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23
제 323화
같은 시간.
그 전투를 멀리서 내려다보고 있는 존재는 진천희와 제갈린뿐이 아니었다.
한 명 더 이 전투를 지켜보던 존재가 있었다.
“백린의선…… 과연 저 난장판에 끼어들지 않는군. 뭐, 혈린광살일 때나, 백린의선일 때나 싸가지 없는 건 여전하단 말이야. 크크크……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았다만…… 이리되면 재미없지. 네놈의 그 허여멀건 한 가죽을 내 손으로 벗겨내야 하건만…….”
드르륵-
한쪽 눈알이 기이한 형태로 꺾인다.
그 눈알은 인간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모양이었다.
흰자가 피처럼 붉은색에, 눈동자는 양처럼 동공이 가로로 찢어져 있었다.
머리에 서로 다른 크기의 뿔 세 개가 멋대로 자라나 있었고, 피부에는 비늘이 조금 돋아나 있었다.
외형은 누가 봐도 인간이 아닌 존재.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런 기괴한 모습 속에도 과거 인간이었을 적의 모습이 흔적기관처럼 남아 있긴 했다.
동천군.
풍후괴신공을 사용하며, 무림맹에서 날뛰었던 절대 고수이며 혈선교의 최고 간부인 혈선십천군의 한 명.
그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번 비급 사건을 일으킨 것이 바로 이자이니까.
“반드시…… 죽일 것이야. 아니, 죽이지 않을 거다. 사지를 자르고, 영겁토록 장난감으로 삼아 고문해 주겠어. 그 단발마의 비명을 듣고 피를 마실 거다…… 기대해라. 기대해, 제갈린 이놈…….”
본래 몇 년간 활동을 멈추기로 했던 혈선교였다.
그럼에도 이런 일을 홀로 독단적으로 일으킨 이유.
그것은 뼈에 사무칠 만큼의 원(怨) 때문이었다.
“네놈 때문에…… 내가…… 승천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단 말이다. 그러니 너 역시 그만 한 고통을 당해야 해…… 반드시. 반드시!”
무림맹에서 제갈린에 의해서 죽었어야 할 동천군은, 혈선교로 이송되어 생명을 다시금 붙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이제는 완전히 인외의 존재가 된 것이다.
이것은 축복이면서 저주.
혈선교의 비술로 되살아난 그는 확연히 인간을 초월할 정도로 강해졌다.
그러나 이렇게 된 이상 영원히 승천할 수 없다.
혈선의 곁으로 갈 수 없다.
물론 혈선의 권속이 되었으나, 그것은 엄연히 말해 ‘곁’이라고 표현할 수가 없었다.
등선의 길이 막힌 것이니까.
그것은 혈선교라는 광신적인 집단에서 그야말로 저주라고 할 수 있었다.
“제갈린. 네 놈의 사지를 찢고, 아직 살아 있는 네놈 앞에서 네놈 제자의 살점을 뜯어먹고 싶지만……. 크흐흐…….”
제자인 진천희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은 혈선이 바라는 바가 아니기에, 그렇기에 직접 제갈린을 붙잡아 고문하여 분노를 다스리고자 했다.
허나, 상대는 결코 녹록지 않았다.
백린의각은 처음부터 비동에 관심도 두지 않은 양 물러나서 방어를 굳히고 있었으니까.
동천군의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백린의각까지 전투에 휘말려들면, 그 뒤를 공격하려고 했었으니까.
“크르르르. 계획이 어그러졌지만…… 내게는 준비된 수가 아직 남아 있지. 곧 밤이 온다…… 크크크크크. 네놈을 반드시 잡아채 주마! 심중외형(心中外形)의 술(術)의 준비는 어떻게 되었느냐!”
그는 저 멀리 전장을 내려다보며 짐승의 소리를 내었다. 그의 수하들이 그의 말에 반응하여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밤이 되니 전투가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세 개의 세력이 서로 물러나 대치 상태에 이르렀다.
혈련문의 두강자는 같이 온 혈련문의 사제들과 쉬고 있었다.
이런 혈풍은 군대의 싸움과는 다르다.
군대처럼 방어 진형을 짜고, 쉬는 동안 상명하복을 하진 않는다.
어찌 보면 강호와 강호인의 습성상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두강자와 그의 사제들은 나무에 올라타 그대로 기대고 누워 있었다.
오늘 전투로 다치지 않은 곳이 없건만 나무에 올라탄 그들은 흡사 원숭이처럼 편안해 보였다.
그런데 문득 먼 곳에서 안개가 끼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뭐지?’
안개는 바닥을 깊게 채우고는 위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왜일까? 기분이 조금 이상해지기 시작한 것은.
“사형! 어제 먹은 주먹밥, 저한테 양보하셨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무슨…….”
사제가 갑자기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평소 침착하기로 유명한 놈이었다. 갑자기 돌변한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고.
서컹!
놈이 뽑은 검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제가 뽑은 검이 다른 사제의 어깨를 스쳤다.
츠각!
“미친 새끼가, 이게 무슨 짓이냐!”
칼을 맞은 다른 사제도 검을 뽑아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두강자는 어이가 없었다.
평소라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
그때였다.
“크아아악! 사저! 어찌 나한테 이런 짓을 하는 거요!”
“죽어라! 죽어라!”
나무 아래로 수많은 무인들이 서로를 향해 사방팔방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게 아니었다.
“그만두게!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인가!”
“사형! 멈추시오! 대체 왜 칼을 뽑는 거요!”
두강자는 그제야 이 안개가 이 현상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나마 내공이 고강한 무인들은 불쾌한 기분이 들지언정 이성을 놓지 않고 버티고 있다는 것도.
허나, 내공이 얕거나, 지쳤거나, 상처를 입은 상태의 무인은 이성을 잃고 사방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육시럴! 이게 무슨 일이야–!”
내력이 달린 고함 소리가 진영 전체를 울렸다.
술제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의 고함 소리만으로 사파 무인들의 정신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으니까.
술제는 돌아가는 판을 보더니 빠르게 파악을 마쳤다.
“아이고, 젠장. 이거 더러운 수를 쓴 모양이구만. 마교? 무림맹? 아니면…….”
혈선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봉지회에 비슷한 일이 있지 않았던가.
이윽고 술제가 지팡이를 흔들어 종소리를 만들었다.
쩡- 쩌르르릉!
“모두 전장에서 이탈해라! 이성을 놓은 놈들은 점혈을 하든가 뒤통수를 쳐! 그것도 안 되면 내버려 둬라! 여기까지 왔으면 지 인생 지가 챙겨야지!”
“네?”
뜬금없는 퇴각 명령에 무인들이 어안이 벙벙했다.
그 모습이 답답했는지 술제는 지팡이로 가까이에 있던 젊은 무인의 머리를 빡 소리가 나게 때렸다.
“대가리에 말똥만 든 놈아! 당장 지금 여기서 꺼지라고! 우리가 제갈가의 혼원방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건 못 막아! 패천무상신공은 나중에 처먹든가 하고! 튀어! 염병할 놈아–!”
술제의 욕설이 사파의 진영 전체에 메아리쳤다.
아직 정신이 덜 돌아온 놈도 그 욕설에 퍼뜩 이성을 붙잡았다.
그렇게 사도련이 이탈을 시작했다.
그러나 마교의 소교주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기회다. 모두 비동 입구를 확보한다.”
마찬가지로 기이한 안개가 마교를 덮었으나 그것에 흔들릴 마교 정예가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내력이 고강한 마교인들.
그들은 냉혹하게 전진할 뿐이었다.
“덤비는 놈들은 모두 죽여라. 정신을 놓을 것 같다면 자결하라.”
소교주의 명령에 광신도들은 고개를 끄덕일 뿐.
허나, 정신을 유지한 건 마교뿐이 아니었다.
비동 입구에 진영을 차린 정파가 외쳤다.
“사도련이 퇴각하고, 마교가 접근해 오고 있소! 모두 마교를 대비하시오!”
“검진, 검진을 짜라!”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심야.
휴식도 없이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 * *
안개가 일어나기 두 시진 전.
진천희는 높은 나무에 서서 전장을 계속 응시했다.
제갈가로서 스승님의 교육은 계속되고 있다.
스승님은 모처럼의 기회라고 답하긴 했으나, 진천희는 조금 씁쓸하다.
이 난전 속에서도 백린의각 주변은 안전하다.
백린의각 주변에 강력한 진법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
그 진법은 진천희와 스승님, 두 천재가 구축한 진형이었다.
제갈공명이 만들었다고 알려진 팔진도(八陣圖). 그것이 시간이 흘러오면서 진화, 발전하여 만들어졌다는 탈혼팔진도(奪魂八陣圖).
들어오는 순간 혼백을 빼앗는다는 강력한 절진.
일반적으로는 이 진법을 억지로 통과하려다가는 죽어 버린다.
진천희는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가 거의 다 졌네.’
곧 밤이 온다.
보통이라면 밤이 오면 전투는 일시 소강상태가 되고. 그때부터 부상자들이 치료를 받으러 찾아온다.
‘허나, 어디까지나 그게 보통이라는 거지. 예외인 경우도 있다 하셨지.’
밤을 틈타 야습을 하는 경우야 어디서나 흔한 일이고.
한쪽 진영이 아예 전멸하여 환자가 올 수가 없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고.
‘차라리 환자가 많이 와서 바빠지는 게 마음은 더 편할 것 같은데 말이지.’
해는 점점 더 저물어 이제 항산에 어둠이 깔렸다.
‘음?’
기이했다.
밤 그림자와 함께 항산 전체에 안개도 갑자기 끼기 시작했다.
안개에서는 이질적인, 불길한 향이 났다.
그때 진법의 경계에서 안개가 충돌하며 파지직 불꽃을 만들어냈다.
이 지역의 천간과 풍수를 생각하면 일어날 리 없는 현상.
그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고함 소리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안력을 돋우니 내분이 일어난 건지, 서로가 서로를 도륙하기 시작했다.
‘이거…… 본 적이 있는데?’
다른 무인이라면 모를까. 진천희가 이것을 잊을 리가 없었다.
역시 혈선교?
놈들의 함정이 발동하는가.
그때 스승님의 전음이 울렸다.
-희야. 내려오너라.
스승님의 전음에 아래로 내려가려는 순간, 진법의 밖에서부터 하얀 가면을 쓴 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스스슥-
가면에는 소용돌이를 상징하는 문양이 먹으로 그린 듯 아로새겨져있었고.
진천희의 푸른 눈동자가 곧바로 지존천마의 내용을 떠올렸다.
‘혈선교에는 혈선십천군이 있는데, 하나하나가 절대 고수이기도 하지만, 혈선교 내부에서 하나의 조직을 이끄는 이이기도 하지.’
동천군이 이끄는 조직의 이름은 동천혈선대.
강시야 기본적으로 혈선교의 기본 병력으로 쓰이나, 이 동천혈선대는 정예라고 부를 만했고.
하얀 소용돌이 문양은 동천혈선대의 특징 중의 하나.
동천군이 풍후괴신공을 쓰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하 등급의 강시들을 써서 머릿수를 추가로 보강한 모양.
‘지난번 용봉지회 때 직속 병력을 못 데려온 게 두고두고 억울했던 모양인데?’
무림맹에서 숨어서 일을 꾸미다 보니 자연히 모든 것을 최소한으로 들고 와서 싸워야 했던 동천군이었다.
휘하의 동천혈선대만 있었어도 일이 이리되지 않았을 거라고 밤마다 이불을 찼겠지.
‘결국 혈선교가 오랜만에 입을 대긴 대려는 모양이군.’
현원전단신공을 쓸 필요도 없었다.
‘마교와 무림맹, 사도련이 서로 상잔하는 동안 우리 쪽을 노리려는 건가.’
당연히 이쪽도 눈 빤히 뜨고 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다.
‘허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정, 사, 마.
비급 쟁탈전에서 누가 승자가 되든 진천희는 관심이 없다.
아니, 소설을 읽는 평범한 상황이라면 누가 이길지 두근두근하긴 할 거다.
그런데 ‘이 중에서 진 사람은 곧 선생님네 응급실에 올 겁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사람 생각이 돌변하게 된다.
거기다 ‘어, 그리고 이긴 사람들 중에서도 몇 명 올 수가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의사 입장에서는 한 번 더 정신이 나가고.
그냥 누가 됐든 가위바위보로 해결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여기에 혈선교까지 섞이니 제갈가의 책사고 검수로서의 입장이고 나발이고, 의료인은 살의가 치밀어 오른다.
‘혈선교는 아무튼 없어져야 할 놈이다. 내가 이 새끼들 보타문에서 콜레라 퍼뜨릴 때부터 알아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