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68
제 368화
결국 반을 줄였다.
사 대의 정원은 이백 명. 그건 너무 많다고 생각해서 절반으로 줄였는데, 그것만 해도 이미 백 명이라서 상당한 숫자였다.
심지어 시비 터는 놈이 있을까 싶으셨는지 모두 백린의각을 상징하는 무복을 입고 있는 터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래. 이번에는 비무 하자고 붙는 놈도 없을 거고. 표국이나 상단을 구할 필요도 없겠어.’
심지어 제자 얼굴이 밖에 비칠까 싶어서 마차를 준비했는데.
그 마차에 앉아만 있으면 무력대가 알아서 산적 잡고, 알아서 도착하게 생겼다.
아니, 애초에 덤빌 산적이 있긴 할까? 백 리 밖에서 듣고도 짐 싸서 도망치기 바쁘지 않을까?
‘아…… 스승님.’
죽고 싶어졌다.
스승님의 과보호에 죽고 싶어졌다.
마차에는 진천희와 무력 사 대주 만선이 함께 타기로 했다.
그녀는 강태공답게 마차의 박자에 맞춰 낚싯대를 손질해 나갔다.
“표정 좀 펴시지요. 소각주님.”
“으음…….”
“그동안 소각주님이 저지르신 일을 생각하면 이것도 쌉니다. 저는 꼼짝없이 폐관수련이라도 시킬 줄 알았는데 각주님께서 거기까지는 하지 않으시더군요.”
스승님도 시키려면 시키고 싶으셨을 거다.
제자 놈이 탈출한 전례만 없었다면.
“성정이 자유로우신 건 압니다만 한동안은 조금 몸을 사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만선의 말에 진천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그녀는 작게 웃더니 다시 낚싯대를 손질했다.
“그리고 굳이 마차에 태운 것에는 한 가지 더 이유가 있습니다.”
“뭐죠?”
그때 마차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주렴을 거두어 밖을 보니 양민들이 백린의각의 마차를 향해 합장을 하는 것이 보였다.
“……어라?”
“얼굴을 거두십시오. 알아보는 이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왜죠?”
“비록 강호인에게는 벽안광의라 불리지만 양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백의신룡이십니다. 그리고 지금은 신앙으로서 숭배하는 이들까지 생기기 시작했지요.”
차르륵-
주렴을 거두고 진천희가 만선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강호에서 양민을 상대로 곡식을 풀어 구휼하는 일이 드물지만 없는 것은 아닙니다. 허나 저렴한 가격에 약재를 구해 주고, 때에 따라서는 돈 대신 다른 것을 받아 치료를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저는 그저 한낱 의원일 뿐입니다.”
“네, 소각주님께서는 그리 생각하실지 모르시겠으나 빈민들 중에서는 소각주님이 신농의 화신이라 믿는 이들도 있습니다.”
신농은 신화적 존재 중 하나로, 농사짓는 법을 인간에게 전수하고 모든 약초의 효험을 알고 한의학을 창시했다 일컬어진다.
무협지 편수가 길어져 주인공이 선계에서 투선들과 싸우게 되면 한 번쯤 슥 등장하는 삼황(三皇) 중 하나다.
“음…… 삼 대주께서 왜 내가 쳐다만 보면 바로 병을 알 거라 믿었는지 이해되는군요.”
“덕분에 소각주님의 적이 많습니다. 단순한 의원에서 민심의 중심이 된다는 것은 그 지역을 통솔하는 문파와 세가들의 반발을 사기에 좋지요.”
‘스승님께서 부득불 마차에 태운 것도 이해가 되는군.’
그냥 마차도 아니었다.
6마리의 거마가 끌고 마차의 표면에도 철갑을 덧대어 어찌 보면 이동하는 요새 수준이다.
‘잡초처럼 키우시긴 하실 생각……인가?’
스승님께서 운남으로 가라고 명하신 걸 보면 일단 보내주긴 하신 거 아닌가.
이루 말할 수 없는 혼란 속에서 마차가 완전히 멈추었다.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의원님! 제 손녀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주렴 밖을 보니 할아버지가 갓난아이를 포대기로 안고 있었고.
아이의 안색이 몹시도 창백해 보였다.
“봐야겠어요.”
그 말에 만선이 답했다.
“암살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지요. 저 포대기에는 독이 든 비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아이를 받아드는 순간 독에 찔리겠군요.”
“화경의 고수도 갓난쟁이를 안을 때면 방심하기 마련이죠.”
허나, 진천희는 답하는 대신 마차문을 열었다.
그 순간.
휘리릭.
만선의 낚싯줄이 아이 포대기를 낚아챘다.
“음?”
진천희와 아이를 안았던 할아버지 모두 눈을 홉떴다.
그녀가 포대기 안을 살피고는 이렇게 말했다.
“독 비수는 없군요. 평범한 빈민의 갓난쟁이입니다.”
“만선!”
“이게 소각주님을 모시는 제 일입니다. 이 정도면 많이 타협을 해 드렸을 텐데요.”
“…….”
그녀는 냉정히 답했다.
“인의예지(仁義禮智)로는 강호를 살아갈 수 없는 법이지요. 이 정도의 호위는 참아 주셨으면 합니다.”
결국 진천희는 납득했다.
아이 포대기 속에 독 단검을 숨겨 찌르다니.
그렇다는 말은 갓난쟁이의 목숨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뜻이었다.
저 할아버지가 그녀의 말대로 만약 암살자였다면.
안색이 창백한 것도 약으로 그리 만들었겠지.
“좋습니다. 사 대주께서는 사 대주의 일을 하시지요. 저는 제 일을 하겠습니다.”
“괜찮은 분업이군요.”
진천희는 아이를 진맥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다행히 약으로 해결이 되겠군요. 소젖에 약제를 타서 하루 세 숟가락씩 반드시 먹여야 합니다.”
“고맙습니다. 신룡님! 고맙습니다!”
할아버지는 두 손을 모아 진천희를 향해 기도했다.
“아, 기도는 제게 하지 마시고 하늘에 해 주세요.”
“예, 예에…… 알겠습니다! 예에!”
역시 신앙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하긴, 수년간의 연구 끝에 과학적으로 원인을 규명했다는 말보다 내가 염제 신농의 환생이라 병마를 내쫓았다는 말이 더 이해하기 쉽긴 할 거야.’
문맹률이 과반 이상인 이곳에서는 당연한 결과라면 결과일 터.
진천희는 곧바로 처방전을 적어 나갔다.
‘우선 비싼 약재면 안 되겠지. 한 달은 먹어야 할 테니까.’
여차하면 물물교환으로 구할 수 있거나 아니면 산에서 직접 캘 수 있는 것들로.
처방전을 쓴 진천희가 할아버지에게 건넸다.
“근처 분타나 백린의각 소속 의방에 가져가면 약을 내줄 겁니다. 아이는 혈에 침을 놓을 태니 조금 기다려 주세요.”
그 모습을 보며 만선은 생각했다.
‘행차가 조금 늦어지겠군. 허나…… 이 또한 각주님께서는 계산을 하셨겠지.’
그런 소각주님의 성정 덕에 살아남은 이가 몇이던가.
그녀 역시 낭인 시절 백린의각의 도움을 수차례나 받았지 않던가.
그리고 지금은 남편이 백린의각의 의원이고.
그녀는 낚싯대를 만지작거렸다.
‘살수는…… 없어 보이는군. 허나 방심하면 안 된다.’
선의를 악의로 보답하는 이들은 언제나 있는 법.
강호의 법도란 참 이상하여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는 것은 그만한 위험 역시 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렇기에 소각주님이 강한 것이겠지.
허나, 그런 소각주님이시지만 강호인보다는 의원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이상, 여전히 약점도 남아 있다.
그것을 보완하는 게 사 대주 만선의 일.
그녀는 낚싯대를 단단히 쥐었다.
* * *
마차는 몇 번을 가다가 서기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누구도 그런 진천희를 답답하다 말하는 이는 없었다.
사 대 무인의 대부분이 백린의각에 직간접적으로 구명받은 자들.
만약 이를 답답하다 여긴다면 그렇게 구명된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 역시 부정하는 것이 된다.
진천희도 분타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그쪽으로 보내 시간을 단축하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그저 대로를 달려가는 것보다는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느린 속도로 갈 수 있었던 것은.
‘문지기가 검문도 없이 문을 열고 있기 때문이겠지.’
이만한 인원과 이만한 규모의 마차가 지나간다면 보통은 짐을 검사하거나 해야 했다.
허나 백린의각 소각주를 상징하는 호패만으로 모든 문지기들이 그대로 문을 열어 주었다.
‘스승님은 어디까지 손을 뻗으신 걸까.’
단순히 강소성 내의 백린의각 민심만으로는 이리되기 어렵다.
군문이든 관리든 이미 어느 정도 자기 사람이 있어야 했다.
‘후…… 감찰사의 징표를 꺼낼 일도 없겠군.’
탐관오리를 잡거나 역참에서 말을 빌릴 때를 제외하면 좀처럼 꺼내는 법이 없건만, 이제는 더 아낄 수 있게 되었다.
마차 안에서 진천희가 말했다.
“참, 하오문의 사람들과 합류할 거예요.”
그 말에 만선이 말했다.
“하오문이라면…… 아, 혹시 그 의형제이신……?”
“예. 아무래도 오독문은 사파이기도 하니까요. 녀석을 데려가면 좋을 것 같아요.”
오독문이 당가와 쌍벽을 다투는 사파의 독문(毒門)이라고는 해도.
놈들에게 입이 달려 있고 그걸로 밥을 먹어야 하는 이상 황금왕의 돈이 흐르고 있는 건 자명할 터.
사마현을 데려가는 쪽이 자잘한 분쟁과 시비를 막기 좋을 거라는 계산이다.
‘본인도 가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고.’
대체 진천희가 오독문으로 향한다는 걸 어디서 주워들은 걸까.
하오문 사람이 마차와 똑같은 속도로 달려와서 창문으로 서신을 가져다주는 것은 꽤나 신박한 경험이었다.
그것도 산길 한복판이다.
여기로 오려면 말보다 빠른 속도로 저 먼 마을에서부터 죽어라고 달려와야 한다.
‘현이가 아마 자기 사람이 많이 생긴 것 같네.’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다.
동생이 안전하다고 판단될 만큼 ‘집안 청소’를 한 상황이니까.
대체 어떻게 했을지는 상상이 안 갔지만 아마 합법적인 방법도 아닐 거고, 선한 방법도 아닐 터.
손에 한두 번 피를 묻힌 게 아니겠지.
허나 그건 당연한 이 세계 흑도의 방식.
그런 자들을 상대로 손에 피 좀 묻히고 청소가 되었다는 게 더 놀라울 따름이었다.
만선이 말했다.
“일단 저희는 홍택호에서 배를 타고 장강으로 나갈 겁니다. 그리고 장강을 타면 운남성까지 바로 갈 수는 있습니다만, 적어도 열흘 이상은 배가 운행되어야 해서 보급을 위해서 중간에 남경에 들러야 할 겁니다.”
백린의각은 강소성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여기서 조금 내려가면 홍택호가 나오고 여기에 포구가 있다. 거기서 배를 타는 것이다.
그리고 이 홍택호 아래로 장강으로 이어지는 물길이 존재한다.
“알 것 같네요. 홍택호에 있는 포구 쪽에는 저희가 가진 보급 창고가 없어서 그런 거죠?”
“예. 그렇습니다, 소각주님. 남경은 아무래도 물류의 중심지다 보니, 그곳에 창고가 크게 지어져 있지요.”
그 말에 진천희가 피식 웃었다.
“하긴…… 그곳은 고관대작도 많이 사니까…… 덕분에 그쪽에서 식재료도 풍부하게 보급할 수 있겠네요. 요리도 좀 더 여러 가지로 할 수 있을 듯하고…….”
진천희의 말에 만선은 싱긋 미소 지었다.
진천희 덕분에 무인들 모두 행복한 미식 라이프를 보내는 중이라는 것을 그녀도 아는 까닭이다.
만선은 오늘 아침에 먹은 매콤한 소고기 탕면을 떠올렸다.
달걀을 반숙으로 만들어 둥둥 띄웠는데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면 그릇 하나당 계란이 하나씩 들어 있었고.
소고기 수육은 촉촉하고 탄력 있는 것이 매콤한 국물을 잔뜩 머금어서 육즙이 끝내주었다.
수적이 조금 귀찮을…… 수도 있겠으나 이 많은 인원이 이동하면서 치료를 하고 있는데 가는 길마다 소문이 났을 터.
지금 수적들 중에 진천희가 도왕을 어떻게 팼는지 모르는 이가 없다.
‘뇌가 있으면 안 덤비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진천희가 물었다.
“밥은 뭐 드시고 싶으세요?”
“뭐든 좋습니다.”
‘이번에는 냉면이나 만들어야겠다.’
그럴 때가 있다. 뜬금없이, 이유도 없이 그냥 냉면이 당길 때.
빙공으로 육수에 살얼음 띄워서 먹으면 진짜 X맛이겠지.
그리 생각하며 진천희는 마차 밖을 내다보았다.
우수에 차 있는 눈을 보며 만선은 작게 감탄했다.
‘푸른 눈동자는 현원전단신공의 증거. 앞으로의 전략을 계산하고 계시는 건가.’
각주와 소각주.
천하를 상대로 무슨 계획을 짜고 있는 것인가.
진천희가 중원에서 냉면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만선이었다.
진천희는 생각했다.
‘만두…… 역시 냉면이랑 갈비만두를 같이 먹는 게 최고인데 그건 손이 너무 많이 가. 하지만… 먹고 싶다……. 그냥 갈비 선에서 타협 볼까? 하…….’
우수에 찬 얼굴, 허나 입안에서는 침이 고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