통이라면 이렇게까지 말하면 그녀가 일 대 십으로 싸우든, 일 대 삼십으로 싸우든 ‘이것은 한 사람의 무인의 싸움이다.’ 하고 팔짱 끼고 지켜보는 것이 예의.
그러나 이 미청년은 그러거나 말거나 어쨌든 일 대 십몇을 혼자 싸우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러다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다시 그녀를 안고 도시로 달려가야 할 거고, 치료도 자기 손으로 해야 할 테니 그게 귀찮았을 거고.
‘사람 목숨이 무인의 명예보다 우선이라는 건가.’
진천희라는 인간에 대해 파악하면 할수록 역시 그녀가 살아왔던 삶과는 정반대라는 것만 깨닫는다.
타앙!
그 순간, 그녀의 옆구리를 베려 들어온 살수 하나가 튕겨져 나갔다.
보이지 않는 기탄.
진천희의 개입을 느끼고 노려보자 진천희가 즉시 말했다.
“일대일 되면 안 낍니다! 진짜로 안 낄게요! 아니, 근데 무슨 이유가 있든 혼자서 서른 명 상대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여기서 내장이라도 쏟으면 누가 꿰매야 하는데!”
……이 미친 의원이 진짜!
허나, 그녀를 상대하는 살수들 입장에서도 어이가 없었다.
영물의 보조와 백의신룡의 소극적인(?) 엄호가 있다고는 해도 일카나의 실력은 진짜였다.
상대는 수십 명의 암살단.
원래라면 진즉에 지쳐서 살가죽이 찢겨 짐승처럼 도살당했을 터.
그러나 일카나는 지치지 않았고 그녀의 단검도 무뎌지는 법이 없었다.
“형제님. 강해지셨…….”
츠가가각!
일카나의 단도가 살수의 목을 찢었다.
“캬하하하!”
그녀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악귀처럼 웃었다.
“아주 영험한 약을 먹었거든요. 형제님.”
강해진다는 게 느껴진다.
힘, 지구력, 그리고 민첩성까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
어젯밤.
그녀는 약을 한 알 받았다.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영약인데 줄게요. 먹고 제가 말한 구결대로 운기하세요. 아…… 운기 할 줄 모르나? 어쩌지?’ 하며 당황하더니.
‘제가 등을 통해 내력을 유도해 주천시킬 건데 그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어차피 세외나 강호나 결국 뿌리는 비슷해요.’라며 그녀의 뒤에 앉아 태연하게 자세를 잡는 게 아닌가.
일카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환약을 삼켰다.
그렇게 그녀는 어째서 무림인이 단번에 강해지는지 깨달았고.
진천희는 ‘최상급 영단은 아니나 내공이 오 년에서 십 년은 상승하는 녀석입니다.’라고 답했다.
중원인은 이런 걸 자주 먹는지 물으니 진천희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다들 이런 거 먹을 수 있었으면 난리 났죠. 이거 비싼 겁니다. 그리고 자꾸 먹으면 약발이 좀 떨어져서 처음에 약발 세울 때 바짝 먹는 거죠.’라며 푼수처럼 웃는 게 아닌가.
뭐, 이 의원 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그녀에게 이걸 준 건지는 알 것 같았다.
처음 했던 ‘몇 배는 강해지게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거겠지.
동시에 추격하고 있을 게 뻔한 살수들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그녀가 어느 정도 강해져야 할 테니.
가장 빠른 방법을 선사용한 것일 거고.
“죽엇!”
살수 하나가 참지 못하고 단검을 내뻗었다.
일카나는 비릿하게 웃었다.
이대로 놈의 목을 뜯어 곧바로 죽일 예정이다.
타앙!
그 순간, 놈의 명치가 움푹 파이는 것과 동시에 허공을 날았다.
진천희가 말했다.
“아, 실수.”
이제 알았다.
이 의원은 적이 죽는 것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저 살수는 이제 평생 뛰는 일을 못하게 되겠지만, 일단 숨은 붙여 놓는다.
‘그게 더 잔인한 일인데. 크크큭, 하여간 미친 의원이야.’
수없이 많은 살수들을 도륙하고, 또 수없이 많은 살수들에게 회복 불가능한 상흔을 남기고 살려서.
이제 드디어 그녀는 ‘아버지’와 단둘만이 남았다.
“…….”
무슨 말이 필요한가.
그녀의 단검은 피를 원했다.
가장 좋은 것은 혈육의 피이나, 그게 안 된다면 가짜 혈육의 피도 기꺼워했다.
참으로 지랄 맞은 인생이다.
아버지는 그녀를 향해 차크람을 던졌고, 그녀 역시 동시에 차크람을 던졌다.
타다다당!
허공에서 차크람들이 부딪치는 것과 동시에, 그 뒤로 바짝 숨겨진 칼날 하나가 그녀의 목젖을 향해 날아왔다.
‘성장했구나. 아버지.’
그녀가 성장했듯, 그도 성장했다.
‘나를 인두로 지지고, 내 손을 산성 호수에 담그는 동안 당신도 성장했겠지.’
그는 신실한 교인답게 암살 교단의 의식을 행했다.
그녀는 그의 신실한 눈을 따고 싶었다.
줄곧.
단 한 번도.
그런 기회가 없었는데.
그녀의 단검이 숨겨진 단도를 휘감는다. 휘어진 칼날을 따라 단도가 핑그르르 휘감긴다.
좋은 느낌.
그녀의 몸이 뜨끈한 피를 원했다.
‘사실 엄마 때문이 아닐지도 몰라. 나란 인간은 처음부터 이따위로 만들어진 걸지도 모르지.’
그녀의 잔상이 흩어진다.
삼왕자를 암살할 때 썼던 영체화.
고대 신에게 영혼을 바친 대가로 얻는 힘.
허나, 이미 배교했으니 죽으면 갈 곳은 지옥이다.
‘그래도 좋아.’
그딴 지옥, 얼마든지 즐겨 주지.
그 순간, 아버지도 영체화를 했다.
이렇게 되면 양쪽 모두 서로를 향해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
그러나 영체화를 오래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자주 쓰는 것도 불가능하고.
먼저 풀린 것은 일카나.
그리고 아버지의 검이 그녀의 간격 안으로 들어온다.
공격을 위해 찰나의 영체화를 풀고. 검은 이미 후두부를 향해 찔러 들어온다.
츠가가각!
핏물이 튀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핏물이 아니었다.
잘려나간 건 ‘아버지’의 손목.
일카나가 웃었다.
“캬하!”
“어떻게……?”
찰나지만 드디어 아버지의 속도를 그녀가 넘어섰다. 그것은 원래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도 수십의 암살단을 상대한 연후라면 더더욱.
일카나가 답했다.
“천국에서 물어봐 봐. 어떻게 했는지.”
콰드득-
첫 번째 단도가, 급소에 박히고,
우드득-
두 번째 단도가 골수에 깊숙이 파고든다.
뜨끈한 피가 흘러나오며 손을 적신다.
“캬하하, 크크큭……. 크하하하하!”
일카나는 한참을 웃었다.
양 눈에는 눈물이 흘렀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 순간, 그녀는 ‘아버지’를 넘어섰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넜다.
그녀는 죽어가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신체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차크라탄트는 지랄 맞게도 마지막까지 목숨을 붙여 놓는다.
그렇기에 암살자는 자결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고문을 당하는 내내 고통을 받으면서, 목숨은 부지될 테니까.
그녀는 그의 턱뼈를 쳐서 탈구를 시켰다.
우드득-
“캬하하…… 아버님. 자살 따위 하게 둘 줄 아십니까?”
“……!”
무언가 알아들을 수 없는 외침이 터져 나왔으나 그건 욕일 게 분명했다.
괜찮았다.
일카나는 이 웅얼거림이 좋았다.
“이것으로 아버님도 배교군요. 함께 지옥에서 봅시다.”
그러고는 평소의 느물거리는 미소로 돌아와 자상하게 답했다.
“혹시 압니까. 아버지, 어린애를 고문하고 살수로 키워도 천국에 가는 교단이니, 어쩌면 아버님이 자결하지 않았다고 해도 천국으로 보내줄지도 모르죠. 뭐, 좋습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저는 아버님을 이용했고, 아버님도 천국에 가기 위해 저를 이용했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지요.”
사람의 폐에 피가 차고, 점차 자기 피에 질식해 가는 것을 듣는다.
엄마가 딸을 향해 웅얼거렸던 소리보다는 명료했고.
“그러면 아버님. 안녕히 주무시길. 불은 끌 필요가 없겠군요.”
일카나는 밤하늘을 바라본다.
잘 자라는 말은 그가 그녀의 등을 인두로 지지며 했던 말이었다.
기묘한 친절 속에서 일카나는 그가 완전히 숨이 멎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마지막 숨소리와 함께 상대는 완전히 사망했다.
그녀는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비틀리고, 비틀린 광기 속에서 일카나가 말했다.
“아, 의원님. 제 모습에 정나미가 좀 떨어지셨나요?”
“…….”
진천희는 피곤한 표정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일단 치료부터 하죠. 암살자 단검에는 독을 바르는 경우가 많던데 빨리 치료할수록 후유증은 적을 테니까요.”
“캬하하하!”
일카나는 이 미친 의원이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