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00
제 399화
“요즘은 불평 안 하네~? 바깥일도 안 물어보고.”
“그냥 그러기로 했어.”
그날 이후로 진천희는 조용히, 그저 자신을 치료하는 데에만 전념했다.
외부 일을 신경 쓰지도 않았고, 그저 회복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것은 사마현이 보기에 퍽 신기한 심경의 변화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깁스를 푸는 날이 왔다.
반쪽짜리기는 하나 현경급의 독기다.
해독되었다고는 해도 그 독기에 물든 사지가 어떤 색을 하고 있을지 걱정은 좀 됐다.
“하……. 비늘이라도 돋아 있는 거 아니야?”
“괜찮아. 형~ 나는 형이 비늘이 돋아 있어도 오케이야. 욕하는 놈들은 다 머리를 쪼개 줄 테니까 안심해.”
이놈이 머리를 쪼갠다는 말은 반쯤 진심인 거 같아 걱정된다.
“차라리 까맣게 변색되어 있는 정도라면 옷으로 가리면 되니까. 음……. 좀 사파 같아 보이긴 하겠네.”
“그것도 괜찮아.”
제갈린이 말했다.
“흠, 이것만은 나도 장담할 수 없겠구나. 오독문의 독과 마공의 독이 합쳐진 상태에서 주화입마의 폭주……. 그 독에 직격을 당했으니 원래라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니 말이다.”
옆에 있던 상의원이 깁스를 자를 절단기를 내밀었다.
현대의 석고 절단기와는 다르다. 오히려 가위와 유사했다.
“그런 게 뭐 필요하겠느냐.”
스승님은 그리 말하며 들고 있던 부채를 한 번 휘둘렀다.
탁!
스치는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은색 선이 유려하게 허공을 그은 게 전부.
살기도 없고, 격함도 없는 그저 평온한 일수.
그 순간, 석고가 가볍게 부서지며 안에 들어 있던 각종 약초가 석고와 함께 사방으로 쏟아졌다.
쏟아진 약초는 하나같이 고약한 냄새를 풍겼는데 쏟아지며 미리 준비한 그릇에 담겼다.
“약초가 절독을 빨아들였군요.”
“저걸 땅에 묻으면 최소 오십 년은 풀이 안 자랄 거란다. 태우면 독무로 일대의 가축들이 폐사할 거고.”
“그러면 어찌 쓰나요?”
“주술사나 풍수사들에게 비싸게 팔린단다. 남을 저주하거나 일부러 땅에 동티를 낼 때 쓰지.”
“그……렇군요.”
“혈생노괴께서 갖고 싶다 하셨으니 그쪽에 드리기로 했단다. 널 치료할 때 서신으로 도움을 받았지. 마공에 대해서는 혈생노괴를 뛰어넘는 이가 거의 없으니 말이다.”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사지에 있는 깁스를 모두 풀고, 독이 스민 약초는 그릇에 수북하게 담겼다.
유기그릇이 독기를 이겨 내지 못하고 단기간에 녹이 슬었다.
“운반하려면 표사들이 고생 좀 하겠군.”
스승님께서는 그리 말씀하시고는 약액이 묻은 수건으로 진천희의 사지를 모두 닦아 냈다.
이 과정은 스승님과 사마현이 했다.
내공이 낮은 자가 자칫 중독되면 골치가 아프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상의원들은 다 쓴 수건을 새 수건으로 바꿔 주었다.
그렇게 독을 닦아 낸 수건도 유기그릇에 담았다.
치지직-
“아직도 독기가 남아 있는 게 기가 차는군. 이제 목욕하러 가렴.”
진천희는 스승님의 명령에 맞춰서 욕탕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움직이는 거라 사지 근육이 삐걱였다.
아직 독의 영향이 남아 있는 걸까.
화끈하다가 서늘한 감각이 동시에 오갔다.
준비된 약탕에 몸을 담그고 앉아 있으니 사마현이 들어왔다.
“백린의선께서 탕에서 안 쓰러지게 지켜 보라셔.”
“생각보다 괜찮아.”
“괜찮다는 말보다는 힘들다는 엄살 좀 부려 봐. 형은 왜 그렇게 주변 걱정시키는 걸 싫어해~?”
“싫어하긴. 이번에 왕창 시켰는걸.”
그 말에 사마현은 피식 웃었다.
“그래도 그런 형 덕에 내가 산 거니까~ 뭐, 나 빼고 다 자비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건 힘들겠지.”
그리 말하며 사마현은 진천희가 목욕을 무사히 끝낼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렇게 목욕을 끝내고 대충 수건으로 하반신만 두르고 밖으로 나오니 커다란 거울을 미리 스승님이 준비하고 계셨다.
꽤나 고급스러운 거울로 한눈에 봐도 무척이나 비싸 보였다.
진천희는 거울을 통해 깁스로 가려져 있던 팔다리 피부를 전부 볼 수 있었다.
“음, 비늘은 안 붙어 있네.”
“변색도 없고~”
“심지어 근육이 감퇴하지도 않았고.”
겉으로 봤을 때는 탄탄한 근육을 가진 평범한 사내의 팔다리다.
오히려 희게 윤이 나는 것이 월하미인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진천희는 시험 삼아 내력을 휘돌렸다.
그 순간.
파사삭-
그저 내력을 운공하는 것만으로도 한기가 손끝까지 뻗어 눈송이를 만들어 냈다.
“이게 무슨…….”
선명하게 얼음의 결정이 맺혔다.
그러나 그냥 얼음이 아니었다.
새카만 눈송이.
원하면 흰 눈으로도 바꿀 수 있으나, 집중하지 않으면 빙공에 독이 스며 나왔다.
‘오행상극독이 오독문과 마교의 독을 집어삼켜 자신의 것으로 만든 건가.’
쓰러져 있는 동안 몸속에 있던 보옥이 공명했나 보다.
진천희가 무의식 속으로 침잠해 있는 동안 보옥이 내력을 순환시켜 오행상극독을 보다 원활하게 유지시켰다.
그 결과.
진천희는 적이 사용하던 독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어……?”
문득 왠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본능의 부름이었다.
그대로 손가락에서 나온 독기를 입으로 핥듯이 삼켰다.
꿀꺽-
다들 놀란 눈으로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소각주님, 괜찮으세요?”
“네. 아무 영향이 없네요.”
스승님이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만독불침과 천독불침, 그 사이 어디쯤 되겠구나.”
그렇게 제갈린은 진천희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손목을 낚아챘다.
“……!”
“암기에 당한 채로 무리했던 팔은 여전히 통증이 있는 모양이구나.”
어찌 아신 걸까.
꽤 능숙하게 속였다고 생각했건만, 스승님은 제자의 움직임이 평소와 다름을 눈치채신 모양이었다.
‘아니 그 전에, 내내 사지가 결박되어서 누워 있었는데 당연히 어색하지.’
한참 동안 누워 있다가 막 움직이게 된 상태다.
당연히 모든 사지 움직임이 어색할 수밖에.
거기서 팔 한쪽을 정확하게 짚어서 이상하다는 걸 찾아내는 게 더 무섭다.
‘여전히 스승님은 속일 엄두가 안 나네.’
스승님은 진천희를 앉혀 놓고 오랫동안 진맥을 했다.
그러고는 이리 말했다.
“기능적인 부분만을 본다면 전과 비할 바 없겠지. 혈도에 막힘이 없어 내력을 원활하게 소통하는 것뿐만 아니라 외공도 크게 진보했고, 독공이나 빙공에 대한 내성 역시 뛰어나구나. 허나, 통증이 회복될지는 나로서는 장담하긴 어렵구나.”
“그렇군요.”
“혹자는 무인으로서의 성취가 올랐음을 기뻐할 수도 있겠으나 스승으로서는 걱정이구나.”
“한동안 양생공을 운용해야겠군요.”
“잘 쓰지 않는 손이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무당파 때도 그렇고 용봉지회 때도 그렇고, 꾸준히 박살 내는 부위이니 자업자득이라고 해야 할지.”
스승님은 마음에 안 드시는지 혀를 찼다.
진천희는 생각했다.
‘큰 거 한 방 날릴 때는 좋겠군. 필살기 용으로 아껴 놔야 하나.’
양생공이 만약 먹힌다면 이런 변수를 생각할 필요는 없을 테니 그걸로 좋다면 좋았다.
결과적으로는 강해졌으니까.
그건 생존하는 데에 무척이나 중요한 일 아닌가.
진천희는 다치지 않은 손으로 내력을 다시 한번 운용해 보기 시작했다.
‘오행신공의 다른 진기들과 어떠한 상성이 있는지 봐야겠군.’
진천희는 차분히 내력을 집중했다.
통증이 있는 쪽 팔이 아니기에 강화된 그 상태 그대로 통찰할 수 있었다.
무인으로서 스스로를 점검하는 것은 중요한 일.
무아에 빠져서 집중하는 동안 스승님은 다른 의원들 모두를 물렸다.
사마현도 물리고 싶었으나.
‘그럴 가능성은 낮으나 혹여 운공 중에 독공이 폭주하게 된다면 누군가는 대신 방패가 되어 주어야 할 터이니.’
아무리 확률이 낮다 하더라도 좌시할 수는 없는 법이고.
스승은 태연한 표정으로 그때가 온다면 사마현을 고기 방패로 쓰기로 했다.
제자의 의동생들을 어느 정도는 참아 주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니까.
여하륜은 천살성으로 인해 그러한 인의 장막도 하지 못하니 효용성이 떨어져 귀찮고.
어찌 되었건.
진천희는 무아에 빠져서 오른팔에 오행신공을 집중했다.
미청년의 팔을 타고 뇌기와 빙기, 수기, 목기, 금기, 토기가 잇달아 움직인다.
그때마다 진천희의 팔 위로 번개가 서렸다가, 서리가 서렸다가 물방울이 모여서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빠르다.”
저도 모르게 사마현이 감탄했다.
“오행신공이 저렇게 빠르게 운공이 된다고~?”
혼잣말을 하면서 형의 상태를 살폈다.
오행신공이란 결국 다섯 가지의 서로 다른 속성의 진기를 사용하는 것을 바탕으로 그것을 단전에서 조합하여 서로 다른 속성을 만들어 내거나 변형하게 된다.
진천희는 그것을 종종 요리에 비유하곤 했는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사마현도 이해하고 있었다.
같은 화경도 단순히 위력이 강해지거나, 내공이 정순해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분화되고 성장하게 된다.
진천희의 경우에는 응용력이 극대화되었다.
‘아마 의술 때문이겠지~ 결국 형에게 있어 무공이란 사람을 살리기 위한 방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이것도 무(武)라고 쳐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화경을 가장 먼저 넘은 게 형이니 그 길 역시 틀린 길은 아닌 것이겠지.
진천희의 성취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화르륵-
극양의 화기가 손끝에 모였다.
흡사 산불처럼 커진 불꽃이 이윽고 압축이 되며 태양 같은 강환을 만들어 냈다.
“강환……?”
진천희가 천천히 눈을 떴다.
“강환 아니야……. 그… 비슷한 거야.”
[혹시… 제갈세가의 무공은 진짜 답설무흔의 경지는 아니지만 짭…… 답설무흔을 한다거나, 삼매진화의 경지는 아니지만 짭…… 삼매진화를 한다던…….]사마현이 제갈린의 눈치를 보며 재빨리 전음을 날렸다.
호기심은 채우면서도 사회생활은 하는 노련함이 가상했다.
진천희가 말했다.
[어……. 그렇지. 화생기 배웠을 때… 삼매진화는 아닌데 그… 유사한…… 삼매진화를 했었거든. 그러니까 이것도 엄연히 말해서 강환……은 아닌데… 그래도 강환…… 같아 보일 수는 있어.]사마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럽다, 형. 나도 유사 강환 흩뿌리면서 삼존급이라고 사방에 뻥 좀 치고 다니면 좋겠다~]……아… 개파조사 제갈량이시여.
* * *
분석해 본 결과 빙기가 가장 두드러지는 주특기가 되겠으나, 그다음으로 운기가 편한 것은 화기였다.
결국 극양과 극음을 혈도의 막힘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여기에 극독은 덤이다.
[왼팔은 안 써?] [아직 통증이 있어. 함부로 막 썼다가는 스승님께서 뒤통수 쳐서 의각으로 끌고 가실 거야.]강해진 만큼 양날의 검이 되었다.
시험 삼아 유사 강환을 던져 보았는데.
콰과과광–!
그 자리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
형은 그걸 보며…… ‘히이익! 티엔티!’라며 외쳤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마현은 대충 시끄럽고 강한 폭발을 그렇게 비유한다는 것을 눈치로 기억했다.
“슬슬 금혈방 쪽 일도 해결해야 할 텐데?”
꺼지라는 백린의선의 분부에 사마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신 몇 개를 더 넣고 오겠습니다요~!”
어찌 되었건 그는 형의 스승님이시다.
자신도 한성격하지만 백린의선의 성격은 무엇에 비교해도 미안할 지경이다.
사마현이 보기에 저놈은 결국 형이 아니면 삶의 기쁨이 없는 인간이다.
그런 자를 상대로 각을 세워 봐야 손해 보는 건 이쪽.
채산성이 안 맞는다.
그렇게 사마현은 밖으로 나와 이곳의 일을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