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05
제 404화
진천희는 천천히 읽어 가면서 말했다.
“총 오만 이천 건……이군요.”
“네. 상당한 숫자입니다. 부작용은 1할도 되지 않은 상황입니다만, 이것은 상의원들이 엄격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입원 치료가 우선이니까요.”
진천희는 환자를 믿지 않는다.
어떤 항생제든 복용 시간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약을 먹으라고 주면 까먹었다가 다시 먹고, 먹고 하면서 내성을 키워 주는 경우를 허다하게 봤다.
강호라고 다를 것 같진 않다. 더하면 더했지.
그렇다 보니 항생제를 투여할 때는 기본적으로 입원 치료를 권하고, 상의원이 결정하게 한다.
‘물론 이래도 세가에서는 뒤로 빼가긴 한다만.’
응급용으로 두세 개씩 비축한다.
어찌 보면 내공 증진에는 백린신단이 다른 영약들에 비해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기이하게 페니실린 알레르기는 없단 말이지.’
임상을 하면 할수록 신기한 일이다.
아마 그건 이 세계 사람들이 현대 지구인과는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은 해 보나, 어찌 되었건 의원으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뒷면에는 비누가 보급된 지역의 의각 방문 횟수와 전염병 사망률이 있는데요, 확실하게 줄어들었다는 보고가 나왔습니다.”
“음……. 그렇군요.”
“놀라지 않으시네요.”
무월은 질렸다는 듯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분명 기뻐서 펄쩍펄쩍 뛸 줄 알았건만,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양 답하는 게 아닌가.
진천희가 뺨을 긁적였다.
“어……. 물론 기뻐요. 기쁜데요. 으음, 보급이 잘되어 기쁜 거지 결과를 보고 놀란 건 아니에요.”
비누가 보급되기 시작한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질병 발병률이 오 할 아래로 줄어들었고, 특히 가장 두각을 나타낸 건 신생아와 산모 사망률이었다.
이 시대에는 아이를 낳는 행위 자체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물론 그것은 현대도 마찬가지이나, 당시에는 산파들의 손에 의해 세균이 옮겨져 신생아와 산모 둘 다 모두 목숨이 위험한 경우가 꽤나 당연하게도 많았으니까.
아이를 출산하는 게 아닌, 그저 임신한 상태에서도 감염증은 자칫 치명적일 수 있다.
예전에 보았던 영국의 한 비영리 단체가 낸 통계에 따르면, 매년 개발도상국에서 천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사망한다고 한다.
그중 20%는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사망하고.
약 50%가량은 태어난 지 한 달 안에 사망한다.
주 원인은 감염증.
꽤 오래전 자료라 나중에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기본적인 위생에 신경 쓴 것만으로도 사망률이 크게 감소되었다.
‘신생아 사망률이 70%가 줄었다고?’
산모 사망률은 절반 정도 줄어들었다.
물론 곧이곧대로 신뢰할 수는 없다.
이 시대에는 관아에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을 신고하는 가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가구도 만만치 않게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생이 산모와 아이 둘 모두를 지켜 주었다는 점은 틀림이 없었다.
무월이 말했다.
“그쪽 지역에서는 산모에게 비누를 선물하는 문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일이네요.”
진천희는 생각에 잠겼다.
‘이 기록을 왕부에 보내면 정책적으로 더 비누를 널리 보급할 수 있으려나.’
산모와 신생아 사망 문제는 역사적으로 어느 행정 기관에서든 중히 여기지 않던가.
단순히 인륜적인 것을 떠나서 인구 증가에 직결되는 문제이니까.
‘나이팅게일의 방식이지.’
현대 의학과 전통 의학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통계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당시 군 위생을 개선하여 병사들의 사망률을 크게 줄였다는 것은 지구에 사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진천희가 주목한 건, 1859년 ‘Note on Hospitals’를 발표해 병원 위생, 정확한 통계의 필요성, 병원 관리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세상에 알렸다는 점이다.
‘나는 새로운 걸 하는 게 아니야. 그저 누군가가 간 길을 적당히 답습하는 것뿐이지.’
그러한 천재가 만들어 낸 것을 따라가는 것에 불과하다고, 자만하는 법 없이 그저 자신의 길을 갈 뿐.
‘통계를 보니 이미 인구 증가는 이루어지기 시작했네.’
무월이 말했다.
“네. 신생아 사망률이 줄어들고, 백린의각에서 벌이는 파생 사업 덕에 일자리도 증가하고 있어서 인구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신 주변 세가들과 마찰이 늘기 시작했는데 관리들이 불시에 조사를 하기 시작한 게 그 지표군요.”
세가가 뒤에서 관리를 움직인 것이 꽤 뻔히 보이는 수였다.
“스승님께서도 가만히 계시지 않겠네요.”
“네. 입김은 저희 쪽도 있는지라. 다만 양쪽에서 잡아당기면 찢어진다는 소리를 하시면서 적당히 조절해 가고 계십니다.”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월이 말했다.
“좀 더 기쁜 표정을 지으셔도 될 텐데요. 어째 소각주님은 평소와 변함이 없으시군요.”
“하하하, 당연히 기쁘죠. 보람도 있고.”
“요즘 강호에서는 현령 열 명보다 백린의각 분타 하나가 낫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백린의각 소속 의원들이 얼마나 콧대가 높아졌는지 모릅니다.”
“그런가요?”
“네. 이제는 강호인들도 백린의각의 의원이라고 하면 함부로 대하지 못하니까요.”
처음에는 사소한 것, 그리 중요치 않은 것들이 변하고.
그다음에는 그보다는 중한 것이, 그리고 그다음에는 더 중한 것이 변해 갔다.
‘내가 천기를 바꾸고 있다고 했지.’
열 명의 마인(魔人)보다 백린의각 하나가 더 많은 것을 바꾸고 있다는 것은 자명했다.
사람이 죽어서 생기는 변화보다 살아서 생기는 변화가 더 큰 것은 자명하니까.
그리 생각하니 하늘에 한 방 날린 것 같아서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는 좀 더 몸을 소중히 여길 거니까.’
오독문 일로 많은 것을 깨달았다.
과거라면 이 짧은 생애에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가 보자는 듯 그저 바람처럼 달려갔을 게 분명했다.
허나, 스승님의 말이 심장에 박혀 버렸다.
그것은 어떤 잔소리보다도 무거웠다. 그리고.
-앞으로 겨울을 몇 번을 더 보고 싶은고?
웃기는 일이었다.
막상 죽는다는 예언이 내려오니 그제야 살고 싶다는 사실이 체감된다는 게.
‘사람 마음이 참 청개구리야.’
한 점의 미혹도 없이, 망설임도 없이.
나아가되 결코 이제는 자신을 내버리지 않도록.
진천희는 왼팔을 습관적으로 만졌다.
통증은 살아 있다는 신호였다.
진천희는 좀 더 살고 싶어졌다.
* * *
시간은 유수(流水)와 같이 흐른다고 했던가?
의각에 돌아온 진천희는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무공 수련.
거기에 강호에 존재하는 진천희가 아직 모르는 독초와 약초들에 대한 공부와 연구.
그리고 진천희가 필요할 정도인 중상 환자의 수술까지.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육각영독사가 했던 예언도 기우인가 싶을 만큼 평안한 겨울.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은 봄.
하지만 전과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취미 활동이다.
스승인 제갈린의 강권으로 인해서 진천희는 좀 더 깊이 있는 취미 생활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취미 활동이란…….
“그것입니다, 소각주. 불과 하나가 되는 겁니다! 고슬고슬 익어 가는 밥알이 느껴지십니까? 그것이 바로 궁극의 볶음밥인 것입니다!”
“그렇군요, 대숙수. 이것이 바로…….”
촤아아악!
철 냄비가 춤을 춘다.
여러 기연과 수련 끝에 강인해진 진천희의 매끈한 근육은 무거운 철 냄비를 무리 없이 흔들며 그 안의 내용물이 조금도 쏟아지지 않게 만들었다.
그것은 이미 예술.
“그렇습니다! 소각주. 그간 소각주의 요리는 맛은 있었으나, 사실 완성도에서는 조금 모자랐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건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기술을 모두 터득하였으니, 진정으로 요리의 도를 대성(大成)하신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촤악. 척!
철 냄비의 내용물을 접시에 담는다.
영롱하게 빛나는 황금빛 볶음밥이 그곳에 있었다.
소금, 후추, 그리고 계란과 쌀밥이라는 네 가지 재료만으로 만들어 내는 궁극의 볶음밥!
진천희는 그걸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
진천희의 취미 생활.
그것은 바로 요리다.
새로운 요리를 배우고, 요리의 기본기를 익히며, 요리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 나선다!
“그러면, 스승님께 가져다 드려 볼까요?”
“필시 각주께서도 만족하실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스승님이 입맛이 까다로우시니까요.”
진천희는 황금 볶음밥을 가지고 총총 걸음을 옮긴다.
물론 계란탕도 한 그릇 떠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스승인 제갈린의 거처로 직행하자,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던 제갈린이 허공섭물의 기예로 문을 열어 준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그래, 오늘은 어떤 음식을 만들었느냐?”
“오늘은 황금 볶음밥이에요, 스승님. 대숙수께서 이걸 제대로 만들었다면 더 이상 가르칠 기술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흐음……. 나야 네 덕에 새로운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만, 네가 하고 있는 게 정말로 취미인지 잘 구분이 안 가는구나. 대숙수에게 인정받을 정도이니…….”
대숙수는 남경의 유명 객잔 요리사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자가 더 가르칠 게 없다는 것은 이미 진천희 개인이 일류 요리사라는 뜻.
‘요리를 잘하는 강호인’이 아니라 ‘싸울 줄 아는 요리인’이 되는 것인 아닌가 헷갈릴 지경이었다.
“저야 이미 화경인걸요. 심, 기, 체를 이미 갖추었으니 요리를 빨리 배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그리고 예전부터 제가 요리는 곧잘 했었잖아요?”
“글쎄다……. 이미 취미의 영역을 넘은 것 같다만.”
“이런 걸 두고 취미 천재라고 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는 대체 어디서 들은 게냐?”
“저잣거리에서요.”
“내가 아는 저잣거리와 네가 아는 저잣거리가 심히 다른 모양이구나. 어쨌든…… 한번 먹어 보자꾸나.”
제갈린은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황금처럼 빛나는 볶음밥을 떠서 입안으로 넣었다.
오물오물.
그리고 그것을 긴장하면서 보고 있는 진천희. 그가 긴장감에 초조해진다.
흡!
스승인 제갈린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순간 진천희는 보았다.
스승의 등 뒤로 용이 춤추는 듯한 환상을!
이것이 바로 현경에 한 발자국 다가간, 화경의 끝자락에 도달한 자만이 부릴 수 있는 묘기란 말인가?
기운이 유형화하여 용처럼 춤을 추는 것은 그만큼 맛있다는 것을 의미할 터.
흡사 요리 만화의 특수 효과를 보는 듯한 장엄한 모습에 진천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스승님이 이렇게 기뻐하시는 건 처음이야! 제대로 만들어진 모양인데?’
제갈린은 말없이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째 숟가락질을 했다.
이것은 정말로 맛있다는 증거!
‘스승님은 입맛이 까다로우시니까. 간은 살짝 약하게 하고, 밥알과 계란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 후추로 살짝 향을 입힌 게 베스트지. 기본 기술만 들어가기 때문에 더 어렵긴 하지만…….’
그리고 결국. 게 눈 감추듯 제갈린은 볶음밥을 전부 먹어 치웠다.
“후우…….”
그리고 마지막으로 계란탕을 꿀꺽.
“이건…… 정말 만족스럽구나, 희야. 고작 계란과 밥만으로도 이런 맛을 만들어 내다니 말이다.”
“헤헷. 그렇죠?”
진천희 취향은 여기에 버터와 케첩을 넣어야 한다.
버터는 소젖을 이용해 자체 생산한다고 해도 케첩은 만들기 은근 어렵다.
이 무림 별은 옥수수와 토마토, 감자, 심지어 사탕수수까지 있는 동네지만 대량 수확과 운송 기술만큼은 부족하다.
자꾸 어디 하나가 상해서 올 때가 있어서 속상했다.
‘내가 토마토 농장도 만들고 만다.’
도시인에게 케첩이란 고추장, 된장만큼이나 익숙한 소울 푸드 아닌가.
거기다가 필요할 때마다 찔끔찔끔 만들기보다 대량 생산으로 큰 솥에 와르르 담아서 만들고 싶은 마음뿐.
허나, 기본 후추파인 스승님은 이미 대만족이시다.
“대숙수에게는 미안하지만, 황금 볶음밥만큼은 네가 한수 위인 듯하다.”
“그야 저는 무공을 익혔으니까요. 밥알 하나하나에 계란을 입히고, 불길과 기름으로 볶아 내는 게 더 수월하죠.”
“확실히 일절이긴 하구나. 새로운 경지에 도달한 듯해.”
“이제부터는 제가 매끼 챙겨 드릴게요. 저만 믿으시라니까요.”
“두 분이 아주 꼴…… 아닙니다.”
그때였다.
유호가 열려진 문을 통해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