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56
제 356화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소녀 공유빙의 안색이 점점 좋아지는 것이 눈에 띌 정도로 바뀌고 있었다.
긍정적인 변화에 진천희의 피로한 얼굴로 미소가 떠오른다.
‘됐다!’
투괴 공야건은 분명 절세의 고수이며, 그 강대한 무공으로 노화마저 일어나지 않아서 외모만 보면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자.
실제로 그 육체의 건강함은 한창 나이대의 스무 살 젊은이들을 아득히 능가할 정도였다.
실제로 21세기 한국에서도 나이가 오십 세가 넘었음에도 젊은 외모를 과시하는 이들이 종종 화제가 되고는 한다.
무공과 기라고 하는 만능 에너지가 지배하는 무림 랜드에서 이런 일은 상식에 가까운 것.
때문에 공야건의 건강함을 믿고 진행한 일이 결국 성공한 것이다.
공야건의 건강하다 못해 초인적인 신장이 엄청난 속도로 피를 정화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시간만 지나면 돼. 당장 급한 요독 증세를 투석으로 완화시키고, 그 이후에는 이 세계의 방식으로 식이 조절을 하든, 기공 치료를 하든, 신장의 기능을 회복시키면 투석을 정기적으로 할 필요도 없어.’
이 세계의 독에 당한 상태이고, 무림인인 공야건의 혈액을 사용한 것이니 완전히 장담할 수는 없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몇 차례 더 투석을 해야 할 것 같다.
허나, 급한 고비는 넘었다.
그것만으로 진천희는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좋아, 좋아. 그나저나 투괴께서는 양생공 위주로 한동안 운기하셔야겠네.’
해냈다는 기쁨 속에서도 진천희는 여전히 다음을 생각했다.
투괴는 혼자서 시시각각 표정이 바뀌는 진천희가 이상한지 한참 얼굴을 바라보았다.
‘과연…… 강호의 소문이 허언이 아니었군.’
그녀는 그리 생각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 * *
꿈을 꾸었다.
‘할미는 신투(神偸)란다.’
부모님의 장례가 끝난 후.
투괴 공야건, 그러니까 할머니가 가장 먼저 건넨 말이었다.
깜빡, 깜빡.
손녀 공유빙은 그냥 멍하니 할머니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사실 듣고도 제대로 들은 건가 한참을 속으로 반문했다.
뭔가 잘못 들었겠거니.
‘할미는 천하제일 신투인 무영투괴라 할 수 있지.’
“어…….”
할머니가 무공 고수인 건 알고 있다.
일단 엄마보다도 젊은 얼굴이고, 경공도 엄청 빨라서 할머니가 언제 들어왔다가 언제 사라지는지 아무도 모른다.
엄마는 할머니가 하오문에서 유명한 표사라고 했다.
실제로 표국도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이고 돈도 벌어 오셨다.
대부분의 일류 고수들 집이 그렇듯 돈만큼은 부족함 없이 살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그냥 고수도 아니고 전설의 신투라니.
할머니한테 물었다.
혹시 사람 살리는 신물(神物) 같은 거 있냐고.
할머니의 표정이 무척이나 어두워졌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술법이야 강시술이 있으나, 그것은 제대로 살리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그냥 울었다.
전염병만큼은 제아무리 무공 고수라도 막을 수 없는 거니까.
할머니도 울었다.
진작 말할 걸 그랬다고, 자기가 무식하고 배운 게 도둑질뿐이라서 실수했다고 했다.
엄마랑 아빠 위패 앞에서 할머니는 미안하다고, 자기가 멍청했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강호의 은원이고 뭐고 진즉에 말할 걸 그랬다며 아이처럼 울었다.
그러고는 바닥에 머리를 몇 번이나 쾅쾅 부딪쳤다.
피가 흐르는 이마로 몇 번이나 그렇게 계속 부딪치고 또 부딪치더니.
손녀를 어찌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무공을 전수하면 은원도 함께할 것이고, 전수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그거대로 한이 될 것 같다고 했고.
동시에 손녀는 솔직히 무골이 아니라서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고도 하셨다.
자기는 타고나길 체질이 무골이었고, 오성 역시 천재였기에 지금의 성취가 가능하였으나.
손녀는 이대로 큰다고 한들 대성하기 어려울 것이고.
대부분의 무인들처럼 어설프게 성장할 것이라고.
그리된다면 무공과 함께 받은 투괴의 은원 역시 견딜 수 없을 거라고 했고.
그렇게 곰처럼 엉엉 울기만 했다.
‘할머니도 우시는구나.’
공유빙에게 있어 할머니는 다가가기 힘든 존재였다.
다른 할머니들처럼 늘 아랫목에 계시면서 찬장에서 당과를 꺼내 주는 일 같은 건 없었다.
어머니보다도 젊은 모습에 수려한 외모 때문인지 오해를 많이 사곤 했고.
할머니도 그냥 오해한 채로 놔 두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가 아니라 이모, 가끔은 나이 차 많이 나는 언니로도 착각하곤 했다.
애초에 대화를 많이 나눈 적이 없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어떻게든 키우마. 널 어떻게든 키우마. 무공을 가르친다고 해도 나 같은 도적놈으로 키우지는 않을 테니 어떻게든…….’
허나, 할머니는 몰랐다.
할머니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할머니 자신이 가르치는 데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평범한 근골이면 좋은 스승을 만나도 될까 말까인데, 할머니는 가르치는 데에 한해서는 최악의 스승이었다.
그래도 공유빙은 할머니가 좋았다.
할머니 손이 좋았다.
옛날의 서슬 퍼런 모습은 어디 가신 건지, 가끔 그녀를 끌어안고 무너지듯 엉엉 우셨지만.
그래도.
할머니가 좋았다.
* * *
“할머니…….”
오랜만에 옛날 꿈을 꾸고는 그렇게 소녀는 눈을 떴다.
깜박깜박.
낯선 천장은 화려한 조각으로 가득했다.
어린 나이지만, 이런 천장이 보통 비싼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 걸까 하고 잠깐 생각한다.
옆으로 시선을 움직였더니 자신의 팔에 기다란 실 같은 관이 꽂혀 있는 게 보였다.
관은 두 개. 그리고 그 관은 적당한 높이의 장대에 내걸린 가죽 주머니 같은 것에 연결되어 있다.
주변을 더 둘러보니, 화려한 목각이 되어 있는 침대에 자신이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손을 누군가가 꼬옥 잡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따스한 손.
그 손길이 있는 곳으로 눈을 돌리자, 그곳에는 할머니가 있었다.
투괴 공야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열 명의 사람 중 한 명.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은 그 이후로, 유일하게 남은 그녀의 가족.
할머니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일 년에 한 달, 혹은 두세 달 정도 머물다가 어디론가 가고는 했다.
언제 간다는 소리도, 언제 돌아온다는 소리도 없었고.
어렸을 적에는 그런 할머니와 같이 있고 싶어서 가지 말라고 떼를 쓰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오히려 은근히 벽을 쌓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든 손녀에게 은원이 닿지 않도록 나름대로 꾀를 내신 것 같았고.
머리 굵어지고 나서 생각해 보니.
할머니는 신투(神偸)로 추앙받는 사람답지 않게 순진한 데가 있었다.
그녀는 그런 할머니가 너무 좋았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할머니가 밉기도 했다.
엄마와 아빠가 돌아가실 적에 할머니는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 분이 돌아가신 이후 할머니와 단둘이 살면서도, 할머니가 투괴라는 말을 처음에는 바로 믿지 못했다.
그래도 할머니가 없었다면, 너무 슬퍼서 울다가 눈물에 녹아 버리지 않았을까?
‘할머니도 내가 없었으면 그대로 녹아 버리셨을 거야. 할머니도 꽤나 울보니까.’
그렇게 오래 살아 놓고서는.
강호에서 괴(怪)라는 별호까지 받아 놓고서는.
무림 공적도 몇 번이나 해 보셨으면서.
……할머니는 울보다.
지금도 가끔은 밤이면 엄마 이름을 부르면서 미안하다고 어깨를 들썩이거나, 엄마가 좋아하는 색의 노리개와 손녀인 자신이 좋아하는 색의 노리개.
그렇게 두 개를 사 놓고는 하나는 자기가 갖고 싶어서 산 거라고 박박 우기곤 했다.
그래 놓고 뒷간에 간다며 방을 나가 놓고는 정작 부엌에 들어가 오랫동안 나오질 않았다.
그러고 나면 퉁퉁 부은 눈으로 맛있는 걸 해 주시곤 했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비밀이지만.’
공유빙은 울보 할머니의 손을 꼭 쥐었다.
아마 자신이 회복되었다는 걸 알면 또 우시겠지.
엄마 생각을 또 할 거다.
그리고, 공유빙 자신도 아마 엄마 생각을 하면서.
‘……또 울겠지.’
어떤 상처는 좀처럼 낫는 법이 없어서.
그저 바람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정도로 쓰릴 때가 있다.
그게 아마 엄마겠지.
‘할머니랑 나랑은 전우니까.’
우리 둘 중에서 하나라도 죽는다면 이제 엄마랑 아빠를 기억할 사람이 반으로 준다.
할머니는 끝까지 아빠를 딸 훔쳐간 도둑놈이라며 별로 안 좋아했지만.
당시 전쟁 고아였던 아빠는 데릴사위로 들어왔고, 성도 적당히 지었다고 한다.
할머니 마음에는 집에서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집의 아들과 결혼했으면 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아빠는 허허롭게 웃으면서 할머니의 투덜거림을 끝까지 듣곤 했는데.
할머니도 맘에 안 든다고 말은 하면서도 아빠가 좋아할 만한 옷이나 먹을 걸 늘 챙겨 주곤 했다.
속으로는 챙겨 주면서도 겉으로는 딸 도둑놈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지.
그 심리를 손녀인 자신은 이해할 수 없지만.
‘혼인을 허락한 건 분명 엄마를 너무 아꼈기 때문일 거야.’
엄마가 상사병으로 시름시름 앓았을 정도로 좋아했다니까.
그래서 딸 훔쳐갔다고 속상해하신 거겠지.
진짜 도둑, 그것도 신투(神偸)인 할머니가 그 소리를 했다고 생각하니 조금 재미있어서.
잠든 할머니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할머니’는 아니다.
‘내가 자라면, 내가 늙으면. 할머니는 그때도 젊은 얼굴일까.’
어쩌면 아주 오래오래 시간이 지나면 아예 할머니를 자신의 딸로 착각하는 사람도 생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말로는 자신은 무(武)에 대한 깨달음으로 젊어진 게 아니라고 했다.
아주아주 어려운 어딘가에 깊이깊이 숨겨진 비고에서 불로불사의 약을 훔쳤는데.
그걸 바로 홀랑 마셨다고 했다.
남한테 자랑할 것도, 장물로 내놓을 거도 없이.
그래서 사람들은 할머니를 무영투괴라고 부른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게 가장 기억에 남는 도둑질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영원히 이런 모습이겠지.’
공유빙은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영원히 엄마도 기억하고, 나도 기억하겠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할머니와 같은 업적을 쌓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스승 자질이 전혀 없는 할머니 밑에서 뼈를 깎는 고통으로 무공을 익힌다고 해도, 그걸 성공한다고 해도 반로환동 같은 건 무리 같았다.
‘나까지 죽으면 할머니 노리개 두 개나 달고 다니셔야 하는데…….’
그건 참 쓸쓸할 거라고.
공유빙은 생각했다.
그때 자고 있던 할머니가 천천히 눈을 떴다.
이윽고 할머니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몸은…… 어떠니?”
“괜찮아요.”
“다행이다. 다행이야…….”
할머니는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고는 습관적으로 노리개를 만지작거리셨다.
엄마가 좋아하는 색.
‘거 봐, 엄마 생각하지.’
그리고 동시에 공유빙도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