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92
제 391화
그 이후 차례차례 수술을 이어 나갔다.
서두르면서도 침착해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
허나, 하지 못하면 환자는 죽는다.
다행히 실수 없이 무사히 모든 수술을 끝냈으나 환자 하나는 결국 유명을 달리해야 했다.
살아난 환자 가족들의 기쁨과 반대로 사망한 환자 가족의 오열이 진창처럼 섞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백의신룡! 소의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제발 사례를 하게 해 주십시오.”
“괜찮습니다.”
진천희는 안면 근육을 당겨 최대한 부드럽게 거절했다.
그의 옆에서 돌아가신 분의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통이라면 마주치지 않게 해야 하건만, 그렇게 자리를 분리할 여력도 지금은 없다.
“시신은 화장을 해야 할 겁니다.”
“화장이요?! 설마하니 우리 아버지를 불타는 염옥으로 보낼 셈이오?!”
“풍장을 하시면 안 됩니다.”
원래라면 이 시신을 만져서도 안 된다.
허나 지금으로서는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벽안광의! 설마하니 지금 내게 불효를 저지르란……!”
그때, 사마현이 다가왔다.
“오, 형? 고생했어. 아저씨는 왜 그렇게 화가 나셨대?”
“지금 아버지를 화장하라 하지 않았나!”
“아저씨~ 불교 믿자. 응? 지금부터 개종하면 돼.”
“그게 말이라고…….”
그 순간, 사마현이 돌벽을 쥐었다.
우드득.
내력을 담아 친 것도 아닌데 악력만으로 벽이 움푹 파인다.
돌벽에 사마현의 손자국이 남자 상대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버지도 아들이 이렇게 개죽음당하기를 바라진 않을 거야. 알잖아? 응?”
“…….”
사마현은 그러고는 진천희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형, 너무 잘해 주지 마.] [현아.] [형도 이미 한계잖아. 나머지는 나한테 맡기고 형은 다음 일 해.]진천희는 눈가를 쓸었다.
[방역이라는 거, 병을 막는 대신에 모두 조금씩 불편한 거 감수하고 사는 거 아니야?] [맞아. 그게 방역이야.] [그러면 저 사람이라고 편의를 봐줄 수는 없어. 한 사람이라도 풍장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풍장을 하게 될 거야. 앞으로 생길 사망자가 이 사람 하나일 거 같아? 난 절~대 아닐 거 같은데? 게다가 난 솔직히 형 아니었으면 이 새끼들 다 죽였어.]그 말에 진천희의 표정이 천천히 식어 갔다.
사마현이 곧바로 다음 전음을 했다.
[농담~] [행여라도 그런 농담 하지 마.] [알았어. 아무튼 가서 다음 일을 하든 쉬든 해.]사마현은 그렇게 형을 내쫓았다.
‘위태위태하다니까~ 하여간.’
강할 때는 백만 대군이라도 상대할 거 같더니, 이럴 때는 사람을 걱정시킨다.
그러니 어쩔 수 없지. 사마현은 자기가 잘하는 걸 하기로 했다.
“응. 그래, 아저씨. 말해 봐. 나랑 같이 불교 믿을 거지? 내가 그래서 지금 살생을 안 하는 거거든~ 부처님 때문에.”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하자. 그럼 아저씨, 아저씨가 안 믿으면 나도 불교 안 믿을게. 그러면 살생해도 되겠네?”
우드득-
사마현이 주먹을 하나하나 쥐어 보였다.
돌벽 따위 가루로 만드는 손이다.
양민을 협박하는 일은 무인이 할 짓이 아니지만, 알 게 뭔가 싶다.
내가 사파인데.
사파가 사파답게 해결해 먹겠다는데 뭐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아저씨, 무슨 종교?”
“부, 불교…….”
그 말에 사마현의 눈이 가늘게 웃었다.
“좋네. 그래, 극락왕생해야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 *
‘수술이 끝났다고 해도 전염병 자체는 적어도 열흘에서 이십 일 정도 치료를 계속해야 해. 그리고 만약 우리 의원들 중에서 발병자가 생기면…….’
진천희는 그리 생각하며 밖으로 나갔다.
그때.
삐이이익-
뇌진이 울면서 진천희의 머리 위에 턱 내려앉았다.
그러고는 ‘딱딱’ 보란 듯이 부릿짓을 했다.
이 부릿짓은 최소 반나절 거리에서 사람들이 접근 중이라는 의미.
“만서어어언!”
진천희의 외침에 멀리 있던 만선이 단숨에 달려왔다.
“예! 소각주님!”
“진법을 설치할 시간입니다. 전투를 준비해야겠어요.”
“벌써요?”
만선이 살짝 놀란 기색으로 눈을 홉떴다.
“밀림에서는 말보다 빨리 달리는 자들입니다. 이미 집결이 끝났어도 이상하진 않죠. 허나, 그쪽에서도 우리 진형을 보았을 테니 작전을 짜긴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소각주님!”
“네?”
“부디 잠시라도 좋으니 쉬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소각주님께서 취침에 들었다는 전갈을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식사는…….”
그 말에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대로 배분해서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눈앞의 청년이 실수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는 있다.
허나, 동시에 이 청년의 몸이 말라 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건강을 챙기기 어려운 상황 역시 알고 있었다.
지금 이곳은 진천희가 아니면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고, 유일하게 그만이 이곳을 지켜 낼 수 있으니까.
‘그걸 본인도 아시니까……. 이렇게…….’
만선은 어렵게 입술을 뗐다.
“존명.”
* * *
진천희는 임시 숙소로 들어가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최소한의 피해로 끝내려면 머리를 식혀야 해.’
만약 아군이 다친다면 치료해야 할 터.
허나 상의원의 말대로 수술할 마취제도, 항생제도, 혈액도 부족하다.
진천희는 운기를 하며 휴식을 취했다.
보옥의 효과로 몸의 회복력은 누구보다 빨랐으니 다행인 일이었다.
‘음……. 다시 바닥이 기우는군.’
슬슬 이제 포기하게 된다. 현원전단신공으로 어떻게든 인지를 돌려도 돌려도 계속해서 기울고, 또 기울게 된다.
‘이 일이 끝나면 쉬어야지.’
결국 이게 끝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고생할 상이다.
애초에 전쟁터 속에서 나 혼자 편하기는 그른 일이니까.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운기를 끝내고 진천희는 눈앞에 있는 간이 보존식을 입에 넣었다.
‘이건 미리 만들어 두길 다행이네.’
일전에 만들어 보급한 죽통 보존식.
이런 일을 상정하고 만들었던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조리법도 간단하게 고안해서 그냥 팔팔 끓는 물에 넣기만 하면 된다.
오행신공이 숙련된 상의원급이면 화생기만으로 달궈도 된다.
영양 공급은 좋지만 맛은…… 별로다.
그걸 씹으며 진천희는 미친 생각을 했다.
‘내가 반드시 이 죽통밥에 MSG를 첨가하고 만다.’
전시의 가장 엿 같은 점은 먹을 게 없다는 거다.
맛집? 식당이 문을 열었을 리가.
간식거리? 벽돌 같은 군용 비스킷이 기다리고 있다.
스트레스 해소? 술밖에 없다. 그리고 술 한 병이 총보다 비싸다.
‘아니 X벌……. 무림도 먹을 게 없어.’
장티푸스 상황에서 과일을 덥석덥석 집어 먹을 수도 없고. 정해진 것만 먹자니 아주 죽을 맛이다.
반드시 죽통 도시락에 MSG를 넣고 말리라.
금혈방에 MSG의 맛을 내고도 객잔을 말아먹은 기적의 요리사가 있다고 하니 꼭 협업하고 말리라.
진천희는 이를 갈았다.
삐이익-
뇌진이 밖에서 다시 길게 울음을 토했다.
‘적이 다가왔구나.’
낮은 수술, 밤은 전쟁의 시간이었다.
쓴웃음이 나왔다.
* * *
오독문에서 보낸 무인은 총 백여 명 정도.
신인이라는 자는 보이지 않았다.
“마을이 보입니다.”
“제갈세가는 강호 놈들 중에서도 가장 간교하기로 유명한 자들이다. 조심해야 할 것이야.”
장로의 말에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길을 헤맸다.
“석병팔진을 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최대한 빨리 출발했건만 이리도 빨리 진법을 구축해 내다니.”
일단 무인들을 멈추게 했다.
이윽고 무인들의 대표로 보이는 자가 나와 크게 외쳤다.
“나는 오독문의 충독(蟲獨)당주 아리초다–! 벽안광의! 감히 본문의 영역에서 진법을 구축해 난동을 부리는 것인가–!”
그의 외침에 이윽고 진천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총독당주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꽤나 가까운 거리에서 포권을 했다.
허나 눈으로 보기에 가까운 거리라 해도 제갈세가의 진식이 구축된 이상 함부로 공격하기는 어려웠고.
진천희는 이 상황 속에서도 긴장한 기색 하나 없이 태연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난동을 부린다니 어폐가 심하시군요. 저는 그저 역병을 치료하고 있는 것뿐입니다만. 오독문 측에서 치료를 포기하였기에 백린의각에서 나선 것뿐입니다.”
말만 들어서는 평범한 구호 활동으로 보였다.
창칼을 쥔 무인만 없다면 더 그리 보였을 터.
“헛소리! 신의 노여움은 치료될 수 없음을 모르는가! 네가 어떤 사술로 일시적으로 치료하고 있는 모양이나, 그것은 거짓된 것일 터.”
그 말에 진천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사술이라. 그래. 그리 말할 거 같긴 했어.’
이윽고 아리초는 내력을 담아 크게 소리쳤다.
이 지역의 방언이었으나 이제는 진천희도 대충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마을의 사족들은 모두 들어라! 지금이라도 신의 노여움을 받은 이들을 죽인다면 용서해 주겠다!! 허나 저항한다면 너희 모두를 내 이름을 걸고서라도 절대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 말에 진천희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오독문은 기어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는 것인가.’
진천희뿐만이 아니었다, 백린의각 무력 사 대의 무인들도 분노한 표정으로 이를 까득 갈았다.
‘저것이 사람인가? 절박한 자들에게…….’
아니나 다를까. 마을 주민 중 하나가 외쳤다.
“맞…… 맞아! 외, 외지인의 말을 들어서는 안 돼! 신인께서도 신의 노여움은 제물로만 해결한다 하지 않았나!”
단순히 광신일 수도 있다.
허나 다른 이 하나가 맞장구치듯 말했다.
“만약 지금 오독문의 무인을 물린다고 해도 결국 백린의각 사람들은 언젠가는 떠날 자들 아닌가!”
“그들이 떠나고 나면 우리는 어찌 되는 거지?”
술렁이는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가 선동하듯 외쳤다.
“외지인들은 물러나라!”
“외지인들은 꺼져라!”
기다렸다는 듯 농기구를 들고 뛰쳐나오는 모습을 보며 진천희는 차분히 생각했다.
‘음, 아무래도 주민들 안에 프락치가 있긴 한 거 같네.’
뭐 ‘모두가 힘드니 오순도순 해결해 봐요~’라는 건 동화 속 이야기임을 알고 있다.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방금 자신들을 지켜 주기로 한 백린의각보다 오랫동안 자신들을 지배해 온 오독문을 더 믿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수는 생각보다 많았고.
흔들리는 사람들도 선동할 정도가 되었다.
‘인간이란 뭘까. 저 사람들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 저러는 걸 텐데.’
오독문은 저렇게 선동하는 자들에게 뭘 약속해 준 걸까.
그중에 자유는 결코 없음을 진천희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유가 과연 내일의 목숨보다 소중할까?
그저 살던 대로 살고, 처맞을 대로 처맞으면서, 비참하지만 안온하게 사는 것도 방법이겠지.
왠지 명치가 까맣게 타는 것 같았다.
구그그그-
지축이 기운다.
이 소리는 필시 이명이겠지.
전투에 방해가 되는가, 사람을 구명하는 데 방해가 되는가.
내 기능은 온전한가.
푸른 눈이 그저 기계처럼 자신을 분석해 나갔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만큼은 그 잘난 현원전단신공도 답을 하지 못했다.
‘왜 굳이 사람을 구명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