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71
제 371화
부푼 돛이 순항을 알렸다.
강소성에서 사천성까지 가는 것은 중원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이동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육로에 비해 빠르다고는 해도, 그렇다고 해서 현대 21세기 내연 기관으로 움직이는 배가 아니기에 제법 오랜 시간을 배 위에서 보내야 했다.
지루할 만한 일정이었지만.
진천희는 동생인 사마현에게 쉬이 배울 수 있는 무공 초식을 몇 가지 가르쳤고, 사마현도 그런 형에게 암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다가 조금 지루해지면 요즘 중원의 자금 움직임이나 고관대작들에게 유행하는 사치품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여러 무인들에 대한 풍문을 들을 수 있었다.
틈틈이 사마현은 비파를 뜯었고, 진천희는 그런 사마현에게 칠마금의 무리(武理)를 조금 전수해 주었다.
재미있는 건, 그러한 무학을 전수하면서 정작 진천희 자신은 비파를 처음 뜯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형은 그걸 성대로 했다고?”
“되더라고.”
“허, 참.”
디링-
진천희는 사마현의 비파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답했다.
“금방 배우네?”
“이론적인 건 이미 다 익혔어. 현을 뜯는 것 자체가 처음인 게 문제지.”
“그래서 처음부터 이런 소리가 나오는 거고. 대신 자세가 어설픈 것은 역시 처음이라 그런 거고.”
사마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차더니 배 밑바닥에서 무언가를 들고 나왔다.
칠현금이었다.
“이것도 되겠어?”
“음, 원래 칠현금을 바탕으로 만든 무학이라. 차라리 그게 편하겠다.”
진천희는 칠현금을 탁자 위에 놓고는 현을 손끝으로 퉁겼다.
디리링-
내력이 실린 칠현금의 음색이 공기를 울렸다.
투기가 없었기에 아직은 그저 소리일 뿐.
허나, 금을 뜯는 이가 마음을 먹는다면 그것은 가공할 음공이 될 터.
몇 번 더 뜯어 보더니 진천희가 이마를 찌푸렸다.
“막상 하니 목소리가 더 쉽네.”
“보통은 반대야. 형.”
“그렇긴 한데…….”
사마현은 그런 진천희의 칠현금에 응답하듯 비파를 켰다.
애절하게 울리는 비파 소리에 맞춰서 사마현이 말했다.
“한 곡 하시겠습니까? 가가?”
“그놈의 가가 소리.”
그리 말하면서도 진천희는 착실하게 사마현의 음률에 맞춰서 현을 뜯어 나갔다.
이번에는 내공을 담지 않은 순수한 곡조.
확실히 배우는 게 빠르다.
이론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강 위를 배가 지나간다.
적막 속에서 두 개의 현이 저마다의 음색으로 노래를 만들었다.
이백의 시였다.
兩人對酌山花開(양인대작산화개) : 두 사람 술잔을 나누니 산에 꽃이 피고
一杯一杯復一杯(일배일배부일배) : 한 잔, 한 잔 다시 한 잔
我醉欲眠君且去(아취욕면군차거) : 내 취하여 잠 오니 그대는 이만 돌아가게.
明日有意抱琴來(명일유의포금래) : 내일 아침 나 생각나거든 칠현금이나 안고 오시게나.
산중대작(山中對酌).
이태백답게 술에 대한 정취와 만나는 사람에 대한 즐거움이 잘 담겨 있었다.
마침 금(琴)이 들어가 있기도 하고.
오랜만의 만남도 있었고.
미리 상의한 적도 없었는데 자연스럽게 곡조가 나온 것은 마치 이 상황 그대로 같았기 때문이겠지.
진천희는 사마현의 비파에 맞추어서 어렵지 않게 박자를 만들어 냈다.
사마현이 높은 음이라면 진천희는 낮은 현을, 사마현이 낮은 곡조를 낸다면 진천희는 그에 맞춰서 높은 현을 부드럽게 흔들어 튕겼다.
‘잘 따라오는걸?’
이래 보여도 어릴 적 밑바닥 경극 생활을 하며 비파 연주에는 도가 튼 사마현이었다.
형이 이렇게 곧잘 따라오는 게 신기했다.
문득, 형의 눈동자가 푸른빛으로 물든 것을 사마현은 보았다.
현을 뜯으며 현원전단신공을 쓰고 있는지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몰아(沒我)의 경지에 빠진 모양이었다.
이 순간을 즐기며, 칠마금의 무학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겠지.
그런 두 사람의 연주를 수많은 무인들이 들었다.
사마현은 즐거운지 음률에 맞춰 시구를 읊었고,
진천희는 그런 사마현의 노래에 맞춰서 칠현금을 뜯었다.
곡이 끝날 때까지 누구 하나 말을 꺼내는 무인(武人)이 없었고, 두 사람은 그도 모른 채 즐겁게 음공의 묘리를 연구했다.
역시나 형이 입을 열었다.
“와, 나 칠마금 더 개량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뜩이나 음공은 난해하다.
진천희는 그 난해한 음공을 분해하더니 그 속에서 응용하기 좋은 묘리 하나를 당겨 왔다.
사마현이 현을 퉁기며 물었다.
“나도 가르쳐 줄 거지~?”
“당연하지. 누구 동생인데.”
진천희는 일부러 사악한 얼굴로 과장되게 씨익 웃어 보였다.
큰 장난이라도 칠 것 같은 표정에 그만 사마현도 같이 웃고 말았다.
다당-
그만 잘못된 현을 퉁기고 말았지만 재미있으니 되었다.
곡조는 여기까지.
좋은 밤, 좋은 항해였다.
* * *
얼마나 배를 타고 갔을까.
드디어 일행들은 사천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배를 내리는데 그곳에서 의외의 사람을 볼 수 있었다.
“후후후후. 드디어 왔는가? 운명의 대적자여!”
가면을 쓰고 있었으나 진천희는 목소리만 듣고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당아.
용봉지회의 우승자이며, 사천당가의 강력한 독공을 연마하다 마음속에 흑염룡을 기르게 된 아이.
이제는 아이가 아닌 성숙한 여인이 된 그녀가 치명적인 가면과 치명적인 자세로 서서 치명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세상에, ‘치명적인’이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들어갈 정도라니!’
진천희는 잠시 지금이 1999년인가 고민했다.
그 시절에는 아이도, 어른도 미. 쳐. 있. 었. 다. (탕!)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학술적인 설명과 이론들이 나와 있지만, 대충 떠올려보자면 한 세기의 마지막을 보낸다는 그 마음과 어쩌면 세상이 1999년에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기묘한 기대감.
그리고 인류 문명이 이렇게까지 고도로 발달했는데 우리의 정신은 왜 이리 피폐해졌는가에 대한 고찰.
현대 문명에 대한 저항.
나르시시즘.
……등이 있었지만 유일하게 다행인 것은 그때는 SNS와 스마트폰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진천희는 그때의 감성을 그대로 들고 온 당아를 보며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흑역사가 끝난 게 아니었나?’
문득 그녀에게서 기도가 달라짐을 느꼈다.
이것은 같은 경지이기에 알 수 있는, 그리고 과거의 그녀를 보았고 당가의 무공을 조금이나마 엿보았기에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설마 화경……?’
너무 빠르다.
당장 미래에 철혈검주가 될 남궁가의 남궁연도 화경까지는 아직 멀지 않았나.
이 속도는 남궁운이나 치트키를 쓴 진천희 자신과 비견되거나, 어찌 보면 좀 더 빠르다고도 할 수 있을 지경.
‘이런 속도가……. 일찍이 당가에게 있었나?’
어쩌면 저 광증(?)이 이 속도와 연관이 있는 것인가.
‘잠깐만. 어쩌면 그러면 당아는……. 우리 스승님의 속도일지도 모른다는 건데?’
전례가 있다.
바로 백린의선이신 스승님이시다.
당아가 당가에서 역대 가장 천재성을 가진 인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스승님에 비견될 정도……라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대적자여!”
흠칫.
당아가 인기척을 죽이고 자연스럽게 진천희의 간격으로 들어왔다.
흡사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모습이 당가의 보법을 완전히 대성했다는 증거였다.
진천희는 급히 일단 사마현에게 당아를 인사시켜 주었다.
“어……. 현아, 이분은 당가의 독룡이라 불리시는 당아라고 해.”
“반갑습니다, 당 소저. 저는 금혈방의 은당주인 사마현이라고 합니다.”
“당 소저, 이분은 제 동생인 사마현입니다.”
그러자 당아가 곧바로 말했다.
“금혈방! 황금왕의 졸개들이군!”
초면부터 엄청난 무례!
당아의 양옆에서 호위 무사들이 허둥대며 사마현에게 수신호를 날렸다.
진심이 아니니 봐 달라는 그런 메시지 같았다.
차라리 같은 무문(武門)이나 세가였다면 비무로 서로 화답할 수 있으련만.
상대는 무림의 은행, 아니 제2 금융권의 서열 4위.
무인들은 검이 아닌 정치적인 관계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때 사마현은 태연하게 말했다.
“졸개가 맞습니다요~ 지금은 저 형에게 잡혀 사는 졸게지요~”
사마현의 눈이 가늘어진다.
흡사 여우처럼 장난스럽게 웃자 당아는 흥이 식었다는 듯 혀를 찼다.
“쯧, 소인배인 것을 보아서는 졸개가 맞구나! 허나, 과연 내 운명의 대적자! 금혈방의 졸개를 아우로 삼다니! 장하다!”
“……당아야. 넌 대체 어쩌려고.”
분명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을 전에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체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당아는 가면 아래에서 ‘크하하하!’ 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마인의 웃음을 그대로 재현했다.
‘얼마 전에…… 나는 천마를 만났단다. 당아야.’
당아는 진짜 마(魔)를 모른다.
그녀가 생각하는 어둠은 순진한 구석이 있고, 의(義)를 찾는 구석이 있었다.
허나, 천마가 자아내는 어둠은, 그것만은 진짜였다.
천마는 과시하지 않고, 죽일 뿐이다.
말하지 않고, 죽일 뿐이었다.
무명옷을 입고 적당히 칼을 허리에 늘어뜨리며 배부른 범처럼 걷던 천마는 십만대산을 피에 익사시킨 자.
깊은 어둠이자, 광기였으며, 선악을 뛰어넘은 무언가.
그야말로 생명을 삼키는 자였다.
당아가 진정한 마(魔)를 몰라서 다행이었다.
그리 생각하니 이런 당아도 싫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천희는 당아에게 줄 간식을 꺼냈다.
“호박엿 만들었는데 먹을래? 그리고 과일 넣어서 막대 모양으로 굳힌 꿀냉과도 있어.”
모두 한음기로 잘 식혀서 들고 왔다.
“흠. 우습구나. 대적자여! 고작 그것으로 나를 매수할 생각인가?”
그러나 시선은 진천희가 꺼낸 간식들에 고정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먹을 것 좋아하는 건 여전하구나.’
화경이 되었어도 당아는 여전히 야생이었다.
* * *
당아의 안내에 따라 당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호오, 그러니까 당 소저는 혈편왕이라는 말이 더 좋다는 거지~?”
“그러하다. ‘소저’라는 말은 본좌가 받을 자격이 없다. 피와 어둠에 잠식된 본좌에게 그런 하얀 단어 따위는…… 크흑…….”
……진천희는 당아가 정말 걱정이 되었으나, 저 나이에 화경이 된 애를 걱정해도 되는 것인가.
흡사 연예인 걱정하는 것과 똑같은 게 아닌가 고민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마현은 그런 당아와 죽이 잘 맞았다.
“오케이~ 그러면 혈편왕 나으리라고 불러 줄게~”
“오……케이?”
“형이 자주 쓰는 단어야.”
자주 썼었나.
아무래도 저도 모르게 입버릇이 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