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45
제 345화
‘일단 원작과는 많은 부분이 달라지긴 했네.’
우선은 여하륜에게 직접 잡아 오라고 천마가 명령한다는 점은 같다.
허나, 명령서를 보면 여하륜만 나서는 게 아니라 청연 소교주, 흑운 소교주도 나선다.
즉, 세 소교주가 경쟁해서 잡아 오라는 뜻.
정확히는 피독주를 회수해 오는 게 본명령이고 투괴의 생사여탈 여부까지는 적혀 있지 않다.
‘허나, 투괴는 손녀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거야.’
본인은 무인이 아닌 도둑놈일 뿐이라고 좀처럼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 그녀지만 손녀의 일이라면 달라질 수밖에.
“이건…… 여하륜 너한테는 조금 불리한 조건인데?”
여하륜은 진천희보다 한발 늦게 암호를 해독하고는 명령서 내용을 곱씹었다.
“확실히 그렇지. 나는 아직 교에서 기반이 크지 않으니……. 저쪽은 마종육가 출신으로 그쪽 가문이 지원하고 있으니 정보력에서는 내가 훨씬 뒤떨어질 수밖에.”
“도와줄까?”
여하륜은 형의 눈동자가 푸른빛으로 번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찬찬히 보았다.
“형 덕분에 화경이 된 것은 고맙지만…… 분명 위험한 일이 될 터. 나는 그다지…….”
“하하하, 화경의 형을 두고 그런 걱정을 하는 건 너밖에 없을 거다.”
진천희의 말에 여하륜은 입을 다물었다.
“…….”
한일자로 꾹 다물어진 입은 무슨 말을 참고 있는 걸까.
진천희가 덧붙여 말했다.
“이번에 수 싸움에서 이긴다면 마교에서의 네 입지도 좀 더 다져지겠지. 하륜아, 형은 네 시체 치우는 꼴 못 봐.”
“……음.”
소교주가 된 이상 단순히 권력 싸움에서 밀리고 안 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죽는 것이 천마혈로.
여하륜의 눈동자가 아래에서 위로, 형을 올려다본다.
이윽고 결심했는지 입을 열었다.
“내가 자만했군. 알았어. 부탁할게, 형.”
“그래, 짜식. 착하다. 그래야지.”
진천희는 동생의 머리를 마구 쓸어 주었다.
* * *
한편 진천희는 생각했다.
‘투괴의 손녀도 사망하고, 결국 투괴도 사망. 심지어 사후에는 시체까지 알차게 써먹혔지. 혈선교가 얼마나 악랄한지 보여 주는 에피소드라 할 수 있었어. 으음!’
소설 속 악당이 무슨 악한 짓을 하든지 독자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저 주인공이 이놈들을 어떻게 깨부술지 가슴이 두근거렸을 뿐.
허나, 이제는 현실이고 앞으로 일어날 재액. 어떻게든 해야겠지.
‘혈선교를 저지하기 위해 투괴의 손녀를 살리고, 투괴도 아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좋겠는데.’
아군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투괴와 손녀, 둘의 생명은 확보해야 한다.
강시가 된 투괴가 얼마나 강한지는 소설을 봐서 아니까.
‘한동안 여하륜과 오래 동행을 해야겠는걸.’
문제는 스승님이 그걸 탐탁지 않아 하실 게 뻔했고.
그렇다고 말하지 않을 진천희가 아니었다.
“마교에서 여하륜에게 내린 임무를 도우러 간다고? 허허허, 네가 결국 과로로 돌아 버렸구나, 희야.”
“하지만 스승님, 미래를 생각하면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허면 그냥, 놔두자꾸나.”
스승님도 이번에는 단단히 결심이 서신 모양.
죽을 맛이다. 아주.
진천희는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우선 가면을 쓸 거고, 옷도 제대로 바꿔 입겠습니다. 겉으로 봤을 때는 절대 백린의각 쪽 사람인 건 모르게 할 거예요. 흑전의각 소속의 의원 정도로 생각하겠죠.”
이때를 위해 혈생노괴 님께 흑전의각 소속 신분패와 옷도 받아 놨다.
“그걸 걱정하는 게 아니라는 걸 너도 알 텐데?”
알고…… 있다.
“아니, 스승님! 제가 화경이에요! 화경이라고요!”
“차라리 내가 같이 가는 게 좋겠구나.”
“스승님은 너무 눈에 띈다고요!”
“머리색을 말하는 것이라면.”
“……아니…… 그래도 눈에 띌 겁니다.”
과거 스승님이 머리색을 물들이고 밖에서 제자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계셨던 적이 있었다.
허나, 스승님의 미모는 둘째 치더라도 팔 척의 거구는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거기다 소림에서 사람이 온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며칠 전의 일이다. 천하무림의 태산북두라고 알려진 소림사에서 백린의각의 각주를 반드시 만나야겠다고 전언이 도착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소림에서 사람이 출발했을 것이다.
지금 제갈린이 외부로 나간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
스승님의 미간이 살짝 구겨진다.
어째서 소림에서 사람이 오는지는 진천희도 모른다.
무언가 진천희가 모르는 일이 뒤에서 흘러가고 있는 모양이다.
허나, 스승님께서 말하지 않는다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
제자는 그저 스승을 신뢰할 뿐이었다.
제갈린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위험하다 싶으면 도망치렴.”
“제가 작정하고 도망치면 세상에 저를 잡을 이가 많지 않을 겁니다.”
“먹는 것을 조심하고.”
“걱정하지 마세요.”
“잊지 말렴. 강호가 설령 피를 뒤집어쓰고 불길에 녹아 버린다 하더라도 나는 너밖에 없단다. 희야, 네 목숨보다 귀한 건 없다는 걸 명심하렴.”
“알겠습니다.”
“…….”
제갈린은 천장을 보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의 제자는 전례가 없을 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또 성장해서.
젊은 나이에 화경의 고수가 되었고, 절대 물리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적들을 하나둘 물리친 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이리 불안한 것일까.
‘권제께서도 같은 마음이시겠지.’
제갈린이 말했다.
“내가 허락을 하지 않으면 넌 담이라도 타겠지.”
“하……하하하…….”
진천희가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만년한철 족쇄로 사지를 다 감아 줘야 할까.
칼을 안 쥐여 주면 일단 검강을 일으켜서 부수는 건 요원할 터이니.
아니면 제자의 체면은 무시하고 목 아래를 마비시켜 놓는 게 편할 수도 있겠다.
‘허나, 그건 제자의 앞길 역시 막는 일인 것을…….’
그가 스승이고 진천희가 제자인 이상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
이 또한 무학의 가르침이고 기회라는 것을 모를 제갈린이 아니었기에 고민은 깊어 갔다.
“다녀 오거라. 연락은 꼭 하고.”
“감사합니다.”
진천희는 스승님께 깊이 절을 했다.
진천희가 그렇게 나갈 채비를 하는 것을 제갈린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푸른 눈동자가 제자를 한참이나 못 박은 듯 반사하는 것을 유호는 보았다.
“괜찮으십니까?”
“……가두어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
유호는 그런 제갈린의 곁을 지킬 뿐이었다.
“총관의 생각은 어떤가. 내 제자가 다친 곳 없이 돌아올 수 있겠나?”
“뭐어… 필시 어딘가는 다쳐 오겠죠. 그런 놈이니까요. 그래도 뭐.”
유호는 턱을 긁적이더니 이윽고 담담히 답했다.
“돌아올 겁니다. 사지가 찢어져도 알아서 기어 올 놈이니까요.”
“그런가. 가끔은 날 혼자 두고 먼저 갈 것 같아서 이렇게 걱정이 되는데 말이지.”
그 말에 유호는 작게 웃었다.
“죽인다고 죽어 줄 놈인가요. 저 도련놈이…….”
“어째 유총관은 나보다 더 희를 믿는 것 같군그래.”
그 말에 유호가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고, 봐주십시오. 제가 도련놈한테 하루 이틀 부려 먹힙니까?”
“후후후, 그래. 그건 그렇지.”
제갈린은 부채를 흔들려다가 약간 혀를 찼다.
그때 부러뜨린 부채 이후로 손에 맞는 게 없었다.
“희야.”
“네, 스승님?”
“돌아오는 길에 괜찮은 부채가 있다면 사 오려무나.”
그 말에 진천희가 밝게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부채만 보여요. 스승님 손에 꼭 맞는 걸로 준비해 오겠습니다.”
그 말에 제갈린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 * *
한 소녀가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얼굴은 붉어지고 푸르게 물들기를 반복하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으나 숨은 갈수록 가빠져만 갔다.
한 여인이 그런 소녀를 절박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왜냐, 왜 낫지 않는 것이냐. 분명 중독…… 중독은 고쳤을 터인데…….”
“할머니.”
할머니라 불리는 여인은 아무리 봐도 세월을 잊은 듯 아름다운 묘령의 여인이었다.
무영투괴.
강호의 이괴(二怪) 중 하나.
혈생노괴와 똑같이 그녀는 괴(怪)로서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누구도 이해하지 않으며 강호를 독보하며 살아 갔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할머니…… 저 이제…… 괜찮아요. 그러니까. 무리하지 마세요.”
“아니다. 이 할머니가 반드시 낫게 해주마. 내 아가…….”
그녀는 그런 손녀의 손을 붙잡으며 생각했다.
‘천마, 그자가 어디까지 추적해 왔을까. 약은 분명 거짓이 없었을 터인데.’
삼존 중 마존.
천마.
그녀가 무영투괴의 별호를 갖게 되고, 천마가 천마로서 군림하는 그 긴 시간.
강호를 살아오며 얼굴을 맞댄 일도 종종 있었다.
그것은 천마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투괴에게는 최악의 하루이곤 했다.
천마가 얼마나 냉혹한 자인지, 강호를 독보해 오며 투괴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투괴가 천마의 손에 살아 있는 건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기 때문. 그리고 천마의 실질적 이득을 건드린 적은 없었기 때문.
허나, 이제는 그녀의 보물을 훔치게 되었으니 그 대가는 혹독할 것이 자명했다.
그렇다고 해도 투괴는 손녀를 놓을 생각이 없었고.
그걸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할머니…….”
“걱정하지 말거라. 제아무리 현경의 고수라 할지라도 이 할미를 붙잡지는 못하니까.”
딸랑-
그 순간 처마에 매달아 둔 방울이 흔들렸다.
‘마교 놈들 여기까지 온 건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다.
이것이 십만대산을 적으로 삼은 대가인가.
허나, 손녀가 회복될 때까지 그녀는 절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었고.
집 밖으로 나가니 이미 마교의 무인들이 서 있었다.
“투괴 공야건. 본교의 보물을 훔친 죄. 그 목숨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다행이다.
소교주급은 아니고 이 정도면 척후대 정도.
연락을 보냈을 테니 조만간 마교의 본대가 도착하겠으나, 빨리 제압을 하면 도망칠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을 터.
그 순간.
투괴의 모습이 사라진다.
십수 명의 마교인들 눈에 보인 건 그녀의 발.
퍼버버벅!
무시무시한 각법이 무기를 부수며 놈들의 턱을 날렸다.
고작 일 합.
일 합 만에 십수 명의 마교인들이 그대로 땅에 얼굴을 문대야만 했다.
투괴가 말했다.
“너희의 목숨을 뺴앗지는 않겠다. 피독주는 차후 돌려준다고 천마에게 전해라. 나는 굳이 이 일에 피를 흘리고 싶지 않다. 더는 쫓지 않는다면 사문을 이름을 걸고서라도 피독주를 돌려주도록 하겠다.”
그녀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뇌까렸다.
도적에게는 도적의 도(道)가 있는 법.
아직은 그래도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허나, 천마.
그녀는 이미 십만대산을 피로 물들인 자.
그런 그녀가 투괴의 사정을 봐줄 리가 없을 터.
“할……머니.”
문을 열고 손녀가 얼굴을 내민다.
쿨럭-
새카만 피가 장지문 너머로 번져 나왔고.
투괴는 비명이라도 지를 것 같은 표정으로 손녀를 끌어안았다.
“괜찮다. 괜찮아. 이 할미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렴. 금방 다 나을 거야. 곧 다 나을 게다.”
그러고는 손녀를 끌어안고는 어디론가 다시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