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99
제 299화
“죄송합니다. 무당권제님의 직계 제자님을 못 알아 뵙고…… 미처 예를 차리지 못했네요.”
“음, 아닙니다. 이제 알아보셨으니 된 일이죠.”
도전자는 10분 후 다시 유교의 마음을 장착하게 되었다.
“제 형님께서 피곤하셔서 제가 먼저 상대하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다리를 가로막고 행인들을 불편하게 하고, 두 대협의 길을 막은 것. 모두 되먹지 못한 짓이었지요. 네네…….”
거구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폭력을 받고 나면 사람이 사뭇 공손해지기 마련이다.
“형께 사과하세요.”
“천우야. 난 괜찮…….”
천우의 소매를 잠깐 잡아끄는 사이 무뢰배가 크게 소리쳤다.
“백의신룡 대협! 큰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쾅-!
이마에 피가 나도록 머리를 박았다.
천우는 만족스러운지 말했다.
“이제 잘 해결되었어요. 형.”
우드득-
천우가 주먹을 부드럽게 말아 쥐었다.
흡사 벽이 움직이는 것 같은 거대한 무골이 주먹을 말아 쥐자 그 기세는 자못 흉흉했고.
싸움 구경 온 행인들조차 놀라서 움찔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허나 천우에게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형을 귀찮게 하는 놈들은 다 처리해버 려야겠어.’
형은 분명 강하나 본질은 무인이 아닌 의원.
상대가 흑도에 양민을 참살하고 다니는 놈이 아닌 이상은 어쨌든 사정을 봐주는 면이 있다.
‘어차피 형은 강하니 알아서 다 처리하시겠지만, 그래도 그 피로는 누가 책임지는 거지?’
혈사가 일어난 직후, 형은 사건이 종결이 될 때까지 사람 사는 몰골이 아니었다.
그리고 종결이 된 후에도 죽은 듯이 잠만 자는 모습을 보며 깨달은 게 많은 천우였다.
“백의신룡! 기다렸다! 나를 무찌르지 않는 한 한 발짝도!”
퍼버버버벅!
“백의광룡 네놈의 무공이 그리 일절이라던데 사실 주둥아리가 일절…….”
빠바바박!
“멈춰라! 백의광룡! 제갈가는 개의 자손이고 네놈은 사실 똥통에서 나온……!”
퍽, 빠바바박! 우드득!
“형, 이 새끼는 세게 팰게요.”
“응. 사문을 그 정도로 욕했으니 그 정도는 해야지.”
“팔다리도 부러뜨릴게요.”
“어…… 자, 잠시만.”
진천희가 답하기 전에 그냥 천우는 우드득, 사지를 작신작신 분질렀다.
같은 부모 욕도 참아줄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형 성정에 이걸 또 참아줄지도 몰라. 내가 그 꼴은 못 본다!’
한편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진천희는 천우의 새 별호가 생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덤벼라! 외안광룡!”
그 말에 천우는 한숨을 쉬더니 이렇게 말했다.
“무당외안이나 무당광룡으로 불러 주세요. 최소한 그 정도는 해 줘야지.”
퍼버버벅!
잡졸을 팬다고 해도 말이 잡졸이지 상대도 한가락 하는 무인이다. 경험치가 쌓일 수밖에 없다.
허나, 형 신경 써서 죽이진 않는다고 권으로 상대한다는 게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음, 그냥 천우는 주먹도 일절인데?’
장신에서 오는 팔다리의 길이는 어지간한 검수보다 위협적인 데다가 무당권제에게 배운 절후한 무학까지 합쳐지니 점차 검보다 주먹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다양한 별호로 불리고 있군. 딱 뭐라고 결정된 건 아닌 듯하고.’
큰 체구에 빗대어 태산권룡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그건 썩 마음에 들어 했던 것 같다.
그래도 패는 힘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렇게 어느덧 둘은 황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가 황도…….”
성벽 앞임에도 거대한 사람들의 행렬에 질릴 정도였다.
‘그동안 봤던 도시들은 황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성벽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말로 걸어가도 성벽이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아 보일 지경이다.
‘아니…… 원근감이 어떻게 되어 있는 거야. 이거?’
이 대륙은 지명만 무협풍이지 동아시아와는 다르게 생긴 데다가 그 크기도 엄청나다.
그런 곳의 제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의 수도인 만큼 그 규모는 장대하기 그지없었다.
‘오늘 성벽만 보다 노숙하겠네.’
그렇게 하루를 넘기고, 이틀째가 되어서야 수문에 도착할 수 있었고.
경비병에게 신분 패를 보여 주고 들어가니 더 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이어졌다.
천우가 말했다.
“형…… 저 이렇게 사람 많은 거 처음 봐요.”
그 덩치 큰 놈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어…… 이번 생에서는 처음이다.”
진천희는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진실이 담긴 말을 흘리긴 했으나 이 정도로 의심받을 일은 없다.
애초에 책에 빙의되었다는 발상을 할 미친놈이 누가 있겠나.
“전 삼생을 다 거쳐도 처음일걸요. 형?”
왠지 촌놈이 된 기분이다.
개미 떼처럼 복잡한 사람들 속을 지나가며 진천희는 말을 몰아 대로로 향했다.
“형은 바로 황궁으로 향할 건가요?”
“이미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했어. 최대한 빨리 가는 게 좋지. 너는?”
“…….”
형의 질문에 천우는 잠깐 생각에 잠기다 이렇게 말했다.
“모처럼 황도에 왔으니 견문을 넓히려고요. 형이 황궁에서 볼일을 보시는 동안 기다릴게요.”
“그러면 어느 객잔에 머물 건지 정하자.”
컹!
황구가 자신 있게 짖었다.
그 모습에 진천희가 답했다.
“황구가 맛집은 본인이 골라 주겠다는데?”
“황구면 믿을 수 있죠.”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객잔을 정하고는 그렇게 헤어졌다.
‘여기가 황궁인가?’
대로 끝에서 황금 지붕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황궁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궁을 감싸는 벽은 끝에서 끝까지 아득하게 이어져 있어서 한눈에 담는 게 불가능할 지경.
진천희는 말에서 내려 황궁 정문이 아닌, 뒷문으로 향했다.
“멈춰라. 무슨 용건이냐?”
수문장은 한눈에 봐도 상당한 고수에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진천희는 곧바로 손목에 찬 황룡 팔찌를 풀어서 수문장에게 보여 주었다.
감찰사의 징표를 확인한 수문장은 내관을 불렀다.
“아이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백의신룡 나으리!”
수염이 없는 내관은 구부정한 허리로 진천희에게 인사를 했다.
진천희 역시 내관에게 예를 표하며 생각했다.
‘황궁을 살아가는 내관들은 모두 겉과 속이 다르다던데. 정말일까?’
음모가 판치는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생각하나.
외화 시대극에서나 보던 광경들이 펼쳐지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무기를 내려놓으시오.”
진천희는 가지고 있는 무기를 모두 건넸다.
“두 영물도 출입을 금하오.”
황구와 뇌진.
하긴 여차하면 무기가 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진천희는 이마를 찌푸렸다.
“천우에게 가 있어.”
컹! 삐익!
뇌진은 곧바로 황구의 머리에 올라탔다.
황구는 싫지 않은지 꼬리를 붕붕 흔들어 헥헥 소리를 냈다.
진천희는 그대로 황구의 찹쌀떡 볼을 쭉 잡아당기고는 그대로 구부정한 허리의 내관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뒷문으로 들어가 별채와 별채 사이로 이어진 좁은 골목길이 흡사 미로와도 같았다.
먹 냄새와, 무언가 태우는 냄새.
화장에 쓰는 분 냄새가 나기도 했고, 약재 냄새에 희미한 독향도 났다.
저마다 다른 소리와 다른 냄새가 나는 궁들을 지나서 가는 건 진귀한 경험이었으나.
진천희는 어느 쪽에도 눈길을 주지 않기 위해 애썼다.
황궁과는 어디까지나 이해타산으로만 움직일 뿐. 어떤 방향이든 깊이 연루되지 않는 게 좋다는 스승님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실제로 스치듯 맡은 달콤한 향은 미혹 향으로.
사파에서나 쓰는 독향을 어째서 황궁에서 사용하고 있는 건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신경 쓰지 말자.’
마침내 도착한 곳은 황궁 가장 심처에 있는 이름 모를 궁이었다.
현판에 시선을 주려다가 최대한 도로 눈을 낮췄다.
‘때로는 모르는 게 덜 관여되고 좋은 일이지.’
다소의 실례를 범한다 하더라도 크게 결례를 범할 일은 없다.
황실에 처음 온 무림인이라는 처지가 어떤 것들은 편하게 만들어 준다.
일부러 현판을 보지 않는 진천희를 내관은 슬쩍 눈을 돌려 보았다.
‘이상한…… 분이시군. 보통이라면 호기심 때문에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하나라도 더 보려고 하건만.’
오히려 눈을 막고, 귀를 막고, 코를 막았다.
입은 궁문을 넘는 순간 한 마디도 뱉지 않은 채 그저 다물고 있을 뿐.
관여되지 않으려는 모습이 도리어 내관은 마음에 들었다.
‘황상께서 왜 마음에 들어 하시는지 알 것 같구나.’
이자는 젊은 무인 같지 않다.
노회한 무인, 그것도 검과 정치질 두 개를 다 해 본 자의 연륜이 느껴졌다.
특유의 의뭉스러움조차 그리 보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내관이 붉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들어가시지요.”
꽤 큰 편이나 가장 큰 문은 아니다.
외진 곳이나 왕이 집무하는 중앙궁과 큰 길로 이어져 있어 오가기는 편해 보였다.
‘……더는 생각하지 말자.’
원치 않는데도 뇌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추론하려고만 하고 진천희에게 속삭이려고만 했다.
문득, 계단 아래 투구 꽃이 보였다.
진통제의 재료이나 동시에 독살을 할 때도 쓰이는 녀석이다.
잡초처럼 피어 있어 얼핏 시선을 주지 않으면 모를 위치이기도 했다.
계단을 올라 문 앞에 선다.
양옆에 서 있던 내관은 진천희의 신분을 확인하지도, 무언가 안에 있는 사람에게 전갈을 하지도 않았다.
섬뜩할 정도로 조용한 곳.
그저 문이 소리 없이 열릴 뿐.
진천희가 안으로 들어갔다.
“왔구나.”
주렴 뒤로 남자가 손짓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수북한 상소문을 읽고 있는 은왕야가 있었다.
가면을 쓰지 않고 움직이는 모습은 세외 별장에서도 한 번 본 일이 있으나 이렇게 금색 용포(龍袍)를 입고 있는 모습이 생소하긴 했다.
“소인, 하늘 같은 폐하를 뵙습니다. 만세 만세 만만…….”
“……또 짐을 놀리느냐.”
“헤헤헤.”
진천희는 일부러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오늘은 금이가 쉬는 날이라 내가 대신 공무를 보는 중이니라. 우리가 쌍둥이니 할 수 있는 일이지.”
“그렇군요.”
금왕야도 은왕야가 일하는 동안 제국 어딘가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으려나.
어쩐지 한쪽이 일하는 동안 다른 한쪽이 탱자탱자 노는 건 상상이 안 가긴 한다.
당장 금왕야가 일하는 동안 은왕야는 세외에서 몇 놈 피 좀 묻히고, 전쟁을 막기 위해 뒷수작 좀 하고.
겸사겸사 세림 교국 뒤통수에 짱돌 좀 박고 오시지 않았나.
“그래서 바로 들어갈 생각이냐?”
주어를 말하지 않았으나,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황궁 비고.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바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여독도 풀지 않는구나, 네 녀석은. 하긴, 원래 그런 놈이지.”
은왕야, 아니 은 폐하는 피식 웃더니 손짓을 했다.
“여봐라, 백린의각의 소각주를 황궁 비고로 데려가도록.”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적막한 궁에서 누군가가 달려 나왔다.
제독태감 한광.
흑색 잠행복에 가면을 쓰고 있던 첫 만남과 달리 여기서는 평범한 환관 차림에 등에는 봇짐을 하나 지고 계신다.
“예이, 폐하의 명을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