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41
제 341화
그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제갈린은 하릴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만 보고 있었고.
햇수를 세어 보니 앞으로 몇 번의 발작 후면 죽겠구나.
그는 그리 생각했다.
살고자 했던 시도야 젊은 날에 수만 번, 수십만 번을 했더랬다.
이제는 대부분의 시한부들이 그렇듯 포기의 단계.
허나, 떨어지는 빗방울이 어느 순간 천천히 내리는 것을 그는 보고 말았다.
느려진 빗방울이, 더욱더 느려지고, 또 느려지고.
마침내 물방울들이 완벽한 원을 그리며 허공에 붙잡혀 움직이지 않는 찰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그를 엄습했고.
자신에게 필요 없는 무학의 깨달음이 그렇게 찾아옴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이 온다 하더라도 그는 결코 다른 무인들처럼 환골탈태를 할 수 없음을 안다.
환골탈태는 심(心), 기(氣), 체(體)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
마음과 내공이 충족된다 하더라도, 구음절맥이라는 천형이 그를 붙잡을 것을 알기에.
제갈린은 무학의 깨달음을.
다른 무인들이라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얻고자 하는 그 시간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허나, 깊은 푸른색의 오성은 그를 놓아주는 법도 없이.
다시 깨달음에 깊게 침잠하고 말았다.
이미 알아버린 것을 모른다고 할 수 없는 법.
그렇게 무학의 벽을 넘은 제갈린은 한참을 쓰게 웃었다.
곧 죽을 자신에게 이만한 진주라니.
돼지 목에 진주를 걸 듯, 그의 오성이 그의 목에 진주를 걸어 주었다.
차라리 자결을 할까.
그는 그때 그것을 고민했다.
허나, 그의 고고한 자존심이 도망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그때의 망념도 부질없게 그때 떠올린 무학들을 이렇게 쓰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로구나.
스승님은 기쁜 표정으로 부채를 느릿하게 부쳤다.
동천군과의 전투 전에 부채를 부러뜨리시고, 지금은 새 부채를 쓰고 계신다.
하지만 이번 부채는 손에 영 안 맞으시는 터라 진천희가 각방으로 부채 장인을 수배해 보는 중이다.
그래서 지금 무월이 익힌 것은 그냥 현원공이 아니다.
제갈린은 그때의 깨달음에 제자가 만들어 준 신공 절학.
혼원오행귀종기공과 같이 익힐 수 있도록 현원공을 개량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혼원오행현원기공이라고 불러야 할 녀석이었다.
무월은 그게 필요했다.
왜냐면, 업무량이 살인적으로 많았으니까.
결국 혼원오행귀종기공과 혼원오행현원기공의 전수가 끝나고.
그제야 숨통이 트이게 된 무월의 행보는 놀라웠다.
무월이 백린의각에 들어온 지 불과 3개월.
그 안에 강소성 전체가 완전히 백린의각의 손아귀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백린의각의 분타 역시 강소성 내에서 크게 증가하여, 인구 1천여 명 이상의 지역이라면 분타가 무조건 들어설 정도였다.
백린의각의 분타가 들어서면, 아무리 작은 분타라고 해도 편의 시설도 같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편의 시설에는 조그마한 잡화점이 들어선다.
그것을 진천희는 ‘편의점’이라고 불렀다.
편의를 봐주는 점포라는 의미라는 진천희의 설명에 다들 그 잡화점을 ‘편의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백린의각 분타와 함께 들어오기에 의약품은 팔지 않지만, 의복에서부터 보존 식품, 간단한 농기구나 서적까지 판매한다.
그렇게 통칭 ‘백린 편의점’이라 불리는 잡화점이 강소성 전역에 뿌리를 내리는 데는 불과 몇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물류, 상권, 무력 장악은 당연한 수순.
게다가 주왕의 지지에다가, 황제의 은밀한 지지까지 겹쳐져 관리들도 감히 강소성에서는 백린의각을 건드릴 수 없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성장세!
그러나 다른 지역의 문파들이 그것에 간섭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백린의각의 사업 확장은 기존의 다른 문파들의 사업과는 너무 달라서 대응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세계 강호 문파들의 사업이라는 것은 문파마다 달랐다.
어떤 문파는 광산을 끼고서 광공업이 발달되어 있다면.
어떤 문파는 표국을 크게 운영하여 물류 운송으로 돈을 벌었다는 식이다.
그런데 백린의각은 어지간한 건 다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은광의 개발도 완료했고, 공방도 여럿 인수합병 했다.
거기에 하오문과 발맞춰서 하오문에도 이권을 나누어 주고 있었는데.
하오문은 약삭빠르게 백린의각의 방법을 모방해서 다른 지역에서 세력을 불려나가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복건, 절강, 강서.
이 세 지역의 경우 거대 문파가 없는 지역들로, 하오문은 이 지역에 백린의각과 유사한 방법으로 진출하고 있었다.
어차피 저작권이 없는 이 시대에 남의 아이디어 좀 빼가는 건 불법도 아닌 상황.
-형, 내가 지분 좀 줄게. 어차피 딴 놈이 베끼나 금혈방이 베끼나 똑같으면 지분 받고 가는 게 낫지 않아?
-그건…… 어…… 내가 지분을 받는다면 애초에 협력 업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게 그거~! 사부님도 그렇게 백린의각과 금혈방의 밀월관계가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라고 계시고~
-……파는 물건은 제대로 된 물건이라고 해 주렴.
나머지는 금혈방의 양심(?)에 맡기겠으나, 다행히도 주먹밥을 비롯한 식품류는 제대로 된 걸 팔고 있다.
하오문이 좋다고 물어서 팔기 시작하니 강호의 세력들은 속으로 칼을 갈았다.
왜?
왜 저 녀석들만 잘나가지?
왜 저 녀석들은 저렇게 돈을 잘 벌지?
대체 왜? 그렇다면…… 빼앗아도 되지 않을까?
음습한 욕망이 칼날을 벼려냈고.
혈선교의 꼬리는 다시 보이지 않고, 사도련과 무림맹의 분쟁은 일시적으로 멈추었으며, 마교 역시 조용한 지금.
반대로 강호에서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패천무상신공을 둘러싼 싸움에서 만들어진 은원의 응어리가 천천히 썩어 가며 악취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사마현과 천우가 백린의각에서 수행한 지 사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이윽고.
천우가 화경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 * *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더 이상 땀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쏟아낸 후.
오로지 정신의 힘만으로 육체를 혹사시키며 천우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길 반복했다.
‘천우야. 화경이란 건 뭘까?’
화경에 오른 형이 천우에게 질문했다.
그것이 몰라서 하는 질문이 아님을 천우는 알고 있었고.
그것을 답할 수 있을 때야말로 자신이 화경에 돌입하는 순간임을 천우는 직감했다.
형은 계속해서 말했다.
‘으음, 나는 뭐든지 이론화를 하는 못된 습관이 있다 보니 화경이라는 그 경지조차도 분해해 보고 싶더라고. 그것을 분해하고 규명하는 그 과정이야말로 어찌 보면 무학의 본질에 다가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형은 묘하게 즐거워 보였다.
흡사 새 장난감을 받은 아이처럼.
화경이라는 경지를 분해해 본다?
어찌 보면 결론이 나오지 않을 화두다.
허나 형은 현상을 통찰하고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아 보였다.
‘화경에 이른 자들은 남과 다른 시야와 정신을 가지게 된다고 하지. 심기체가 한 단계 더 발전한다고. 어느 부분은 꽤 맞다고 생각해. 전투에 돌입했을 때 화경의 무인은 상대의 검 끝을 끝까지 본다는 공통점이 있어.’
화경 전의 무인이라면 보통 검을 휘두르는 방향과 상대의 시선, 보법의 방향을 보고 다음 검로를 예측한다.
허나 화경이 되면 상대의 검로를 모두 볼 수 있고 그 검 끝의 방향까지 살필 수 있게 된다고 형은 말했다.
확실한지 물으니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화경을 대상으로 한 모든 절학은 상대의 검 끝을 완전히 볼 수 있는 경지를 염두에 두고 집필을 하더라고. 그동안 읽은 절학에 이번에 얻은 패천무상신공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지.’
수없이 이어진 교차검증 끝에 진천희는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아냈고.
강호에 유례가 없을 기이한 천재는 그것을 또다시 이론화하기에 이르렀다.
‘천우야. 화경이라는 건 우리 인지 기능이 한 단계 더 확장되는 것을 뜻해.’
‘네가 하늘에서 땅까지 눈송이가 떨어지는 모양을 완벽하게 볼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그 눈을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낼 수 있다면 그것이 화경의 경지라 할 수 있겠지.’
‘물론, 대충 휘둘러서 갈라 보는 거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떨어지는 눈송이가 땅에 닿아 녹고 다시 어는 그때까지.
눈의 생애를 완벽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형은 말했다.
‘누구나 처음은 잘하지 못해. 하지만 하다 보면 늘게 되고, 임계점이 오는 순간 도약하는 거야.’
‘그게 탈각이지. 탈각(脫却)이자 탈각(脫殼). 두 가지의 의미가 모두 다 들어있다 할 수 있어. 그게 바로 다음 경지로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해.’
눈송이가 힘들다면 빗방울로도 좋다고 형은 웃으며 말했다.
어찌 보면 태극과 비슷한 면이 있어 무당파인 네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고.
‘너는 할 수 있어. 나는 믿어.’
세상 사람들은 형을 미쳤다 말하나, 천우는 그런 형이 그저 남과 조금 다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상은 이미 답을 내렸고, 그것도 하나의 정답이라고 생각하나.
형이 내린 답 역시 오답이 아니라고.
‘태극을 생각해. 태극은 두 개의 극단이 서로 맞물려 조화를 이룬다 할 수 있지. 하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고찰해 본 적이 있니?’
‘양의심공은 태극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마지막 역할을 해. 그렇기에 무당파 내에서도 신중히 사람을 골라 전수를 하고, 그것까지 전수를 받아야 태극을 조금은 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지.’
그 양의심공 때문에 한 도인이 무당을 팔았다.
그는 분명 태극을 완성하고 싶었을 터였다.
태극을 알기 위해 태극의 도(道)를 판다는 기묘한 모순 속에서 형은 화마(火魔)를 갈랐다.
그때의 형은 분명 천우보다 태극에 가까웠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디까지 가 있는 걸까.
진법을 복구하고, 정광을 상대하고, 화마를 끄고, 의술로 모두를 구하고, 형은 한번 무너졌다.
그렇게 무너진 형은 다시 비척비척 스스로를 재조립해서 앞으로 묵묵히 걸어갔다.
용봉지회에서도 미쳐 버린 무인들을 제압하고, 의원으로서 치료하고, 십천군과 싸우며 다시 한번 무너지고.
또다시 스스로를 재조립하고.
황도로 향하다 만난 작은 마을에서도 형은 그 짓을 반복했다.
심지어 패천무상신공을 취득하는 과정에서조차도 형은 자기 몸뚱이를 박살내는 데 주저가 없었다.
무인이라면 당연히 인정받고 싶어 하는 무명과 평판?
신경 쓴 적은 있을까?
지금은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 손가락질을 하지만,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신이 내린 답이 오답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기에.
그런 기인이 자신의 형이었고.
자신에게 이름을 준 자였고.
너는 특별하다 말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런 형이 해 준 조언이 당연히 특별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