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42
제 342화
‘너는 눈이 좋아, 천우야. 또한 기를 익히고 운행하는 것에 있어 천부적이지. 그건 누구보다 뛰어난 장점이야. 사실 가장 화경에 가깝고, 가장 멀리 볼 수 있는 이가 너라고 할 수 있겠지. 그렇기에 무당권제께서도 너를 택한 거고.’
그러니 장점을 살려 보자.
머릿속에서는 그간의 기괴하고 극악한 수련과 훈련을 하며 들었던 ‘형’의 목소리가 마음속을 울렸다.
그것은 어찌 보면 영혼에 박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이유, 원인, 궁리, 그리고…… 태극…….’
형은 끝까지 보라고 했다.
너는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전신 근육이 피로로 경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산처럼 거대한 체구는 결코 무너지는 법 없이 움직이기를 반복, 또 반복.
천우의 안에서 쓰레기라 생각했던 사소한 것들이 하나둘 들러붙기 시작했다.
형이 해 준 수행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조각난 파편들이 서로 달라붙어 엉키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천우는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기 시작했다.
왜일까. 이 작은 물방울이 천우의 외안에 무척이나 크게 보이기 시작했고.
퉁-
검 끝에서 부서지고 흩어지는 모습조차도 선명하게 하나, 하나.
천우는 자신이 드디어 비의 종말을 보게 되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무아(無我)의 세계에 돌입하는 것과 동시에 시야가 확장되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쾌감이었다.
코끝에 닿았던 좁은 벽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 저 먼 곳으로 물러난다.
‘아니, 내가 넘어선 거야.’
천우는 자신이 한 걸음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우는 물방울의 궤적을 좇았다. 당연하듯 하늘(天)에서 내려와 땅(地)에 부딪쳐 흩어지는 것을 망막에 새긴다.
이윽고.
그 물방울이 부서지며 소멸하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그저 물이 되어 땅에 스미고, 그것은 땅 아래를 흘러 다시 강이 되고.
다시 하늘이 된다.
천지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순간, 천우 단전 안의 태극이 크게 도약하기 시작했고.
천우의 하나밖에 없는 눈은 모든 물방울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모든 물방울이 정지했다.
츠가가각-
검이 물방울을 갈라냈다.
검기라면 분명 검풍에 휩쓸려 부서졌을 원이.
이번에는 검에 닿을 때까지 온전하다.
검강.
태극을 깨닫고, 세계가 확장되자 이제 검이 응답했다.
천우의 검이 음과 양을 그린다.
어째서 음양은 화합하면 원을 그리는가.
결국 원이란 무엇인가.
외안의 사내는 계속해서 검로를 그려 나갔다.
그것은 태극의 묘리를 담은 검무(劍舞).
문득 간식을 들고 오던 천희는 동생 천우의 검무를 보게 되었다.
천우의 검 끝에 맺힌 것은 틀림없는 검강이었고.
우산을 내려놓고 이 깨달음이 끝날 때까지 호법을 서기로 했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태극의 검무가 끝나고, 천우가 눈을 떴을 때 비에 흠뻑 젖은 형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축하해. 천우야! 이럴 때 강호에서는 보통 대공의 성취를 축하드립니다. 이런다지?”
천우가 보기에, 형은 여전히 묘하게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형, 그러다 고뿔 들어요.”
“안 들어. 내 내공이…….”
또 강한 척을 하니, 천우가 이번에는 바로 반박했다.
“권제이신 스승님도 고뿔은 오시던데요?”
“하핫, 역시 걸렸네.”
감기란 어찌 보면 다양한 바이러스의 집합체를 뭉뚱그려 말하는 병증이라고 할 수 있다.
무림 고수가 보통 사람보다 덜 걸리기는 하나, 또 슈퍼 내추럴 면역체라 감기에서 안전한 건 또 아니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대문파의 장로님들이 병에 걸려 의각을 찾는 일은 없었을 터.
오히려 괜히 고집부리다가 폐렴까지 번질 때가 돼서야 찾는 경우도 많았다.
“축하 간식이라도 먹…… 음, 다 젖었네.”
광주리에 우산을 씌워 주긴 했으나 그래도 너무 오래 밖에 있긴 했다.
“형, 얼마나 오래 있었던 거예요?”
“방금 막 왔어.”
그리 말했지만 형의 머리가 푹 젖어 있었다.
이윽고 진천희의 입에서 기어이 기침이 터져 나왔다.
“거 봐요. 오래 있으니까 기침 나오잖아요!”
못 말리는 형이다.
“헤헤헤. 그런 것보다 중요한 건 네가 화경이 되었다는 거야.”
“됐으니까 빨리 가요. 형!”
천우는 우산을 들어 젖은 형에게 씌워 주었다.
이미 몸이 푹 젖어 버려서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으나, 그래도 속이 쓰리다.
“헤헤헤……. 천우 화경 됐다.”
누구보다 똑똑한 형이 오늘만큼은 바보처럼 웃었다.
그런 모습에 천우는 어쩔 줄 모르겠어서 말문이 막혔고.
진천희는 기쁜 마음에 그날 내내 반복해서 천우가 화경이 되었다며 푼수처럼 웃고 다녔다.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형.
그것은 천우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하루였다.
030. 그것, 미련만은 훔치지 못하고
천우와 사마현이 돌아갔다.
둘 다 화경에 올랐으니, 이제 그들 자신의 문파 비전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진천희는 둘째, 스트렙토마이신의 로스율을 줄이는 데에 성공해냈다.
무림 행성에 떨어지기 전, 지구에서 읽었던 논문들이 꽤나 도움이 되었다.
‘으음, 여기에 진법을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주술은 사람을 탄다.
수련으로 느는 게 아니라 애초에 자질이 있는 자만이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
유호에게만 대량 생산을 하라고 시켰다가는 진천희는 다음날 피떡이 되어 있겠지.
화경이 된 지금도 유호의 주먹은 꽤나 아프다.
‘일만 시킬 수 있으면 딱 지금의 두 배 정도까지는 맞아 줄 수 있다, 내가.’
멱살 잡히고, 처맞고, 욕 듣고, 다시 멱살 잡히고, 처맞고, 욕 듣는 나날들.
폭력밖에 없는 이 미친 관계 속에서 진천희는 거머리처럼 유호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진천희는 다음 단계.
양산화를 어찌할지 구상했다.
‘의각에서 주술에 자질이 있는 자를 찾아보긴 했는데…… 역시 너무 적단 말이지. 시판하기에는 턱없이 적은 수야.’
그렇다고 일반인 중에서 찾는 것도 불가능.
페니실린 배양조 모터 역할을 오행신공이 하듯이 스트렙토마이신도 오행신공의 소양이 필요했다.
‘페니실린 양산화 때 오행신공의 빙(氷) 단계까지 가는 의각원 찾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주술에도 소양이 있는 사람을 어디서 찾나…….’
입이 무거운 무인들 중에서 찾아 철저하게 분업화를 시도해 봐야 하나?
그렇다면 그 관리는 유호와 자신이 맡게 될 터인데 진천희 자신의 일이 느는 건 괜찮지만.
유호가 지 일이 더 느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리도 없었고.
‘차라리 월봉 올리는 걸로 타협 볼 수 있는 성격이면 다행이지.’
유호는 스승님에 대한 충심과 두 사람 사이의 모종의 계약(?) 같은 것으로 움직이지 월봉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
그나마 요즘 진천희의 요리 솜씨가 한 단계 도약하여 먹을 걸로 조금은 타협 보기 시작한 게 기적이라면 기적이었다.
‘육회를 좋아하지. 유호는…….’
현대 지구 별이야 소를 키워도 방역이 잘되어서 육회로 먹어도 괜찮은데(물론 문제가 생길 확률은 0이 아니며, 부위에 따라서 위험한 곳도 있다) 이 시대의 위생과 유통 과정을 생각하면 좀 위험하다.
허나 왜인지 이놈은 기생충 걱정도 없다.
아마 황구나 뇌진이 무슨 날고기를 먹어도 기생충 걱정이 없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어쨌든 유호 이놈은 사람이 아닌 거 같긴 하니까?
그래서 소간으로 만든 육회를 가장 좋아한다.
물론 무림뿐만 아니라 지구에서도 인간은 잘못 먹으면 위험한 부위다.
‘육회는 배랑 먹는 게 최고지. 그리고 신선한 계란 노른자랑.’
소를 한 마리 잡아 바로 요리해서 주면 마뜩찮다는 얼굴로 술 한잔이랑 육회 한 점을 천천히 먹는다.
육회만 먹으면 질릴까 싶기도 해서.
화생공을 이용해 살짝 표면만 굽고 핏물은 그대로 배게 조리해 준 적 있는데 그것도 곧잘 먹었다.
물론 그렇다고 진 교수 멱살잡이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계속 일해 준다면 그걸로 만족이다.
‘음, 여전히 유호는 무섭지.’
표를 안 내는 게 중요하다.
유호 앞에서 진천희는 겁이라는 기능 자체가 삭제된 놈으로 보이는 게 좋다.
사 대 당주들조차 조심스러워하는 사람이 유 총관이다.
그런 상대를 처음 만날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겁대가리를 상실한 척 연기해 왔다.
그렇지 않으면 대등한 관계는 영영 불가능할 테니까.
아니. 어쩌면 연기가 아닐 수도 있었다.
두려움보다 균의 배양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애초에 두려움이 우선이었다면 요천군 때 스스로를 미끼로 내걸지도 않았겠지.
사람을 구하자. 그 명제 앞에서 진천희는 자기도 놀라울 만치 대담하게 행동하고는 했다.
‘일단…… 일을 더 늘리지 말자. 한동안은 오히려 업무 강도를 낮추는 게 좋겠어.’
유호는 둘째 치더라도 의각원들의 워라밸을 챙겨 주긴 해야 할 터.
그렇게 진천희는 업무 강도를 조절해 나가기 시작했다.
‘소 세 마리 정도 잡아서 먹여 줘야겠군.’
날고기를 좋아하는 놈이니 필시 좋아할 거다.
그렇게 평온한 하루가 이어졌다.
의각원들도 건강을 챙겼고, 진천희도 건강을 챙겼다.
유호는 소를 먹었다고 딱히 진천희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래도 답지 않게 끝까지 잘 먹는 모습을 보니, 마음에 들긴 한 모양이다.
덕분에 요리하는 사람도 보람이 생겼다.
그러던 중에 여하륜이 형을 보러 왔다.
* * *
“하륜아!”
진천희가 여하륜을 입구서부터 기다렸다.
저 아래로 여하륜이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반가운 마음에 손을 열심히 흔들었다.
‘으음, 일카나는 외부 일을 하러 갔으니 딱 좋은 때 와 줬네.’
아직 여하륜과 일카나가 조우할 때가 아니다.
그녀가 여하륜의 오른팔이 되기 위해서는 좀 더 강해져야 한다.
멀리서 점으로 보이던 여하륜이 손을 들어 흔들었다.
그쪽도 진천희를 본 모양.
그 순간, 점이였던 여하륜이 빠르게 커진다. 엄청난 경공!
“형.”
“……너 축지법 쓰니?”
“……음?”
무식하게 강한 건 여전한 모양이다.
진천희는 그런 여하륜에게 한국식 인사를 건넸다.
“그래서 밥은 먹었니?”
“어제 저녁 식사한 게 마지막인가? 허나 굳이 배가 고프지는 않군.”
“두 끼나 거른 거네. 그러면 안 되지. 일단 밥부터 먹자.”
이놈 주려고 전날에 소고기도 양념에 재워 놨겠다, 오랜만에 숯불갈비 파티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