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34
제 334화
같은 시간 혈선교.
지난번과는 달리 어둠 속에서 목소리만 울렸다.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어둠만 차 있는 곳.
기이한 곳에서 그들은 대화했다.
[동천군, 그 멍청한 놈이 결국 죽었군그래. 요천군도 무림맹에서 금제가 발동되어 죽어 버렸고.] [우리 혈선십천군 중에서 한 번에 자리가 두 개나 빈 것은 정말 오랜만이지 않나?] [그러게 말이야. 곤륜 놈들 이후로 이런 피해를 입은 건 오랜만이군.] [그러고 보니. 곤륜에서 나온 놈들이 반선의 씨앗으로 향한다는 정보가 있더군.]그 말에 어둠이 술렁거렸다.
[호오…… 그놈들이?] [그렇다면 곤륜에 있는 그놈의 지시일까?] [아닐 게야. 그놈도 승천을 준비 중이니까 속세에 신경을 끄고 있을 테니.] [후후후후. 재미있겠군.]술렁거리던 어둠이 다시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목소리는 멎었다.
이윽고 어둠 속, 존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백린의각은 이번 일에 대규모로 움직인 터라 지출된 금액이 무시무시했다.
그러나 그 금액은 전부 무림맹, 사도련, 심지어 십만대산의 마교에게까지 청구되었기에 손해는커녕 크게 돈을 벌어들일 정도였다.
투자한 돈 이상의 상당한 이윤.
하나의 문파가 아닌, 여러 세가와 문파가 모여 만들어진 연맹.
사도련과 무림맹이 휘청일 정도로 돈을 뜯어냈으니, 과연 지독하다고 할 만했다.
마교는 그나마 돈을 덜 뜯겼는데, 흑전의각에 반강제적으로 갔기 때문.
진천희의 일격에 떡실신한 흑운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흑전의각을 고집했고.
윗대가리가 불편한 심기를 보이니 교인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흑전의각에서 진료를 받아야 했다.
그래도 천하 삼 대 의각으로 손꼽히는 만큼 흑전의각의 의술 자체는 꽤 훌륭하다.
다행히도 혈생노괴가 그 자리에 없었는지.
아니면 순수하게 관심이 가는 환자가 없었는지.
그녀에게 납치당한 자는 없었다.
그렇게 강호의 커다란 사건 하나가 종료되고.
백린의각 세력은 본거지인 강소성(江蘇省)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황하를 지날 적에는 감히 수적들이 시비를 걸지 못하고 길을 비켜 주었으며, 육로에서는 녹립십팔채가 얼씬도 하지 않았다.
“형. 그거 알아?”
“뭘?”
“백린의각이 천하제일 문파가 아닐까 하고 수군거리는 사람이 생겼다는 거?”
“풉.”
진천희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객관적으로도 아닐뿐더러 진천희 자신이 보았을 때도 한참 떨어진다.
애초에 백린의각은 문파가 아니라 의료 집단이니까.
“강호의 소문이 원래 그렇지.”
“뭐, 형이 세 개의 세력을 상대로 물러서지 않았던 것 때문에 그렇게 짐작하는 모양이더라고.”
진천희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무력 때문이 아니야. 그냥…… 어쩌다 보니 운이 따랐던 거지.”
“지략과 광기?”
“……운이라고 하자.”
진천희의 말에 사마현이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형은 정말 재미있어. 이럴 때는 강호의 그 괴물들을 상대로 할 말 다 하던 백의광룡이 떠오르지 않으니까.”
“너는 밖에서는 내가 광룡이라고 불리는 건 싫어하면서, 정작 너는 나한테 광룡이라고 부른다?”
“아, 형. 그거랑 그건 다르지~”
다르긴 뭐가.
어쨌거나 스승님은 약간 사마현이 짜증스러웠으나 사마현은 만만치 않은 성격과 특유의 넉살.
그리고 어쨌거나 형에게 좋은 것을 진상할 수 있는 자금력으로 스승님의 인성질을 회피하는 중이었고.
진천희는 그런 사마현의 사회생활 테크닉에 혀를 내둘렀다.
‘과연 무협 프랜차이즈의 아버지…… 저 정도 해먹으려면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스승님은 사마현을 언제나 조금은 서늘한 눈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그래도 표면적으로는 상호 우호 관계다.
표면적으로는.
의외인 점이라면.
의외로 궁귀 어르신이 사마현을 경계한다는 점 정도일까.
[금혈방은 피가 금으로 이루어져 있는 놈들입니다, 은공. 늘 주의하셔야 합니다.]음…… 과거 낭인 생활 때 뭔가 금혈방에 크게 덴 일이 계셨던 모양이네.
이상한 일도 아니다.
사마현이 황금왕의 애제자로서 권력을 쥐기 시작한 요즘 들어서야 금혈방의 평이 좋아진 거지, 과거 금혈방의 악명은 어마무시했으니까.
[유호 총관님께도 조심하라고 간언을 드렸으나, 도련님이 등쳐 먹힌다고 등쳐 먹힐 놈이냐고 도리어 냉소하셔서 말입니다.]‘음, 유호 놈. 나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상호 증오로 다져진 통찰 덕인가.
[걱정하지 마세요. 현이는 그럴 애가 아닙니다.] [은공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그리 말했으나 궁귀 어르신은 여전히 사마현을 경계하고 있다.
저게 풀리려면 오래 걸릴 것 같다.
“스승님, 천우는 무당산으로 잘 갔겠지요?”
“음. 거기서 일을 처리하고 돌아오려면 꽤 시일이 걸리겠지. 아마 사마현의 수련이 거의 다 끝날 즈음에 오지 않을까 싶단다.”
무당파.
정파의 거산이라 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무당권제의 직계 제자라는 건 상당한 지위를 보장하지만, 동시에 무거운 의무를 요구한다.
‘원래라면 좀 더 수행하러 돌아다녀야겠지만. 그래도 처리할 게 있을 테니.’
아마 일을 다 처리하고 나면 다시 강호 수행을 하러 나올 터.
그때 화경으로 가는 수행에 돌입하는 게 좋겠지.
‘그편이 나는 편해. 둘은 전혀 다른 무공을 쓰니까.’
한 바구니에 여러 달걀을 넣을 수는 없는 법.
거기다가 그냥 수행도 아니고 화경으로 가기 위한 깨달음과 가르침.
진천희가 도울 수 있는 건 깨달음으로 가기까지의 행로뿐.
그 이후는 오롯이 본인이 스스로 걸어온 무학을 성찰하며 한 걸음 더 도아(道芽)해야 한다.
‘그건 그렇고. 오늘 점심은 소고기 찹스테이크가 좋겠어.’
중원에서 양식이나 만들어 보련다.
이렇게 만들고 나면 ‘소고기 볶음’ 해 왔냐고 하겠지.
* * *
항산에서 백린의각까지 돌아오는 데 보름 정도 걸렸다.
중간중간 의각 분타에서 용무를 보며 왔으니 상당히 빨리 온 셈이다.
진 교수가 오자마자 한 건 둘째를 보러 간 것이었다.
진천희가 강호판 랩실에 도착하자마자 의각 연구원들은 바로 몸이 굳었다.
“그…… 실험상 원하는 반응이 있긴 한데 맞는 균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시대에서 하는 실험이란.
특별한 약물을 사용해 가공한 얇은 종이에 균주를 세로로 배양하고, 그 옆에 테스트용 균을 가로로 배양해서 교차점을 관찰하는 방식이다.
만약 항생에 성공한다면 원하는 반응이 맞고, 실패한다면…… 처음부터 다시 단계를 밟아 나가야 한다.
본인들이 성과를 냈음에도 불안한 모양이다.
일단 실험 기록들을 확인하고, 그다음.
“어디, 관상을 보니…… 그놈이 맞는 것 같은데?”
방선균(放線菌) 목에 속하는 스트렙토마이세스 그리세우스(streptomyces griseus).
드디어 그놈을 추출하였는가.
진천희의 말에 모두의 눈이 커졌다.
남은 것은 데이터들을 비교하고, 직접 실험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뿐.
유호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완농에서 배워 오신 재생의 술이 도움이 상당히 되더군요.”
진천희는 원시적인 현미경을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툭 눈물을 흘렸다.
“소각주님!”
상의원들이 놀라서 진천희를 보았다.
그 피도 눈물도 없는 연구왕이 이렇게 눈물을 보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진천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냥 다들 고맙고…… 고마워서요. 몇 년을 이 연구에 갈았는데…… 어쩌면 끝이 안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왜일까?
그 말에 모두가 갑자기 울컥 목구멍이 막혔다.
그 긴 연구 기간. 답이 없던 긴 시간.
진천희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모두에게 깊게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다들 고맙습니다. 이건 제가 아니라 여러분이 만든 성과입니다.”
‘아니, 그 자존심 높은 분이…….’
상의원들이 당황해서 진천희에게 말했다.
“소각주님, 허리 펴십시오.”
“저희야말로 소각주님 덕에 월봉도 많이 받았는걸요.”
“맞아요! 좋은 곳에서 제의도 많이 받았어요!”
의원들은 같이 젖은 눈가를 닦으며 저마다 한마디씩 조잘거렸다.
그 모습에 유호조차도 조금은 가슴이 뭉클해질 지경이었다.
아득한 기간.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
인류의 지식의 한계를 넓혀야 한다는 미친 소리를 하는 소각주님 밑에서 무던히 갈려야 했더랬다.
물론 기쁜 일도 있었으나 고통이 더 컸다.
이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한 건 오로지 우리 백린의각이 돈이 많다는 것뿐.
“이왕 이렇게 된 거 맛있는 거 많이 먹어요!”
“그래요. 그래요! 소각주님 요리 솜씨가 엄청 늘어서 저희 무지 기대하고 있어요.”
진천희는 그제야 소매로 눈가를 닦았다.
“그래요. 맛있는 거 먹어요.”
그리고 다음 말은 상의원들이 상상도 못 한 말이었다.
“맛있는 거 먹고 힘내야죠! 이제 이걸 약재화하고 실용화 단계까지 가려면 갈 길이 멀잖아요.”
“……네?”
진 교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원래 이게 약간 배양 효율이 낮다 보니 로스율이 50% 이상이기 때문에 특별한 가공법이 있어야 하는데…… 최신 논문으로는 페니실린, 그러니까 백린석유를 극소량 이용한 배양법이 있었죠. 그나마 그게 로스율이 적은 방법이에요. 이게, 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앞으로는 이제 완전히 무림식으로 해야 하니……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 신영역 개척이 되겠군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허나 이렇게 진 교수가 이상한 말을 지껄이며 자기 세계에 완전히 빠져서 폭주한다는 게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
‘엿 됐는데……?’
이윽고 진천희가 꿈과 희망에 찬 아련한 눈을 하더니 핫, 하고 원래의 정신으로 돌아왔다.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흥분했군요. 아무튼, 뭐 드시고 싶으세요? 뭐든 다 할게요.”
그 말에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내일부터 다시 죽겠구나.
허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지 않다던가.
“저 닭갈비 주십시오. 치……? 치 뭐 얹은 거.”
“치즈 닭갈비 접수했습니다.”
“교수님. 저는 그 네모네모난 떡이요.”
“와플이군요. 해 드립니다. 아이스크림 얹어 드릴까요?”
“네?”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는 모양이다. 진천희는 빙공을 가볍게 끌어올렸다.
파사삭-
진천희의 손 위로 커다란 얼음의 결정이 맺혔다.
“어…… 설빙과 해 드릴까요?”
“네, 네!”
대충 알아들으신 모양이다.
그렇게 저마다 먹고 싶은 것을 모두 하나씩 불렀다.
진천희가 말했다.
“앞으로 삼 일 정도 휴가를 드릴 테니 푹 쉬세요.”
“우와아아아!”
모두가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었다.
그것은 백린의각 랩실 최고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