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10
제 409화
“확실히 소각주님의 위상은 현재 강호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독보적이죠. 천하 십 대 고수의 무위, 거기에 지역 민심을 잡기도 좋고, 소각주님의 어진 성정에 감화되어 스스로 따르고 있는 영물들의 가치도 상당합니다.”
컹!
황구는 진천희의 발밑에서 더 많은 육포를 요구했다.
진천희는 소매 밑에서 슬쩍 직접 만든 사슴 육포를 꺼내 황구에게 물려 주었다.
첩첩첩첩-
‘제 성정 때문에 감화가 되었다기보다는 이건 그냥…… 밥…… 때문에.’
세간 사람들은 모르는 진실이다.
황구는 인간의 성정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진천희의 요리 솜씨가 나날이 올라가서 개방에서 주는 평범한 잔반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요즘은 미쳤다 싶을 만큼 끝내주는 걸 만들기 시작했다.
개는 언제나 간식이 고프다.
“과찬이십니다.”
진천희는 탁자 밑으로 황구에게 육포를 주며 차분히 표정을 유지했다.
무월이 말했다.
“그 가치를 생각하면, 일일이 수적 놈들을 색적하면서 인력과 시간을 들이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특히나 양민들의 지지가 가장 크지요. 상행을 하든 표행을 하든 민심이 따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크니까요.”
스승님의 이마가 살짝 구겨진다.
“그렇군. 허나 겨우 그 정도의 이권 때문에 우리 의각의 후계자인 희가 직접 나설 필요가 있을까?”
……무월은 상사의 진짜 심중을 드디어 파악했다.
‘아, 반대를 했어야 했던 건가. 내가 눈치가 없었던 건가.’
머릿속에 불이 났다.
하오문에서 여러 해 구른 눈치로 봤을 때, 여기서 무월의 역할은 ‘소각주님이 가시는 건 아깝습니다! 백린의각을 벗어나시면 안 됩니다!’ 하면서 결사반대를 하는 것.
그러면 그제야 각주인 제갈린이 마지못해 ‘그래, 희야. 실무자인 외당총관이 그리 생각한다는구나.’ 하고 탈출로를 막겠다는 계획이었을 터.
‘나…… 나는 외당총관으로서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에 집중하느라 각주님의 심기를 헤아리지 못했다!’
중간 관리자는 고통스러웠다.
동공이 떨리는 무월을 뒤로한 채 진천희가 말했다.
“이권도 이권이지만, 다른 이유 때문에 저는 이 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유?”
“예.”
딱-
제갈린이 부채를 접는다.
명백히 심기가 불편하다는 뜻.
무월의 동공은 여전히 지진 중이다.
이미 엎질러진 말을 어찌 수습해야 할지, 중간 관리자는 막막했다.
허나, 백린의각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간언하는 게 맞긴 맞았다.
“백린의각의 상권을 늘리긴 해야 해요. 비누 판매가 늘어나고 있는 지금이 호조인데, 여기서 망설이면 도리어 밀립니다.”
그놈의 비누.
처음에는 애물단지였던 그 비누가, 향을 첨가한 후 매출이 꾸물꾸물 오르더니, 요즘은 아예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제작 단가도 그리 비싸지 않은 터라 보건도 되고 이윤도 챙기는 꽤나 좋은 상품이다.
진천희는 말을 이었다.
“거기다가 금호신단의 단가를 낮추기 위해서는 저희도 그쪽 교역로가 개척되어야 해요.”
금호신단.
스트렙토마이신.
유호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앞의 금(金)은 유호가 본모습을 보였을 때 본 금빛 머리카락이 떠올라서 붙였다.
“완농 교역로로도 부족하겠느냐.”
“네. 그게…… 그것만으로는 절대 대량생산이 안 되겠더라고요. 재료가 다양하게 들어가요. 지금으로서는 백린신단 단가의 아홉 배입니다. 이대로라면 극소수의 세가만이 치료비를 지불할 수 있게 돼요. 비슷하게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두 배 선까지는 맞춰야 해요.”
제갈린은 이마를 꾹꾹 눌렀다.
진천희가 말을 이었다.
“거기다가 의약 공방을 넓힐 거니까요.”
의약 공방.
페니실린, 스트렙토마이신, 아스피린을 만들기 위한 곳.
전기 모터가 없는 무림 별이다 보니 사람을 갈아서 만들어야 한다.
페니실린만으로도 허덕이는 판국이다 보니, 아예 의약 공방을 열어 일할 인력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연무 도시를 통해 조금씩 뽑아서 육성하고는 있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해.’
그래서 특단의 대책을 세웠다.
바로 고아들을 대량으로 채용하는 것.
오행신공을 익히기 쉽게 열화시켜 약을 제조하기 좋도록 개량한다.
이른바, 오행제약기공.
……이름은 진천희가 지었다.
이것을 고아들에게 전수해 육성한다.
오행제약기공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오행신공과 일부 호환이 되어 백린의각 분타 의원으로 살아갈 수도 있으나, 주 목적은 의약을 만드는 일.
보통 구파일방에는 고아 출신이 많다.
대다수가 종교를 기반으로 한 문파들이다 보니 결혼을 하지 않아 대를 이을 자손을 보지 않기 때문.
그래서 제자들은 어느 가문의 자식이거나, 혹은 갈 곳 없는 고아인 경우가 많다.
때문에 고아 비율이 제법 높을 수밖에.
무협지에서 화산파, 무당파 같은 곳의 주인공이 고아 출신이 많은 게 이러한 이유에서다.
다만 구파일방과 같은 문파들은 고아를 제자로 받을 적에 엄격하게 자질을 보고 뽑는다.
허나, 백린의각은 무인을 양성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심성(心性).
장차 의원이 될 아이이니, 타고난 마음씨를 최우선으로 본다.
무골은 상관없다.
그저 길고 험한 이 길을 묵묵히 갈 수 있는가.
의원이라는 게, 결국 현대의 의사와 같아서 평생 공부를 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을 받쳐 줄 수 있는 게 심성이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의 의사가 된다고 한들 기본적인 심성이 받쳐 주지 않으면 환자는 위험해진다.
현대에도 대리 수술을 하고, 이미 한번 딴 수액을 재사용하고, 의사 자신이 직접 마약류 진통제에 중독되기도 한다.
하겠다는 의지, 갈림길 속에서 분별할 수 있는 지혜, 마지막으로 거기까지 가기 위한 끈기.
이 세 가지가 심성의 기본 조건.
여기에 오행제약기공의 유출을 막기 위해, 특정한 진법 안에서만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든 것도 특징.
그런 몇 가지 안전장치를 사용해 전문 인력을 육성한다.
놀랍게도 구인 첫날 이미 백환후에서 많은 아이들이 지원을 했고, 그 외의 고아들도 지원을 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도산검림 강호에서 고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운이 좋아야 한다.
운이 없다면 무골이라도 좋아서 문파의 눈에 띄어야 한다.
대다수는 불가능한 일.
반면 백린의각에서는 심성을 보겠다는 독특한 조건을 내세워 교육과 끼니,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한다.
거기다가 공부 방향에 따라서는 의원으로서 평생 먹고살 수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
경쟁률이 치열할 만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 이 의약 공방의 초석이 완성되었다.
이제 금호신단의 단가를 절감하고 본격적으로 공방을 돌리기 위해서는 해로를 뚫어야 했다.
진천희는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를 조리 있게 스승님에게 말했다.
무월은 ‘과연 소각주님이십니다!’라고 추임새가 목구멍까지 튀어나왔지만 꾹 참는 중이다.
‘각주님. 이건 해야 합니다!’
부모님에게 버림받아 고아와 다름없이 하오문에서 살았던 무월이었다.
그렇기에 강호에서 고아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다른 이들과 함께 직접 가르칠 고아들을 뽑았다.
최종 결정은 각주님과 소각주님이 했다고는 하나, 아이들 중에 무월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자는 없었다.
그 애들이 드디어 최종 한 걸음을 남겨 놓고 기다리고 있다.
진천희가 말했다.
“스승님. 이번에는 스승님이 말씀하신 인원들을 다 데려가겠습니다. 저번처럼 절반만 데려간다, 이런 거 없습니다! 거기다 천 년 세가인 공손세가입니다!”
“희야.”
“운남에 비할 바 없이 가깝습니다!”
“희야.”
“이제 저도 제 몸 소중한 줄은 알고 있는 거 아시잖아요.”
그건 그랬다.
그때 운남에서 스승님의 속내를 들은 이후, 진천희는 달라졌다.
드디어 스스로를 돌보기 시작한 것.
제갈린은 무월을 바라보았다.
“외당총관은 어찌 생각하나?”
꿀꺽.
그는 목울대로 침을 삼키며 진천희와 제갈린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올 것이 왔다.
‘백린의각을 생각하면 가는 게 맞는데, 그걸 이야기하면 내가 죽는다.’
중간 관리자는 상급자 둘이 양옆에서 잡아당기는 통에 몸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그으……. 제가 뭘 알겠습니까. 이 아랫것은 윗분들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하하하, 외당총관이 겸손이 지나치군. 그동안 현명히 잘, 좋은, 의견을, 말해 오지 않았나?”
비록 백린의선은 웃고 있었으나, 눈은 무월의 입을 찢어 버릴 것 같았다.
“부담 갖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보게. 이러한 간언도 외당총관의 일 아니겠나.”
백린의선의 뒤로 진천희가 비 맞은 강아지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외당총관님, 저도 고견을 부탁드려요!”
꿀……꺽.
* * *
달그락, 달그락-
마차의 진동이 기분 좋다.
진천희는 비파를 뜯으면서 음공을 연습했다.
칠은금에 이어 여하륜에게 받은 암향비파다.
진천희의 생일 선물로 받았는데, 흑요석 같은 새카만 보석으로 이루어진 비파로, 신기하게도 현이 없었다.
-현은 손목에 있는 걸로 써.
그게 무슨 뜻인지 진천희는 바로 깨달았다.
흑천혈사.
오래전 여하륜이 흑전암괴가 가지고 있던 호신 무기를 진천희에게 선물했었다.
흑룡 팔찌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장력은 코끼리의 힘줄과 같고, 예기는 금강석을 벨 정도.
‘물론 특별한 마공을 주입해야 예기가 발현되지만…….’
진천희야 오행신공을 조합해 사용하면 되나 보통은 장력만으로도 충분하다.
진천희는 흑천혈사를 사용해 암향비파의 현으로 감았다.
디딩-
‘이거 사실상 무기인데?’
사마현이 선물해 준 칠은금이 음공을 사용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면, 암향비파는 들고 패고 현을 사용해 적을 베라고 만든 비파다.
특히나 흑요석 같은 검은 광택을 내는 이 몸체는 어지간한 강철보다도 단단해서 이 자체가 사람의 머리를 으깨기 좋았다.
‘음……. 사람을 홀리는 사파와 사람의 머리를 부수는 마교인가.’
같은 악기인데 사용법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싶다.
“좋다. 그거 더 연주해 줘.”
디리링-
왕각연의 말에 진천희는 방금의 곡을 연주했다.
딩딩~ 디딩~ 디디디딩딩딩~
섬세한 손가락이 비파 현을 퉁기며 음색을 만들어 나갔다.
한편으로 진천희는 마음속으로 가사를 읊었다.
‘텔미~ 텔미~ 테테테테텔미~’
이젠 철이 다 지난 지구 옛날 가요를 비파로 연주하니 어째 중원의 기상이 느껴진다.
공손영이 말했다.
“이거 분명 남녀연정지사일 거 같아.”
“응. 은원이 담겨 있는 그런 노래겠지.”
“달밤에 술잔 기울이면서 죽은 옛 여인을 떠올리며 시를 읊을까.”
그 말을 들으며 진천희는 생각했다.
‘조성을 잘못 짚었나?’
흥겹게 하려고 했는데 어째 잘 안 된다.
진천희는 필사적으로 이 슬픈 텔미를 기사회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 후크송 EDM 느낌이 비파로 어떻게 안 되나?’
곡 시작한 지 47초부터 장장 50번의 텔미를 외치는 그 노래.
‘120비트의 쟈가쟈가쟝쟝~ 쟈가쟈가쟝~’
대충 박자는 4분의 4박자 정도 되려나?
속으로 원하는 박자를 열심히 되뇌며 음계와 씨름한다.
진천희도 흥의 민족.
불구덩이 속에서도 힙합의 스텝을 밟으며 자진모리장단에 상모를 돌리는 것이 동방의 예가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