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10
제 310화
‘정화의 술이 생각보다 쓸 만한걸?’
예전에 완농에서 만났던 그 주술사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는 실력이나 급한 상황에서는 응급처치를 보조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덕분에 환자는 의식을 유지하고 말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회복되었다.
“크윽…….”
“억지로 걸으시면 안 됩니다. 날이 밝는 대로 근처 의원으로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고맙소.”
무인은 그리 말하며 다시 누웠다.
상태가 괜찮으니 이대로 지역 의방에 데려다 놓기만 하면 그쪽에서 도와주리라.
“이 촌부는 청검문의 영추삼이오. 비급이 발견되었다고 하기에 혹시나 해서 가다가 흑도의 적혈마검을 만나 시비가 붙어 쓰러졌소.”
음. 둘 다 모르는 사람이다.
강호에서 무명 한 번 들어 본 적도 없고, 소설에도 등장한 적 없는 걸 보니 비중이 없는 엑스트라인 모양인데…….
“그런데 왜 출혈을 막지 않고 계셨습니까? 점혈을 하면…….”
“으음…… 어디가 혈인지 잡기가 어려웠소…….”
상대가 조금 낯부끄러워 하면서 대답하는 걸 보면서 진천희는 의문에 휩싸였다.
‘음? 중소 규모 문파라고 해도 기본적인 혈 자리 같은 건 배우지 않나?’
은근히 천우에게 전음을 날리니 천우가 이렇게 답했다.
[혈도 외우는 게 생각보다 어려워요. 그리고 이런 말 하긴 뭐 한데…… 강호인 절반이 문맹이거든요.]문맹.
그건 대충은 알고 있다.
진천희가 있는 대한민국이야 원래부터 문맹률이 낮지만 현대도 문맹률 높은 국가들이 많다.
이곳이면 말할 것도 없다.
배포용으로 만든 가정 의학 관련 의서에도 삽화를 많이 넣는 게 이런 이유에서였다.
‘반이면 그래도 일반 양민보다는 조금 더 높은 수준이긴 하네.’
진천희가 체감한 바로는 대충 80% 이상이 문맹인 것 같았다.
그건 어디까지나 중소 도시 기준이고 시골 산지로 가면 더 높겠지.
하지만 궁금증이 하나 더 생겼다.
[그럼 애초에 무공은 어떻게 배워?] [구결로 전수해 주는 곳에서 수련하면 되니까요. 보통 무관이 그렇게 가르쳐 주고요.]구결, 즉 말로 설명한다는 뜻이었다.
‘으음…… 그렇구나.’
그동안 그래도 세상물정에 대해 좀 많이 알게 되었다고 자만하긴 했었다.
허나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용봉지회에서도 많은 무인들과 무(武)를 나누었으나 그들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지는 못했고.
그저 물밀듯이 밀려오는 환자들을 어찌 치료해야 할지 막막했을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지. 대부분의 무인들은 어딘가의 세가 사람들이 아니라 무골이 타고나서 무관에 들어가 얼떨결에 무공을 익힌 자들이니까.’
물론 강호를 움직이는 건 구 대 문파나 팔 대 세가다.
허나, 도산검림을 채우는 건 대부분 이런 사람들일 터.
갈 곳이 멀다는 것이 뼈저리게 체감이 된다.
‘그래서 스승님이 연무 도시 만들 때 꼭 설명을 잘하는 무인을 채용해야 한다고 하셨구나.’
연무 도시를 만들 때 스승님께서 하셨던 조언이다.
-희야, 본신의 무력이 다소 떨어진다 하더라도 말을 잘하는 무인이 한두 명쯤 꼭 필요하단다.
그때는 막연히 ‘글을 모르는 무인을 배려하기 위해서구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강호 무림인의 절반이나 글을 모른다니! 그 정도면 말로 설명해 주는 강사가 없으면 안 되는 수준 아닌가?
“그으, 백의신룡 대협.”
“네?”
무인은 뭔가 주저주저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혹시 밥은 아직……이십니까?”
이놈도 밥을 원하는 거냐.
허나, 윤허할 수 없었다.
“배가 고픈 건 알지만 오늘은 안 드시는 게 좋습니다. 대신 이럴 때 쓰려고 만든 구급용 단약을…….”
“아닙, 아닙니다. 아닙니다! 살려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걸요. 정말 고맙습니다!”
* * *
날이 밝는 대로 진천희는 환자를 가장 가까운 마을에 옮겨 주었다.
마침 백린의각 분타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분타의 의원들은 스타라도 만난 양 모두가 나와서 진천희를 구경했다.
“처치가 깔끔하십니다. 과연 소각주님!”
“그런데 응급처치만으로 이 정도로 된다는 게…….”
“세외에서 주술을 배워서 응용해 보고 있거든요.”
“오오!”
의원들은 모두 눈을 빛냈다. 세외의 주술이라고 거부감을 가질 법도 한데,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에 뭐 하나 가리는 법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치, 나 조금 더 배워서 환자 살릴 수 있으면…….’
왠지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나중에 본산에 연수 가면 배울 수 있습니까?”
“사람을 가리는 터라…… 아마 안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허면.”
“그렇다 하더라도 각 분타에 한 명 정도는 파견을 보낼 계획입니다. 일단…… 인원이 충원이 될 수 있다면 말이지만요.”
의원은 언제나 부족하다.
특히나 강호에서 무공을 익힌 의원은 더 부족할 수밖에 없다.
무인을 치료하려면 무공을 배우는 게 필수인데, 동시에 의술 공부도 해야 하니 할 수 있는 인재가 많지가 않다.
‘그렇다고 느슨하게 뽑아서도 안 되고. 인성도 좋아야 하고.’
지구나 무림 별이나 의원은 자칫 사람이 마모되기 쉬운 직종이다.
‘사마혜가 잘 크면 좋겠다.’
일하는 틈틈이 보고를 받고 있는데 굉장히 열의를 가지고 임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녀 자신부터가 평생 관리해야 하는 몸이고, 또 어린 나이에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크게 아팠다 보니 그 경험이 하나의 동기가 되어 이끌어주고 있었다.
힘든 만큼 복이 온다는 말은 어찌 보면 어른의 입에 발린 말일 수 있다.
허나, 지금의 그녀를 만들고 있는 건 사마혜 자신이다.
진천희 자신이 만든 시스템에 이런 사마혜 같은 어린 의원들이 모이다 보면 더 큰 무언가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설령 내가 없어진다 한들 그래도 의술은 이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천우가 들었으면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허나, 검수로서 칼을 들고 싸우는 이상 최악의 상황은 늘 고려해 온 진천희였다.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고.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계속 나아갈 것이었다.
‘허나 언젠가 운 나쁜 날이 올 수도 있지.’
삶이란 건 그런 거 아니겠나.
아무리 고강한 무인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날 한 줌 핏물이 되어 돌아와도 이상치 않은 곳이니까.
“강호에 팔대절학이 나왔다는 이야기에 분타 의원들도 정신이 뒤숭숭합니다.”
당연했다.
팔대절학을 노리는 세력들로 필시 혈투가 일어날 것이고. 결국 백린의각도 이번에 지원을 가게 되었으니.
“소각주님, 부디 건강히만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다치는 일 없이요. 소각주님.”
“다치시면 안 됩니다. 그냥 위험하다 싶으시면 돌아오십시오.”
“맞아요. 뭐라고 할 사람 없습니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진천희를 걱정했다. 진천희는 피식 웃더니 이렇게 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위험하지 않게 조심해서 다녀올 테니까요.”
가장 나이 많은 상의원이 나섰다.
“주제넘은 조언일지 모르나…… 소각주님, 소각주님은 혼잣몸이 아닙니다. 책임질 사람이 많다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진천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같은 시간, 사도련의 총군사가 지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뇌 북궁산산.
사도련의 총군사인 그녀는 사뇌(邪腦).
즉, 사악한 뇌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다.
멸문한 북궁세가에 태어난 그녀는 그 두뇌 하나만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간 인물.
사파의 책사인 만큼 그 손속이 몹시도 잔혹하고 간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녀가 ‘사뇌’라는 별호를 가진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야전천막에서 그녀는 지도를 한참이나 내려다보고 있었다.
중원 지도에는 수많은 말들이 흩뿌려지듯 포진해 있다.
‘마교의 천마는 조용하나, 그 아래 마종육가들이 욕심내서 움직이는 중이고. 무림맹의 위선자들은 늘 그렇듯 조용히 뒤로 호박씨를 까겠지. 크크큭…….’
탁-
그녀는 말판의 배열을 바꾼다. 지금 이동했으리라 추측한 장소에 각 문파의 말을 내려놓았다.
‘역시 방향은 백린의각이고. 백의광룡, 이 어린 광룡을 잡아챈다면…… 확실히 도박에서 승리할 수 있는 패를 얻겠지. 흐음…….’
그녀는 탁탁, 한참 탁자를 두드리다가 다시 생각에 잠긴다.
‘허나, 그리되면 백린의각과 영원히 척을 지게 될 거야.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패천무상신공이란.’
없다.
그녀의 뇌는 그럴 가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허나 책사란 어디까지나 조언자일 뿐. 왕이 아니다.
‘허나, 사도련은 무슨 피를 흘리더라도 방도를 찾아내라고 하니…….’
역시 불합리하다.
그러나 책사란 본디 그런 불합리하고 멍청한 요구에도 어떻게든 방법을 짜내는 존재 아닌가.
‘그래. 그렇게 원하니 시키는 대로 해보고 X 되면 토끼자.’
그저 회사가 장차 X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단 회장님이 시키니 업무를 처리하는 샐러리맨일 뿐.
‘그럼 뭐. 방법은 백의광룡 납치밖에 없네.’
전자 기기도 인터넷도 없는 강호 무림.
그녀는 진천희가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는 정보를 아직 받지 못했다.
* * *
얼마나 말을 타고 갔을까.
해가 떨어졌다. 다행히 딱 좋게 저 멀리 소도시가 하나 보였다.
“저기서 쉴까요?”
“응. 노숙은 이제 사양이야.”
로망도 하루 이틀이지, 이제는 밤이슬 안 맞고 따뜻한 이불에서 자고 싶다.
컹!
“그래. 황구 너도 따뜻한 곳에서 자고 싶지?”
이미 뇌진은 머리 위에서 잠든 지 오래.
괜찮아 보이는 객잔을 찾아 안으로 들어가니 점소이가 손을 저었다.
“죄송합니다요. 만석이라서요.”
안을 보니 객잔 안은 이미 무림인으로 꽉 차 있었다.
그렇게 객잔 몇 개를 더 돌아서 겨우 빈자리를 찾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게 전부 비급을 노리는 강호인들이구나. 괜히 혈풍이라고 한 게 아니네.’
소설에서는 한 줄 문장으로 되어 있던 것들이 실제로 경험하고 나니 그 느낌이 너무나도 달랐다.
술 냄새 사이로 피 냄새가 비릿하게 풍겨 왔다.
객잔에 오기 전 혈투를 치른 무인도 있는 거겠지.
강물에 칼을 씻는다고 한들 사람의 피와 지방이 생각보다 잘 안 닦인다.
허나, 그 또한 이 세계의 법칙.
진천희는 모르는 척 객잔의 대표적인 음식들 몇 개를 시키곤 식사가 마련될 때까지 차를 천천히 삼켰다.
주변에서는 진천희를 이미 알아본 무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저거 백의광룡이지? 큰 개랑 매. 그리고 등에 진 약상자까지. 확실해.’
‘그것보다는 저 얼굴이겠지. 역시 소문대로 절색이로군. 칼 좀 쓴다 하는 강호 여협들이 전부 노린다던데. 과언이 아니군.’
‘보타문의 검수들도 그렇게 노린다면서?’
‘파계를 하더라도 저 미모면 어쩔 수 없겠지. 거기다 사파의 마두들도 노리고 있다 들었소.’
대체 소문이 어떻게 나고 있는 걸까. 진천희는 얼굴을 붉히며 안 들리는 척 차를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