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24
제 324화
나무에서 내려서니 마침 스승 제갈린이 진천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나 혈선교 놈들이 너를 노리고 왔구나. 그래도 우리가 구축한 진법을 깨지는 못할 게다. 그리 만만한 진법이 아니니까.”
‘음, 역시 내가 목표인가.’
그동안 놈들의 행적을 보았을 때 ‘천기를 흩는 자’인 진천희가 목표일 가능성이 크긴 했다.
진천희는 스승과 같은 색의 눈을 들어 강시들이 올라오는 것을 살폈다.
강시가 진법 내부로 진입하자 전신에서 불길이 타오르며 비틀거리다가 쓰러진다.
치지직-
‘산 자는 환상에서 헤매게 되고, 죽은 자는 불타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것이 이 진법의 가장 무서운 점.
제갈가의 두 천재가 만들어 낸 진법에도 약점은 있다.
제갈린은 커다란 손으로 제자의 머리를 쓸었다.
“물론 이 진법이 무한하진 않지. 알다시피 진법은 지맥과 지세를 이용하여 구축하는 것이니, 결국 어떤 진법도 지세에 비례하여 효과를 보는 셈이지.”
결국 진법의 근간이 풍수에 있기에 생기는 일이다.
“그래도 항산은 최고의 영산이죠.”
“덕분에 우리가 괜찮은 진지를 먼저 독점하여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느냐.”
“항산의 지맥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적어도 일만 명 이상의 사람을 들이부어야 할 테니까요.”
두 쌍의 푸른빛이 자문자답이라도 하듯 대화를 이어 나갔다.
“게다가 우리도 공격이 오는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만 볼 생각이 없으니.”
“이 날을 위해 모든 무인들이 뇌룡궁을 익혔죠.”
“그래. 미리 안배해 둔 보람이 있구나.”
궁귀단을 기본으로 모든 무인들에게 기본적인 궁술을 익히게 한 것은 이때를 위함이었다.
난전을 틈타 이러한 대규모 공격이 들어올 경우.
백린의각도 자신을 지켜야 했다.
지맥을 이용해 진법을 구축하여 진형을 짜 넣어 방비를 하고.
그다음은 활을 쏜다!
물론 강호 무림에서는 검이 우선이나, 진천희는 양궁 전국 체전이 올림픽 금메달보다 어렵다는 동네 출신이다.
다가가서 너 한 방, 나 한 방 배때기에 칼을 쑤시는 것보다는 거리를 이용해 활을 쏘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
거기다 한두 명씩 시비가 붙는 게 아니라.
수백, 수천.
심할 경우 만 명이 붙어야 하는 최악의 혈풍이 일어난다면……?
현대의 실리주의자는 주저 없이 활을 택했다.
스승님의 수신호에 따라 궁귀단이 활을 들었다.
“쏴라!”
피피피핑!
강시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에 맞아 쓰러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사용하는 화살은 단순한 화살이 아니다.
‘관통력보다는 저지력을 우선으로 만든 철시지.’
저 존재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가슴이 뚫린 순간 죽는다.
그러나 강시는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다. 차라리 저지력을 올려 진법에 휩쓸려 불타 죽을 시간을 번다.
그그그극-
무인들은 침착하게 궁귀의 명령에 따라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어린 무인이 없다는 것은 성장 가능성이 적다는 단점이 있으나, 반대로 이러한 상황에서도 패닉에 이를 확률이 적다는 장점이 있었고.
“쏴라!”
피피피피이–!
궁귀단은 혈선교의 공격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방어하기 시작했다.
“스승님. 좌익이 허술합니다.”
“잘 발견했구나. 풍향을 보았을 때 불화살로 대응하는 편이 좋겠구나.”
사제(師弟)는 전황을 실시간으로 살피며 최소한의 병력으로 최대한의 방어를 계속해서 구축해 나갔다.
한 번이라도 방진이 뚫리면 두 번 같은 방진을 짜지 않았으며, 진법의 축을 부드럽게 뒤틀어 다시 복구하기를 수차례.
“소모전이군요.”
“그래. 혈선교만 소모전을 하게 된 셈이지.”
이 속에 휩쓸린 정사마가 들었으면 경악을 했을 소리를 두 사제는 담담히 이어 나갔다.
“이 일이 끝난 후, 치료가 문제네요. 아침이 되면 다친 무인들이 몰려올 테니까요.”
“의원들 모두 막사에서 쉬고 있단다. 치료소를 운영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을 거란다. 물량의 구 할을 모두 무사히 보존해 두기도 했고.”
“의원들은 아마 자고 있겠군요.”
“사실 밖에서 이렇게 소란이 터진 줄도 모르고 있을 게다.”
탁-
스승님은 부채를 한가로이 흔드셨다.
밖은 강시와 혈선교와 화살과 정사마의 악다구니였으나, 스승님의 주변은 마치 여느 여름밤처럼 청수했다.
진천희는 어이가 없어 왠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밖은 시산혈해라고 해도, 진법의 내부는 물속처럼 고요해야 한다 하셨죠.”
“내가 너를 그리 가르쳤지. 그리고 가르친 대로 구축한 건 너지 않느냐.”
“스승님께 배운 걸 조금 응용한 것뿐이죠.”
“겸손이 지나치구나. 허나, 그 또한 네 장점이겠지.”
그 순간, 내력이 깃든 고함 소리가 대기를 울렸다.
“제갈리이이인! 어디 있느냐아아아! 썩 나오지 못할까아아아아!”
스승님이 고개를 틀어 내려다보니 그곳에는 동천군이 있었다.
“겁쟁이처럼 진법 안에 숨어 있느냐아아! 언제까지 숨어 있을 수 있을 줄 아느냐! 나와라! 나와서 생사비무를 하는 거다아앗! 만약 그렇지 않으면 네 녀석이 아끼는 제자를 잡아다가 찢어 죽이겠다아아앗!”
진천희가 말했다.
“가지고 있는 병력을 허무하게 소모해 버렸으니 아주 화가 머리끝까지 난 모양이네요. 이대로 병력이나 더 허비하도록 하죠.”
“……허허허.”
우득-
스승님이 들고 있던 부채가 부러졌다.
제갈린의 표정은 평소처럼 고아했으나 순간 힘 조절이 안 되신 걸로 봐서는…….
“스승님, 아이고, 이건 다 놈의 도발입니다! 격장지계예요!”
“…….”
스승님은 부드럽게 미소 짓고 계셨다.
부러진 부채를 쥔 채로.
이윽고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들으렴, 희야. 이 기회에 네 스승이 건재함을 세상에 알려야 하지 않겠니……. 그래야 저딴 소리를 하는 놈들이 좀 줄어들 거고 말이다.”
막상 들으면 맞는 말 같다.
하지만 진천희는 이것이 스승님의 팔불출 섞인 판단이라는 걸 곧바로 파악했다.
‘어차피 이대로 버티면서 소모전이나 만들면 되지 않나……?’
밖에서는 동천군이 진천희를 어떻게 찢어 죽일지 상세하게 외쳐 댔다.
허나, 당사자인 진천희 자신은 별생각이 없었다.
이 부분을 잘 어필하면 스승님과 함께 안전히 소모전이나 유도해서…….
그때 제갈린이 말했다.
“그래. 희야, 내가 저 녀석을 상대하는 사이. 너는 무림맹과 마교의 싸움을 말려 보려면 말려 보려무나.”
“네?”
“혈선교가 이리로 집중되어 있어 지금쯤이면 끼어들기에 적기인 듯하니. 네가 나서면 인명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겠지.”
이건…… 술책이다.
자신을 제자가 어찌 뜯어말릴지 먼저 계산을 하고, 미끼를 풀어 그쪽을 물게 유도한다.
‘크윽, 스승님. 제자를 상대로 포전인옥(抛砖引玉)의 계(計)를 쓰시다니…….’
허나 진천희도 맹물은 아닌지라 스승님이 무엇을 원하고 그러한 계책을 냈는지 파악했고.
대답을 하려는 순간 제갈린이 말했다.
“하하하, 희야. 나는 네가 뭐라고 말한들 저놈의 목숨을 끊을 거란다. 네 선택은 둘뿐이란다. 내가 저자를 제거하는 동안 혈사를 막아 한 명이라도 더 살릴지, 아니면 여기 앉아 그것을 지켜볼지.”
“스승님.”
“너는 착한 아이지.”
그리 말하더니 제자에게 부러진 부채를 건넸다.
“착한 아이이나, 스승을 믿지 않는 아이기도 하지. 난 그게 늘 못마땅하단다.”
“아니. 스승님 저는 언제나 스승님을…….”
“그래. 허나, 어떠하냐. 네 스승이 겨울바람에 상처 하나 입을 사람 같더냐?”
그리 말하고는 스승님의 신형이 미끄러졌다.
그의 은빛 긴 머리카락이 호를 그리는 것도 찰나, 이윽고.
탕!
진형 밖에서 제갈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드러냈군. 백린의선!”
기뻐하는 동천군을 향해 스승님은 담담히 답했다.
“개가 하도 짖어서 밤에 잠을 잘 수 없더군.”
“여유를 부리는 것도 여기까지다! 크크큭!”
“됐으니 혈선에 대고 맹세나 하거라. 아무도 끼어드는 일 없이 싸우기로.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죽여 주지.”
“우리에 대해 제법 조사한 모양이군…….”
동천군은 제갈린의 등장에 기쁜 모양이나 한편으로는 제갈린이 혈선교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 걸렸다.
그러나. 놈으로 인해 등선의 기회를 잃은 것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원한.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
“좋다, 혈선께 맹세하겠다! 이 싸움에 누구도 끼어들지 않기로! 그리고 이 싸움에서 내가 이기는 순간, 제갈린 네놈을 조각조각 뜯어 잡아먹을 것이다.”
“흐음. 나는 얻는 게 없는 싸움이군. 뭐, 상관없지. 대부분의 싸움이 그런 것이니.”
제갈린은 감흥 없는 눈으로 답했다.
어차피 제자를 만나기 전 세상은 그저 무채색일 뿐.
이 또한 제갈린에게 별반 중요한 비무는 아니었다.
허나, 사파를 시작으로 자꾸만 제자를 납치하려는 놈이 넘치는 터라 하나 정도는 본보기로 걸어 버릴 필요가 있었고.
동천군은 꽤 괜찮은 본보기였다.
‘이놈 목 정도면 한동안은 조용해지겠군.’
제갈린은 인간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자극하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게 저주받은 제갈가의 재능 중 하나이며, 선대 가주가 곧 죽을 어린 제갈린을 두려워한 이유 중의 하나였으니.
“첫 수는 양보해 주도록 하지.”
제갈린은 고아한 목소리로 뇌까렸다.
* * *
진천희는 스승님의 뒷모습을 내려다보았다.
“…….”
우득-
부채를 쥔 손에 진천희도 힘이 들어간다. 걱정으로 물든 얼굴이 더욱 창백했다.
그 모습을 보고 유호가 혀를 찼다.
“걱정할 게 따로 있지. 주인님을 댁이 왜 걱정합니까?”
“유호. 하지만 저놈은…….”
“도련님 주제에 누가 누굴 걱정하는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스승님은…….”
“믿으십시오. 저분이 만약 진다면, 어디까지나 스스로 그것을 선택했을 때뿐입니다. 괜히 강호 노사들이 저분을 괴물이라 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호도 그리 믿어?”
“뭐, 외형은 사람 같으시긴 하죠. 인간의 태에서 태어난 것도 사실이고요. 으음, 간신히…… 인간의 거죽을 쓰고 계시니까 그것을 인간이라 한다면 인간이 맞겠죠.”
대답 참 이상하다.
그렇게 말하니 스승님이 무슨 사람 모양인 이형의 괴물 같지 않나.
진천희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유호가 그런 거라면 그런 거겠지.”
표정이 조금 풀어진 것을 보아서는 유호의 말을 믿기로 한 듯했다.
“이런 건 또 왜 바로 믿습니까?”
“나는 유호를 믿으니까. 유호는 그런 걸로 허언을 하진 않잖아? 내 멱살을 잡거나 팼으면 팼지.”
이상한 놈.
유호는 속으로 작게 혀를 찼다.
진천희가 어딘가를 향해 걸음을 옮기려 하자 유호가 물었다.
“어디를 가려는 겁니까. 도련님?”
“내 할 일을 하려고. 스승님이 그랬잖아. 지금이 이 혈풍을 말릴 수 있는 기회라고. 그 말은 허언이 아닐 거야. 미끼는 늘 진짜여야 달콤한 법이니까.”
이 와중에도 수 싸움을 하는 건가.
이 괴이한 사제지간은.
“말리려는 겁니까?”
“기왕 미끼를 무는 거라면 제대로 먹어야지.”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진천희는 뛰어들기를 결심했고.
“당신은…… 제가 본 인간 중에서 가장 이상한 인간입니다.”
맑게 타오르는 눈을 보며 어이가 없어 유호는 한마디를 하고 만다.
진천희가 피식 웃었다.
“그런가? 그러면 다녀올게. 뒤를 부탁해.”
진천희의 신형이 흩어지듯 사라진다.
저잣거리 삼재보법도 극성에 이르면 심무가 깃드는가.
유호는 어이가 없어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