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54
제 354화
‘하아…… 내가 자제하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래, 주인공이 남 말 잘 들으면 그게 무협지 주인공이겠냐.’
적어도 눈 가리고 아웅인 척이라도 해 주면 좋으련만.
냅다 파천일공부터 갈길 줄은 몰랐다.
‘혈선교가 없었다면 난 무림 공적이 됐겠지.’
정사마가 용봉지회도 한 판이니 면피할 명분이 있긴 하다.
대신 스승님이 참 귀찮아지실 거고, 지금보다 더 의동생들을 해충 보듯 하시겠지.
제자의 명성을 까먹는 귀찮은 놈들로.
졸지에 연대책임을 지게 된 사마현이랑 천우는 좀 억울할 거다.
‘하지만…… 그 상황을 최소의 시간과 최소의 노력으로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긴 했어.’
진천희는 망설였고, 여하륜은 그냥 나아갔다.
그게 주인공 여하륜의 스타일.
지존천마 그 자체이기도 했다.
무협지 팬으로서 가슴 한구석이 뻐렁치지만, 동시에 뒤처리는 또 현실이다.
‘어차피 남궁운은 곧 요로결석에 걸릴 수밖에 없다.’
진천희가 잔소리를 얼마를 더 하든 이놈은 계속 백린의각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는 몸.
강호인의 풍류가 뭔지 알 것도 같지만, 그게 목숨보다 더 소중할 수 있는지도…… 알겠지만.
남궁운은 술을 끊을 바에는 자결을 할 것임을 이제는 진천희도 인정했다.
‘이걸 현대에서는 알코올중독이라고 부르지 않나?’
의사로서의 자아와 무협지 팬으로서의 자아가 서로 멱살잡이를 했다.
‘아니다, 이건 풍류. 무림인이 술을 좋아하는 것은 미덕…….’
‘아, 아니…… 그렇다고 해도 무림인이라고 말년에 간경화가 안 오는 것도 아니고. 당장 남궁운만 해도 요로결석이…….’
‘하지만…… 애초에 칼 들고 서로 배때기 쑤시는 것부터가 건강에 안 좋지 않……나?’
의사의 자아가 무협의 근본까지 건드리기 시작했다.
그만하자. 그만하자.
어차피 남궁운은 평생 백린의각에 오게 생겼으니.
그걸 가주님도 이제 아실 때가 되었다.
남궁운이 진정으로 나아지기 위해서는 금주(禁酒)를 해야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거기까지 생각하던 진천희는 버럭 소리쳤다.
“다들! 환자 앞에서 무슨 짓입니까!”
신기하게도.
그 목소리는 다른 이들의 고막을 때렸지만, 환자인 투괴의 손녀 공유빙에게는 조금의 영향도 주지 않았다.
육합전성(六合傳聲)을 응용한 것.
본래는 사방에서 소리가 울려 퍼져 말하는 이의 위치를 숨기는 전음의 상위 기술이지만,
칠마금이라는 음공을 익힌 진천희는 이런 식의 응용도 가능했다.
완벽한 음공 통제를 이루는 것을 보고 남궁세가 무인들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거기까지 갔단 말인가.’
무공과 음공은 비슷하면서도 뿌리부터 다를 터.
‘그것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자기 안에서 정립을 해나가지 않으면 이러한 기예는 못 할 터.’
당황하는 무인들 속에서 남궁운이 태연하게 말했다.
“흠흠. 진 아우의 음공이 아주 훌륭하군그래. 그렇지, 환자 앞에서 못할 짓이지. 자, 숙부님들 나가시지요.”
“운이 이놈! 너도 부가주를 도와서…… 읍읍.”
“자자, 나가시죠, 숙부님들. 저 녀석이 괜히 광(狂)이 아닙니다. 더 일을 크게 만들지 말고 보냅시다.”
남궁운이 쌍룡이검 중 한 명의 입을 막고서는 끌고 나가자, 남은 노인 한 명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다.
말은 또 잘 듣는 것을 보니, 남궁운과 나름대로 친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진천희는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다. 나가세요.”
이윽고.
남궁세가의 사람들은 하인까지 전부 나갔다.
방에는 투괴와 여하륜만이 남았다.
진천희는 여하륜까지 내보낼까 하다가, 내버려 두었다.
아무리 남궁세가와 백린의각이 한 배를 탄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정체가 반쯤 까발려진 마교의 리틀 천마를 밖에 두었다가 무슨 사달이 날지는 아무도 모를 일.
그리고.
진천희는 집중을 시작했다.
‘역시…….’
얼마나 같은 자세로 있었을까.
그는 이내 손녀 공유빙의 병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아까부터 손목을 잡고, 진기를 불어넣으며 병을 탐색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알 수 있었던 것.
‘급성신부전증이 맞았어. 이럴 것 같았지만…….’
급성신부전증(acute renal failure).
급성신부전증은 신장 기능에 이상이 생겨서 생기는 질병이다.
신장은 본래 신체의 노폐물을 처리해 주는 장기인데, 이것의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혈액 내에 고질소혈증이 일어나고, 체액 및 전해질이 불균형해지고 만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장이 노폐물을 걸러 소변으로 배출하기 때문.
정상인이라면 하루 동안 신장에서 여과되는 혈액은 무려 180리터.
어마어마한 양이라 할 수 있었고.
때문에 신장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순간 소변의 양이 줄어들고.
소변으로 나가야 할 노폐물들이 배출되지 않아 요독증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여러 가지 합병증이 시작된다.
때문에 빠르게 치료를 받지 않으면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사망률은 무려 75%.’
조기에 치료한다면 생존율은 올라가나, 학계에 보고되기로 통계상 약 5%의 환자는 영구적인 신장 기능 장애를 앓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속된 말로 신장이 맛이 간다는 뜻이다.
신장 기능이 저하되는 게 아니라 아예 기능을 상실해 버리는 것을 뜻한다.
살아가는 내내 병원 신세를 져야만 한다.
신장에서 노폐물을 거르지 못하기 때문에, 대신 걸러 줘야 한다.
현대라면 투석 치료가 있다.
허나 이 중세 무림 월드에서, 급성신부전증은 죽어야 하는 질병.
지구의 기술이 아니면 살릴 방도가 없었고.
그런 지식으로도 영구적인 기능 장애로 끝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게 급성신부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위험한 질병인 이 급성신부전증이 일어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존재하는데, 복합적인 이유로 인한 경우가 많다.
때문에 원인과 이유를 제대로 찾는 것이 이 병을 치료하는 지름길.
다만.
지금 진천희의 눈앞에 있는 소녀의 경우는 원인을 이미 진천희가 예측하고 있었다.
‘중독…… 때문이겠지.’
무협지를 읽으며 가끔 생각한다.
독에 걸린 강호인이 해독제를 먹고 몸이 낫는 장면을 보면서 이거 해독은 했다고 해도 ‘간과 신장에는 부담이 없나?’ 하는 생각.
무공이 고강한 자들은 일반인과 신진 대사율이 다르다.
마공과 일반 무공, 사파의 무공. 그리고 오행이나 음양의 특성에 따라 다르겠으나.
대체로 더 강하고 빠르며 효율적이다.
그래서 케이스에 따라서는 오히려 더 빠르게 손상될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그러다 보니 1년, 길게는 10년 동안 중독되어 있는 무인들도 가끔 나오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다.
하물며 투괴의 손녀는 일반 양민이다.
혈선교에서 만든 해독제가 없는 만성 독약에 의해서 이미 신장이 크게 훼손된 것.
피독주의 신비하고 경이로운 공능으로 독을 해독했다고 하지만, 이미 손상당한 신장이 제대로 기능할 리가 없다.
‘이건 약으로도 해결할 수 없고, 뜸이나 침으로도 해결을 할 수가 없는 상태지.’
약과 독 모두 간과 신장이 분해하고 여과한다.
그런데 그 신장이 맛이 가 있는 상태에서 아무 약이나 먹었다가는 환자의 생명이 위험하다.
이미 된장이 한가득 담겨 있는 거름망에 된장 덩어리를 더 붓는다고 생각해 보자.
된장이 흘러넘칠 것이다.
최악의 경우 거름망이 찢어질 수도 있다.
이미 상해서 찢어져 버린 신장은, 더 이상 독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도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구에서도 신장 관련 병을 앓은 환자가 의사와 상의 없이 농축액즙을 먹고는 병원에 급히 오곤 했다.
‘영양제도 상의하고 먹어야 하는 판에 약선을 찾아간다고 해도 답이 없지.’
그나마 여기가 무림 월드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생명 연장에는 최고의 에너지인 진기도인의 힘으로 공유빙의 생명이 연장되고 있으나, 신장이 치료된 것은 아니다.
구멍 난 항아리에 계속해서 물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것만은 선대 개방주나 왕각연 때와 똑같다.
치료는 불가능해도 어쨌든 내공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연명하고 있는 상황.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면 답이 없다.
그래서 진천희는 투괴를 만나기 전에 기도를 했었다.
적어도…… 신장을 살릴 수 있기를. 완전히 신장의 기능이 죽은 것이 아니기를.
‘그나마…… 진기 덕분인지 합병증은 없으니 다행이야. 전해질의 불균형 때문에 면역력이 크게 저하돼서 감염이 일어나야 정상일 텐데…….’
강호는 야만의 세계이다.
당장 의원들 중에도 진천희의 행동을 결벽증이라 손가락질하는 의원이 있는 판에, 일반적으로는 소독약도, 비누도, 수도관도 없다.
그렇기에 투괴에게 안겨서 이동 중임에도 감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진기의 가호가 있었다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역시 내공이 최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진천희는 조심조심 신장으로 진기를 불어넣어, 그 상태를 확인해 나갔다.
‘제발…… 제발…….’
조금이라도.
그 기능이 살아 있기를.
그러면 어떻게든…… 어떻게든 해 줄 테니까.
진천희의 이마에 땀이 맺힌다. 그러기를 잠시.
‘있다.’
진천희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떠오른다.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어.’
인체는 신비하다.
신장도 간도, 어느 정도 선까지는 완전히 기능이 상실되지 않는다.
한번 상실하면 되살릴 수 없지만, 기이하게도 그 기능이 살아 있다면 치료는 가능하다.
‘여기서부터는 속도전인가.’
“문 밖에 있는 남궁운 환자님, 당신!”
“진 아우, 나 불렀나?”
벌컥!
문을 열고 남궁운이 들어온다.
안 가고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던 모양.
“백린의각 무호 분타에 연락해서 가져오라고 한 의료 장비들은 어떻게 되었죠?”
“오고 있을 것이네.”
“좋습니다. 이쪽으로 바로 가지고 오라고 전해 주세요. 저는 준비를 해 둘 테니까.”
“여기서 치료할 건가?”
“예.”
“으으음. 알겠네. 대신 술 마셨던 건은 아버님께 비밀로 해 주게나.”
‘이 인간이 진짜…….’
진천희가 도끼눈을 뜬다.
그 눈빛에 ‘아이쿠, 뜨거워라!’ 하면서 남궁운은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갔다.
잠깐 한숨을 내쉬는 사이. 다시 문이 열리면서 남궁운이 들어왔다.
아니, 나가자마자 왜 다시 들어와?
“진 아우가 부른 이들이 도착했다고 하네.”
“바로 이곳으로 오라고 해 주세요.”
진천희는 작업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