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65
제 365화
스승님께서는 진천희에게 무언가를 스윽 내미셨다.
“이게 뭐죠?”
펼쳐 보니 청소부터 온갖 잡무들이 써 있었다.
“앞으로 네가 해야 할 벌이다.”
“으윽.”
“사실 고민이 되었단다. 너는 쥐어 팬다고 들을 놈이 아니고, 심지어 이것은 외공을 쌓을 기회라면서 즐기질 않나. 그렇다고 가혹한 수련을 시킨다고 해도 어떻게든 해내고. 폐관 수련을 시키고 싶어도…….”
“……하하하…… 탈출한 전적이 있었죠.”
연못을 통해서 빠져나와 만년화리를 잡은 전적이 있지 않나.
그 내단은 여전히 스승님의 심장을 지켜 주고 있다.
“벌이란 결국 하기 싫은 것을 시켜야 하니 결국 잡무밖에 안 남더구나. 참, 유호는 돕지 않을 거란다.”
탁-
유호가 진천희 앞에 일부러 소리 내어 찻잔을 내려놓았다.
“……으, 알겠습니다.”
“그래도 사지가 무사해서 이 정도 선에서 그쳤지,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또다시 목 아래로 아무런 감각도 못 느낄 줄 알거라.”
지옥의 점혈 시간이 떠올랐다.
전신 마비 환자처럼 목 아래로 움직일 수 없었던 지옥 같던 나날.
그나마도 부상 때문에 하루의 대부분을 자면서 보내서 견딜 수 있었지 그것을 맨정신으로 버틴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스승님도 진천희도 사제가 둘 다 의원이다 보니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이 많다.
“사지 온전하게 돌아와서 다행입니다. 스승님.”
“그래. 너한테도 다행이지.”
스승님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진천희가 앞에 내려놓은 목함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것이 바로 천마가 준 월목함과 월잠사구나.”
“네. 이것으로 부채를 만들려고요.”
“흐음. 월목에 대해서는 소실된 지 오래다 보니 나도 잘은 모른단다. 허나, 보통의 방법으로 나무를 자르는 게 힘들다고는 알고 있지.”
그 말에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함을 받으며 극양기과 극음기를 번갈아 가면서 사용해 잘라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것을 제대로 자를 수 있는 장인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더군요.”
“천마는 너를 시험하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그 말에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극양기와 극음기.
오행신공의 화생기와 수한기로 대체가 가능했다.
그러나 그것을 번갈아 가며 검기 내지는 검강으로 사용하려면 고도의 집중력과 내공에 대한 무학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과거 장인들이 어떤 식으로 잘라냈는지 모르나.
그 방법조차도 소실되었으니 무식하게 무인의 방법대로 하는 수밖에.
스승님이 말을 이어 나갔다.
“화경끼리 격차가 큰 것은 천마 본인이 가장 잘 알 터. 네가 무엇으로 벽을 넘었는지 그녀는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게지. 단순히 검강을 사용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닐 터. 만약 오행신공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하다면 나무는 잘리는 게 아니라 부스러질 것이란다.”
흡사 무딘 톱으로 자른 듯한 절단면이 될 거고.
그리되면 부채를 만드는 건 포기해야 한다.
이 작은 목함으로는 딱 부채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나무밖에 나오지 않아서,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어야 한다.
“해 보겠습니다.”
“흐음. 좋다. 성공한다면 재미있는 무용담이 되겠구나.”
스승님은 그 부채를 모든 강호 장문인들 앞에서 부칠 것이고.
이 부채가 월목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모르는 인간이 없을 것이다.
그리되면…….
‘……다들 어쩔 수 없이 제자의 무용담을 칭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몰리겠구나.’
그걸 그냥 넘어가면 대놓고 니네 제자 잘나가서 배 아프다는 뜻이 될 터이니.
배포가 큰 장문인이 되기 위해서 추켜세워 주고 그러긴 해야 한다.
그게 강호식 사회생활 아닌가.
‘그래. 이름 모를 스승 친구 제자는 내 알 바가 아니다.’
문파로 돌아가서 ‘백린의각 수제자는 벌써 검강을 사용해 오행신공의 극성을 이루었는데 너는 뭐니.’ 하고 조인트를 까든 말든 진천희는 오늘을 사는 게 중요했다.
“그쵸. 스승님! 스승님의 은공에 이만큼이라도 보답할 수 있다면 이 제자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흡사 교주를 본 사이비 신자처럼 진천희는 양팔을 벌려 환하게 웃었다.
‘하하하…… 웃자. 스마일!’
스승님은 개수작일 게 분명한 제자의 모습을 보며.
“그래. 실수 없이 하는지 지켜볼 테니 각오하거라. 부챗살이 완성되면 비단을 붙이는 건 장인에게 보내면 되겠구나.”
“네!”
진천희는 일부러 눈까지 크게 뜨고 반짝반짝 안광을 냈다.
개수작도 이런 수작질이 없었다.
허나 이래 놓고 실수했다가는 그때야말로 족쇄를 차든가 강제 전신 마비를 각오해야 할 터.
살려면 실수 없어야 했다.
“받거라. 이번 일의 사례로 소림에서 받게 되었단다.”
스승님께서 내려놓은 것은 역근세수경 두 조각.
그만큼 투괴가 훔친 것은 소림에 있어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었고.
어쩌면 크게 혈사가 났을 물건이기도 했다.
“잘 끝나서 다행이네요.”
“그래. 불살로 끝낼 수만 있다면 이 또한 싸게 먹힌 것이라고 대사께서 말씀하셨지.”
스승님의 말에 진천희가 답했다.
“다행입니다.”
문득 스승님은 옛날을 회고하듯 작게 중얼거리셨다.
“불살이라…… 불가의 계를 지킨다는 말인가. 그 작자들이.”
과거 혈린광살이었을 적을 떠올리시는 게 분명했고.
진천희는 답하는 바 없이 스승님의 짧은 회고가 끝나기를 기다릴 뿐.
이윽고 스승님이 말을 이었다.
“이로서 너는 양의심공, 패천무상신공, 천마신공, 거기에 역근세수경 두 조각까지 손에 넣은 셈이구나.”
“스승님 덕분입니다.”
“이를 잘 응용한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 나 역시 연구를 하겠으나, 나의 체질과 너의 체질이 다르고, 너도 이제는 이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겠지.”
구음절맥인 본인의 체질을 뜻하는 것임을 진천희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제갈세가의 비전무공이야 정상인, 그것도 어릴 때부터 영약을 밥 먹듯이 먹고 자란 무림의 영재들을 위한 것.
날 때부터 구음절맥이신 스승님을 위한 것은 아니었고.
스승님의 운공 방식은 자연히 진천희와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역근세수경 역시 스승님은 자신의 체질에 맞게 무학을 구축해야겠지.
그것은 수십 배는 무거운 추를 사지에 감고 보통의 세가 무인과 경쟁해야 하는 것을 뜻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린광살’이라는 별호와 ‘백린의선’이라는 별호 두 가지를 얻은 것은 그가 천재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해 볼게요.”
“허나, 중간중간 봐주기는 할 터이니 어려운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하려무나. 물론…… 아마…… 내 생각에는 또 세간의 상식을 벗어난 방법을 들고 올 것 같다만.”
진천희는 틀 밖에서 온 자이고, 틀을 부수는 자.
스승인 제갈린과는 다른 방식이나 제자 역시 정상은 아니긴 했다.
‘음. 역근세수경도 어찌 보면 현대의 헬스와 상통하는 면이 있을 수도 있겠군.’
강호는 백린의선을 ‘천재’라고 부르고 그의 제자인 백의신룡을 ‘광인’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어찌 보면 본질을 꿰뚫는 시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진천희는 했다.
상관없다.
사람들이 무슨 손가락질을 하든 신경 쓰지 않기로 그 비동에서 결심하지 않았나.
“참, 사마혜가 왔단다. 중의원 시험을 수석으로 통과했지.”
“연수 온 건가요?”
“그래. 한동안은 이제 본 의각에 머물겠지.”
“와!”
“기뻐 보이는구나.”
“네! 당연하죠.”
사마혜를 찾아 밖으로 나오니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이미 진천희를 찾으러 나와 있었다.
어릴 때의 모습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성년의 모습으로 그녀가 서 있었다.
“은공!”
“아, 아니…… 그리 부르지 말라니까.”
사마현이 의동생이다 보니 사마혜도 어찌 보면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은공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낯이 간지럽다.
‘그렇다고 오라버니라고 부르라고 하기에는…… 아… 왠지… 힘들다.’
아재의 영혼이 무슨 짓이냐며 뒤통수를 때린다.
사마혜는 망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소각주님?”
……이것도 좀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래도 뭐. 뭐라고 불리든 무슨 상관이겠어.’
이미 오빠인 사마현에게 ‘가가’로 불리기도 하지 않았나.
약간 포기 비스무리한 감정이 있다.
“혜야, 많이 컸구나!”
“덕분이죠. 은공…… 아차.”
“아니야. 편한 대로 불러.”
이미 은공이라고 여러 번 불리지 않았나.
이제 와서 부끄러워지는 것도 무슨 주책이냐 싶다.
“이번에 수석으로 중의원 시험을 통과했다지?”
그 말에 사마혜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은공께서 보내준 의서 덕분이죠.”
“그 정도 의서는 다른 분타에도 있었어. 네가 노력한 덕분이지.”
“헤헤헤.”
사마혜는 기분이 좋은지 배시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보며 진천희는 가슴 한구석이 녹는 기분이었다.
‘어려운 길이다 보니 포기할 줄 알았건만. 여기까지 왔구나, 혜야.’
사마현 덕에 사마혜는 이제 돈 걱정 없이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게 되었고.
누구보다 안전하고 사치스럽게 보낼 수 있었다.
그건 축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혜는 소처럼 자신의 길을 나아갔다.
자신이 구명해 준 아이가 커서 똑같은 길을 간다는 건.
의사로서 뭐라 말할 수 없는 감회이기도 했다.
‘그래…… 지구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지.’
과거 갓난아기를 구한 적이 있었다.
소아과와 협진을 해서 오랫동안 병마와 씨름한 일이 있었다.
인큐베이터 안에 들어 있는 아기는 너무나도 작고 연약해서 기침 한 번에 숨이 훅 끊어질 것 같았다.
거기다가 장기는 어찌나 작은지.
그 조그마한 장기에 칼을 대서 수술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고뇌와 절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놓으면 아이는 죽는다는 생각에 모두가 필사적으로 매달리던 나날들이었다.
다행히 그 아기는 살았다.
‘그리고 그 아이와 의대생으로 조우한 적이 있었지.’
놀랍게도.
진천희 혼자만 특별히 경험한 일이 아니었다.
경력이 긴 의사들은 의외로 종종 겪기도 하는 선물이기도 했다.
굳이 의사가 되어 오지 않더라도.
장성한 성인이 되어서 찾아오면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일어나곤 했다.
기분이 좋아져서 진천희는 사마혜의 머리를 쓸었다.
“잘 컸다. 잘 컸어.”
“은공 덕분이죠.”
“나는 그때 네가 고비 하나를 넘기게 해준 것뿐이지. 여기까지 온 건 네 두 발로 한 거야.”
사마혜는 그리 말하는 진천희를 감동스러운 눈으로 한참 바라보았다.
“은공은 어째 생색내는 법이 없으시네요.”
“사실인걸. 물론 내 부술이 끝내주긴 했지! 과연 나랄까?”
“그것도 똑같고요.”
우쭐거리는 말도 어쩐지 기분이 나쁘질 않다.
‘은공은 여전하시구나.’
사마혜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