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08
제 308화
‘내가…… 여기서 짬을 만들고 있군.’
말이 짬이지, 제대로 된 중원식 요리다.
다만 야영하던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먹을 수 있게끔 엄청난 양의 요리를 한꺼번에 한다는 것뿐.
“대…… 대단하십니다. 대협! 보통은 세 명이서 흔들어야 할 거대 화과를 한 손으로 흔드시는군요.”
차르르륵!
진천희가 만드는 건 해물 카레 볶음밥.
카레는 본디 인도의 것.
세외의 향신료가 그나마 비슷하다.
그걸 잔뜩 구해 온 군관에게 원 따봉을 날리고.
카레 볶음밥과 탕수육, 해물 짬뽕을 만들고 있다.
과연 이 많은 군인들을 먹이는 군함답게 중화 프라이팬이라 할 수 있는 화과의 크기도 남달랐다.
원래라면 한 명이 흔들고, 한 명이 국자로 계속해서 젓는 것이 기본이나.
진천희는 그냥 한 손으로 하고 있다.
그것도 원래라면 배가 정박하고 야영이나 하면서 만드는 게 정상일 텐데.
진천희는…….
‘내가 화경에 들고 가장 먼저 하고 있는 게 카레 볶음밥이네. 미친…….’
그랬다.
화경에 들며 증가한 내공은, 더욱 튼튼해진 단전과 기혈을 따라서 화생진기를 엄청난 기세로 뿜어내고 있었고.
진천희는 그것을 이용해 중국집 화력처럼 볶음밥을 볶고 앉아 있다.
‘허허허허…… 이게 무슨…….’
보통의 강호인이라면 화경에 들고 나서.
‘훗, 내 경지를 감추려고 했건만 어쩔 수 없지.’ 하면서 마지못해 검을 스르릉 뽑아 적을 공격하는 게 우선 아닌가.
강호인의 로망, 그런 거 없다.
‘그래. 화경으로 사람 배때기 쑤시는 것보다 밥 먹이는 게 훨씬 이득이지.’
의원은 낭만을 버렸다.
이윽고 카레 볶음밥에서는 제법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듯한 향이 점점 번지기 시작했고.
옆에서 지켜보던 숙수들도 침을 꼴딱꼴딱 넘기기 시작했다.
탕!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여기에 약간 매콤하게 만든 탕수육까지 함께하면 끝내주겠죠.”
마라 짬뽕도 만들었다.
합쳐서 맵달맵달이다.
“우와아아아!!!! 과연 백의신룡! 못하는 게 없으십니다!”
“천하에 요리로 견줄 자가 별로 없다던데 과연!”
“어디선가 들어본 적도 없는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풍문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알았습니다!”
일제히 칭찬하는 폼이 뭔가 수상쩍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진천희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자 최고 숙수가 배시시 웃었다.
“한입만 먼저 맛……봐도 되겠습니까?”
그게 목적이었구만, 이 양반들.
진천희가 만든 요리에서 모두 시선을 떼지 못하고 이제나저제나 한입 먹을 기회만 노리고 있는 폼이 재미있다.
진천희가 씨익 웃었다.
“요리가 완성되기 전에 맛보는 건 숙수로서 당연한 의무죠.”
“다, 당연하고말굽쇼!”
꿀꺽.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침을 삼키는 게 안 주면 울 것 같다.
진천희는 탕수육 위에 소스를 끼얹었다.
‘부먹이냐 찍먹이냐는 원래 배달할 때 고르는 거고.’
갓 튀긴 탕수육에 소스를 얹으면 탕수육도 바삭한 채로 그 풍미까지 느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원래 이 지방은 보통 다 부먹이다.
배달이 없으니까.
와작.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모두의 눈이 커졌다.
그러더니 두 입, 세 입 삼켰다. 육즙과 탕수육 소스가 기가 막혔다.
거기에 짬뽕 국물까지.
“크허어어어. 멈출 수가 없구나.”
‘한입만 드신다더니 다 드시게 생겼군.’
주방 숙수들은 그만 이성을 잃고 먹기 시작했다. 진천희가 물었다.
“이거 배식 안 합니까?”
“아, 해, 해야죠. 해야죠. 마침 배도 정박했으니 저녁 먹으면 됩니다.”
* * *
배는 중간 포구에 잠시 멈춰 필요한 물자를 옮겼고, 그동안 모두가 호화스러운 저녁을 먹었다.
“우와아아! 최고입니다!”
“과연 백의신룡! 서장의 향신료로 볶음밥을 하다니 크으…… 계란과 아주 잘 어울리는구나!”
“밥알이 하나씩 씹히는 느낌이 끝내줍니다. 이런 걸 먹을 수 있다니.”
“술 한잔 하죠?”
군관으로서 과음은 금지이나 한두 잔 정도는 눈감아주는 분위기. 거기다가 음식까지 맛있으니 자연히 더 풀어지게 된다.
모두가 적당히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마시고, 즐거이 식사를 했다.
진천희와 천우 역시 함께 저녁을 먹으며 오랜만에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형, 진짜 이런 건 어디서 배운 거예요?”
“그냥 어쩌다 보니 만드는 거지. 너도 요리는 꽤 하던데.”
“그래 봤자 기본적인 것들뿐이죠. 그리고 요리보다는 설거지를 더 잘해요, 저.”
천우는 웃으면서 진천희의 두 배는 되는 카레 볶음밥과 탕수육, 짬뽕 국물을 해치웠다.
‘덩치도 크니 많이 먹는구나.’
이렇게 많은데도 먹는 속도는 어째 진천희와 비슷해서 다 먹고 났을 때는 비슷하게 그릇이 비워져 있었다.
“후, 좋네요. 형은 술 안 좋아하죠?”
“응. 차가 좋아. 너 좋으면 가서 한잔 해.”
천우가 고개를 저었다.
“에이, 저도 차가 더 좋아요.”
그리 말하며 장난스럽게 찻잔을 부딪친다.
쨍-
“좋은 밤이에요. 형.”
“응, 좋은 밤이네. 그렇지, 황구…… 음, 자고 있네.”
뽈록한 배를 까뒤집으며 깊게 자고 있는 황구.
문득, 그 순간 황구의 귀가 한 번 까닥, 흔들렸다.
“어라?”
황구가 몸을 뒤집는 것과 동시에 진천희의 몸도 곧바로 튀어 나갔다.
콰아아아앙–!
배 밑바닥부터 진동이 울려온다.
‘뭐 어디 부딪친 건가?’ 천우는 그리 생각했으나, 형의 푸른 눈동자를 보고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배가 침몰한다–!”
고개를 돌려 보니 사방 수풀에서 작은 쪽배 스무 개가 노를 저으며 접근하기 시작했다.
“적이다. 모두 대비해라!”
군관의 호통에 모두가 급히 몸을 일으키나, 방금 전까지 술에 알딸딸하게 취해 있던 사람이 바로 전투에 재깍 대비할 수 있을 턱이 없다.
자연히 대응이 느려지기 마련.
‘배가 조금 기운 것 같은데……?’
가라앉는다고 하더니…… 그 징조인가.
그 순간. 황하강 한가운데의 어둠 속에서 횃불이 하나둘 켜진다. 작은 쪽배 수십이 있었고, 그 위에는 사람들이 타고 있다. 복장도 제각각이지만, 무기도 통일성이 없다. 그리고 그들이 일제히 외쳤다.
“백의광룡을 잡아라! 놈을 잡아 백린 새끼와 협상하는 거다!”
습격.
강호에서 습격은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천우와 진천희 둘 다 놀라야 했다.
천우와 진천희가 얻어 탄 이 배는 관의 군선이니까.
천우가 놀라서 중얼거렸다.
“돌았나? 아무리 흑도라고 해도 관군을 건드려?”
그 말에 진천희가 담담히 답했다.
“관군에게 뇌물도 주는데 건드리지 못할 이유가 있겠니. 거기다가 천하 팔 대 비급이란… 일흔 살 도인도 미쳐버리게 만들 만한 마력이 있거든. 흑도가 여기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진천희는 피식 웃었다.
“관과 무림은 상관하지 않는다는 말. 천우야, 어떻게 생각하니?”
“형.”
“나는 오히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허나 그 일을 회피하고 싶을 때 쓰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이렇듯 인간은 욕망 앞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말이지.”
군관이 소리쳤다.
“감히 이 사파 놈들이! 쏴라!”
군관의 외침에 술이 깬 관병들이 모두 화살을 쏘았다.
피피피핑!
수백 발의 화살이 허공을 갈랐다.
“미친놈들입니다, 형. 관아에 알려지는 대로 조만간 토벌될 거예요.”
“그래. 토벌되겠지. 그런데 말이다, 천우야. 황하에 수적이 없었던 적 있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니?”
피피피피피핑!
몰아치는 화살 비 속에서 진천희는 담담히 물었다.
천우는 화살 비와 형의 푸른 눈과, 그리고 형의 곁에서 으르릉 털을 세우는 황구를 번갈아 보았다.
천우가 말했다.
“사부님은 이것을 제게 보여 주고 싶은 거였을까요?”
“적어도 강호의 민낯은 볼 거라고 기대하셨겠지, 천우야. 그분은 제자를 곱게 키우시는 분이 아니니까.”
화살 비가 세차게 몰아치나, 수적들도 제법 화살을 잘 막아내고 있었다.
채채채챙!
거대한 창과 방패를 꼬나 쥐고서 화살을 막아내는 폼이 제법 고수들까지 이번 일에 참가한 모양.
허나, 배 주변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할 뿐 먼저 덤벼들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천우가 형에게 물으니, 진천희는 이렇게 답했다.
“힘들게 올라올 필요가 있겠니? 그냥 배가 천천히 침몰하기 기다리면 되는 게지.”
푸른 안광으로 담담히 답하는 순간. 천우의 등에 소름이 일었다.
“형, 그 말은…….”
“어떤 일은 그저 기다리기만 해도 이루어진단다. 이것 역시 그런 거지.”
수적들이 외쳤다.
“하하하! 백의광룡! 아무리 네놈이라고 할지라도 이 황하강에서는 우리가 최고다! 황하장강수로십팔채의 하나인 우리 어룡채(漁龍寨)야말로…… 컥!”
그 순간, 외친 놈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천우가 시선을 돌려 형을 돌아보았는데 형은 이미 등에서 각궁을 뽑아 들고 있었다.
“괜찮아. 죽이진 않았으니까. 혼절한 것뿐이야.”
언제 쏜 걸까.
초식의 자세도, 살기도, 심지어 동작이 만들어내는 작은 공기의 흔들림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고요하게 진천희는 서 있었다.
어찌 보면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괜찮아. 천우야. 나도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어.”
그 순간, 진천희는 빠른 속도로 활시위를 튕겨 내기 시작했다. 화살이 없는 활은 퉁겨질 때마다 여지없이 사람을 하나씩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심궁! 심궁이다! 백의신룡이 심궁의 경지에 이르렀다!”
주변의 경악 속에서도 진천희는 계속해서 활을 쏠 뿐.
풍신궁(風神弓).
진천희식 변형.
백룡탄시–!
황실 비고에서 얻은 절학 중의 하나인 풍신궁(風神弓)을 전진교의 탄지천통(彈脂天通)과 결합했다.
백 마리의 용이 날아가듯 수없이 많은 기의 화살들이 꽂힌다.
퍼버버벅!
놀라운 것은 무엇 하나 빗나가는 법 없이 정확하게 흑도들에게 꽂혔고, 그렇게 꽂힌 자들 중 즉사한 자는 누구도 없었다는 점. 그저 더는 검을 휘두를 수 없게 어딘가 부러질 뿐.
“내가 막아 보겠다!”
흑도의 고수가 잽싸게 선수에 올라서 진천희의 풍신궁에 대적해 본다.
처음 관군들의 화살 비를 막아 내던 고수들 중 하나였다.
“흐읍!”
그는 창을 들어 무형의 화살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콰아아앙!
허나, 그 충격까지는 계산하지 못했다.
‘이게 무슨……?!’
흡사 고수의 주먹이 날아오는 것 같은 묵직한 충격에 그만 막은 채 뒤로 나가떨어져 강에 빠졌다.
풍덩–!
그걸 본 흑도의 누군가가 소리쳤다.
“막지 마라! 차라리 피해라. 모두 갑판 아래로 숨어!”
진천희의 무위에 관군들의 사기도 올랐다.
“백의신룡이 요리가 일절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무공도 일절일 줄은!”
“요리 솜씨만큼이나 무공도 고수라는 말이 사실이었구려!”
……천우는 형에 대한 소문이 뭔가 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삼 갑자 반의 내공으로 화생공을 일으켜 만든 요리가 일품이 맞기는 하나.
보통은 무위부터 거론되고 요리가 취미로 들어가지 않나?
‘어째 소동파의 시가보다 동파육이 더 유명해지는 광경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