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8
제 38화
물론 진천희도 사람이었다. 싫은 놈은 싫었다.
하지만 실적 앞에서는 감정을 철저하게 죽이고 살았다.
더 나은 수술을 해야 했다. 더 좋은 논문을 써야 했다.
실적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죽는 마지막까지 골프가 싫었지만 그래도 자기 앞가림을 할 정도의 냉철함과 뻔뻔하다시피 한 사교성은 있었다.
누구와도 적당히 지낸다는 것은 괜찮은 실력과 만났을 때 꽤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전임 교수님도 그를 친자식처럼 아꼈다.
진천희는 천천히 입을 벌렸다.
‘웃음은 좋아. 역시 웃고 나니 덜 떨리잖아.’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그랬다. 웃음은 참 좋았다.
진천희는 과거 그가 그의 숙적들에게 했던 말을 유호에게 내뱉었다.
“최종적으로는 스승님을 살려야 하니까.”
“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봐도 너 이상의 패가 없더라.”
진심이 담긴 말이 새장 안을 울렸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말에 유호의 몸이 그만 굳었다.
“저는 당신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 그러려 했지.”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고요.”
“그래. 스승님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이야.”
“…….”
“그건 나와 같네. 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숨을 걸었으니까.”
어째서일까? 유호는 자신이 이 소년에게 압도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천희는 말을 이어 나갔다.
“일단 간호사가 되도록 해. 유호 총관. 그리고 스승님을 구할 때까지 나를 살려 두고. 못 살리면 그때 죽이든가 해.”
“그게 무슨 궤변이십니까.”
소년은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아, 그래. 지금이 지나고 나면 날 죽일 기회는 많지 않을 것 같긴 하네. 내 심복이 된 궁귀가 화경에 올랐으니까 말이야.”
소년은 떨리는 속을 억누르며 태연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거침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순순히 간호사가 되든가, 아니면 여기서 날 죽이든가.”
소년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유호는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기묘했다. 신선하기까지 했다. 소년의 진심이 무섭기도 했다.
소년은 그저 끝까지 한 환자의 목숨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것은 집착이라기보다는 광기에 가까웠다.
유호는 이 작은 소년이 자신의 명줄을 틀어쥐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비둘기 한 마리가 퍼덕이며 유호 쪽의 횃대에 앉았다.
유호는 이제 자신에게서 한 줌의 살의도 풍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랬기에…….
“졌습니다. 도련님.”
……패배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놈에게 백의의 전사가 되라고 하시니, 내 참…….”
“자비니 용서니 하는 말랑한 감정은 아니야. 그저 그게 가장 낫기 때문에 하는 거지.”
“그게 더 무섭군요.”
유호는 쓰게 웃었다.
자신은 진천희의 명줄을 걸었다.
반면 진천희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안고 유호의 간격 안으로 파고들어 왔다.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그래도 제대로 대우해 줄게. 의각 내에서는 귀여운 진천희 포지션이 편하니까.”
“단둘이 있을 때는 굴려 먹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잊었어? 넌 날 죽이겠다고 하는 놈이야. 뭘 봐줘.”
‘대한민국 간호사님들의 업무 강도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여 주마.’
진천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놈을 참다운 백의의 전사로 만들어 주기로.
“나는 계속 살리고, 살릴 거야. 너는 오늘부터 내 곁에서 많은 걸 배워야 할 거고.”
진천희는 그렇게 말하고는 비둘기장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 한마디를 무심하게 남기고는.
“불만 있으시면 지금 죽여. 더 늦기 전에.”
유호는 그런 진천희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조금은 알 것 같군. 궁귀가 어째서 충성까지 맹세했는지.’
단순히 꾐에 넘어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보니 그게 아니었다.
두려워하면서도 의뭉스럽게 다가와 적까지 포섭을 하는 그런 그릇이 있었다.
진천희가 떠난 자리, 유호는 텅 빈 새장에 서서 그렇게 한참을 떠나지 못했다.
소년은 유호로서는 처음 만나 보는 기묘한 숙적이었다.
* * *
진천희의 치료 소식이 퍼지기까지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문은 말보다도 빠른 법. 거기다가 의보를 타고 퍼졌으니 강호에 백린의각에 대한 소문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뭐? 중증 내상을 치료를 했단 말이오?”
“간장부터 비장까지 짓이겨져 있었다고 하더이다.”
의보에는 의각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치료술들이 공개된다.
비인부전인 강호답게 매우 구체적인 치료법까지 적혀 있지는 않지만 환자의 병세와 그것을 치료하는 대략적인 흐름에 대해서는 꽤 상세히 적혀 있었다.
학술지와 잡지 사이 정도의 정보 수준이다.
“환자에 대해 적혀 있지는 않으나 아마 궁귀의 딸, 왕각연으로 보이오.”
딸을 치료해 달라고 이미 수많은 의방을 돌아다닌 터였다. 모르는 의원이 적을 지경이다.
“화주의각 쪽 의방에서 맡았다고 하던데?”
“열흘을 치료해 보고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으니 환자를 버렸다고 하오.”
“명분은?”
“정파의 인물이 아니기에 의각에서 받아 주지 않았다는군.”
“크흠…….”
정보는 빠르게 강호의 수많은 의원들의 입과 입을 지나갔다.
이번에 발행된 백린의보는 그만큼 꽤 큰 파급력을 가져다주었다.
“백린의선께서 제자를 그토록 싸고 도는 이유를 알 것 같군.”
“약관도 지나지 않은 어린아이라던데.”
“중증 내상을 입은 오장육부를 치료하는 게 가능하다니… 백린의각에 돌아가서 직접 배워 보고 싶은데…….”
진천희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 가는 것도 당연했다.
아예 개업해서 나간 백린의각의 의방주들이 다시 의각으로 돌아가 부술을 배울 수 없을지 전서구를 날리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타 의각에 전담 의뢰를 맡기던 문파들도 백린의각으로 계약을 바꿀 수 있을지 모색하는 눈치이기도 했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궁귀가 비록 사파의 일도 많이 했지만, 정파의 일도 함께 하지 않았소? 화주의각에서 받으려고 하면 영 못 받을 정도는 아닐 터인데.”
“화주약선의 실력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니 그런 핑계를 댄 것 아니겠소?”
그 말에 의원들은 말을 잃었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달리 반박할 말이 없었다.
열흘이나 환자를 붙잡아 놓고 의각에서 거절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도리에서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화주의각 소속의 의방주들은 속이 바짝 탔다.
“무슨 소리요! 화주의각이 백린의각보다 실력이 떨어진다는 말이오? 궁귀가 괜히 궁귀겠소? 정파의 일을 받았지만, 그 또한 돈 때문에 한 것 아니오! 오히려 열흘이나 받아준 것은 어디까지나 화주약선의 호의면 호의였지, 다른 뜻이 있었을 리가 있겠소!”
강경하게 나오는 화주의각 소속 의방주들의 분노에 꽤 굵직한 문파의 무인들이 어깨를 으쓱했다.
“요즘 도는 말이 그렇단 말이오. 어찌 되었건 중증 내상 환자를 열흘이나 붙잡았던 게 의원의 도리가 아닌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 않소?”
또한 다른 무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궁귀가 사파이기에 화주의각에서 받아줄 수 없었다면 신속하게 그 사실을 환자에게 알렸어야 했소.”
“무슨 소리! 나는 오히려 이 사달이 난 것이 어쩌면 백린의각에서 만든 흉계가 아닌가 싶소. 의술은 경쟁이 아닌데 경쟁인 것처럼 의보에 쓰여 있지 않소?”
의보 그 어디에도 화주의각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애초에 환자의 신상에 대해 적혀 있는 글귀는 어느 곳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정보 공유에 필요한 최소한의 환자의 상태만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내 화주약선께 이 사실을 모두 말씀드릴 것이오!”
분노한 화주의각 소속 의방주들이 콧김을 내뿜으며 씩씩거렸다.
* * *
“그걸 치료했다고?”
백린의각의 의보가 화주의각에 도착한 건 이 일이 퍼지기도 전, 첫 전서구가 도착했을 때였다. 첩보나 그런 게 아니었다.
그저 의각끼리도 서로 의보를 전달해 주는 것이 오래된 관례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의술을 공유하고 경쟁해 나가는 것은 의각원들에게 꽤 중요한 동기가 되곤 했다.
“개방을 통해 은밀히 확인해 보니 궁귀의 딸 왕각연이 틀림없다고 합니다.”
화주의각 총관, 마진추는 치밀어오는 짜증을 꾹꾹 눌러 참았다.
“아니, 실패할 확률이 높은 환자를 왜 굳이 모험을 해서 일을 이렇게 만드는 건지. 각주님께서는 아시나?”
“네. 대로하셨다고 합니다. 이번 일로 적지 않은 의방주들이 동요하고 있고, 여러 문파들이 백린의각의 새로운 치료법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총관 마진추는 각주, 화주약선을 만나러 갈 용기가 생기질 않았다.
‘분명 이 상태에서 올라가면…… 허이구.’
총관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툭툭 두드렸다.
어차피 매를 맞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뭔가 수습을 하려는 시늉이라도 하고 매를 맞는 것과 그냥 매를 맞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의각원이 말을 이었다.
“아, 또한 백린의각은 그동안 부술에는 약했는데 대체 무슨 수로 치료했는지 기이하다고도 했습니다. 의보에는 제자 진천희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지만 사실 검증이 안 되는 부술법을 사용한 게 아닌가 하고요.”
그 말에 마진추의 눈이 빛났다.
“검증도 안 된 부술로 환자의 몸을 갖고 놀았다는 거지?”
“그렇게까지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만…….”
의각원의 말꼬리가 길게 늘어났다. 그 말에서 총관은 약선의 의중을 파악했다.
“우리 쪽 의각원들 몇을 백린의각으로 보내거라. 혓바닥으로는 절대 지지 않을 놈들로 보내야 한다.”
“하면 무슨 명분으로 보내면 될까요?”
“우리 쪽이 스무날이면 치료할 수 있는 환자를 검증이 안 된 부술을 사용하여 위험에 빠뜨렸을 수도 있지 않느냐.”
화주약선의 기술로는 치료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열흘을 더 주었으면 치료가 되었을 거라 총관은 뻔뻔하게 혓바닥을 놀렸다.
의각원은 그 뜻을 한 방에 깨달았다.
“네, 어차피 의각에 들이지 않았어도 의방 수준에서 치료가 가능한 환자였습니다. 궁귀가 참지 못하고 간 셈이지요.”
“그래. 말 잘했다. 환자분이 걱정이 되어 왔다고 하거라. 그러면 내치지 못할 것이다.”
“내친다면요?”
“소문을 내기 좋은 명분 아니겠느냐. 어느 쪽이든 흠집을 낼 수 있으면 된다. 그리하면 거래 문파들도 더는 이탈하지 않을 것이다.”
총관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밑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의각원은 깊이 예를 표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 * *
같은 시간, 진천희는 자신을 연마하고 있었다.
스승님의 상태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나쁘다. 그러니 더욱 빨리 강해져야 했다.
지금의 진천희에게는 수술을 혼자 유지시킬 내공도, 진법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다.
진천희는 화기와 수기, 그리고 목기를 구결대로 운용했다.
가부좌를 튼 진천희의 주변에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