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44
제 344화
진천희는 도살할 소며 돼지 등을 여하륜에게 주었고,
여하륜은 그것이라도 으깨고 찢으며 천살성의 본능을 달래야 했다.
한동안 의각 식당에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줄지어 나오게 되었다.
닭은 그리 살육의 촉감이 들지 않아서 닭고기는 여하륜이 진정된 후에나 나올 것 같았다.
허나, 꽤 많은 가축들을 도축했음에도.
“힘들어?”
“…….”
여하륜은 답하는 대신 벽에 등을 기댔다.
양손에는 짐승의 피가 담뿍 배어 있었다. 그럼에도 좀처럼 목마름이 가시질 않는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는다면 아마,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죽이고자 하겠지.’
천살성의 광기란 그런 것.
살육을 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고.
결국 천살성을 타고난 이들의 결말이야 비슷했다.
마을 몇 개든 다 살육하고, 양민들을 죽이고, 무인들도 죽이며, 그렇게 가리지 않고 죽이며 강해지고, 또 강해진 후.
마침내 무림 공적이 된 후 삼존급 되는 자들이 나타나 척살당하는 것.
‘이대로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형부터 죽이겠군.’
허나 이대로 의각 밖으로 나간다면 천살성을 제어할 기회가 다시 오긴 할까.
이곳은 강호에서 가장 혈풍과 거리가 먼 곳.
나가서 산적이라도 만나면 여하륜은 이성을 놓을 터였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깊게 혈향을 들이마신다.
짐승의 것이라도 피를 보면 좀 나을 줄 알았는데 좀처럼 흥분감이 가시질 않는다.
죽이고 싶다.
뭐든, 사람이면 특히 좋다.
이윽고 여하륜은 가부좌를 하고 불경을 읊기 시작했다.
딱히 불경이 신묘한 효험이 있는 건 아니다.
불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저히 제어가 힘들 때는 뭐라도 외워서 다른 곳에 정신을 쏟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수십 번은 같은 불경을 외웠던 것 같다.
“…….”
눈을 뜨니 그곳에는 여전히 형이 있었고.
밖에는 해가 저물고 있었다.
그가 도살한 짐승의 시체도 보이지 않는다.
바닥에는 피 한 점 없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눈동자가 원래대로 돌아왔네. 다행이다. 밥 먹자.”
“얼마나 기다린 거야? 형.”
“별로 안 기다렸어. 밥 하다가 지금 온 거야.”
과연 그럴까.
그가 도살한 짐승의 숫자와 그들에게서 나온 피를 생각하면 결코 쉽게 치울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고.
형 성격에 동생이 천살성의 광기에 휘둘리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일 리도 없었다.
그 모습을 제갈린이 보았다면 아마, 자신은 살아 있지 않았을 테니.
“진정이 된 줄 알았는데, 화경이 되니 좀 힘들군.”
“뭐어, 어쩔 수 없지. 빨리 현경까지 가야겠다. 그러면 좀 낫겠지.”
진천희는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현경이 무슨…… 개 이름인 줄 아는군.”
“아니, 뭐. 너라면 충분히 가능할걸?”
이 형은 대체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신이라도 되는 것마냥 믿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약간 어이가 없어질 때가 있다.
“형은 내가 무섭지 않나? 방금 상태였다면 자칫 죽는 건 형일 수도 있었는데.”
“하하하, 안 죽어.”
“음?”
“너는 안 그래. 나는 알아.”
이상하게도 그 말에 거짓은 없는 것 같아 보였고.
여하륜은 더 이해가 가질 않았다.
‘광신……? 아니. 그것과는 달라.’
마교에서 광신도들이야 늘상 보는 것 아닌가.
이건 오히려 정말로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는 것에 가까웠다.
‘이상하다고밖에는…….’
허나 형이 이상한 게 하루 이틀이 아닐 터.
이런 식으로 따지고 들면 끝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여하륜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되었건 화경의 경지를 조금이라도 더 익혀서 이 충동을 제어할 수 있게 되는 게 중요하겠군.’
이것만큼은 형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허나, 암기력 하나만은 도움이 된다.
뭐라도 좀 외우면 편해지는 건 사실이니까.
그게 불경이든 형이 하고 있는 이상한 암기력 향상법이든.
여하륜에게 있어 하등 상관없는 일.
* * *
그렇게 다시 시간은 지나갔다.
자신과 싸워 나가고, 무학을 갈무리하는 과정은 흡사 칼을 연마하는 것과 비슷했고.
여하륜은 그날도 진천희의 기묘한 수행으로 머리를 혹사시키고는 잠시 앉아서 쉬었다.
젖은 수건으로 눈가를 덮었으나 좀처럼 열기가 식지 않아서 곤란했다.
이 살의는 언제 끝날까.
답이 없는 문제인가.
정말로 현경에 도달하면 머리가 좀 더 나아질까.
“일단 내가 분석하기로는 네가 가진 무학의 경지보다 네 정신력이 높으면 좀 더 쉬워지는 것 같아.”
“확실해? 형?”
“일단은 가설 단계라 할 수 있지. 하지만…… 지난번을 생각해 봤을 때 그래.”
지존천마 소설을 봐서 그렇기도 하고.
물론 확실하게 서술되어 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여하륜의 성장 서술을 읽었을 때 그렇다는 것뿐.
‘천살성이라는 게 결국 현대의 정신병과는 다른, 무협의 체질 같은 것이니까.’
쾌락 살인마의 자질이 있다는 점.
희로애락을 느끼는 메커니즘이 타인과 다르고, 공감 능력이 낮다는 것을 보면.
현대에서 말하는 선천적 사이코패스, 즉 선천적으로 전두엽의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보일 수 있긴 하나.
그렇다고 현대에서 그러한 사이코패스가 사람을 죽일수록 무학이 발달하고, 타고난 오성이 천재적이라 1초에 10명씩 베어 죽이고 검강을 줄기줄기 날려서 경찰차를 벨 수 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또 얘가 좀 공감 능력이 낮다고는 해도 그렇다고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서 사람을 파멸시킨다거나, 생활양식이 충동적인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임무를 나갈 때를 제외하면 지극히 단조로운 삶이라고 할 수 있지.
결국 천살성이든, 스승님의 구음절맥이든 무협의 질환이라고 정의하는 게 정확하다.
천재적인 재능을 주나 그만큼 큰 제약을 주는 질환.
스승님은 다른 구음절맥을 앓은 자들과 마찬가지로 천재성을 갖게 되었으나 단명할 운명이셨고.
여하륜은 천살성으로 인해 사람을 죽이는 것만큼은 타고난 오성을 갖게 되나 강해질수록 광증에 시달리게 된다.
‘스승님은 그나마 현대의 대증 요법으로 치료할 수 있었지.’
만년화리로 스텐트 시술을 한다는 미친 짓을 성공시켜 스승님의 명을 늘릴 수 있었다.
허나, 천살성은 몸의 신체 기관 어디가 잘못된 게 아니다.
굳이 짚어 본다면 뇌……겠으나.
심리학이나 약물 요법, 전기 치료 및 수술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현경에 드는 수밖에 없다.
‘정신력으로 버텨 보라는 말이 가장 나쁘긴 한데…….’
상대가 천살성이라 달리 방법이 없다.
그때 유호가 왔다.
“도련님, 손님께 누군가 찾아왔습니다.”
‘손님’이란 여하륜을 뜻하는 것.
무슨 일일까. 허나, 십중팔구는 마교의 사람일 터였다.
여하륜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아는 건 마교뿐일 테니까.
여하륜은 수건을 벗었다.
방금 전까지 젖어 있던 수건이 눈에 맺힌 열기로 어느새 다 말라 있었다.
죽이고 싶었다. 뭐라도 죽이고 싶었다.
허나…….
여하륜은 침잠한 눈으로 말했다.
“……다녀올게. 형.”
“그래.”
여느 때와 똑같이 참고, 또 참을 뿐.
* * *
역시나 여하륜을 만나러 온 자는 마교의 중간책.
여하륜은 암호로 된 서신을 받아 해독을 하려 했으나, 그보다 곁눈질로 본 진천희의 해독이 더 빨랐다.
“투괴? 투괴를 잡으라고?”
진천희는 그리 말하며 살짝 당황했다.
‘아니, 투괴 이벤트가 지금 이 시점에 시작한다고?’
투괴(偸怪).
싸울 투(鬪)가 아니라 훔칠 투(偸)다.
지존천마에 보면 십 대 고수 중, 삼존 바로 아래가 바로 이제와 이괴다.
이 중 이제(二帝)는 술제와 권제.
그리고 강호에는 두 명의 괴(怪)가 있다.
하나는 흑전의각의 각주이자 생의 본질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파헤치는 혈생노괴.
그리고 또 하나는 무영투괴.
무영투괴는 일인전승 신비문파 유령신투문의 당대 문주인 투괴 공야건.
별호에서부터 알 수 있듯 도둑, 그것도 강호에서 가장 빠른 도둑이다.
얼마나 빠르냐면 현경의 고수조차 못 잡을 정도로 빠르다고.
도주, 변장, 잠입, 침투의 달인이며.
당연하게도 주특기는 도둑질이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는 일은 지극히 드물어서 투괴라는 별명이 붙었고.
하오문과 친하다.
장물 처리를 하오문이 해 주기 때문.
‘현경도 못 잡는 강호 최고의 신투(神偸)를 대체 뭔 수로 잡아?’
거기다 이건 좀…… 원작과 다르다?
원작에서는 여하륜이 투괴를 잡는 게 아니라, 청연 소교주가 투괴를 잡으러 가고.
여하륜은 청연의 보조로 붙는 형태였다.
투괴는 마교의 보물 중 하나, 피독주를 훔쳤는데.
전설에 따르면 이 피독주는 용의 여의주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구슬로, 모든 독을 해독하는 효능이 있다 전해진다.
투괴는 독기 어린 집념으로 그 피독주를 결국 훔쳐 내는 데 성공한다.
물론 투괴라고 굳이 현경의 고수가 있는 마교까지 가서 피독주를 훔쳐 오고 싶지는 않았다.
훔치는 것 자체도 힘든 일이지만, 훔치고 나서의 일도 복잡해지기 때문.
십만대산을 상대로 평생 도망자 생활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허나, 어쩔 수 없다.
‘손녀를 죽게 놔둘 수는 없으니까.’
투괴의 손녀는 만성독에 중독된 상태로, 당가에서도 이 독을 취급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해독제가 존재하지 않는 독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 독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마교의 비고에 있는 전설의 피독주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걸 중독시킨 놈들이 말해 주고 갔으니 속셈이야 뻔했다.
마교의 비고를 습격하고 오라는 뜻이지.
투괴의 손녀를 중독시킨 놈들은 혈선교.
처음에는 마교인 줄 알고 투괴도 헷갈렸으나, 결국에는 혈선교와 마교가 다름을 알게 된다.
‘아마, 내가 개입한 일 때문에 혈선교의 정체가 일찍 까발려져서 더 빨리 눈치챘겠지.’
허나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손녀는 중독되어 있고, 그 손녀를 살리려면 피독주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게 사실이니까.
결국 투괴는 전설의 피독주를 찾기 위해 마교를 습격하고.
마교에서 피독주를 들고 도주까지는 하지 못했기에 마교를 몇 번이나 습격한다.
늘 은밀히, 사상자 없이 일을 치르는 투괴였으나.
손녀의 목숨이 걸리자 손속이 거칠어진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청연 소교주는 이 점을 간파해 피독주를 미끼로 함정을 파고, 투괴는 보기 좋게 걸려들게 된다.
허나 투괴는 청연이 만든 함정을 파훼하는 데 성공하고 피독주를 들고 도주했다.
그렇게 손녀에게 피독주를 사용했으나, 해독을 했음에도 손녀는 결국 사망했었지.
너무 늦게 도착했다며 투괴가 한탄하는 장면이 꽤나 마음이 아팠다.
결국 손녀를 잃은 투괴는 분노하여 혈선교를 습격하고 다니게 되고.
그 와중에 마교와는 원수지간이 되어 마교에도 쫓기게 된다.
결과적으로 투괴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몰려 혈선교가 판 함정에 사망하게 되고.
‘혈선교의 강시로 다시 나타나 여하륜과 조우하게 되지.’
지독한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