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
제 3화
“워워!”
말이 멈추고, 사람들이 말에서 내려섰다. 진천희는 그들을 하나하나 관찰할 수 있었다.
청색으로 물들인 무복(武服) 가슴팍에는 운룡표국이라는 자수가 새겨져 있었다.
키가 180센티는 넘어 보이는 장신에 근육질의 중년 사내가 선두에 있었는데, 겉으로 봐서는 50대 정도로 보였다. 수염도 없고 꽤 말끔한 인상이었다.
온몸에 근육이 상당해서 곰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는 허리에 찬 칼을 습관적으로 손으로 쓸었다.
칼집 없는 두툼한 칼이다.
‘유엽도(柳葉刀)잖아? 어라. 그러고 보니 지존천마 앞부분에 나오던 운룡표국주의 무기도 유엽도였던 거 같은데…….’
유엽도.
버들잎 모양의 칼이라는 뜻을 가진 두툼한 무기다. 도신의 머리 부분이 버들잎처럼 생겼고, 손잡이 쪽으로 갈수록 점점 늘씬하게 가늘어진다.
무협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데다가, 무협 드라마에도 심심치 않게 나와서 쉽게 알아봤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이 근육질 중년 사내의 유엽도는 다른 무인들의 것보다 더 크고 두터웠다는 점이다.
‘표국은 유니폼도 갖춰 입었구나. 직접 눈으로 보니 이렇게 신기할 수가 없네.’
그렇게 생각하며 지켜보고 있자니, 표국 사람들이 진천희를 발견했다.
진천희와 천막은 사건 현장에서 조금 왼쪽으로 떨어진 자리에 있었다. 때문에 한 번에 진천희를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국주님! 생존자가 있습니다!”
‘어…… 뭐야. 뭔가 처음 들어 보는 언어인데…… 알아들을 수 있네? 어째서?’
그러고 보니 당시 정신이 없어 눈치채지 못했지만, 털보 환자가 중얼거리는 소리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무사를 바라보던 진천희는 이내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단 한 명의 생존자. 그것도 피를 뒤집어쓴 소년.
“부상자가 더 있나 확인해라!”
처음 보았던 그 근육질의 거한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진천희를 향해 다가왔다.
분명 모양새는 평범한 걸음걸이인데, 한 번에 3미터씩 이동했다. 그 모습에 진천희는 몹시 놀랐다.
‘헐, 대체 뭐지?’
그가 놀라든 말든, 거대한 사내는 진천희의 앞에 우뚝 섰다. 진천희가 침을 삼키며 그걸 바라보았다.
‘장난 아니게 크네…… 때리거나 하지는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상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국어가 아닌데도 진천희는 이번에도 그 말을 전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런 아이를 고용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본능적으로 위축감을 느끼면서 올려다보고 있자니, 상대가 다리를 구부리고 몸을 낮추었다.
그럼에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기는 해야 할 정도로 커서, 진천희는 목이 조금 아파왔다.
“아해야. 본인은 운룡표국의 국주인 운지상이라고 한단다.”
거한이 상당히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말을 건네 왔다. 그 태도에 진천희는 속으로 감탄했다.
‘겉모습과는 달리 무척 정중한 사람이시구나.’
본인의 외모를 아는지 혹시라도 아이가 겁을 먹을까 최대한 조심스럽게 대하는 눈치였다.
“네 이름은 무엇인지 알려 주겠느냐?”
진천희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진천희라고 해요.”
“멋진 이름이구나. 그리고 이 상황에서도 침착하다니 참으로 정신력이 대단하구나. 뒤의 천막은 네가 만든 것이냐?”
“예. 다친 분들이 계셔서…….”
“다친 사람이? 잠시 먼저 보고 올 테니 여기에 있어 주겠느냐?”
진천희는 고개만 가만히 끄덕였다. 운지상은 그 말에 벌떡 일어나 천막을 젖혔다. 진천희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급한 환자다! 빨리 백린의선 님을 모셔라! 어서!”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그가 소리쳤다. 진천희는 그 말에 속으로 경악했다.
‘백린의선! 지금. 백린의선이라고 한 거 맞지? 설마…….’
저 멀리, 마차에서 누군가가 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마부가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을 가볍게 부축했다.
별처럼 반짝이는 은빛 머리카락이 보였다. 설원 같은 피부에 옥을 깎아 만든 듯한 유려한 선을 지닌 사람이 천천히 이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말할 미인으로, 놀랍게도 남성이었다.
진천희는 그를 보는 순간 심장이 터질 것처럼 놀랐다.
‘소…… 소설에서 본 묘사 그대로잖아…….’
진천희는 넋을 놓고 말았다. 그 미모를 보고 놀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소설 속의 인물을 직접 보게 된 탓에 혼란이 머릿속에 가득 찼기 때문이었다.
‘나…… 소설 속 세계에 들어와 있는 건가?’
멍한 얼굴로 진천희는 백린의선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윽고 진천희는 천막을 돌아보았다.
‘그렇다면 내가 구해준 건 설마…… 미래의 천마?’
* * *
진천희는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백린의선. 그 머리카락이 기린의 흰 비늘 같다고 하여 생겨난 별호. 천하 삼 대 의원 중 하나이며, 이제는 쇠락한 제갈세가의 마지막 직계 혈통이라고 소설 속에서 설명하고 있긴 한데…….’
천막은 금세 해체되었다.
백린의선 제갈린은 환자 하나하나에게 다가가 손을 댔다.
‘진맥…… 나도 예전에 배워 보고 싶었는데.’
진천희는 현대 의학의 외과의사지만 무협 소설에 심취하면서 한의학도 공부를 했다.
다만 전문 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하거나, 스승을 두고 사사받은 것이 아니라서 제대로 된 지식과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그래도 혈 자리는 전부 외운 데다가, 한약재에 대한 지식도 약간은 가지고 있었다.
진맥을 하던 백린의선은 환자의 옷을 벗기고 거침없이 침을 꽂아 넣었다.
‘우와, 엄청 빨라. 확실히 소설의 그 백린의선이 맞긴 한가 본데…….’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데, 백린의선이 진천희가 봉합한 부분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더니 그 잘생긴 얼굴이 감탄으로 물들었다. 시종일관 환자만을 진중히 살피던 그였다. 그의 표정 변화에 얼굴을 붉히는 자들도 있었다.
그는 품 안에서 목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알싸한 향기가 여기까지 난다. 그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더니 연고 같아 보이는 끈적거리는 액체를 손가락으로 퍼서 상처에 두드리듯 툭툭 발랐다.
신기한 것은 금창약을 바르는 것도 방법이 있는 것인지 혈도를 중심으로 두드린다는 것.
그리고 두드리는 소리가 꽤 큰데도 환자는 그리 아파 보이지 않는다는 점.
‘저게 금창약이라는 연고인가? 신기하네…… 이게 소설이 맞다면 저게 백린의선의 백린금창약이겠네? 저게 소설에서 한 통에 금자 열 냥이라고 했는데. 그리고 지금 약을 바르는 것도 단순히 바르는 게 아니라 내력을 이용해 바르고 있는 거고.’
배우고 싶다. 의사로서의 사명감뿐 아니라 순수하게 학자로서의 호기심이 밀려왔다. 그때 국주가 다급히 외쳤다.
“상태가 어떻소? 담 표두와 공손 표사는 살 수 있는 것이오?”
‘아저씨는 담 표두, 아가씨는 공손 표사인가 본데…… 역시 저 꼬맹이가 천마 여하륜일까?’
진천희가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던 와중. 백린의선이 고개를 돌리며 도리어 물었다.
“이 처치를 한 자가 누구입니까?”
모두의 시선이 진천희에게 쏠렸다. 백린의선의 시선도 진천희를 향했다. 모두의 시선 때문에 공기가 묘하게 달떠 있다.
* * *
‘무공을 익힌 흔적은 없다. 지극히 평범한 몸. 나이는 이제 열에서 열둘 정도. 기이하구나.’
백린의선 제갈린.
천하 삼 대 의원 중 하나인 그는 소년 진천희를 보면서 생각했다.
‘상처를 실로 꿰매어 막는다. 이는 부술의 하나이지만 강호에서는 쉽사리 볼 수 있는 의술이 아니야. 이런 상처는 보통 점혈을 통해 출혈을 막고, 상처가 맞닿게 한 후 금창약을 발라서 붕대로 강하게 감는 것이 일반적인 치료법이지 않은가?’
흡사 무공을 익히지 않은 세외의 부술과 흡사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선택된 소수의 의원이 아닌, 무공을 모르는 다수의 사람들이 익힐 수 있게 개량한 듯한 흔적도 느껴졌다.
‘흐음…… 기이하구나.’
운룡표국은 천하에서도 수위에 손꼽히는 표국이다. 백린의선은 오래전부터 그런 운룡표국과 친밀하게 지내왔다. 그가 기거하는 백린의각의 본원(本原) 근처에도 그들의 분타가 존재했다.
그런 분타에서 표국의 국주가 직접 달려와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온 자리.
시체가 널려 있는 모습으로 보아 철저하게 계획된 습격인 것으로 보였다. 그런 장소에서 제갈린은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되어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 역시 천하 삼 대 의원으로 이름이 높은 만큼 부술(剖術-살을 가르고 수술을 행하는 고대와 중세 중국의 의술의 하나)에 대해서는 정통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백린의선 제갈린조차도 이렇게 깔끔하게 상처를 봉합하는 것은 하지 못한다. 아니. 해 본 일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현 시대의 창상 봉합법은 점혈을 사용하거나 인두를 사용해 불로 살을 지지는 방식이 주력이었으니까.
상처를 옷처럼 봉합한다는 것은 단순하지만, 혁신적인 생각이었다.
‘혹시 혈생노괴. 그분과 관계가 있는 아이인가?’
혈생노괴.
천하 삼 대 의원 중의 한 명이자, 제갈린보다 연배가 높은 의원이자 강호인. 반로환동을 한 그는 부술로서는 천하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자였다.
그러나 달랐다. 혈생노괴가 외상을 치료하는 것을 몇 번 봐 왔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었다.
‘게다가 실의 위치가 일정하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야. 만약 나였다면 이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을까?’
점혈을 이용해 지혈을 한다면 가능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늘과 실을 이용해서 그 응급 상황에서 한다? 그건 불가능했을 터였다.
제갈린이 속으로 생각하며 소년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대단한 의술이 아닐 수 없었다.
* * *
진천희는 힘겹게 목소리를 냈다.
“접……니다만.”
“실로 훌륭한 의술이군요. 소협이 아니었다면 이 환자는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 말에 모두가 경악에 물들었다.
‘백린의선이 그동안 이렇게 극찬하는 이가 있었나?’
그것도 상대는 작은 꼬마아이다.
언제나 의술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엄격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의술에 대한 칭찬을 듣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
그러나 막상 그런 말을 들은 소년 진천희는 그런 것에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사실 다른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속내와는 달리 그 모습도 다른 이들에게는 특별해 보였다.
‘으음, 내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답할 말이 없는데 어쩐다. 그나저나 부술이라면 외과 수술 같은 걸 부를 때 쓰는 단어였지? 새삼스럽지만 귀에 익지가 않아.’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진천희는 짧게 손사래를 쳤다.
“그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진천희의 대답에 백린의선은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