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55
제 355화
무호항의 포구 바로 근처에 남궁세가의 장원이 있다.
정확히는 남궁세가에서 운영하는 상단의 장원이지만, 결국 남궁세가의 산하 세력이니 구분은 크게 의미가 없는 것이리라.
그런 남궁세가의 장원과 다르게, 백린의각의 무호 분타는 무호항의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때문에 진천희는 굳이 남궁세가의 장원에서 투괴 공야건의 손녀 공유빙의 진찰을 한 것이다.
이곳에서 무호 분타까지의 거리가 제법 멀기 때문.
물론 현대 21세기였다면 의료 장비가 있는 병원으로 직행해야 했겠지만.
진천희가 고안한 공유빙의 치료에 거창한 의료 장비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조금 따끔할 겁니다.”
진천희의 굵은 바늘이 투괴 공야건의 매끈하고 근육이 잘 잡힌 팔을 찌르고 들어간다.
동시에 피가 왈칵 뿜어져 나오고, 그 피는 백린의각 특제 수혈팩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진천희가 시선을 돌려 옆을 보았다.
이미 그쪽에는 양팔에 가는 대롱을 꽂고 있는 소녀가 있다.
“자…… 이제…….”
진천희가 한 발자국 물러선다.
곧이어, 공유빙의 피가 투괴의 몸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투괴의 피가 공유빙에게로 흘러간다.
“이걸로…… 우리 아가가 살 수 있단 말인가?”
“물론이죠. 손녀의 병명은 급성신부전증이라고 하는 것이거든요.”
“처음 들어 보는 병이로군…….”
“보통은 치료 방법이 없어서 죽으니까요. 간단하게 설명 드리자면, 여기쯤에 있는 콩팥이 상해서 생기는 병입니다. 이걸 저희 의원들은 신장이라고 부르거든요.”
진천희는 급성신부전증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신장이 노폐물을 걸러서 소변으로 배출하는 장기라는 것.
그러니 신장이 제 기능을 유지해야 피를 맑게 할 수 있으며.
상할 경우 요독소가 쌓여서 합병증이 일어나고 결국 죽게 된다는 그런 설명들.
그 말을 들은 투괴의 표정이 침중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콩팥의 기능이 아직 삼 할에서 사 할 정도는 살아 있다는 점이네요. 만약 구 할 이상의 기능이 상실되었다면…… 영구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했을 겁니다.”
현대라면 신장 투석기를 사용할 수 있었을 터.
하지만 이 시대에는 불가능하다.
‘불사신공을 구하면 맛이 가 버린 신장을 재생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지존천마에서도 언급만 되었고, 누가 익히고 있는지 나오지 않았으니까.’
무림 월드식으로 가도 힘들다.
‘그러고 보니…… 스승님께서 동천군이 팔다리가 잘려도 붙어서 재생했다고 하지 않으셨나? 혹시 혈선교에 줄기 세포의 히든 시크릿 비밀이!? 나중에 혈선교도 어떻게든 털어 내야…….’
진천희가 속으로 미친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그가 고안한 것들이 제대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웅웅웅.
우선 첫 번째.
가벼운 저주를 거는 도구가 진법에 의해서 가동된다.
그것은 투괴에게서 뽑혀 나온 피에 힘을 투사하고 있는 중이다.
진천희가 생각을 멈추고, 그 도구를 보았다.
겉으로 보면 그냥 정사각형의 손바닥만 한 상자로 보이는 물건이지만, 안에서는 피가 구불구불 지나간다.
이걸 만든 이유는 바로 수혈 때문.
사람의 생피를 다른 사람에게 수혈할 경우, 면역 체계가 서로를 공격할 수 있다.
혈액형이 서로 맞는다고 할지라도, 서로 다른 사람의 피가 섞이면 면역 거부 반응이 일어날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게 되면 혈액이 응고되어 덩어리가 되고 혈관을 막아 버리는 등의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즉, 수혈이 독이 되는 것.
때문에 수혈용 혈액은 방사선 조사기라고 부르는 장치를 통해서 혈액 내 백혈구를 제거하여 사용하는 것이 현대의 수혈팩이었다.
과거 궁귀 왕채백과 그의 딸 왕각연의 경우에는 내가진기의 힘이 작용한 것도 있지만, 하지 않으면 환자가 죽기에 하늘에 맡겨야 했었다.
그때는 운이 좋았지만 다음에도 그럴까?
물론 강호인들은 내공이 있어서 그런지 지금까지 크게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양민들은?
매번 진법을 이용해 기공 치료를 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진천희는 거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 이후로 이 면역 거부 반응에 대한 대책을 찾고 있었고, 결국 찾아냈다.
바로 저주를 이용한 것이다.
방사선 조사기와 비슷한 효과를, 저주를 이용해서 실현했다.
현대에서 면역 거부 반응에 대한 대책은 단순하다.
백혈구를 제거하고 혈장만을 수혈하는 것이다.
하지만 원심분리기도, 수혈용 혈액 필터도 없는 이 세계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혈장만을 분리해 낼 것인가?
신장에서 적혈구 생산 자극 호르몬 또한 내보내고 있으니, 환자는 장기 빈혈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므로 혈장 수혈이지만 적혈구는 남겨 두기로 했다.
수혈하는 동안 핏덩어리가 응고될까 두려워 혈소판도 죽이기로 했다.
저주를 통해 백혈구와 혈소판을 죽이고, 적혈구와 혈장만을 남길 수 있도록.
진천희가 이 세포들의 해부학적 구조와 원리에 대해 몰랐다면, 그리고 수없이 많은 반복 테스트를 거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
그 순간, 진천희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거…… 생각 이상으로 힘든데?’
섬세하게 주력을 조절해야 하다 보니 심력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고도의 집중을 통해 생긴 두통과 탈력감.
정신병이 올 것 같은 기묘한 현기증마저 밀려왔고.
“형?”
여하륜이 급히 진천희를 부축하려 했다.
“괜찮아.”
진천희는 그리 말하고는 작업을 이어 나갔다.
‘좋아. 연구각에서 테스트해 본 그대로 아주 잘 일해 주고 있어! 이걸로 인간 혈장 투석 완성!’
진천희는 속으로 흡족해하면서, 입으로는 설명을 계속했다.
“지금 이 관으로 손녀분의 오염된 피를 투괴 님의 몸으로 보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그 피가 투괴 님의 몸 안에서 여과되어서 맑아지겠죠? 그걸, 다시 손녀의 몸으로 보내는 거죠.”
생체를 이용한 원시적인 방식의 신장 투석이다.
“아아…… 그게, 그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물론 그냥은 안 되고 특별한 기구와 주술적인 소양이 있어야 합니다만…… 지금은 잘되고 있네요.”
그렇다.
투석 기계는 현대 과학의 산물.
지금 이 세계의 기술로는 여과 장치를 만들 수가 없었다.
라이프스트로우처럼 곧바로 만들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혈장 치료.
혈장 치료는 다른 사람의 피를 수혈하는 치료법인데, 코로나가 발발하면서 또 나름대로 유명해졌다.
코로나에 걸렸다가 완치한 사람의 피를 뽑아서 수혈팩을 만들고, 그것을 코로나 환자에게 수혈하는 것이다.
그 피 안에 면역력이 일부 들어 있어서, 나름대로 효과를 보기는 본다는 원리.
물론 발생 초기에 제대로 된 약이 없어서 임시방편으로 나왔던 치료법이긴 했다.
거기서 착안한 것이 바로 지금의 치료 방법이다.
투괴의 몸을 여과기로 쓴다!
수혈의 면역 반응은 저주를 사용한다!
이걸로 인간 혈장 투석 완성!
‘크크큭, 미친 짓이지. 내가 생각해도 미친 짓이지만…….’
물론 현대 21세기에는 이런 치료를 하지 않는다.
투석기가 있으니까.
이런 무식한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여기는 무협 월드.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도 써야 하는 세계.
결국 진천희는 이렇게 해내고야 말았다.
실제로 효과도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투괴의 손녀 얼굴에 혈색이 빠르게 돌아왔고, 몸의 기능들이 천천히 회복되는 중이었다.
‘독에 오래 노출된 환자를 위한 치료법도 논문으로 적어야겠어.’
퍼렁별 지구에 있었을 때.
정형외과 친구 놈이 이렇게 말했다.
‘야, 나는 한 번도 완전 똑같은 모양으로 뼈가 부러진 걸 본 적이 없어.’라고.
무림 랜드에 온 진천희는 이제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야, 나도 한 번도 완전 똑같은 사고로 온 환자가 없어.’라고.
도산검림 속이라 그런 건지, 의사로서는 상상도 못 할 별의별 일들이 계속해서 생기고 있었고.
진천희 자신도…… 자연스럽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임기응변에 능숙해졌단 뜻이었다.
‘하, 그래도 완농에서 배운 저주를 가지고 꾸준히 연구를 해 놔서 망정이지.’
강호에는 수많은 독이 있다.
단순히 피부를 부패시키거나 장기를 녹이는 것뿐만이 아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을 괴롭히고, 해독제를 먹인다고 해도 다른 장기가 이미 크게 손상되어 돌이킬 수 없게 만드는 독도 있다.
무인이라면 버티겠으나, 양민이 당한다면 버틸 수 없는 독들.
‘준비를 많이 해야겠네.’
강호에 혈풍이 불 때마다 사람들이 의각에 실려 온다.
아직은 진천희의 지식으로 주먹구구식으로나마 치료할 수 있었다.
허나, 얼마나 더 해낼 수 있을까.
겁이 나면서도 손을 움직일 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해야만 한다.
그가 손을 놓아 버린다면, 환자는 반드시 죽을 테니까.
설령 치료를 했는데도 환자의 몸이 버티질 못한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 걸 해야만 했다.
결국 삶이라는 게 그렇다.
살리는 건 그토록 어려운데 죽는 건 어찌 그리 쉬운지.
흡사 늪 밖으로 끌고 나가는 과정과도 같다.
이 늪이 어디까지인지, 어디가 밖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체력이 닿는 대로 묵묵히 걸을 뿐.
그 과정에서 인류의 지혜가 거기까지 닿지 못하든, 환자의 상처가 그 지식이 있어도 고칠 수 없을 만큼 깊든.
어찌저찌 해 보는 수밖에.
그렇게 인류는 계속해서 나아가고, 실패하고, 다시 나아가기를 반복했다.
그게 바로 논문이며, 통계였고.
진천희 한 사람이 아닌 무수히 많은 의사들과 환자들이 만들어 낸 기록 같은 것이었다.
‘마치 나무 같네…….’
현대의 지구는 그 나무가 있는 게 매우 당연해서.
설령 이해는 못 할지라도, 원한다면 누구라도 그 나무의 형태를 볼 수 있었고.
수많은 검증과 뼈를 깎는 연구 끝에 이파리 하나, 잔가지 하나 더 보탤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이곳에는 그 나무가 없다.
인류가 키워 낸 거목이.
비인부전의 세계다 보니 의술도 세가 내에서 은밀히 전해질 뿐.
현대와 같은 정보 교류와 교차 방식이 없다.
‘물론 그 사고 자체를 부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어.’
여기는 무림이고 진천희 자신은 결국 이방인일 뿐이니까.
현대의 방식대로 했다가는 결국 이용만 당하고 칼침 맞기 딱 좋다는 것을 안다.
허나 손에 닿는 곳까지 지식을 쌓고, 체계를 잡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내가 없어도 누군가에게는 계속 전해질 테니까.’
진천희 자신도 강호에 은원이 있으니, 언제든 죽을 각오야 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진천희는 손녀의 상태를 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