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19
제 319화
“클클클, 백린 꼬마가 또 강해졌구만. 역시 죽다 살아나서 그런가? 아차차. 지금은 눈앞에 집중해야지. 나이를 먹다 보니 집중력이 흐려졌어.”
술제는 품에서 부적을 꺼내 손에 쥔다. 그러자 부적이 스스로 불타오르며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사이.
청연 소교주가 검을 뽑아들며 일보를 내디뎠다.
전과 같은 천마군림보의 사용을 통해 술제의 움직임을 제한하려는 속셈.
쿠웅!
공기가 무거워진다.
그 사이. 술제가 태운 부적의 연기가 하나로 뭉쳐들기 시작했다.
귀령파 독문절기 귀령병!
술제의 부적이 불타며 생긴 연기가 뭉글거리며 사람의 형체를 이루었다.
인간의 형태라고는 하지만 이족보행에 머리 하나 달렸다는 것일 뿐이지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키가 십 척이나 되어 보였고, 몸은 가늘지만 팔다리가 길쭉하다.
머리 부분에는 붉은 두 개의 빛이 일렁거리고 있다.
유령이나 괴이한 악령처럼 생긴 그것이 무려 두 마리나 나타났다.
‘술제가 강한 이유가 이거지. 차라리 강시라면 어느 정도 익숙하니 대응이라도 할 텐데 귀령이라니.’
무인에게 있어 귀령이란 평생 동안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존재.
무협지에서도 강시나 부적, 진법은 많이 등장하나, 이러한 술법의 비중은 굉장히 낮다.
반면 술제는 눈만 뜨면 만나는 게 검수들이다.
평생 가장 많이 싸워본 적들 역시 검수들일 거고.
쾅!
귀령병이 막 형태를 갖추는 사이. 청연 소교주는 그대로 화살처럼 몸을 날린다.
표표히 날아든 그녀의 검에는 어느샌가 검기가 서려 있어서 불길하게 빛을 흩뿌렸다.
그대로 검이 횡으로 그어지며 귀령병의 허리를 베어내려고 움직였다.
지이이익.
그러나.
괴이하게도 그녀의 검은 첫 번째 귀령병의 허리를 갈라냈지만, 두 번째 귀령병의 허리는 절단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마치 풀이나 접착제처럼, 귀령병의 안개로 이루어진 몸이 검에 들러붙은 채로 휘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어려서 강호의 경험이 일천한가 보구나. 쯔쯔. 그러면 죽어야지. 모르는 것도 죄가 아니겠느냐?”
술제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청연 소교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감히 술법이나 쓰는 잡것이 나를 우롱해?”
“내 앞에서 그런 소리 하다가 황천 간 녀석이 한둘이 아닌데 말이다.”
“흥! 오늘이 노물 네놈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화아아악!
천마신공 천마혈살기.
그녀의 전신에서 검붉은 기운이 불길처럼 오르기 시작했다.
호신강기의 일종. 본래 호신강기는 강기를 몸에 둘러 적의 공격을 막아내며, 동시에 닿은 존재를 강기로 공격하기까지 하는 공능을 지녔는데, 이 천마혈살기는 그보다 더 우월했다.
근처의 적을 향해 직접 기가 움직여 상대를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
콰아아아!
천마혈살기가 귀령병을 향해 쏟아져 나가 그대로 그 커다란 몸체를 찢어 버렸다.
그 상태 그대로, 그녀는 다시금 뛰었다.
다가오는 모든 것을 분쇄해 버리는 천마혈살기 때문에, 귀령병 정도로는 그녀를 막아내기 어려워 보였던 것이다.
“기문둔갑(奇門遁甲) 음영지술(陰影之術).”
그러나 달려들던 그녀의 몸이 허공에서 덜컥 멈추더니 그대로 땅에 내려섰다.
“이 무슨…….”
“그림자를 붙잡으면, 사람도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아느냐? 그림자와 사람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 말에 청연 소교주가 뒤를 돌아본다.
새카만 무언가가 그녀의 그림자에 꽂혀 있었다. 그러나 아예 못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하체는 움직이지 못하나, 상체는 움직였던 것.
촤아악!
그녀는 재빠르게 칼을 휘둘러 검강을 뽑아냈다.
자신의 그림자에 꽂힌 무언가를 파괴하기 위해서다.
그 찰나의 순간에, 그녀는 다시금 당황해야 했다.
소멸한 줄 알았던 귀령병의 안개가 뭉쳐지며 그녀를 뒤덮었기 때문이다.
물론 혈살기에 충돌해 그것들은 사라지고 있었지만, 일순 시선을 빼앗기고 만다.
콰직.
그리고 이어지는 격통.
그녀의 감각이 어지러운 틈을 타. 하나의 묵직한 무언가가 그녀의 명치를 둔중하게 때렸다.
“크아악!”
으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늑골이 일부 부러진 것을 느낌과 동시에 그녀의 몸체가 뒤로 나가떨어졌다.
나가떨어지면서도 그녀는 두 눈을 부릅뜨고 보았다.
그녀가 몸에 두르고 있던 천마혈살기를 뚫고 들어온 무기.
그것은 술제가 사용하던 지팡이였다.
텅. 촤아아악.
허공에서 몸을 뒤집으며 청연 소교주는 땅에 내려섰다. 그러나 방금의 타격 때문에 몸이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정적.
사방이 고요하다.
방금 전의 짧은 혈전에 다들 집중하고 있었던 탓이다.
“끌끌. 노인, 여자, 아이. 약해 보이는 이들을 강호에서 가장 경계하라고 했지 않더냐? 내가 이래 봬도 이제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 그런 나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그리 덤벼서야 쓰나.”
한 손에는 종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었다.
지팡이로 여전히 자기 몸을 지탱하고 있지만, 다들 저 지팡이가 보통 물건이 아님을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술제 앞으로, 귀령병이 다시금 만들어졌다.
아까의 절반 정도로 줄어든 크기이기는 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했다.
기괴함. 그리고 강하다.
“그러면…… 이제 내가 공격해 볼까?”
“항복.”
“뭐?”
“항복하겠다.”
청연 소교주가 분노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술제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청연을 바라보았다. 반면 진천희는 예상했던 바였다.
‘여기서 크게 부상을 입을 바에는 차라리 항복하는 게 이득이지.’
검을 맞댔을 때 실력의 격차는 이미 느꼈을 터.
거기다가 상대는 한 번도 싸워 본 적 없는 생소한 것을 휘두르고 있다.
그녀의 성정에 화는 날지언정, 안 되는 싸움에 부득불 덤벼들어 큰일을 망치지는 않을 거다.
“다음에 보면 반드시 죽일 거다. 노친네.”
“끌끌끌! 판단이 냉정한 것치고 성격은 참 더럽구나. 아해야.”
청연이 원래 그런 캐릭터다.
그래서 소설에서 꽤 재미있는 캐릭터로 묘사되곤 하고.
스승님이 그런 술제를 보며 진천희를 향해 전음을 했다.
[역시…… 이제의 명성은 허명이 아니로군. 그사이에 또다시 진보를 보이셨구나.] [예전에는 이보다 약했나요?] [그건 아니었지. 허나…… 음…… 이렇게 압도적으로 이길 수준은 아니었단다.]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권제 할아버지보다 강하신 것 같은데요?] [그래. 놀랍게도……. 강호에서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귀령술이라는 것을 고집한 자가, 제(帝)라는 별호를 갖는 데까지 어떤 여로를 거쳤을 것 같으냐? 아득할 만큼의 노력과 운.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일이지.] [네. 상상도 안 돼요.] [권제께서는 그래도 함께할 사문이 있었단다, 희야. 혼자는 아니었어. 허나, 그는 아니었다. 그는 귀령파의 유일한 생존자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였지.]그때 사도련주이자 술제가 외쳤다.
“뭘 봐. 이 새끼들아! 정파, 마교 새끼들 다 꺼져! 이제 비동은 우리 거니까. 다 꺼지라고! 잡것들아!”
그 모습에 스승님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물론 그게 저 괴팍한 성정에 일조한 거겠지.]무림맹주 창왕 악진이 침통한 표정으로 답했다.
“알겠소. 무림맹은 잠시 물러나겠소.”
“본교도 잠시 물러나겠다.”
양측 모두 생각보다 순순히 승복했다.
약속을 지키는 일이니 당연한 일이라 생각할 터지만, 그건 무림사에 별로 없는 일이기도 했다.
술제의 특성상 사특한 술수를 써서 이겼다고 시비를 털기 딱 좋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기는 하나……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 *
진천희와 제갈린은 곧바로 백린의각 진영으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스승님이 내린 명령은 단 하나였다.
“유호, 우리 백린의각 세력은 바로 항산에서 물러난다. 서둘러 움직여야 할 터이니 최소한의 준비만 하고 일어나게나.”
“이미 준비해 두었습니다. 의각원들 모두 다 미리 짐 싸 놨습니다.”
스승님의 말에 진천희의 눈이 살짝 커졌다.
약간 놀라긴 했지만 진천희는 자신의 일을 했다.
“방어 진형으로 물러나야 해요. 현 지형을 보았을 때 대형은…….”
곧바로 무인들이 물러나기 좋게 지형을 편성했다.
그렇게 진형을 준비하며 진천희가 그제야 궁금한 점을 여쭈었다.
“물러나요?”
“물러나야지. 아마 정, 사, 마, 전쟁터가 될 테니까.”
그 말에 진천희는 모든 것을 파악했다.
아아, 그런 이야기군.
이제 알 만큼 안다고 자부했으나 아직은 순진한 데가 남아 있었나 보다.
“무림맹이 물러나지 않을 거라는 뜻이죠?”
“그래. 맹주는 분명 물러나라 명할 것이나 어차피 맹주란 결국 무림맹을 대표하는 존재일 뿐 각 문파와 상하 관계로 명령을 하는 존재는 아니지. 하필 승자가 술제이니 사술이라고 여길 거란다.”
“마교면요?”
“더러운 마교한테 비급을 빼앗길 수는 없다고 하겠지.”
결과는 같구만. X벌.
진천희가 되물었다.
“그렇다면 정파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마교도 같이 움직이겠군요.”
“그래. 정파가 반칙을 했으니 마교는 그것을 명분으로 움직이겠지. 아니, 어쩌면 이미 먼저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결국 무림맹이 연합체인 게 문제다. 마교는 그냥 존재가 문제고.
‘아니, 그냥 인간의 욕망이 문제지.’
정사마는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을지 모른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점과 시야의 문제일 뿐.
그냥 인간의 안에 욕망이 있는 한에는 바뀌는 건 없으리라.
허나, 역시나 물어보고 마는 것 역시 인간.
“이럴 거면 뭐 하러 비무를 한 거예요?”
“정치적인 이유지. 어쨌든 어떤 이유로든. 저들은 충돌할 거란다. 하지만 그게 정사대전 같은 큰 전쟁으로 번지지는 않을 게야.”
이런 큰일은 제자는 처음 겪는 일.
머리로 아는 것과 경험적인 부분은 다를 수밖에 없다.
방어 진형까지 알차게 짜놓고서는 결국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모습이 역시 제자답달까.
‘강호 노물처럼 굴 때가 있으면서도 가끔은 이렇게 강호 초출처럼 굴 때가 있으니.’
스승님 입장에서는 역시 후자가 좀 더 가르칠 맛이 난다.
“애초에 여기 모인 이들 자체가, 비급에 목적을 둔 이들이지. 모이지 않은 이들은 방관자들이고. 때문에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겠지. 허나 여기 모인 이들끼리는 싸우게 될 거다.”
“팔대절학 때문이겠군요.”
“그래. 강호에서 늘 반복되는 일이지. 너는 이번에는 아니리라 생각하며 가슴을 쓸었을 터이나…… 아니란다. 이번도 결국 똑같이 흘러가게 될 터.”
의원으로서 기대하게 된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기를. 괜찮기를.
물론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다. 머리로는. 허나.
왜 이다지도 힘들까.
“뭐, 너는 팔대비급 중의 하나를 대가 없이 머리에 박았으니 다른 느낌이겠구나.”
“놀리지 말아 주십시오. 스승님. 그리고 공짜일 리 없잖습니까.”
“후후후, 그래. 천마가 이유 없이 네 머리에 그것을 박았을 리 없지. 허나, 꽤나 영리하게 수를 써서 황궁 비고까지 갔으니. 그 부분은 부정하지 못하겠지?”
“네네.”
“세상 모든 이들이 너와 같은 가치관으로 원하는 것을 탐한다면 분쟁은 없겠지.”
스승님은 씁쓸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