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26
제 326화
진천희의 신형이 미끄러지며 소매가 부풀어 올랐다.
지형을 파악하고, 상대의 진형을 파악한다.
청광의 눈동자는 단숨에 가장 유리한 방위를 찾아 그곳으로 주인을 안내했다.
깊게 호흡을 들이마시고는, 폐 깊은 곳까지 공기를 삼킨다. 이윽고 오행진기를 폐 안에서 융합시킨다.
동시에 신공절학 칠마금의 무리(武理)가 그의 안에서 분해되고 오행신공으로 재조립된다.
“모두 싸움을 멈추세요–!”
모두 싸움을 멈추세요! 모두 싸움을 멈추세요! 모두 싸움을 멈추세요!
웅웅웅웅웅-
진천희의 목소리가 흡사 동굴 속을 울리듯 사방에 메아리쳤다.
음공(音功).
소리에 기를 담는 무공.
사람의 감정을 흔들 수 있으며, 물리적인 파괴력까지 가지고 있는 무공이 발현되자 사방 일백여 장을 뒤흔드는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일어났다.
“크아아악!”
“커헉!”
“사…… 살려……!”
사자후에 버금가는 음공에 다들 귀를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단 하나의 동작에 전투가 일순간 멈추고 만다.
그 사이로.
진천희는 비동의 입구에 내려섰다.
탁-
가공할 음공을 내뱉은 주인공이 백의신룡이라는 사실에 모두가 경악한 표정으로.
그러나 경계심을 담아 조용히 진천희를 주시했다.
‘시선 끝내주네. 이 정도 효과를 볼 줄은 나도 몰랐는데 말이야. 음파를 이용해 달팽이관에 직접 타격을 주는 방식이 꽤 성능이 확실하잖아? 나중에 급할 때 다시 써먹어도 되겠어.’
소리는 효과적인 공격법이다.
사람 귀의 특성상 고작 3데시벨이 증가했다고 하더라도 실제 들리는 소리는 약 두 배는 증가한다.
국가에서 90데시벨이 넘는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무자들에게 반드시 청력 보호구를 지급하도록 법으로 규정하는 이유가 이거였고.
미국에서도 이러한 소리를 이용한 무기를 계속 개발 중인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인간에게 있어서 고막은 생각보다 연약한 기관이며.
무림인들 중에 본인이 음공을 익힌 게 아닌 이상 귀를 단련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칠마금.
본래 금(琴)이라고 하는 악기를 이용하는 신공절학이나, 그 무리를 분해하여 오행신공에 쓸 수 있도록 재조립했다.
원래도 현원전단신공에 양의심공까지 더해져 생각의 속도가 남과 다를진대.
여기에 보옥까지 섭취해 오성이 증가하니 무공에 대한 이해도가 가히 대종사(大宗師)라고 불러도 될 수준!
거기에 현대의 지식까지 활용해 던진 것이 방금 사용한 일갈(一喝)이었다.
인간의 고막을 두드리고 달팽이관을 뒤흔들어 어지럽게 만드는 음파 공격!
내공이 아무리 많아도 음공에 조예가 없으면 막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터라.
심지어 마교의 소교주 두 명조차도 잠시 비틀거릴 정도였다.
“모두 싸움을 중지하시죠. 혈선교가 또다시 등장한 상황이니, 이대로 계속 싸운다면 혈선교의 수작에 놀아나는 꼴밖에 되지 않습니다.”
수천 명이 넘는 강호인들이 검을 쥔 채로 노려보고 있었으나, 진천희는 조금도 주눅 든 기색이 없었다.
‘여기서 약간이라도 움츠러든 기색이 보인다면 공격당하는 건 내가 되겠지.’
양의심공 덕에 주변의 기감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머리 한켠으로는 다음 수를 이어 나갔다.
머릿속으로 그려 나가는 기보(棋譜).
극도로 흥분한 무림인들 사이에서, 만약 수가 틀린다면 갈가리 찢어지는 것은 진천희 자신이 될 터.
이미 서로가 서로의 피를 본 이상 그들을 논리적으로 진정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허나, 그럼에도 태연한 얼굴색에 자극이라도 받은 걸까?
일전 비무에 나타나지 않았던 또 다른 마교의 소교주가 진천희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약 십여 장 정도 떨어진 자리에서 멈추어 선 그가 입을 열었다.
“네가 그 유명한 백의광룡이로구나. 과연 광룡이라는 이름답게 미친 소리를 하는군. 이 상황에서 우리가 순순히 물러설 것 같으냐?”
“귀하는 누구신지…….”
“본좌가 바로 일월신교의 세 번째 소교주인 흑운이다. 본좌의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겠지?”
흑운.
마교의 세 번째 소교주.
현재 생존한 소교주 중에서 최연장자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저잣거리 매담자가 말하고 다닐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정보를 은전을 주고 사는 정도의 무인들에게는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한 사실로, 당연히 진천희도 알고 있었다.
‘역시…… 느껴지는 기운으로 봐서는 소교주들 중 하나 같더라니. 흑운이 여기서 등장했네. 이 아저씨도 여하륜과 죽자고 싸우지 않았나?’
* * *
흑운.
청연과는 다른 형태의 악인.
천마신공을 베이스로, 혈명탁탑금강신공(血命托塔金剛神功)이라는 마공 절학을 익혔는데.
육체가 금강불괴에 도달한 상태이고, 강기조차도 몸으로 견뎌낼 정도.
거기다 가지고 있는 근력 자체도 엄청나서, 내공을 안 써도 맨손으로 바위를 부수고 강철을 우그러트릴 수 있는 존재라 할 수 있다.
마종육가에서 어릴 때부터 보호받고 자라서 영약을 밥 먹듯이 먹으며 컸다.
가지고 있는 내공도 강력하며 지금의 진천희보다 총 내공 수치는 더 높을 터.
‘허나, 단점도 명백하지.’
느리다.
화경에 오른 상태임에도 제법 움직임이 느리다는 묘사가 소설에 있었다.
다만 천마신공의 공능에 천상 도련님으로 자란 터라.
주변을 장악하고 포섭하는 능력을 이용해 단점을 커버하고 장점을 살렸다.
그런 흑운에게 천마는 신공을 내리며 이렇게 말했다.
-고귀하게 태어나서 고귀하게 자란 꽃아. 씨앗부터 미물들이 받들어 존귀했을진대 과연 그 열매조차 존귀할지 궁금하구나. 보여 보거라. 미물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마(魔)가 과연 하늘에 닿을 수 있을지. 닿지 못한다면 너는 천 갈래로 찢어지리라.
그녀의 예언대로 흑운은 마지막에 그를 모시는 자들에 의해 천 갈래로 찢어졌다.
흑운이 지도력이 없는 것도, 그렇다고 인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상대가 나빴다.
그것을 유도한 것은 일카나.
미래 여하륜의 수하이자 현재 진천희가 데리고 있는 세외의 암살자다.
-어릴 때부터 영약을 먹고 대법을 받아 자랐다니, 쌓아 올린 마공조차 준수하다고요? 세에상에…… 그만한 영약이 어디에 있을까요?
-흡성대법을 소교주들한테 사용한다면, 천마신공을 전수받지 않은 자도 내공을 빨아들일 수 있나요?
-에이, 술김에 물어본 거죠. 별 이야기 아닙니다.
악마의 혀로 마종육가를 갈라놓고, 청연과 흑운의 공생 관계를 찢었다.
일카나 역시 결국 사망하지만 그녀가 남긴 칼은 흑운을 죽이는 데 차곡차곡 작동했다.
그것도 가장 비참하고 끔찍한 결말로.
‘청연은 차라리 순수 악이라도 되었으나, 그는 제 사람을 다 죽일 만큼 모질지 못했지.’
청연이었다면 의심이 가는 선에서 이미 목을 쳤을 터.
어릴 때부터 좋은 토양에서 애정을 받아 자란 검은 꽃은 결국. 마지막에 사람을 내치지 못했다.
‘허나 양민을 죽이고, 수없이 많은 혈로를 만든 시점에서 그는 악인이지.’
이미 그의 손에는 청연보다 조금 못한 수준의 피가 묻었다.
그리된 이상, 주인공의 심판을 받아 사망하는 건 소설의 당연한 이치였다.
그러나 그건 미래의 이야기.
진천희는 소교주에게 알은체했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흑운 소교주.”
이렇게 가벼운 포권으로 넘어가고 그다음 본론으로 넘어가면 된다.
“제가 타협안을 제시하겠습니다. 비동을 돌파하고 나오는 비급을 모두가 공동으로 필사해서 나누어 가지는 건 어떤가요?”
그 말에 흑운이 차분히 답했다.
“우리가 왜 그래야 하지? 무림맹의 위선자들을 쓸어버리고 비동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을.”
당연히 예상한 답변이다.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도록 하죠. 제 제안을 받아들이시지 않고 계속해서 싸우셔도 좋습니다. 만일 그러신다면…….”
“그런다면?”
“도망 다니면서 아까의 음공을 계속해서 사용해 드리겠습니다. 절대로 지금처럼 집단적인 전투를 할 수 없을 거라고 장담해 드리죠.”
도산검림의 강호다 보니 늘 칼이 가장 무서운 무기로 손꼽힌다.
허나, 지구 별 외과의인 진천희의 소견은 조금 달랐다.
‘내가 입으로 칠판 긁는 소리 낼 수 있는지 한번 들어 봐라. 이건 한 번도 안 써 봐서 나도 내가 어디까지 낼 수 있는지 궁금하니까.’
아까의 음공을 1단계라고 한다면,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는 2단계로 지정할 수 있다.
작정하고 도망치면서 그 소리를 계속 낼 작정이었다.
“미친…….”
“……광룡…….”
“제정신인가…….”
이윽고 정파의 무인이 경악에 차서 소리 질렀다.
“그러고도…… 네가 그러고도 무인이냐! 우리의 생사결을 더럽힐 생각인가!”
“치욕스럽게 살 바에는 차라리 자결하겠다!”
설령 자살을 시도한 환자라도 응급실에 도착하면 필사적으로 살리는 게 의사다.
의원은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의술은 어찌 보면 한없이 조악해서, 수술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영원히 한쪽 청력을 잃더라도 종양을 제거할 수 있다면.
평생 배에 관을 꽂아야 하더라도 몇 년 후를 살 수 있다면.
절박한 상황에서 환자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봐야 하고, 그 결과를 함께해야 했다.
죽고 싶어 약을 먹고 응급실에 이송된 환자도 보았다.
그 사람은 그런 상황에서도 마지막으로 자식을 보고자 중환자실에서 필사적으로 버텼다.
기도로 약이 넘어가서 되돌릴 수 없음에도 그는 아이들을 보고 싶어 했다.
죽고자 하는 마음과 그리움 사이에서 일주일을 인간은 버텨 나갔다.
삶이라는 게 더러울 수가 있는 걸까.
그게 더럽힌다고 더러워질 수 있는 존재인 걸까.
“더럽혀……?”
쓴웃음이 나왔다.
그들의 무(武)로서의 삶이 존중받아야 마땅할 가치라면, 진천희의 의(醫)로서의 삶도 존중받아야 했다.
그것은 양측 모두 일생을 걸며 지켜 온 가치라 할 수 있었고.
허나, 둘은 결코 함께할 수 없기에.
어떤 말을 해도 닿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저 의원인데요? 환자 더 보기 싫어서 이러는 거거든요? 아, 싫으면 마시든가! 저 진짜 음공만 쓰면서 도망 다니면 마교 정예들도 제대로 못 싸울걸요?”
땡깡이라도 좋다.
일단 나 없는 곳에서 싸워라.
“귀를 막아라!”
“제가 화경인데 화경이 쓰는 음공이 그렇게 쉽게 막히겠습니까?”
“미친……. 이 미친 새끼가!”
“양민을 위해 칼을 드는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절학 하나 쥐겠다고 서로 죽이면서 무슨 혀가 그렇게 깁니까–!”
광인이라고 평생 손가락질 받아도 좋아.
진천희는 그리 생각했다.
내력을 담아 다시 외치자 모든 무인들이 귀를 붙잡고 비틀거렸다.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 백의광룡.”
흑운이 이마를 찌푸리며 나서려고 했다.
그때.
“나는 백의신룡의 말에 찬성하네.”
진천희를 지지해 주는 한 사람이 나타났다.
무림맹주이자 창왕 악진.
악진의 말에 흑운이 답했다.
“무림맹주! 네가 찬성한다고 해서, 내가 찬동할 거라고 생각하나!”
어차피 약조를 깬 것은 무림맹.
창왕이 참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어떻겠나? 강호의 방식으로 해결하도록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