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06
제 405화
뭐가 문제인지 이마에 주름을 만들고 들어선 유호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무슨 일인가?”
“손님이 오셨습니다.”
“누가 방문한다는 연락은 없었는데……. 갑자기 찾아온 손님이라. 어디서 왔는가?”
“공손세가의 가주 대리로 온 공손강. 그리고 공손영과 왕각연이 도착해 있습니다.”
* * *
천하 무림 인명록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하오문에서 만들어서 판매하는 책으로, 발안자는 사마현이다.
애초에 하오문과 개방이라는 두 문파는 예전부터 정보를 사고파는 데에는 이골이 난 프로 중의 프로 아니었나?
다만 사마현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공신력이 있는 정보 장사를 하고 싶다는 명분 아래 이 괴악한 물건을 만들어 냈다.
결과는?
대박이 났다.
정보라는 무형의 가치는 결국 신뢰와 명확성이 담보가 되어야 더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으며, 공신력이라는 것도 그런 보이지 않는 믿음이라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천하 무림 인명록은 그런 공신력을 만드는 데 적지 않은 효과를 주는 효자손이나 다름없는 물건이겠지.
그렇다면 이 책이 무엇인가?
명칭 그대로 강호의 인명에 대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 서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밀한 정보까지는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자면, 강호 저 멀리의 아무개 문파에 머시기 무인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이 서적에는 이렇게 적힐 것이다.
성명 : 머시기
나이 : 서른다섯
문파 : 아무개
무공 : 잡다신공
일생 : 몇 년도 몇 월 생. 가족은 어떻고, 무공은 어떻고, 성격은 어떻고, 행적은 어떻다.
짤막하지만, 그래도 이 사람이 누구인지 정도는 알 수 있는 정보들이 적혀 있는 책.
적어도 한 동네에서 이름이 조금 알려져 있다 싶으면 적혀 있는 이 인명록에 수록된 인물은 무려 사만여 명이 넘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추가되거나 갱신 중이다.
가격은 더럽게 비싸지만, 믿을 만하다.
그래서 잘 팔렸다. 그리고 이 책과 더불어 하오문은 정보 업계에서는 개방을 소폭으로 제치고서 우위에 있을 정도가 되었을 정도다.
이 대단한 책이 백린의각에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 서적에 의하면 공손강은 천하 무림 인명록에서도 강호에 제법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으로 평가되어 있다.
‘공손강. 나이는 이제 쉰다섯. 공손세가의 독문무공인 공손검법의 대가. 무위는 화경이며, 동시에 공손세가의 총관. 거기에 특징으로 총 다섯 개의 언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다고 했었지, 아마?’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손세가에서 운영하는 해상 무역의 행수들의 수장이기도 하고. 그 때문인지 공성 병기 제작하는 특기가 있다고 했겠다…….’
진천희는 공손강에 대한 정보를 생각한다.
공손세가와는 그간 손발을 제법 맞춰 왔지만, 사실 그들의 진정한 사업은 해상 무역이다.
공손세가는 요녕성에 위치해 있는데, 이 지역을 모용세가와 함께 양분하고 있은 지가 벌써 수백여 년이 넘었다고 한다.
모용세가는 춘추전국시절의 연나라의 왕족이 멸망하지 않고 요녕성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것이라면.
공손세가는 모용세가보다 더 오래전부터 요녕성에서 살아 왔던 씨족이라고 알려져 있다.
다른 명문세가들 모두 다 그럴듯한 시조 설화가 있으나, 공손세가는 특히나 더 거창하다.
바로 태초 신화 속의 존재, 황제 공손헌원의 혈족이라고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융성한 가문이면서 지금까지 성세를 유지한 가문으로, 가히 천 년 세가라고 불러야 마땅할 곳이었다.
그렇게 모용세가와 요녕성을 양분하여 지배한 이들은 해상 무역을 통해서 가문을 유지한다.
때문에 제국 내의 유통에 대해서는 십 대 표국 중 하나인 운룡표국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기도 한 가문이다.
과거 진천희가 운룡표국의 생존 표사들을 구할 적에 공손영이 끼어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인 것이다.
그리고 현재 가주는 공손현. 동생을 끔찍이도 아끼는 인물.
동생인 공손영은 하늘이 내린 태양지체로, 지금쯤 어떻게 변모했을지는 진천희도 알지 못했다.
원래의 원작에서는 이미 사망했던 인물이었으니까.
다만 가끔 오는 서신에 의하면, 건강하다나?
그냥 건강하다고만 되어 있어서 얼마나 강해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진천희는 그런 정보들을 속으로 정리하면서 스승 제갈린을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공손강과 함께 공손영과 왕각연도 같이 왔다고 하는데, 그들은 이미 접객실에서 제갈린과 진천희를 기다리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접객실로 향하던 길에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공손세가는 오랫동안 운룡표국과 동업을 해 왔는데, 최근 운룡표국주가 투자했던 사업이 몇 개 실패하면서 운룡표국의 세력이 절반으로 떨어졌더구나.”
“원래도 세가 조금씩 기운 것은 들었으나, 제가 운남에 가 있는 동안 결정적으로 틀어졌다고는 들었습니다. 허나, 세력이 절반까지 떨어졌는지는 몰랐군요.”
“그래. 모두가 그 정도로 박살 났을 줄은 몰랐지, 나 역시 운룡표국과 거래하는 상단들을 통해서 손해 규모를 알 수 있었으니까.”
한두 입이 아니라 여러 입을 취합하여 추측하는 데 성공하신 모양이다.
‘국주 아저씨, 이번에 크게 말아먹었네.’
사업을 하는 이상 기복은 어쩔 수 없는 일.
어찌 보면 소설에서는 처음부터 운룡표국이 혈사를 당하고 크게 세가 기우는 것부터 시작했으니 이 정도면 운명을 많이 막은 셈일지도 모르겠다.
스승님이 말을 이었다.
“아마 공손세가는 이 기회에 아예 운룡표국을 인수합병하고 공손세가의 해상 무역과 연계, 표국업에 본격적으로 손을 뻗으려 하겠지.”
멸문 대신 합병.
이 정도면 꽤 평화적인 흐름이다.
그리고 공손현, 그녀의 야망을 생각한다면 표국을 시작하려 한 시점에서 운룡표국을 쳐서라도 경쟁자를 제거하려 했을 터.
“혹시…… 국주님의 판단에…….”
“……아아, 공손현. 그녀가 음모를 짰는가 하는 것이지. 내가 조사한 바로는 그렇진 않았단다. 오히려 구제해 주었지. 만약 나나 개방, 하오문의 눈을 피해 일을 벌인 거라면 그건 그거대로 완전한 범죄일 것이고. 운룡표국의 국주조차도 속인 셈일 테니 말이다.”
“흐음.”
“어떠하니. 네 생각에는 그녀가 운룡표국에 손을 댔을 것 같니?”
흑빙독룡 공손현.
그녀가 얼마나 무서운 자인지 원작을 읽은 진천희는 알고 있다.
허나.
“이번에는 아닐 것 같습니다.”
스승님의 푸른 눈이 자신과 같으나 다른 계열의 푸른 눈을 바라보았다.
제자의 눈이었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느냐?”
“미친 소리 같지만……. 사촌동생인 공손영 때문입니다.”
“흐음?”
“공손현은 분명 냉혹한 책사형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딱 하나 동생인 공손영에게만큼은 다릅니다. 그녀가 운룡표국을 좋아하는 한 그 풍경을 지키려고 할 테니까요.”
공손영은 운룡표국을 좋아한다.
거기 사람들을 좋아한다.
이번 사업 실패를 듣고 아마 그녀는 송아지 같은 눈으로 엉엉 같이 울어 주고 있을 터.
그걸 보는 공손현은 속이 타들어 갔으면 타들어갔지 기뻐하지는 못한다.
“너는 지(知)가 심(心)을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하느냐?”
“심(心)이라기보다는 연(聯)이겠죠. 공손현은 동생인 공손영에게 가주 자리조차 넘기려고 한 인물입니다. 그러한 자가 과연 공손가에 돈 몇 푼 더 벌어 주겠다고 공손영을 울리겠습니까.”
“목숨만큼이나 끔찍하게도 아낀다는 뜻이구나.”
‘네, 이미 원작에서 그러더라고요.’
스승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구나. 제아무리 냉혹한 자일지라도 약점은 있는 법이니.”
그리 말하며 스승님은 물끄러미 제자를 바라보았다.
“……?”
“요 아둔하고, 아둔한 제자야.”
스승은 아직도 현경급의 광인을 상대로 제 몸을 들이박던 제자를 기억한다.
자신이 도착했을 때의 풍경을 기억했다.
사마현은 적의 핏물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얼마나 죽여 댄 것일까. 그의 희번득하게 뜬 눈동자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컹!
황구가 꼬리를 격하게 흔들며 제갈린을 향해 뛰어들었다.
뇌진은 황구의 머리 위에 앉았다.
그랬다.
뇌진이 방향을 찾고, 황구가 냄새로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제갈린을 찾아냈다.
사마현은 적을 죽여 가며 달려온 것이었다.
아무리 상의원들이 상처를 꿰매고 해독약을 줘도 도무지 상태가 돌아오질 않으니 최후의 수단을 찾던 중에 황구와 뇌진이 유호의 기운을 느낀 것이었다.
이 우둔한 제자는 모르겠지.
결코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입에 담는 것조차 끔찍한 기억이었으니까.
오독부문주가 죽고, 오독문주는 더 이상 전투가 불가한 상황.
거기에 진천희까지 의식을 잃었으니 당시 운남은 혼란 그 자체였다.
원래라면 오독문 자체를 점거하고 그곳에서 혼란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도 되건만.
사마현은 자신도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라는 사실도 잊고 형을 살리기 위해 길을 뚫어야 했다.
단지 지름길로 안내하기 위해서.
치료가 늦어질수록 형의 목숨이 위험했다.
그리고 형은 이번에도 등 뒤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현경급의 광인을 상대로 필사적으로 싸우지 않았던가.
그 속에서 사마현은 이번에도 보호받는 쪽이었다.
처음 형이 자신을 등지고 지키던 모습과, 지금 자신을 등지고 지키는 풍경.
미쳐 버릴 것 같은 비참함 속에서.
그렇기에 청년은 적의 피를 뒤집어쓰며 제갈린을 마중 나갔다.
백로마냥 늘상 태연하고 능글맞던 놈이, 제갈린을 보자마자 세상의 모든 광기를 담은 표정을 지었고.
아마 그때 진천희가 깨어나지 못했다면 운남은 사마현의 손에 불타거나, 아니면 제갈린의 손에 부서지거나 둘 중의 하나였을 터.
그 지옥 같은 스무 날.
이 아둔한 제자에게는 비밀이다.
“그래도 정답인 것 같구나. 내 생각에도 공손현은 공손영을 위해서라면 어떤 손해라도 감수할 인물이지.”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운룡표국은 본디 절강성을 주축으로 해서, 복건, 강소의 3개 지역에서 주로 활약했죠. 그러니 이번 사업 실패로 복건 지역에서 사업 철수를 하겠군요. 그러면 남은 지역은…….”
“강소와 절강이지. 강소성에서도 사실상 사업을 축소하고 있고.”
그 말에 진천희의 표정이 냉정해졌다.
“그것은 백린의각이 너무 대단해져서 생긴 일이겠군요. 강소성은 백린의각이 틀어쥐면서 표국의 일도 이미 일부 해결해 버렸으니까요.”
“그래. 이미 독자적인 운행로가 완성되었으니 표국을 쓸 일이 거의 없지. 혹시 운룡표국에 미안해지기라도 했느냐?”
그 말에 진천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공은 공이고 사는 사입니다.”
원래라면 진즉에 망했어야 했던 곳.
당시 그 분기점을 진천희의 덕에 넘기지 않았나.
이미 그동안 백린의각이 꽤나 운룡표국의 편의를 봐주었으니, 이다음은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본인이 해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