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
제 4화
“그런 일을 당연하게 하는 사람이 적은 것이 강호지요. 국주님, 저는 여기 남아서 환자들을 치료해야 할 듯한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몹시 위중해서 적어도 어느 정도 치료가 될 때까지는 운반도 어려워 보입니다.”
“운룡표국은 동료를 버리지 않을 것이오. 반을 이곳에 대기하게 할 터이니, 뒷일은 잘 부탁드리겠소. 다녀와서 이 은혜를 갚도록 하겠소.”
국주는 그리 말하고서는 등을 돌린다.
“그리고 소형제. 자네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자네에게도 반드시 이 은혜를 갚도록 하겠네.”
그는 진천희에게 깊게 포권을 했다. 2미터가 넘는 곰 같은 사내가 작은 아이에게 인사하는 모양새는 썩 웃겼지만 누구도 웃지 않았다.
운룡포국의 은혜.
이 뜻을 모르는 이는 강호에 없으니까.
그렇게 국주가 멀어져 갔다. 스물둘이 왔는데, 열둘이 떠나고 열이 남았다. 그 모습을 진천희는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운룡표국. 백린의선. 그리고 처음 듣는 언어를 자연스레 말하고 알아듣고 있다는 점. 역시 소설 속의 세상에 들어오긴 한 모양이야. 하하, 참 어이가 없어서…….’
진천희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기운이 쭉 빠졌다. 이윽고 다리가 후들거리더니,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어, 어라라? 다리가 왜 이러지.’
다리에 힘을 주는데도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손도 떨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깨달았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거구나. 그래. 오늘 내내 무리했지.’
어린아이의 몸을 수없이 혹사한 데다 내내 긴장을 풀지도 못했다. 초보 외과의가 긴 수술 후에 이렇게 근육 경련이 생기는 일은 제법 자주 있었다.
그는 잠시 앉아서 숨을 가다듬었다. 그제야 떨림이 멎었는데, 그사이 저 멀리에서는 그가 만들었던 거적때기 천막과는 다른, 크고 튼튼한 천막이 지어지는 게 보였다.
천막에는 운룡표국을 상징하는 자수까지 놓여 있었다.
“살았네?”
그제야 진천희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실감했다.
“살았다…….”
그렇게 진천희는 이제 완전히 사라져 가는 태양의 끝자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제야 살아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 * *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주인님. 굳이 이곳까지 따라오실 것 없었을 텐데…….”
여우를 닮은 미남자가 제갈린에게 말을 걸었다.
제갈린이 누운 장소는 마차의 내부. 통상 마차와는 다른 독특한 마차였다.
마차 안 자체가 넓고 한쪽에는 벽난로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그곳에서는 계속해서 나무가 타오르고 있었다.
벽난로 위에는 주전자가 놓여 있었는데 물이 펄펄 끓어올랐다. 여우 사내는 몸을 일으켜 주전자의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수건을 집어넣었다.
끓는 물에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수건을 꺼내어 적당히 쥐어짜고서는 그대로 제갈린의 얼굴을 덮었다.
뜨거운 수건이 덮이기 전의 그의 얼굴은 몹시도 창백했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진천희가 봤다면 ‘소설 속에 나오던 그 마차 그대로네! 백린의선의 이동 휴식처이자 치료 마차!’라고 소리를 질렀을 터였다.
그럴 만도 했다.
마차 내부는 직사각형의 공간이지만 제법 넓어서 4평은 되어 보인다. 마차 문이 달린 곳이 마차의 오른쪽 벽면이라면, 마차의 왼쪽 벽면에 침상이 길게 설치되어 있다.
말 그대로 백린의선이 누워서 편히 쉬기 위해서 만들어진 그런 모습이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운룡표국에는 신세를 많이 졌네. 그리고 오늘 그의 의동생을 살렸으니 신세를 제법 갚은 셈이지.”
“운 표두라는 사람 말이죠?”
“그렇네. 다른 이들의 죽음도 안타깝겠지만…… 그래도 아우가 죽는 것과는 비교하기 어렵지.”
“그러면 이걸로 운룡표국에 은혜 갚기는 다 끝난 셈이네요.”
“셈을 하자면 그렇지.”
뜨거운 수건을 덮은 채로 있는 제갈린을 보면서 미남자는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정말이지…… 구음절맥은 쉽게 다스려지는 게 아닌 것을 아시잖습니까.”
“알고 있지만 어쩌겠나. 과거 본가가 화를 입을 적에 나를 숨겨준 것이 운룡표국주시네. 그분의 부탁을 저버린다면, 내 스스로 부끄러워 살 수가 없을 것이네.”
“후우…… 주인님도 참…….”
여우 사내는 안타까운 눈으로 다시 손을 뻗어 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다시금 뜨거운 물에 적시고는 제갈린의 얼굴에 덮어 주었다.
“얼마 안 남았네. 진즉 죽었어야 했을 내가 불혹(40세)을 넘게 살았으면 오래 산 게지.”
“그런 말씀 제가 안 좋아하는 것 아시면서 왜 하시는 겁니까?”
“유호.”
여우 같은 사내의 이름은 유호였다.
유호가 표독한 표정으로 묻자 수건을 덮은 채로 제갈린이 답했다.
“문득 제자를 들이고 싶어져서 그러네.”
“주인님…….”
“그래. 원래라면 후인을 남기지 않을 작정이었네. 하지만 마음이 움직였어.”
“그 정도의 아이라는 겁니까?”
제갈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그 아이와 한번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으니 준비 좀 해 주겠나?”
유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분부대로 하지요. 하지만…….”
“알고 있네. 제자를 키우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그러다 내 수명도 더 줄게 될까 저어하는 거지.”
“알면서 그러시는 겁니까.”
유호는 툴툴거리며 수건을 다시 주전자 안에 넣었다.
“그럴 가치가 있는 아이네.”
“하아, 무식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주인님께서 오래 살아 주신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래. 그 마음도 알고 있네.”
제갈린은 희미하게 웃었다. 하지만 저런 표정을 지을 때면 절대 고집을 꺾지 않으리라는 것도 유호는 알고 있었다.
‘대체 어떤 아이기에 이렇게까지 하시는 걸까. 천하의 백린의선 님께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이 희생을, 그 아이가 알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부디 쉬운 기회가 아님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유호는 생각했다.
* * *
약초 냄새가 났다. 어릴 적 장터에서 종종 맡던 향이다. 진천희는 몸을 일으키려다가 신음을 내뱉는다.
“더 누워 있으십시오.”
고통 때문에 꿈틀거리던 진천희는 낮은 목소리에 눈꺼풀만 떴다.
눈앞에는 백린의선과 수많은 표사들이 보였다. 깡마른 어린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썩 우스웠지만 모두의 표정은 진지했다.
‘우와…… 이거…… 참…… 눈빛이 너무 부담스러운데…….’
진천희는 식은땀이 날 것 같았다.
어떤 건물의 안. 주변에 침대가 몇 개 있다. 그중 한 곳에는 진천희가 치료했던 소년-천마 여하륜으로 짐작되는-이 누워 있었다.
‘다른 둘은 어디로 옮겼나?’
그것들을 눈에 담으면서 진천희는 일단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여긴…….”
“운룡표국의 분타 중 한 곳입니다. 옮기는 내내 주무시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의식을 잃은 것은 아니기에 그대로 두었지요.”
진천희에게 가장 가까이 앉아 있던 사람의 목소리에 눈동자를 돌려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은색으로 반짝이는 머리카락을 뒤로 곱게 넘겨 묶은 아주 아름다운 사내.
‘와, 가까이서 보니 진짜 연예인인 줄? 그런데 백린의선 나이가 나보다 적던가, 많던가?’
대한민국의 유교맨답게 진천희는 자신과 백린의선의 나이를 비교하다가 그만두었다. 지금은 어찌 됐든 겉모습은 어린아이. 그런 자신이 나이 차 운운한다고 하면 개가 웃을 일이다.
‘그나저나. 어린아이 같은 나한테도 존댓말을 하다니 꽤 된 사람이네.’
나이가 어리면 일단 말을 놓고 보는 것은 무협 소설이라고 다르지 않았기에 진천희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선인. 그리고 의인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
속을 알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는 만큼 비밀이 많은 사내였고, 그만큼 덧없이 간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진천희가 쓰러져 있는 동안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치료의 마무리는 백린의선 그 자신이 했지만, 진천희의 초동 조치가 아니었다면 전부 죽었을 수도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즉. 진천희가 환자들의 생명을 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큰 후유증은 없을 것이며, 그 도움 덕에 운룡표국뿐만 아니라 공손세가도 은혜를 갚겠다고 했다고 한다.
“어…… 공손세가요?”
“예. 소협이 구했던 이들 중 허리에 검을 찬 소저를 기억하시나요?”
“아. 네.”
꼬마가 한 명. 중년 아저씨가 한 명. 젊은 여성이 한 명.
“공손세가의 여식으로, 무사 수행차 운룡표국에서 표사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백린의선은 말을 흐렸다. 그 뒷말은 누구나 이해할 만했다.
그리고 그런 백린의선의 말을 들은 진천희는 약간 멍해졌다.
‘공손세가라면…… 나중에 나오는 그 가문이네. 나야 죽어가는 사람 살리고 싶어서 살린 거지만…… 그런데 공손세가의 중요 혈족의 딸인가? 일반 혈족은 아닌가 보네. 이렇게 은혜를 갚겠다고 할 정도면.’
워낙 장편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머리가 멍한 상태이기 때문인 걸까.
한참 생각해야 기억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공손세가.
진천희가 알기로 세가는 같은 혈족이 모여서 만들어진 집단이다. 하지만 직계냐 방계냐에 따라서 당연히 대우가 달라진다.
무협 소설에서는 흔한 이야기. 아니, 현실에서도 흔한 이야기였다.
생각을 마친 진천희는 일단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팠지만, 그래도 일어나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옆에서 어떤 사내가 진천희의 몸을 잡아 주며 일어나는 것을 도왔다. 슬쩍 보니 실눈의 미남자였다.
‘백린의선을 모시고 다닌다는 총관 유호…… 맞나? 맞는 것 같은데? 실눈 캐릭터는 흔한 게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완전히 일어선 진천희는 백린의선을 직시했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조악한 솜씨나마 도왔을 뿐인걸요. 보탬이 되었다니 정말 다행일 뿐이죠.”
‘아직 뭐가 뭔지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예의를 차려 두는 게 좋겠어.’
진천희는 그렇게 생각하며 진중하게 행동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백린의선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걸 진천희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백린의선이 말했다.
“우선 내상약입니다. 공손 가문에서 은혜를 갚고자 보냈지요.”
딱-
그가 목함 뚜껑을 열었다.
적색 나무에는 공손세가를 상징하는 소나무가 양각되어 있었으나 진천희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뚜껑만 열었을 뿐인데 방 안에 청량한 향이 가득 찼다. 마치 새벽, 소나무 숲을 거니는 것만 같은 향.
진천희를 제외한 모두가 한순간, 탄성을 질렀다.
백송환단!
특별한 곳에서 자란 백 년이 넘은 소나무를 베어 그 뿌리에서 나오는 송진을 모아 만든 환단으로, 백년송(百年松)의 생명력이 들어 있다는 환단이다.
천 년 소나무의 정기로 만드는 천송단보다야 급이 낮지만 백송환단만으로도 엄청난 환단이었다.
단순 내상약으로서의 효과뿐만이 아니라 내력을 증진시켜 주는 효과가 있기에 더욱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