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0
제 40화
“친구 하자! 대신 말 편하게 해야 해?”
이렇게 쉽게 소원이 이루어지다니. 왕각연은 얼떨떨해졌다.
“네? 으, 응! 알았어.”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왕각연이 한마디 덧붙였다.
“아까 이야기 아빠한테는…….”
“응. 비밀. 나는 너의 많은 친구 중의 한 명인 셈 칠게.”
그제야 왕각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니야. 그런 거. 너는 특별해. 앞으로도 쭉 내게 특별한 친구일 거야.”
진천희는 생각했다.
‘너무 빨리 어른이 된 애들은 왜 이리 가슴이 아플까.’
가끔 소아과에 협진하다 보면 그런 일이 생긴다.
주사가 아프다고 우는 아이는 그나마 괜찮은데, 아빠를 보면서 ‘나 주사 잘 맞아. 하나도 안 아파.’라고 말하는 아이들.
‘그래. 너 때문에 힘든 게 아닌데, 자기 때문인 거 같지. 꼭.’
진천희는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참았다.
자기도 어린애 몸인데 같은 키의 애 머리 쓰다듬어 봐야 우스워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그러면 나가서 놀래?”
“그래도 돼?”
“응. 이 정도면 하루 땡땡이친다고 별일 안 생겨. 내가 진맥했으니까 보장하지.”
그 말에 왕각연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것도 잠시…….
“어, 어떻게 노는데?”
“일단 내공을 쓰면 안 돼.”
“당연하지. 나 아직 다 안 나았잖아.”
“그런 문제가 아니야. 그냥 다 나아도 절대 안 돼.”
왕각연은 그 말의 의미를 빠르게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무공을 익힌 몸으로 양민을 핍박하는 건 사파의 무뢰배나 하는 짓이야.”
걸음마할 때부터 협객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아예 뇌에 박혀 있었다.
진천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정파의 누군가가 너를 핍박했단다. 양민은 다 큰 성인이기라도 하지, 아가야, 너는…… 에효.’
어차피 이런 이야기도 커서 생각할 이야기다.
그녀가 그때까지 지금의 원한을 잊을지 말지는 온전히 그녀의 선택.
진천희가 해 줄 말은 이게 전부였다.
“뭐 하고 놀지는 그 동네의 규칙을 따르도록 하자. 걔네들도 뭔가 하면서 놀겠지.”
진천희는 몸을 일으켰다.
“가자.”
“헤헤헤.”
왕각연의 입가가 풀어졌다. 처음으로 친구가 생겼다.
소원이 이루어졌다. 그건 어린 그녀에게는 전신 세맥이 뚫린 것보다도 훨씬 기쁜 일이었다.
006. 기둥 네 개
날이 지났다.
궁귀가 의각에 합류하고, 왕각연은 아직은 환자인 상태였다.
본격적으로 겨울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산의 밤은 길었고, 더욱 검었다. 먼 곳에서 들짐승의 울음소리가 울리곤 했다.
가끔 사람의 비명 소리도 들리곤 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사람의 것인지, 아니면 요괴의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늙은 의각원이 어린 진천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낮이 짧아질수록 손에 상처가 더 자주 생기기 시작했다.
칼에 베인 것 같은 강풍에 멀쩡한 피부도 붉게 텄다.
진천희는 그러거나 말거나 끝없이 계속해서 수련에 매진했다.
‘오행심법이 수준에 다다르면 이런 건 괜찮아진다고 했어.’
과연 백린의각의 의각원들은 나이가 들어도 다들 10년, 20년은 더 젊어 보이기는 했다.
천하 삼 대 의각 중에 백린의각의 의각원들이 외모로는 천하일절이라고 스스로 자화자찬하는 의각원도 있을 정도였다.
물론 실력으로도 일절인 건 말할 것도 없단다.
깊어지는 겨울 속에서 시간은 꽃잎처럼 피었다 지기를 반복했다.
‘내가 이 세계에 온 지 벌써 몇 달이 훌쩍 넘었구나.’
진천희는 차가운 새벽 공기에 눈을 떴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백린의각이 자리 잡고 있는 산맥은 겨울 내내 지긋지긋하게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기도 했다.
겨울 동안 내려오는 북서풍이 산맥과 충돌해 눈을 뿌리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진천희가 이 대륙의 지도를 보았기 때문인데, 신기하게도 이곳 사람들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진천희가 있던 지구와 같은 방식은 아니지만 음양의 이치로 해석하여 비슷한 결론을 내는 것이 퍽이나 신기했다.
다행인 것은 온천 지대 분지이다 보니 그래도 여느 산처럼 마냥 춥지만은 않다는 것 정도겠다.
‘하루 2시진 수면인가.’
진천희의 수면 시간은 오후 10시부터 오전 2시까지 총 4시간이다.
성장 호르몬이 나오는 시간이기도 했다.
대체 스승님은 그걸 어찌 아는 건지 진천희를 무조건 오후 10시 안에는 재우셨다. 그리고 새벽에 2시에 일어나는 것은 진천희 본인의 의지였다.
단전에 들어찬 내가진기 덕분에 4시간을 자도 마치 10시간을 잔 것처럼 개운했다.
‘스승님이 말씀하신 그릇이란 게 이런 거구나.’
기초가 되는 오행진기를 확실하게 익힌 후 몸을 만들어 나갔다.
사실 보통 사람이라면 지루해서 떨어져 나갈 일이었다.
그렇게 만든 그릇에 오행심법을 담아내니 시너지는 엄청났다.
진천희는 방 안에서 천천히 체조를 했다.
엄청난 기체조도, 태극권도 아니었다.
필라테스다.
전생 때부터 아침마다 해 왔던 일이다.
스트레칭은 근육 이완과 혈류 개선에 좋았다. 평소 쓰지 않는 근육을 일깨워 주는 효과도 있었다.
사실 그런 것보다는 전생에 좋지 않은 자세 때문에 허리와 골반이 뒤틀린 적이 있었는데, 수술까지 가기 전에 어떻게든 살려 보겠다고 고치려고 하던 게 이렇게 습관으로 남았다.
그다음 좌선.
진천희는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을 정돈했다.
들숨과 날숨의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멀어지며, 아득해진다.
소년은 그렇게 천지간의 진기를 느꼈다.
감각을 일깨우며 소년은 여기가 지구가 아니라는 것을 몇 번이나 실감한다.
이 세계는 오행의 이치와, 음과 양이 가득 차 있는 곳이었다.
늙은 의각원의 말대로 산에서 들려오는 비명은 사람의 것이 아닌 요물의 것일 수도 있었다.
이 세계에는 정말 그런 존재가 있으니까.
신선이 있고, 영물이 있듯, 그 반대 되는 것도 있다.
다만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정말로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않는다. 어르신들의 오랜 미신 중의 하나다.
‘뭐, 무협 소설에서 주인공이 천하일통한 후 요괴나 투선과 싸우는 이야기도 있긴 하지.’
소설이 잘나가고, 출판사에서 완결만은 말아 달라며 붙잡고, 작가도 이왕 잘나가는 거 주택 담보 대출금이나 갚아 보자는 마음이 들었을 때 종종 그분들이 등장하곤 한다.
그런데 진천희는 이게 의외로 또 재미있어서 욕하면서 계속 봤다.
역시 강한 적은 등장할 때마다 좋은 법이다.
‘투선 하면 꼭 장삼봉 진인이 나타나셔서 주인공과 한판 뜨든가, 심득을 전수하고 가시든가 하곤 하시지.’
장삼봉.
그는 무협지의 대표 투선이라고 할 수 있다.
무협지에 따라 다르지만, 권수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는 대하 무협지가 되면 언제부턴가 이분이 전투력 측정기가 되시기도 한다.
‘이 소설에도 요괴가 있긴 하지.’
장편답게 요괴가 나온다. 소설의 매우 후반이지만 말이다.
진천희는 기운을 천천히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먼 곳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어?’
새카만 점 같은 것이 강력한 기파를 뿜으며 산을 타고 멀리 멀어지고 있었다.
웅후하지만 은밀한 기운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것을 풍기며 달리는 이는 누구인지 보이지 않았다.
원래라면 진천희가 이런 것을 느끼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뭐지? 오행심법에 이런 효과가 있었나? 스승님께는 들어 본 적 없는데.’
어쩌면 잘못 느꼈을 수도 있겠다. 진천희는 스스로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래. 초보인 내가 그걸 어떻게 느껴?’
고작 갓 배운 자신이 느낄 정도면 의각의 누구든지 먼저 느꼈을 거라고 진천희는 생각했다.
검은 점이 완전히 멀어지는 게 느껴지자, 진천희는 천천히 눈을 떴다.
2시진.
즉, 현대 시간으로 4시간을 꼬박 아침 운공에 사용한 셈이다.
이제 내공이 제법이다.
적어도 15년 치의 공력이 아랫배에 느껴졌다.
‘천송단의 약력이 완전히 내공으로 흡수되었어.’
공손현에게 받은 영약이다.
사실 욕심을 부린다면 좀 더 많은 내공을 쌓을 수 있겠지만 불순물은 오행심법의 운공을 방해할 뿐이었다.
가장 정순한 목기(木氣)만을 흡수하고 나머지는 미련 없이 태워 버렸다.
여기에 각종 약재와 영약을 주는 대로 먹어치우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운공.
거기다 좌공뿐만 아니라 오행심법도 함께 수련 중이라 내공이 쌓이는 속도는 상상을 불허했다.
반년 동안 15년 치의 내공을 얻었으니, 강호의 상리를 벗어난 셈이었다. 영약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기도 했다.
‘오늘 운공은 끝!’
오전 6시, 강호식으로 따지자면 묘시(卯時/오전 5시~7시)였다.
오전 6시가 되니 백린의각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의각당에서 종을 울린다.
묵직한 종소리가 죽림을 흔들며 구석구석 추위를 털기 시작했다.
하인들이 일어나 의각의 일을 하기 시작하고, 의각원들은 운기조식을 끝내고 업무를 시작한다.
의각원들도 치료를 위해 내공을 수련해야 하니, 아침 운기조식을 통한 내공 수련은 필수라고 할 수 있었다.
‘오늘은 내가 본격적으로 의각원으로 임명되는 날이구나.’
수련의를 건너뛴다.
파격적이다 못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수련의가 운룡표국의 분타에서 백린의선 제갈린도 살리지 못한 환자를 살렸으며, 백린의선 제갈린이 포기한 궁귀의 딸을 살려냈다.
그렇기에 오늘 진천희의 거취를 두고 본격적으로 회의가 시작된다.
그로 인해 백린의각의 사 대 당주들이 한곳에 모이게 되었다.
* * *
의각의 공기가 무겁다.
백린의각을 움직이는 네 명의 당주들이 바둑판의 화점처럼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각 당주들을 모시는 직계 제자들은 포석이 되어 당주의 양옆에 앉는다.
진천희는 유호의 안내에 따라 가장 말석에 앉았다.
갓 의각에 들어와 아직 정식 자리를 배정받지 못한 진천희의 위치였다.
서늘한 공기에 누구도 진천희에게 인사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단 한 명 인자하게 생긴 노부인만이 진천희에게 눈인사를 했다. 약재당주를 맡고 있는 만파곡이라는 사람이다.
특이한 이름을 가진 그녀는 평소에도 진천희에게 꿀에 절인 도라지며, 곶감이며 이것저것 주곤 했다.
인망이 좋은 편이라 의각 내에서도 적이 없는 분으로 후덕하고 큰 체구에 커다란 손, 목소리는 굵고 호탕한 편이다.
약재의 전문가이자 계산도 빠른 편이라 거상들과 인맥도 돈독해 다른 의각에서는 구하지 못하는 약초들도 쉽게 구해 오곤 했다.
마지막으로 문이 열리더니 스승님이 걸어오셨다.
긴 은색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묶으신 스승님은 평소보다 키가 더 커 보였다.
‘원래도 체구가 큰 편이셨는데 이제는 위압감마저 느껴지니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