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02
제 401화
컹!
황구의 안내에 따라 육각영독사를 찾아갔더니 무언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흠, 그렇군. 응룡 님이 그리 말씀하셨다면……. 결국 다가오는 건가…….] [인간이 몇이나 죽든 상관없지. 결국 약속을 다 끝내고 나면 돌아갈 수 있을 터이니. 허나, 그대는…….] [그렇군. 결국 그리 정했는가.] [인간은 언제나 인간일 뿐이지.]귀가 아닌 머리로 울리는 듯한 목소리.
전음과는 확실히 달랐다. 오히려 응룡이 진천희에게 말을 전하던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이 목소리는 진천희도 익히 듣던 것이었다.
‘유호?’
조심스럽게 다가간 그곳에는 집채만 한 거대한 육각영독사와 황금빛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사내가 서 있었다.
분명 이목구비는 유호와 같았으나, 평소처럼 실눈이 아니라 두 눈을 제대로 뜨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 위압감은 사람에게서 나올 만한 것이 아니었다.
원래라면 인기척을 눈치챌 만도 하건만 그는 육각영독사와의 대화에 깊게 집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예언이라. 그 인간에게 예언을 남기겠다는 건가. 언젠가 용이 될 자네가 굳이 인간을 위해 그렇게까지……. 아, 그렇군.]유호가 뒤를 돌아보았다.
정확하게 진천희가 있는 위치였다.
“슬슬 오시지요, 도련놈?”
“하하하, 언제부터 눈치챘어, 유호?”
“알아서 뭐 합니까.”
유호가 입고 있는 옷은 평소 백린의각에서 입는 총관의 옷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예스럽고 기품 있는 의상.
그러나 바람에 나부끼는 모양이나 소매가 흔들리는 모습이 어째 이 세상 천으로 짠 것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유호의 다른 모습……인가.’
허나 진천희는 결코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엄숙히 말했다.
“유호, 유호가 설령 내게 어떤 모습을 보여 줘도, 나는 유호가 인간임을 믿어. 그러니까 인간의 연구를 나와 함께 해 줘야 해.”
“보이십니까? 이런 인간입니다. 거머리보다도 악랄하다고요. 이런 놈을 위해 왜 당신이 귀한 예언을 내립니까?”
“유호, 괜찮아. 유호 오늘 멋있어.”
진 교수는 대학원생의 졸업이 두려웠다.
이놈은 인간이 아니라고 인정했다가는 날개옷 얻은 선녀마냥 춤추며 하늘로 날아오를까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이 인간은 미친 인간입니다. 보이십니까, 연구욕과 미식욕 말고는 없는 인간이라고요.”
“괜찮아, 유호. 사랑해……. 꾸에에엑!”
그 순간. 유호가 엄청난 속도로 진천희의 멱살을 붙잡아 털었다.
“이 미친 찰거머리가 끝까지 내 노동력을 뜯어내겠다고?!”
방금까지 보이던 이 세상 것이 아닌 기품은 어디 갔는지 살기를 줄기줄기 흘려보내며 멱살을 터는 것이 죽이겠다는 신호, 그 자체였다.
“유호, 진정… 끄억……. 유호! 커억! 내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고!”
쉬익, 쉬이이이익!
육각영독사도 놀라서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이러다가 송장을 치울까 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진천희가 필사의 각오로 애원하자 유호는 그제야 진천희의 멱살을 놓았다.
텅!
진천희는 일부러 낙법도 쓰지 않고 최대한 불쌍한 척 바닥을 구른다.
‘이만큼 강해졌는데도 유호한테 멱살이 잡히는구나.’
초장편 무협지들을 보면 막판에 천계의 투선들이 나와서 주인공과 싸우곤 하던데 혹시 유호는 그 정도로 강한 걸까?
진천희는 생각했다.
쉬익, 쉬익!
“알았다고요. 진정하겠습니다.”
이윽고 유호는 일부러 낑낑거리는 신음을 뱉는 진천희를 보며 한숨을 푸욱 쉬었다.
이 새끼는 사선을 넘고 나니 더 잘생겨졌다.
저 판판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짜증이 밀려온다.
세상에서 가장 이해 안 가는 인간.
쉬익, 쉬이익-!
“일단 통역하자면 결과적으로 풍장의 위치가 바뀌어서 고맙다고 하는군요.”
“음?”
진천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순진한 얼굴과는 정반대로 눈에 맺힌 청광이 섬뜩할 정도로 많은 것들을 통찰하기 시작했다.
“하긴, 지난번 풍장 장소가 유적지랑 가까이에 있었죠?”
“과거 육각영독사를 신으로 모셨을 적에 있던 사원입니다. 과거 인간은 영물을 신으로 모셨거든요. 육각영독사를 위해 지어진 사원이고, 육각영독사는 이 사원이 있는 한 이곳에 머물며 이 땅을 지켜 주기로 약속했지요.”
지금 눈앞에 있는 다 기울어진 건물 더미 말하는 건가.
분명 집의 형태를 아직은 유지하고 있으나, 그것도 거대한 나무에 침식당하여 낡고 스러져 가고 있었다.
비가 와도 막아 주지 못하고 그저 이끼와 곰팡이가 되어 고이고 있었고.
제단 비슷한 것도 낡고 스러져서 본래의 존중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사람들이 무서워하지, 숭배는 하지 않는 것 같은데? 물론 수호자로 경애는 하지만 말이야.”
“신앙의 형태는 확실히 사라졌죠. 하지만 그러게요. 인간은 잊어버리지만 우리들은 기억하고 마니까요. 망각하는 법 없이.”
유호는 폐허가 된 이곳을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리석게도 그럼에도 감정은 늘 뜨거워서 계약하게 만듭니다. 저야 한 사람으로 제한했으나 육각영독사는 이 사원으로 계약했지요. 이 사원이 계속되는 한 이곳을 지키겠노라고.”
“허나, 운남 사람들의 싸움에는 끼어들 수 없었다는 거군요.”
“운남의 물을 마시고, 운남의 열매를 먹은 자들끼리의 혈투니까요. 그것은.”
쉬이익-
육각영독사의 소리가 유달리 씁쓸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 아니겠지.
유호가 말했다.
“뭐, 어찌 되었든 좋습니다. 덕분에 이 사원에 죽은 자의 탁기가 들어오는 법 없이 지켜졌으니 그걸로 된 거지요. 그러니 당신에게 보답으로 예언을 하고자 한다고 하네요.”
“예언?”
“예로부터 뱀은 통찰의 상징이지요. 그러다 보니 뱀 영물은 어떤 영물들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힘이 강합니다.”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에……. 이 사원이 무너지면 해방될 수 있는 거라면 내가 부숴 줄 수도 있어.”
쉬익…….
육각영독사는 작게 울더니 이윽고 무언가 복잡한 소리로 유호에게 말했고.
“음, 그러기에는 추억이 많은 곳이라네요.”
백 년, 아니, 이백 년……. 어쩌면 멸망한 대리국 때의 일일 수도 있겠다.
인간은 망각하나 짐승은 잊지 못하고 이곳에 남아 있다.
해방을 해 주겠다는 권유에도 망설임 없이 터를 지키며.
“하지만 이대로면 내가 너무 이득인데……?”
진천희는 뱀의 숨결에서 상처를 느꼈다.
그것은 추억이라는 달콤함이 주는 고통이었고.
돌아올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깊은 염증이었다.
허나, 유호의 말대로 잊어버리지 못하고, 떨어내지 못하고 육각영독사는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진천희는 일부러 최대한 상처를 건드리지 않게 무심하게 말했다.
“좋아, 그러면 이렇게 하자.”
이다음 나온 말은 의외의 이야기였다.
“좋아하는 거 있어? 먹고 싶은 거.”
쉬익?
* * *
그것은 달밤의 연회.
진천희는 직접 술을 빚었다.
기껏해야 완농에서 배운 주술을 이용한 편법이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술맛은 났고.
육각영독사의 거대한 몸이 목을 축이기에 충분한 양은 되지 못했으나.
그래도 원래 오독문이 가지고 있던 술 창고를 추가로 털어 어찌저찌 채워 넣었다.
다른 이들은 부르지 않고.
오로지 황구와 뇌진, 유호, 그리고 육각영독사를 위한 연회였다.
나무에 침식된 폐허가 달을 그리며 부풀어 올랐다.
“자아, 먹어!”
진천희가 거대한 술 양동이를 던지자 육각영독사는 즐거이 삼켰다.
육각영독사는 진천희의 모습에서 과거 대리국의 왕을 보았다.
그도 자신에게 이러한 연회를 대접했다.
이제는 누구도 자신을 숭배하지 않는다.
영물은 그저 내단을 얻을 수단일 뿐.
그래도 자신은 오랫동안 살아 왔기에 감히 어떤 인간도 욕심내지 못한다.
수천 명의 악사들과, 수만 명의 백성들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그를 위해 춤을 추던 예인들은 어디로 갔던가.
대리국은 이제 어디에도 남지 않고, 토지신은 그저 영물이 되었다.
술을 마시고, 달에 취하고, 진천희가 뜯는 칠현금을 들으며 육각영독사는 생각했다.
아아, 다음 추억은 이거군.
대리국의 추억으로 천 년을 산다면, 이 추억으로도 천 년을 살아가겠지.
그가 죽지 않는 한은 계속될 이야기였다.
그것은 영물의 지독한 숙명이기도 했다.
處世若大夢(처세야대몽) : 세상 모든 것들이 흡사 큰 꿈과 같은데
胡爲勞其生(호위노기생) : 어째서 그 삶 피곤하게 살까
所以終日醉(소이종일취) : 그래서 종일토록 취하노라
浩歌待明月(호가대명월) : 호쾌히 노래 부르며 밝은 달을 기다려 보니
曲盡已忘情(곡진이망정) : 곡이 끝나자 그 마음도 이미 잊어버리고 난 후구나.
이백의 시를 조금 꺼냈다.
중간에 몇 소절인가는 술김에 빼먹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안 하는 건지.
진천희는 현을 퉁기며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잊지 못하는 영물에게 잊자는 인간의 노래가 무슨 소용이겠느냐마는.
그 마음만은 육각영독사에게도 전해졌다.
이윽고 육각영독사는 마음을 정했는지 소중한 자신의 보옥을 어디선가 꺼냈다.
이거라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금방 잊어버리고 말지만 영물은 오래 기억하는 법이니까.
나쁜 것도, 좋은 것도.
그러니 단 하나라도 좋은 것이 추억으로 남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뱀은 좋았다.
그렇기에 이 땅에 계속 머무르며 사람들을 지켜보리라.
이제 이 연회의 막바지 속에서 그 답례를 할 때가 된 것을.
뱀은 깨달았다.
보아라, 보아라, 미래의 눈이여.
우리는 모두 응룡의 자손이니 꼬리에 꼬리를 물며 시간 속을 기어가리라.
우리의 허물은 과거의 것이고, 우리의 혀는 미래를 맡으리니.
이 청년에게 미래의 속삭임을.
쉬이이익-
보옥이 밝은 빛을 내며 여러 가지 색을 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그극-
깨질 듯 흔들리며 빛을 내더니 완전히 박살이 났다.
쨍강!
진천희가 놀라서 칠현금을 타는 것도 멈춘다.
유호가 말했다.
“이렇게까지 잘해 줄 이유가 뭡니까. 하여간…… 이 순진해 빠진 영물아.”
거대한 육각영독사에게 순진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과거 금혈방에서 보낸 화경의 무인도 꿀꺽 하고 삼킨 전적이 있지 않나.
깨진 보옥 안에서 연기가 나온다. 육각영독사는 그것을 들이마시고는 한동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윽고 눈을 떴을 때.
육각영독사의 거대한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유호도 당황했는지 한참 몸이 굳었다.
이윽고 그가 육각영독사에게 들은 말을 진천희에게 전했다.
“앞으로 몇 번의 겨울을 더 보고 싶습니까?”
“……?!”
……그것은 전생 때부터 따라오던 누군가의 예언이었다.
-앞으로 겨울을 몇 번을 더 보고 싶은고?
그때 진천희는 ‘다다익선’이라고 답했고, 할머니는 무척이나 슬픈 눈으로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사람과는 다르나, 뱀의 눈이 같은 표정으로 진천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호가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예언을 본인에게만 직접 전해 주어야 한다는군요.”
“어떻게…?”
“법구야 이미 부숴 드셨을 테니 그냥 이마를 가져다 대시죠.”
그 말에 진천희는 순순히 거대한 육각영독사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 대었다.
그 순간, 육각영독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