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73
제 373화
지난번은 아우를 형이 보조했으나, 이번에는 형을 아우가 보조하는 형태.
연회장 한가운데.
모두가 두 형제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가장 먼저 현을 퉁긴 건 사마현의 비파였다.
디딩- 딩-
일정한 박자로 낮은 음이 반복적으로 울렸다.
그 위를, 칠현금이 물방울처럼 음을 내며 천천히 쏟아지기 시작했다.
묵직하고 맑은 음이었다.
천천히 물처럼 이어지는 음색이 흡사 장강과 비슷하였는데, 문득 무공의 수위가 높은 몇몇 장로들이 이상한 것을 느꼈다.
‘기이하군. 분명 연회장의 모든 이들이 이 음을 들을 수 있을진대 어째서 귀가 편안한 것이지?’
결코 작은 음이 아니었다.
고작 칠현금으로 연주할 수 있는 소리로 이 넓은 연회장의 모두가 다 듣게 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가장 뒤쪽에 있는 장로들까지 우수에 젖은 표정으로 칠현금의 연주를 듣고 있었다.
문득 장로 하나가 술잔을 내려다보았다.
진천희의 음에 따라 술잔 위의 술이 파문을 그리며 이어진다.
‘음공……?’
내력이 담긴 음이었다.
허나 술잔이 공명하되 결코 깨지는 법이 없었고.
그저 편안히 듣는 것만이 이 연주의 핵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었다.
고막을 터뜨려 혼란을 시킬 수도, 미혹술을 걸 수도 있었으나 그저 정순하기만 했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장로 하나가 연회장 밖으로 나갔다.
그럼에도 음은 여전히 같은 음색으로 들렸다.
‘기이하구나. 멀리 있다면 소리가 자연히 작아져야 정상일진대.’
봄비처럼 내리던 음색이 이윽고 여름의 소나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로는 조경석 위에 고인 물을 보았다.
그 물도, 칠현금의 음에 맞춰서 얇은 파문을 그려 내고 있었다.
‘여기까지…… 음공이 닿는 것인가.’
대체 무슨 깨달음을 얻은 것인가. 벽안광의는.
장강을 빗댄 음률은 이어지고, 끊어지듯, 다시 이어지다가 쏟아지며 당가의 모든 이에게 다가왔다.
孤帆遠影碧空盡(고범원영벽공진) : 돛단배 홀로 먼 그림자 벽색 하늘로 사라지는데,
唯見長江天際流(유견장강천제류) : 보이는 건 하늘에 닿아 흐르는 장강이어라.
이백의 시로 지은 노래다.
근방에서 꽤나 유명한 곡조로, 장로들도 익히 알고 있었다.
친구를 먼 곳으로 떠나보낸 절절함을 담았는데, 모두가 한숨을 쉬며 진천희가 칠현금을 뜯는 것을 끝까지 들었다.
허나, 무학을 알고 있는 자들일수록 곡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대체 음공을 이렇게까지 깨달을 수가 있는가.’
진천희는 마지막 현을 퉁겼다.
그가 칠현금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키자 연회장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지만 장로들과 가주만큼은 굳은 표정이었다.
‘검을 익혔다면 검무로 보여 주면 될 것을 어째서 음공인가.’
‘제갈세가는 애초에 음공 관련 무공은 그리 없지 않던가.’
‘저만큼 배우기 위해서는 음공도 검만큼이나 익혀야 할 터인데 왜 그런 미친 짓을 한 게지?’
그 시간에 본인 파던 무학이나 파는 게 맞는 일.
왜 잘하던 거 놓고 음공을 파고 앉았는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그걸로 대성을 하고 앉아 있으니 더 이해가 안 갔다.
무인으로서 상식 밖의 인물.
‘광룡…… 아니 광의(狂醫)인가.’
벽안광의.
당가의 고수들은 그제야 강호의 별호를 이해했다.
* * *
사마현은 형이 어제 배에서 칠현금을 뜯다가 깨달은 무학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어이가 없네~ 어이가 없어.’
이 형은 그런 인간이었다.
무인으로서 한 우물을 팔 생각은 전혀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인으로서의 자각도 없다.
그저 의원으로서 치료법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익힐 뿐이었다.
이런 괴이한 형을 어찌 봐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다.
‘당가 장로들 죄다 속으로 기함하고 있겠구만~’
그리고 또 한 가지.
‘형은 자신의 이용 가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형이 굳이 이곳에서 검무가 아니라 칠현금을 뜯은 것은 그만큼 자신의 가치를 보여 주기 위해 벌인 일일 터.
‘굳이 백린의각까지 갈 것 없이 자신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음을 알리고 싶었던 거야. 그게 교섭의 일 단계일 테고.’
세간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그저 미친 것 같다고.
허나 형을 상대해 본 장문인과 장로들은 이렇게 말한다.
젊은 무인답지 않게 심계가 깊다고.
원하는 목표가 있을 때 그것에 다다르는 방식이 강호의 상식과 달라서 미친 것처럼 보이나, 결국 그 또한 얻어낼 것을 얻어내는 과정이다.
그리고 보통 형이 원하는 것은 인간의 목숨이다.
구명(救命).
그러나 그냥 평범한 양민이나 무인뿐만 아니라, 모두가 죽이려 했던 투괴에게까지 손을 뻗어 버리니 미친 것처럼 보일 뿐.
사마현이 보기에 형은 매우 제정신인 인간이다.
그리고 칠현금을 뜯는 형의 등을 지켜보며 그 깨달음이라는 것에 감탄할 뿐.
어떠한 사고로, 어떠한 인지 방식으로 거기까지 다다랐는지는 짐작조차 하기 어려우나.
형이기에 그저 가능하겠거니 하고 납득하고 만다.
사마현에게 형은 그런 존재니까.
‘연주 즐거웠어~’
언젠가 먼 훗날 평화의 시대가 오고.
형도 자신도 은퇴하는 날이 온다면 이렇게 누각에서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은 차를 마시고, 자신은 술을 마시면 되겠지.
돈이야 충분할 터였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연회에 당아는 참석하지 않았네.’
개인적인 일이 따로 있는 걸 수도 있고, 빛을 싫어하는 성질의 심마(?)다 보니 어둠의 품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걸 수도 있다.
“가주께서 단둘이 독대를 원하십니다.”
가솔의 말에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가서 쉬고 있어, 현아.”
‘역시나 형의 가치를 알아보는군. 벌써부터 몸이 달아서 독대 신청이라니.’
형은 칠현금을 뜯는 순간부터 이미 이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 틀림없었다.
부드러운 미소의 미청년은 그렇게 사마현에게 방금 자신이 연주한 칠현금을 맡겼다.
“이거 좋더라.”
“다음번에는 더 좋은 걸로 준비할게. 음공에도 쓸 수 있는 걸로.”
돈이면 뭐든 다 된다.
그 말에 진천희가 정색하고 말했다.
“너무 비싼 건 하지 마라.”
“알았어.”
비싼 거라.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걸로 찾아보면 되려나.
사마현은 그리 생각하며 금혈방에서 구할 수 있는 칠현금으로 뭐가 있는지 떠올렸다.
* * *
가주의 집무실에 도착하니 그는 몇 가지 일을 빠르게 처리하고 있었다.
‘백린의각이나 당가나 가주는 언제나 바쁘구나.’
돈이 있어야 세가도 있는 법.
가주는 무공을 연마할 시간도 얼마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해야 했기에 어찌 보면 가주 자리는 극한 직업이기도 했다.
“좋은 연주였네. 오랜만에 그런 음률을 들어 보더군.”
“과찬이십니다. 약간의 잡기를 조금 보였을 뿐인데 이리 극찬을 받으니 부끄러울 따름이군요.”
진천희는 포권을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진 소협에게는 과거 당아를 챙겨 주어 고마운 마음이 늘 있었네. 이리 보게 되니 기쁠 따름이지.”
“아닙니다. 당가에 늘 신세를 지고 있으니 이 정도는 당연한 거지요.”
기본적인 인사치레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문득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제가 알기로 당가에서는 보통 성년이 되면 심마가 사라지고 원래대로 돌아온다 들었습니다. 허나…….”
“……그래. 우리 당아는 여전하지. 아니, 어찌 보면 한층 더 진화했다고 할 수도 있겠군.”
가주는 두통이 밀려오는지 이마를 꾹꾹 눌렀다.
“본디 사천당가의 독공은 독이라는 특성상 심성에 여러 가지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네. 그러나 보통이라면 경지에 이르며 심신이 안정화가 되고 주변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네.”
중2병에서 제정신으로 돌아온다는 말을 최대한 드라이하게 표현하셨다.
약간의 표정 변화가 느껴지는 것이 가주님께서도 질풍노도의 흑역사를 쌓으셨던 모양이었다.
“문제는… 어린 나이에 너무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되면 그 심성이 고정되거나 심화되는 사태가 발생한다는 거지.”
“아아……. 그런 문제가…….”
“물론 당문에서는 그저 글로서만 전해져 왔네. 그만큼의 일세의 천재를 배출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나. 허나.”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숨을 삼켰다. 그러고는 결심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의 경지라면 이미 눈치챘겠지. 당아는 이미 화경에 들어섰다네.”
“아. 그래서 심형이 도리어 심화된 것이로군요.”
“중간까지는 괜찮아지나 했네. 당아를 위해 우리 당문의 비전 중의 하나인 당려이불도 준비했지. 아무리 발로 차도 멀쩡하고, 수면향이 들어 있어 주인을 깊은 숙면으로 인도하지.”
당아가 돌아올 때를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했던 모양이다.
“그렇군요.”
“다디단 당과와 경단, 떡. 무엇 하나 준비하지 않은 게 없네. 그 시기는 단거라도 먹으면서 버티니까.”
“아…….”
가주님의 표정이 울적해졌다가 다시 붉어지기를 반복했다.
당아를 떠올리며 자신의 과거를 잠깐 떠올리더니 다시 당아를 떠올리기를 반복했다.
그랬다. 가주님 머릿속에서는 가주로서의 의무, 아비로서의 마음, 거기에 흑역사까지 함께 셋이서 멱살을 잡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심마에 들지 않은 것은 그만큼 가주님의 정신 수양이 깊어졌기 때문이리라.
“당아는 자신의 과거를 복기하며 고통스러워하다가 그곳에서 무학을 깨달아 버렸네. 이불을 걷어차고 부공삼매에 들더니. 그 또한 어둠이 부여한 자신의 의무라고 하면서…….”
“화경에 든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래, 경사지. 경사야. 경사가 맞지…….”
객관적으로 보면 당문에 이만한 경사가 없다.
가주로서 그야말로 기쁜 일!
허나, 흑역사가 앞으로 얼마나 전시될지 알 수가 없기에 아비의 마음이 술렁였다.
“본가의 역사에서도 드문 일 아니겠나. 허나…… 이대로면 장차 혼인은 할 수 있을는지……. 성격이 저리되면 누가 데릴사위로 올지…….”
여기서 잠깐.
무협지 버전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사천당가는 워낙 폐쇄적인 곳이다 보니 데릴사위를 들이는 묘사가 많다.
여성이 결혼한다고 한들 출가외인이 되는 게 아니다.
남자가 당가에 데릴사위로서 들어오는 셈.
그럴 경우 자식은 성씨도 남편이 아닌 아내의 성을 따라 당씨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가는 당씨라는 혈족으로 움직이고, 그 혈족간의 끈끈한 연은 아들이든 딸이든 모두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정략혼을 한다고 해도 문제일세. 성격이 저 정도로 심화되면 사돈이 분명 문제를 삼을 테니 그것도 큰 걱정이고.”
제갈가만큼이나 당가 역시 자손이 귀한 곳이다.
‘아니, 근데 일단 당아 성격에 결혼이 될까?’
지금 어둠에 먹히고 어쩌고 상황인 터에 얘가 혼인과 연애를 염두에 두는 것 자체가 상상이 안 간다.
그래도 유교 사회에서 대를 잇는 건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이고.
당아는 보아하니 당가의 가주가 될 게 확실시되는 상황이니 당연히 그런 걱정이 나올 법도 하긴 하지만 말이지.
그래도 남의 일.
“그렇군요. 그런데 저를 따로 부르신 이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