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85
제 385화
“음? 구슬은?”
“무슨 구슬?”
사마현의 말에 구슬이 있던 곳을 돌아보니 처음부터 없던 듯 사라져 있었다.
‘들고 간 건가?’
그 사이에 그걸 챙겨 가다니 어이가 없다.
여기에는 화경의 고수가 둘이고 영물이 둘이다.
심지어 황구의 코를 속이는 살수는 아직 만나 본 적도 없고.
‘허허허, 육각영독사가 죽이려고 마음먹었으면 난 이미 죽었겠네.’
영물을 상대로 경지의 격차를 느낄 줄은 몰랐지만 헛웃음이 나올 만큼 강했다.
‘강호는 넓고 강자는 많구나.’
많이 강해졌다고 오만해졌던 모양이다.
진천희는 육각영독사가 사라진 자리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 * *
다음 날 아침.
아침부터 다시 오독문 의원들이 찾아왔다.
“커흠, 우리가 대협에게 말이 심했던 것 같소.”
“사과하리다. 부디 받아 주시오.”
“…….”
이번에는 아예 자존심을 버리고 우르르 사과를 건네기 시작했다.
‘와, 오독문 대체……. 얘들 진짜 재미있는 애들이네.’
이쯤 되니 사마현의 마음으로 이 상황 자체를 즐기게 되기 시작했다.
진천희는 푸른 눈으로 생각했다.
‘본인 의지로 사과하는 건 아닐 거고, 위에서 까이기라도 한 건가?’
무림의 방식은 아니다.
그렇다고 사파의 방식이라고 하기에도 뭔가 이상했다.
이쯤 되니 이자들이 어디까지 갈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진천희는 도리어 환하게 웃었다.
“좋습니다. 의술에 대한 의지가 있는 분이시면 누구든 상관없죠. 함께 교류를 해 볼까요?”
“오오오오! 고맙소이다!”
“과연 대협이오. 마음이 넓기가 흡사 장강과 같구려!”
이번 교류회는 그럭저럭 굴러갔다.
오독문에서 독을 이용한 치료제 몇 개를 꺼냈다.
진천희는 당가에서 보여 주었던 원시 현미경을 선보이고, 세균과 세포에 대해 교류를 했다.
호응은 좋았다.
“오오, 과연 사람이란 결국 별처럼 많은 소우주(小宇宙)의 집합체인 것인가.”
당가와 비슷한 반응이다.
허나, 음양오행으로 구성된 세계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위생 개념에 대해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오독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일필삼욕(日必三浴).
뜨거운 여름에는 하루 세 번은 목욕하라는 뜻이다.
물이 풍부한 지역이다 보니 목욕 자체를 자주 하는 편이다.
다만 계곡이나 연못, 강에서 목욕을 하는데 여과되지 않은 물에서 비누가 없이 하는 목욕이다 보니 씻으러 갔다가 오히려 기생충이나 각종 수인성 질병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정수 장치 없는 세계에서 비누 없이 하는 목욕이지만. 그래도 안 씻고 사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허나, 목욕을 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도리어 하고 있는 상황이니 이런 부분을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과정이 꽤 오래 걸린다.
‘차라리 비누가 나쁜 기운을 쫓아낸다고 사기라도 치면 편할까.’
허나, 그래서는 안 된다.
이러한 거짓말은 또 금방 들통 나기 마련.
인간이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비누를 쓴다고 해도 병이 오는 경우가 있지 않나.
비누가 병을 크게 예방하긴 하지만 그게 만능이라고는 할 수 없지.
당장 호흡기 감염도 있는 판에.
그러다 보니 섣불리 사기를 칠 수는 없는 법.
‘그래도 푹푹 쪄서 땀날 때 비누 써서 목욕하는 게 기분도 시원하니까.’
돈 때문에 비누 보급하러 온 것처럼 보일까 봐 괜히 걱정은 좀 된다.
그래도 진천희의 이야기에 오독문 의원들도 생각보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성공적인 교류회인가.’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보가 공유되고 있다는 점에서 합격이긴 하다.
‘이럴 때는 담백하게 구는 게 좋지.’
진천희는 일부러 눈치 없는 사람인 양 굴었다.
‘처세술이라는 게 예민한 사람이 잘하는 게 아니지. 둔한 척하는 사람이 잘하는 거지.’
어른의 지혜다.
다만 사천당가 때와 다르게 신약이 ‘뿅!’ 하고 나오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백린의각에서도 모르는 독과 그 효능, 해독의 방식에 대해 알게 되었고.
표본도 일부 받을 수 있었다.
오독문의 독충을 이용한 의술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살을 꿰매는 대신 개미를 자극해 창상을 물게 만든 다음 몸통만 뜯어서 봉합하는 방법은 제법 독특했다.
몸이 뜯겨도 개미의 턱뼈가 벌어지지 않는 게 무척이나 신기했다.
한번 문 건 죽어도 계속 물고 있는 모양이었다.
특히나 운남 개미는 턱이 크게 발달되어 있어서 꽤 큰 상처도 봉합이 가능했다.
일종의 스테이플러 역할.
‘음, 감염 문제가 걱정되긴 하지만 급한 상황이라면 활용할 수도 있겠는데.’
그렇게 교류회 5일 차가 되었다.
* * *
“오늘은 위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죠.”
“부술에 위생이 얼마나 중한지는 이제 이해할 것 같소. 일전의 세균에 대한 이야기의 확장으로 보이네만. 그렇지 않소?”
사람들은 흔히 백린의각, 화주의각, 흑전의각을 천하 삼 대 의각이라 칭한다.
그 외에 사천당문이 직접 운영하는 의각과 오독문의 오독의각 등.
의각이라는 형태만 보면 강호에 약 열 개 정도가 이름이 알려져 있다.
허나 이 중 둘은 파산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유는 다른 게 없다.
문파들이 거래처를 옮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천하 삼 대 의각이야 각자 자신만의 분야가 분명하여 흔들릴 게 없다고는 해도, 백린의각이 부술을 성장시키며 특히나 응급 외상 치료에서 두각을 드러냈기 때문.
병사(病死)보다 칼빵으로 갈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게 바로 이 미친 강호다 보니.
앞다투어서 이 응급 외상 치료에 특화된 백린의각과 거래를 트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냐면 수백 년이 넘게 계약해 온 전통 있는 의각과의 거래를 깰 정도.
현대라면 당연히 더 잘 치료하는 병원에 가면 되지 않겠냐 하겠지만, 여기는 많이 다르다.
집 하나에 수백 년 동안 대를 이어 살아오는 가문도 있는 시대다.
문파가 이사하는 것은 혈사만큼이나 위험한 일이다.
가지고 있던 모든 인맥과 평판을 버리고 이동하는 일.
또한 이사 가는 곳에 자리한 기존 문파가 눈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 보통은 한바탕 피바람이 불기 마련.
결국 한번 문파가 정착하면 혈사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그 자리에 머무는 게 여기 상식이다.
하물며 선대의, 선대의, 선대의, 선대부터 시작된 거래를 끊고 옮긴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얼마나 용기가 필요하냐면.
목숨을 걸고 옆 문파의 장문인과 생사결 벌이는 게 이거보다 쉬울 정도다.
그런 일이 이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바람을 타고 의각 산하의 분타를 공격적으로 세우기 시작했다.
무월은 이런 일의 전문가였는데.
하오문에서 객잔 인수하듯이 망한 의방을 인수해 백린의각의 분타로 탈바꿈을 했다.
망한 의방의 의원들은 백린의각 소속으로 들어와 재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인수를 통해 빚을 갚아 주고 또한 재기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뒷말이 남지 않는다.
거기다가 그 의원은 백린의각 소속으로 명패만 바꿀 뿐.
교육이 끝나면 돌아온다.
결국 사람은 그대로란 뜻이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맥 역시 그대로란 뜻.
‘그게 바로 문파들이 거래처를 백린의각으로 옮기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지. 소속 의각은 바뀔지라도 그 지역 의원의 성씨는 그대로거든.’
그리고 그렇게 인수되어 교육받은 의원들은 백린의각을 통해 더욱 실력이 높아지고, 지역의 의료 서비스가 더 좋아지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백린의각이 구축한 유통망을 통해 약재와 각종 의약품을 빠르게 보급받을 수 있기에 환자의 사망률은 자연히 낮아지기 마련.
그 결과 다른 의방과 의각들은 경쟁에서 도태되기 시작했다.
같은 천하 삼 대 의각급이거나, 아니면 당가의각이나 오독의각처럼 한 지역의 패권을 차지한 문파가 뒷배인 경우가 아니라면 애초에 상대가 어려운 수준.
그런 상황에서 백린의각 소각주를 맞이하여 오독문 측에서도 오독의각의 각주가 직접 나서서 의술 교류에 매진했다.
지금 진천희에게 질문을 던진 이가 바로 그 사람.
오독의각의 각주 야무주라.
오십 대의 사내로, 외향만 보면 금충족으로 보인다.
‘첫날에는 날 호구 잡으려고 했지.’
그래도 둘째 날부터는 자세를 낮추고 합리적으로 교류를 했다.
“사실 백린의각은 비누의 보급을 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일을 보고 와서 손을 씻는 건 감염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되거든요.”
기초 중의 기초.
만나는 의원마다 말하고, 용봉지회 때도 설명하고, 주왕부에서도 이 설명을 또 하고.
여기 와서도 또 하고 있다.
웃기긴 했다.
점혈을 통해 지혈을 하는.
지구에서는 절대 불가능하고, 과학적으로도 해명을 못 하는 엄청난 의술도 아무렇지 않게 펼치는 이곳이.
정작 비누나 감염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게.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한데 가끔 이렇게 적응이 안 된단 말이지.’
오독의각 의원들은 진천희의 말을 귀담아듣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시큰둥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유는 다른 게 없다. 귀찮기 때문이다.
귀찮음은 비누의 가장 큰 적이다.
그건 무림이나 현대나 다를 게 없고, 특히나 익숙지 않은 무림은 더 큰 적이다.
‘비누의 효능과 효과를 대놓고 의심하는 사람은 이제 없나.’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족족 논파를 했더니 이제는 손도 안 든다.
‘그래도 열의가 있는 의원들이 몇 보이기도 하고.’
덥고 습한 지역이니 한 번만 제대로 뚫는다면 보급 자체는 엄청난 속도로 퍼질 게 자명했다.
여전히 오독의각주의 속을 알기는 어렵다만.
* * *
그렇게 아침 교류를 끝내고 오독문의 의원들과 점심을 함께 먹었다.
‘망고를 이용한 화채인가. 맛있는데?’
진천희가 열심히 망고 화채를 퍼먹는 동안 백린의각의 상의원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운남성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장례 문화는 조금 위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풍장의 위치를 조금만 마을에서 떨어지도록 옮겨 주신다면…….”
어딜 가나 속에 담고 있는 걸 말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나쁜 건 아니다. 어찌 보면 옳은 말이긴 했다.
허나, 옳다는 것은 무얼까. 결국 상대적인 게 아닐까.
진천희 입장에서는 약간 우려되기는 하나 결국 이쪽에서도 그곳에 풍장을 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본인의 문제이니 본인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기에, 관련 이론만 교류하고 끝낼 생각이었다.
“…….”
오독문의 싸늘하게 가라앉는 분위기를 보니 그 예상이 맞긴 했다.
말을 꺼낸 상의원도 아차 싶긴 했던 모양이었다.
“말, 말실수를 한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만. 풍수상 바람의 위치와 지하수의 흐름이 좋지 못하여…….”
“귀하는 우리의 신성한 장례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 것 아니오?”
“그런 의미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