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91
제 390화
“호오?”
“그러니까 단순한 돌팔이가 아니라, 뭔가 목적을 가지고 그렇게 움직이는 게 아닌가. 그렇게 추측하니까 아귀가 맞기 시작하더라고.”
그 말에 사마현이 턱을 문질렀다.
“확실히, 단순히 자신의 보신만을 위한다면 선대가 정한 것들을 굳이 바꿀 필요는 없으니까. 잘 돌아가고 있던 것을 굳이 뜯어고친다는 건, 오히려 모험수지.”
“응. 그렇게 생각했어.”
“그래서, 이제 해야 할 일은 다 한 거야?”
“아니. 이제 본격적으로 치료에 들어가야지. 부술을 해야 할 분들도 계시고.”
중상자가 무려 여섯 명.
합병증에 의해서 수술이 필요한 이들이었다.
만사 제쳐 놓고 수술하지 못한 것은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혹시 외부에서 수술을 해야 할지 모르기에 가져온 것들이 있지만, 그것들을 설치하고 준비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아무것도 없어서 급하게, 감염도 신경 쓰지 못하고 수술해야 했던 운룡표국 때와 지금은 장비 면에서 많은 것이 달라진 셈이다.
“그러면 나는 외부 방비를 맡을게. 만선 대주하고 같이 하면 되지~?”
“미안하다, 현아. 너는 그냥 금혈방에 돌아가면 될 일이었는데.”
“뭘~ 나야 형이랑 더 놀면 좋은 거지. 그러면 형, 힘내.”
“그래. 해 볼게.”
진천희는 그리 말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금혈방의 지원이 올 때까지 항생제는 한정된 자원이다.
넉넉하게 챙겨 왔다고는 하나, 마을 하나의 역병을 모두 구할 정도의 양은 아니다.
‘음, 손이 떨리는군.’
사마현과 헤어진 후, 진천희는 적당한 기둥에 등을 기댔다.
심마란 참 지긋지긋하다.
이제 드디어 경지에 올라 벗어났나 했더니, 더 큰 역경에 다시 고개를 들이밀고 만다.
현원전단신공을 극성으로 돌리기를 반복했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기둥을 기준으로 시야를 가늠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기울었던 세상이 다시 돌아왔다.
‘설령 바닥이 기울어지는 것을 넘어 완전히 위아래가 뒤집힌다고 할지라도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지장이 없다.’
일반 강호 의원이라면 모르겠으나, 자신의 경지가 자신을 그렇게 놔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이 일이 어떻게 끝날지, 제한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지, 그게 두려웠다.
‘아직 열은 없군.’
걸렸을지 걸리지 않았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관광버스에서 다 같이 똑같은 걸 먹어도 누구는 식중독으로 실려 가고 누구는 멀쩡하게 잘 지내는 것과 똑같다.
확률이 높다 낮다 정도니까.
‘내가 먹을 약은 남아 있으면 좋겠는데.’
물론 발병하지 않는 게 가장 좋지만.
* * *
대개 강호의 명문 대파라고 한다면, 그 본단의 규모는 작은 도시에 버금간다.
무인들만 해도 적어도 천여 명이 살아갈 수 있고, 그런 무인들을 위해서 일하는 시종과 하인들의 수만 해도 다시 천여 명이 넘는다.
적어도 수천여 명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
거기에 그 사람들의 가족이 주변에 사니, 그 사람들을 위한 상공업이 발달하는 것은 당연지사.
때문에 그 규모는 도시의 규모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오독문의 내부에서 은밀한 회동이 이루어진다 한들,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면 알기 어렵다.
지금 여기.
오독문 부문주의 거처에서 일어나는 밀회가 그러했다.
대담하게도, 부문주는 자신의 거처에 자신이 손잡은 상대를 불러들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수호 영수는 앞으로 며칠간은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준비는 되었나?”
오독문의 부문주, 그가 질문한다. 그러자 미청년이 비릿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는 분명 진천희와 충돌했던 자.
풍장의 위치를 정한다고 하는 신인이었다.
“물론이지. 벽안광의는 이미 덫에 걸려들었다. 소문대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더군.”
“어리석은 위선자의 한계겠지. 그 잡종도 그렇겠지만…….”
“자, 판은 깔아 두었다. 이제 그대가 해야 할 일은 알겠지?”
“알고 있다. 출진해서 벽안광의를 잡으면 되는 일 아닌가?”
“문주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가?”
“이번에 같이 처리하면 될 일이지. 그렇지 않아도 사사건건 방해를 하니, 이참에 끝내고 내가 문주 자리를 차지하는 게 더 편할 터.”
부문주의 말에 신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계획대로 되기를 기원하지.”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이윽고 신인이 어떤 말을 내뱉었다.
“암세천하, 암세, 암암세.”
그 말에 부문주도 화답하듯 같은 구호를 말했다.
“암세천하, 암세, 암암세.”
마교 초대 교주의 의지를 담은 구호를 오독문도인 두 사람이 외치고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지역 자체가 더운 지역이다.
때문에 뜨거운 물로 목욕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전부 냉수로 씻는다.
당연하지만, 장티푸스는 그런 물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감염이 될 수 있었다.
특히나 진천희가 듣기로 일필삼욕을 실천하는 지역이라고 하지 않던가?
결국 전염병의 확산이 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무조건 끓인 물을 먹고, 끓인 물로 씻으라고 하면……. 이 사람들이 그걸 실천할 수 있을까. 살모넬라균을 일종의 고독(蠱毒)으로 받아들이는 걸 보니, 그쪽 개념으로 설득하면 될 것 같기도 한데…….’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가스레인지가 없는 세계다 보니 결국 뜨거운 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장작을 패서 열을 만들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당연히 노동력이 추가될 수밖에 없다.
‘현대인인 내가 잘난 척 [님들, 끓인 물만 드셔야 해요!]라고 말해 봐야 꿈같은 이야기이긴 하지.’
완농 같이 아예 그쪽으로 문화가 정착된 곳도 아니고. 진천희가 대신 장작 패 줄 것도 아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잠깐 물을 끓여서 처치를 하는 건 가능하겠으나 그다음은 어찌해야 할까.
‘결국 모든 것은 실질적인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아무리 미래의 지식을 안다고 한들, 과거의 사정을 모르는 한 결국 일종의 선민의식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진천희는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생각하자. 눈앞의 환자가 우선이야.’
당장 질병이 발병하게 되었을 때 자신을 위한 항생제가 남아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의원은 일부러 시야를 내리깔았다.
먼 곳을 보기보다는 지금 이 발밑 수렁을 벗어나는 게 우선이니까.
진천희는 거기까지 생각하며 수술실로 들어갔다.
화기로 몸을 태우고, 임시로 만든 진법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했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총 여섯인가.’
모두 한시라도 빨리 부술을 집도해야 생명을 구할 수 있다.
허나, 집도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고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같이 온 의원들 모두 상의원으로, 진천희 밑에서 갈릴 대로 갈려 본 망자들.
그 말인즉, 의원들 사이에서도 수술 경험이 제법 많이 쌓인 베테랑이라는 뜻이었다.
“허허허, 소각주님, 제가 여기서도 부술을 하고 있습니다아.”
얼이 빠진 표정으로 상의원 하나가 말했다.
눈에 생기라고는 전혀 없으나 몸은 착실하게 수술 준비를 하고 있다.
인간으로서 소중한 뭔가를 잃어버리고 대신 인류의 진보와 사람을 구하는 지식을 얻은 역전의 용사다.
진천희는 흐뭇해졌다.
“같이 와 주셔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분명 출발하기 전에는 열대 과일이나 먹고 관광이나 할 거라고 했는데… 사기당한 기분입니다아…….”
“하하하, 그게 우리네 인생이지요.”
화사한 미소로 상의원들의 입을 닥치게 하고 진천희는 목을 우득우득 풀었다.
환자는 마취가 끝나서 잠이 들었고, 상의원 하나가 맥을 재고 있다.
“항생제는 제법 챙겼지만 마취약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소각주님. 앞으로 다섯 개를 다 쓰고 나면 어찌 될지 몰라요.”
“네. 부술을 할 일이 더 생기지 않길 기도해야겠죠.”
‘그래. 자원은 언제나 부족하지. 한 번도 넉넉해 본 적이 없…… 어라.’
여기는 강호다.
진천희는 몇 번 더 되뇌었다. 그러고는 찬찬히 자신을 통찰했다.
만약 실수가 생길 거라면 지금이라도 물러나는 게 옳으니까.
“…….”
현원전단신공이 사고의 구석구석을 점검했다.
역시나 기능에는 문제없다.
그렇다면 이 몸뚱이를 활용할 수밖에.
“장 천공 환자, 나이는 서른여섯.”
“예, 장 세척을 위한 준비도 끝났습니다.”
“그러면 집도하겠습니다. 오늘은 긴 하루가 될 거예요. 하하하.”
천공은 늘 문제다.
쉽게 말해 장기에 구멍이 나는 것을 천공이라고 부르는데, 위에 나면 위 천공, 장에 나면 장 천공이라고 한다.
장티푸스의 가장 큰 문제가 파이어판(Peyer’s patch)의 손상이다.
파이어판이란 작은 쌀알 형태를 하고 있는데 림프 소절이 모여 있는 곳으로, 면역 체계에 무척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장이 영양분을 흡수할 때 이 파이어판을 통해 림프구들이 세균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한다.
이 장티푸스란 놈은 일부러 이 파이어판에 있는 대식세포에게 스스로 먹혀서 그 안에서 생존, 번식을 한다.
그렇게 대식세포가 이동하면 그걸 따라 고대로 장티푸스균도 퍼지게 되는데 당연히 합병증의 큰 원인이 된다.
전신에 장티푸스균을 뿌리는 동안 파이어판은 궤양이 생기고, 심하면 구멍이 뚫리고.
‘장 폐색~ 골수염~ 관절염~ 담낭염에…… 이하선염에…… 사람에 따라 난청이 와서 안 들리는 경우도 있고요오~’
이러한 합병증이 사망률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흡사 트로트 부르듯 진천희는 흥얼흥얼 장티푸스 합병증 목록을 마음속으로 읊었다.
‘그래. 적어도 한번은 볼 줄 알았다. 장티푸스.’
직속 의원들을 데려와서 다행이지.
“우리 친구 칼 좀 대기 전에 한 번 더 진맥 좀 해 보자. 뭐, 이 정도면 활력도 괜찮고. 지금 봐서는 다른 합병증은 안 보이지마안……. 부술 끝나고 항생제 투여하면서 계속 지켜봐야겠네요.”
진천희는 곧바로 개복을 시작했다.
개복을 하는 속도에 맞춰서 상의원들이 점혈을 하며 출혈을 최소한으로 막았다.
당연히 혈액도 부족하다.
피는 환자의 생명이다. 그러니 미숙한 집도의가 칼을 쥐면 안 되었다.
진천희는 곧바로 내장을 끄집어내서 몸 내부의 오염된 부분을 닦아내고 절제해야 할 부분을 절제해 나갔다.
“괜찮아요. 이 정도면 생각보다 괴사가 심하진 않아. 환자님 평소 건강하게 사셨구나. 이게 술만 덜해도 훨씬 낫지.”
깔끔한 절제.
피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 후, 곧바로 다음 상의원이 혈도를 짚어 다시 출혈을 막고 봉합해 나갔다.
“헝겊은 앞뒤를 뒤집어서 꿰매니 편하던데 왜 사람은 그걸 못 할까.”
진천희는 일부러 이상한 농담을 내뱉으며 분위기를 유지해 나갔다.
상의원들은 그런 진천희를 계속해서 보조했다.
‘원래라면 봉합은 우리에게 맡기시는데 빨리 끝내려고 직접 하시는 거 같아.’
‘저 속도를 우리는 못 따라가.’
‘저만한 정확도……. 화경이면 가능한가?’
그러다가 문득 상의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소각주님만큼 하려면 소각주님만큼 굴러야 하지 않나?’
이윽고 그들의 눈은 다시 영혼 뺏긴 부랑자의 눈이 되었다.
“캬아, 역시 나다. 재봉선 깔끔한 거 봐라.”
그렇게 자화자찬을 하는 진천희를 상의원들이 바라보며 생각했다.
‘소각주님……. 저희는 무리입니다.’
롤 모델로 삼기에는 지금 갈리는 것만으로도 죽을 맛이다.
워라밸이 괜히 워라밸이 아니지 않나.
의술은 중하지만 의원도 사람인데, 사람이 일단 살고는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