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07
제 307화
029. 비급이 몰고 온 혈풍
진천희와 천우는 의각을 향해 방향을 잡고 말에 올랐다.
해는 어둑하게 지기 시작했고, 먼발치에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없는 곳은 공기부터가 달랐다.
강한 풀 냄새가 코를 톡 쏘았고, 황구는 기분이 좋은지 연신 꼬리만 살랑였다.
‘북경에서 강소성까지는 남쪽으로 일직선으로 내려가면 되니까…….’
하북, 산동을 지나면 그 다음은 강소성이다.
올 때도 그리 왔으니 갈 때도 그리 가면 되겠지.
저 멀리 보이는 소도시는 감단(邯鄲)이라고 하는 도시로, 하북성과 산동성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중간지라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산적이나 도전자를 만나는 일도 없이 곧장 객잔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네.’
식사를 주문하고 방 두 개를 잡고.
목욕물도 준비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짐을 내려놓고 여독을 풀고 있는데 점소이가 다가왔다.
“혹시 백의신룡 진천희 대협이십니까?”
이런 경우 아픈 환자가 있거나 도전자가 있거나, 둘 중 하나다.
“그렇습니다만?”
어느 쪽이냐.
환자는 직접 가고, 도전자는 천우를 보낸다!
그렇게 긴장을 하고 있는데 점소이는 예상 밖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의동생 되시는 사마현 공자님의 전언입니다.”
“음?”
잘 봉인된 서신은 금혈방의 인장이 찍혀 있었고.
점소이의 손끝이 묘하게 떨리는 것이 사마현의 서신이 틀림없었다.
천우가 물었다.
“막내한테서 온 거군요.”
‘너희끼리 알아서 서열 잡았구나.’
서신을 읽어 보니 뜻밖의 이야기였다.
“광무존의 비급이 숨겨져 있다는 비동이 발견되었다는데? 현재 여러 문파가 분쟁에 참여했으며 무림맹에서도 본격적으로 조사를 천명했다고 하는데…….”
“호오?”
천우의 눈이 커진다.
진천희는 말을 이었다.
“사도련 역시 개입을 천명하고, 마교 역시 움직이고 있고. 백린의각과 화주의각도 의료 지원을 요청받은 상태. 의각주인 스승님께서 직접 움직이시기로 정했다는……군?”
아래에는 ‘형이라면 알아서 잘하겠지만. 신중히 움직여야 할 것 같아.’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큰일이군요.”
“…….”
천우의 말에 진천희는 생각에 잠겼다.
‘이게…… 벌써?’
신공절학의 비급 쟁탈전!
무협 소설이라면 한 번쯤 나오는 빅 이벤트로, 지존천마에서도 큰 사건 중의 하나다.
우선 지존천마 소설 내용에 보면 신공절학 중에서도 최상이라고 칭송받는 무공이 총 여덟 가지가 있는데, 이것을 ‘팔대절학’이라고 부른다.
이 팔대절학 중 하나가 바로 천마신공이며, 황궁 비고에서 봤던 육합귀진신공.
오행신공은 팔대절학에 속할 정도는 아니라고 폄하되고 있는 상태이고.
현원전단신공은 그 공능만 보면 팔대절학에 속할 만하지만, 내공 자체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서 팔대절학에 끼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나 이미 팔대절학 중 천마신공을 알고 있네? 흠…… 뭔가, 게살탕수를 희생해서 얻은 것 같은 기분이라…… 그 무게감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했지…….’
다른 마교 소교주들처럼 적마혈단 먹고 다른 소교주들이랑 죽네 사네 하면서 보낸다면 천마신공의 위엄을 뼈저리게 느끼련만.
현실은 천마님께서 앞에 와서 기절시키고 게살탕수 다 뺏어 드시고, 술도 대여섯 병이나 다 드시고 유유히 떠나셨다.
이 과정에서 천마신공의 거대한 공포나 팔대절학의 무시무시한 위엄을 느낄 그 어떤 기회도 없었지.
그나저나.
지존천마에서도 나온 이 이벤트.
팔대절학 중 하나.
패천무상신공!
광무존이라고 불렸던 이백 년 전 절대 고수의 무공.
그 비급이 잠들어 있다는 비동이 발견되고. 그 비동을 차지하기 위해 혈전이 벌어졌었지.
‘당연하지만 이것도 혈선교의 음모다. 혈선교 놈들은 이 비동을 일찌감치 발견했지만, 적절한 때에 이걸 터뜨리려고 묻어 두고 있다가 슬쩍 정보를 흘려 강호인들이 서로 상잔하게 만든 거니까.’
이건 전부 함정입니다아! 여러분!
……하고 외쳐 봐야 ‘백의광룡! 비급을 독차지하고 싶어 이런 거짓말까지 하는 것이냐! 추하다!’라는 욕이나 들을 거다.
그만큼 비급을 앞에 둔 무림인이란 말이 안 통하는 법.
사제, 사숙, 장로, 장문인 모두 사이좋게 연장 하나씩 꼬나 쥐고 출발하시겠지.
‘하…… 답답하다.’
지존천마에서는 여하륜이 마교의 명령으로 참전한다.
그리고 주인공답게 그 혈로를 뚫고 우여곡절 끝에 패천무상신공을 얻어낸다.
이게 참 악랄한 게 그거다.
비급이 있다는 것은 진짜라는 것.
그 비급을 얻은 여하륜은 이번에도 잃어버린 동료들과 죽인 은원들을 가슴에 새기며 패천무상신공을 익히는 데 성공한다.
한마디로 여하륜 빼고 다 죽는 전개다.
지존천마가 원래 그렇다.
혈선교에서 이 비급을 챙기지 않는 이유는 사실 별거 없다.
‘혈선교에는 팔대절학에 비견된다고 말하는 사대신공이 존재하니까.’
마공임에도 굳이 신공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바로 혈선들이 직접 전수해 준 무공이어서, 극에 이르면 등선의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미친 소리다.
깨우치고 도를 얻어야 등선을 하는데, 그 도(道)라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적어도 착한 사람 순으로 신선이 되는 게 아니다. 이 세계는.
육식을 자제하고 살생을 금하며 수십 년을 산다고 한들, 그 도를 얻지 못하면 인간은 그저 필멸자로서 한 줌 재가 되어 으스러지고.
반대로 평생 사람 수십, 수백, 수천을 도살해 온 강호인이라 하더라도.
도에 다다르게 되면 등선하게 된다.
혈선의 도가 인간의 도가 아님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 도의 끝에도 등선이 있다는 것.
‘그래. 천마도 등선하는 판국에…….’
진천희는 그녀를 직접 보았다.
소박한 무복에 검 한 자루 찬 게 전부, 나른한 듯 무심한 듯 심드렁한 눈빛은 세상에 초탈한 도인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피로 강을 이룬 자다.
죽인 이가 고작 천이면 적은 숫자다.
아마 그녀가 소교주에서 교주로 올라가기 위해 천마혈로를 걷는 동안 족히 일만은 넘게 베었겠지. 그리고 천마가 된 이후에도 일만은 또 족히 베었을 거다.
숨을 쉬듯 죽여 왔을 터였다.
그게 천마란 존재이고, 십만대산을 오시하는 존재.
그래. 그런 그녀도 등선한다.
선(善)은 결코 불로불사를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우리는 선을 믿는 것일까.
어쩌면 남는 것은 칼과 돈밖에 없을지도 모르는 세상에. 선이란 결국 부질없는 아지랑이에 지나지 않는 걸까.
진천희는 습관적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인간은 선을 놓지 못하지.’
진천희는 굶주린 개에게 쉰밥을 떼어주는 거지를 보았다. 쉬어 버린 밥이었으나, 어린 거지에게는 하루 치 식량이었다.
싸우던 도중 깨달음에 다다라 벽을 넘기 직전, 위험에 처한 양민을 위해 그 깨달음을 포기하고 몸을 던져 구한 무인도 알고 있다.
그 무인은 의각에 도착하기 전에 사망했다.
그는 도를 포기하고 선을 움켜쥐었다.
‘아직은 그 답을 모르겠다. 나는.’
물론 수십 년을 함께한 마을 주민들을 죽여 금전으로 바꾼 이를 보기도 했다.
비밀 장부에 적힌 금액을 봤을 때 그리 큰 금액도 아니었다.
그 금액조차도 대부분은 유곽에 탕진했다.
결국 주민들의 피를 짜내서 촌장에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다.
‘그 비슷한 일이 곧 일어나게 되겠지.’
혈선교야 불로불사에 신선이 되는 게 목적인 광신도들이니 혈선이 주는 무공이나 열심히 갈고닦겠지만 일반 무인들은 사정이 다르다.
제아무리 구 대 문파, 팔 대 세가라고 해도 팔대절학 중 하나인 패천무상신공에 욕심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설령 익히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무리를 손에 넣어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진보를 이루어낼 터.
그걸 얻기 위해서, 강호인들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할 거다.
“이제 어쩌실 거예요. 형?”
“바로 섬서성으로 움직여야겠지. 너는?”
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뭐, 무당파가 이미 움직이고 있을 테니 그쪽으로 가야죠.”
“동행이 생각보다 길어지겠는걸?”
진천희의 말에 천우가 장난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저야 좋죠.”
그리 말하며 손가락을 하나씩 말아 쥐는 게 아닌가.
우드득-
‘도전자는 걱정 없겠군.’
천우 별호만 좀 좋은 게 생기면 딱인데.
흉흉하지 않고 정파다운 걸로…….
* * *
어둠 속.
부글거리는 피 웅덩이를 가운데에 두고 인기척이 느껴진다.
사람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무거우나, 짐승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지성이 있는 자의 기척이었다.
-아니, 우리 몇 년간 숨으라는 거 아니었어?
-이번 일은 ‘그놈’이 독단적으로 꾸민 일. 말리기도 전에 달려 나가더군.
-뭐? 그러면 뭐야. 우리도 뭔가 해야 해?
-그럴 필요는 없다. 어차피 내버려두면 그들끼리 알아서 상잔할 터. 그것을 지켜보면 되는 일이니.
-흐음. 마교의 천마는 패천무상신공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천마는 그러하다.
-허면?
-마종육가(魔種六家: 마교의 대표적 여섯 가문) 중 셋이 나섰다. 그놈들이 패천무상신공을 얻고 싶어 하더군.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다음 천마가 되기를 바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패천무상신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욕심도 많아라~.
-교주께서도 이번 일은 특별히 허하셨다.
-그래도 괜찮겠어? 혈선께서 원하시는 광룡도 그쪽으로 가던데.
-그런 운명을 가진 자가 그 정도에 죽는다면, 그 또한 거기까지일 터.
-흐음…… 교주의 속을 모르겠단 말이지.
그 순간, 피 웅덩이 속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크헉, 크윽…… 제발, 제발……!”
한눈에 봐도 고강해 보이는 무인이었다.
그러나 그런 무인이 사지근맥이 잘린 채로 피 웅덩이 속에 담가졌다가 겨우 바깥 공기를 마신 셈.
“모든 정보를…… 크윽…… 다…… 말했잖습니까…… 부디…… 자비를…….”
그러나 웅덩이 주변에 앉아 있는 자들은 무인의 말 같은 것은 전혀 들리지 않는 듯 자기끼리만 말했다.
-이 정도면 간이 좀 되었나? 바로 내장 꺼내면 될 것 같은데?
-저 나이까지 동정을 지킨 도인이니 혈선께서 필시 좋아하겠지. 슬슬 갈라 보도록 할까.
“끄악! 끄아아아아악!”
동굴 안에서 비명이 울렸다.
그러나 누구도 그 무인을 구할 자는 없었고.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잘린 머리들이었다.
* * *
같은 시간, 진천희는 황하를 관통하는 배를 타고 섬서로 곧장 가기로 했다.
급한 일이다 보니 빨리 갈 수 있는 배를 수소문해 보던 중, 군용 수송선에 선의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감찰패를 꺼낼 필요도 없겠군.’
마침 목적지도 같다.
이 군용 수송선이라면 원하는 곳까지 최대한 빨리 갈 수 있을 터.
“뭐? 백의신룡이라고? 백의신룡이 선의로 온다고?!”
함장은 놀라서 소리쳤다.
백의신룡의 명성은 군에서도 익히 알고 있는 터.
“환자 걱정은 없겠군요. 함장님!”
그 말에 함장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것도 그렇겠지, 허나 중요한 건…… 군관들은 모두 식재료를 준비해라! 가득 실어라아아아아!!”
함선에 있는 모든 군관들은 그렇게 의약품보다 식재료를 준비하는 데 혈안이 되었다.
진천희는 그렇게 그 군함 최고 선의보다…… 최고 숙수와 먼저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자신의 커리어가 이상한 방향으로 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