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11
제 410화
기왕 음공을 연마하는 김에 이런저런 악기를 만져 보고 있는데, 역시 편한 건 칠현금이 제일 편하다.
마차에서 펼쳐 둘 공간이 좀 부족해서 못하고 있을 뿐이지.
문득 진천희는 출발하기 전 무월의 눈물이 떠올랐다.
-제발……. 몸성히 돌아오셔야 합니다, 소각주님. 사람 하나 구명한다고 생각하시고…….
천하 십 대 고수를 상대로 몸성히 돌아와 달라고 하는 미친 상황 속에서 스승님이 눈 부라리며 무월을 노려보던 풍경이 선연했다.
진천희는…… 그 순간 새로운 영감이 떠올랐다.
그의 손은 전과 다를 바 없이 웅장하고 빠른 음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띠딩- 띠딩- 띠딩- 띠딩- 띠띠- 띠띠- 띠띠-
빠르고 경쾌한 음색, 흡사 사람을 홀릴 것 같은 반복되는 박자에 왕각연과 공손영은 놀란 눈으로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우와, 이 곡은 무슨 곡이야?”
“언니, 검수들의 비무를 묘사한 것 같아요.”
“아, 그렇구나. 검이 부딪치는 음을 묘사한 거야.”
“과연 천하 십 대 고수이자 음공의 대가~”
진천희는 그러거나 말거나 마음속으로 가사를 읊었다.
‘쏘리, 쏘리, 쏘리, 쏘리, 쏘리, 내가, 내가, 내가, 먼저, 네게, 네게, 네게, 빠져, 빠져, 버려~’
무월에게 바치는 헌사.
백린의각을 향한 그의 충정은 잊지 않으리라.
032. 공주, 출격
왕각연, 공손강, 공손영, 그리고 공손세가의 호위 부대와 함께 움직이니 대이동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손가, 그것도 최고 무력 부대인 천송단의 깃발이 걸리니 산적 하나 덤비지 않고 평안하다.
‘이게 권력의 중요함이구나.’
이 무인들을 상대로 덤벼들 흑도들은 없다.
만약 있다면 음모의 소용돌이 속에서 거액을 받은 암살대 정도겠지.
이런 경우에 보통 산공독을 먹고 무인들이 쓰러지는 게 무협의 클리셰이긴 한데, 그러기에는 황구가 너무 철통 보안이다.
컹!
‘오케이~ 통과.’
모든 식자재들을 황구가 검사하고 있다.
촤아아악!
황금 계란 볶음밥을 이용한 매운 곱창 덮밥!
“오오오, 백의신룡! 백의신룡!”
왕각연이 진천희의 별호를 연호하며 소리친다.
그 옆에서 공손영은 입가의 침을 스윽 닦으며 행복한 눈으로 냄비를 바라보고 있다.
‘어째서 공손현이 둘을 양옆에 끼고 사는지 알 것 같군.’
가만히 있어도 주변에 에너지를 들이부어 준다.
진천희가 만든 매운 곱창 덮밥을 입에 넣는 순간.
오독-
왕각연의 눈이 빛났다.
“천희야. 결혼해 줘!”
“아니, 미친…….”
“됐으니까! 나랑 결혼해!”
그 옆에서 공손영이 말했다.
“무슨 소리야! 천희는 나랑 결혼할 거다! 그리고 하루에 열 끼씩 해 준댔어!”
두 여인은 진천희를 밥 셔틀로 여기며 소유권을 주장했고, 진천희는 왠지…… 죽고 싶어졌다.
즐거운 식사를 마친 후.
공손영은 진천희에게 다가와 말했다.
“소화도 시킬 겸 대련 한판 할래?”
“그걸 왜 안 물어보나 했네요.”
진천희가 지켜본 바로는, 왕각연과 공손영은 언니인 공손현과 태생적으로 다른 인종으로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존재들이다.
그런 두 사람에게는 마차에 곱게 앉아서 간다는 것 자체가 좀이 쑤셔서 참을 수 없는 일.
“우와아! 나 구경할래!”
왕각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손가의 천송단 무인들이 저마다 말했다.
“저도요!”
“저도 구경하게 해 주십시오!”
태양지체 공손영과 벽안광의 진천희와의 싸움.
그동안의 전적만 본다면 진천희의 성취가 높다.
‘내가 독자로서 치트키를 써서 그런 거긴 한데.’
시작부터 기연을 독식해서 성장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긴 하다.
진천희가 말했다.
“검으로 싸워야 하나요?”
“흐음, 제갈세가는 어떤 무기이든 자유롭게 쓴다고 듣긴 했어.”
“네, 주력은 검이긴 하지만요.”
“무엇으로 싸울 건데?”
진천희는 암향비파를 후웅 들었다.
“이걸로?”
“비파를 휘둘러 검을 막겠다……. 보통이면 미쳤다고 하겠는데……. 좋아, 하자.”
공손영의 눈이 새로운 장난감이라도 본 것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진천희 역시 이 암향비파를 사용해 과연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한데? 이거 무게감이 썩 좋단 말이지.’
무게중심이 비파 몸체에 있어서 도끼처럼 운용하면 될 것 같았다.
단, 도끼날이 없으니 그 부분은 아마 흑천혈사를 이용해야 할 거다.
단시간 안에 어떻게 휘두르는 게 좋을지 필요한 무공을 정하고, 대략적인 초식을 정립한 진천희는 공터 한가운데에 섰다.
공손영은 그런 진천희와 몇 보 떨어진 곳에 섰다.
“오오, 비파로 싸우는 건가?”
“음공으로 공격하는 방식이 될 것 같은데, 귀라도 막아 둬야 할지 모르겠군.”
“으음. 역시 음공이겠지?”
공손세가의 무인들은 속닥이면서 앞으로 벽안광의가 펼칠 무공에 대한 추측을 했다.
여차하면 귀를 막을 준비도 했다.
‘화경에 경지에 다다른 음공은 귀를 막아도 별 소용이 없다는 걸 모르시는……. 아니, 안 막는 것보다야 낫긴 한데.’
진천희가 할 것은 음공이 아니다.
순수하게 음공만 사용한다면 사마현이 선물해 준 칠은현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진천희가 하고자 하는 건 단순 무식한 도끼질.
순수한 악기가 내는 파괴력(?)이 궁금했으니까.
“후우.”
공손영은 진천희를 상대로 초식의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흡사 산을 마주 본 듯한 기분을 느꼈다.
‘강하다.’
과거에는 그녀의 허리만 한 조그마한 아이였다.
그 아이가 이리 커서 자신의 앞에 섰다. 느슨하게 든 비파에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왜일까.
사람이 아닌, 사람의 형체를 한 산을 상대하는 기분이 든 것은.
‘너는 과거 내게 깨달음을 주었지.’
당시 은인 꼬맹이라 부르며 흑송운검을 주었고, 진천희는 그 은(恩)을 갚겠다며 그녀의 검에 조언을 했다.
어찌 보면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질문.
그러나 그 덕분에 그녀는 깨달음을 얻고 한 단계 더 탈각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무인으로서 벽을 넘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하여 다른 것은 생각하지 못했으나, 진천희가 검을 보는 재능이 타고나길 남다르게 타고난 거라면 아귀가 맞는다.
비록 근골이 무인의 것이 아니라고 하나, 통찰은 여느 무인보다 날카로웠으니까.
‘그래서 제갈가를 택했구나. 너는.’
구파일방 팔대세가 중에서 가장 그와 닮은 곳은 제갈세가일 터.
그러나 멸문하고 곧 스러질 곳을 왜 택했는지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
백린의선 제갈린은 시한부였으니까.
가끔씩 보여 주는 무위를 기억하는 이는 종종 부정하였으나, 그가 시한부라는 것을 공손세가는 의심치 않았다.
눈앞의 어린 소년은 사부를 고치고, 탈각하여 그녀의 앞에 서 있다.
거기다가 비파를 튕기는 폼이 진정으로 싸울 마음은 없어 보였다.
무시받는 기분에 속이 상할 수도 있으련만.
공손영은 그보다 진천희가 들고 있는 비파에 관심이 많았다.
저것으로 어떤 무위를 보여 줄 것인가.
또한, 강해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탕-
그 순간, 그녀의 몸이 미끄러진다.
후발선제의 묘리가 공손검법의 기본이라는 것을 이 소년을 만났을 때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대로면 진천희가 먼저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그녀가 먼저 길을 뚫었다.
직선의 검로가 공기를 가르며 쏟아졌다.
공손검격 초식.
청송만해(靑松滿海)–!
수십 개의 검격이 진천희를 향해 쏟아진다.
디리링-
그 순간, 청년의 눈동자에 푸른 꽃이 피었다.
청년은 비파를 연주하다 말고 비파를 흡사 방패처럼 휘둘러 검격을 막아 낸다.
비파의 둥근 뒷면이 검격을 흘러내었다.
타당!
“소리 좋고.”
청년은 흥겹게 말하더니 무거운 돌 비파를 후웅 휘둘러 곧바로 공손영을 향해 반격을 시도했다.
‘설마, 태을단선검?’
검기를 가르며 나아가는 호선은 틀림없는 태을단선검이다.
이 미친놈이 돌 비파로 태을단선검을 하고 앉아 있단 말인가.
타타타탕!
돌 비파가 원운동을 하며 공손영의 검을 시원스럽게 날려 버린다. 그러고는 그대로 한 바퀴 몸을 돌려 어깨에 텅 하고 얹었다.
돌 비파 특유의 무게를 이용한 공격.
‘팔 힘이 얼마나 강한 거지?’
보통이라면 나무로 만들어졌을 비파가 돌로 만들어져서 어지간한 태도보다 훨씬 무겁다.
그것을 휘두르는 정도라면 공손영도 가능하다.
허나, 그걸 휘두르며 태을단선검의 묘리를 쓰고, 공손검법을 막아 낸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팔에 공력을 담는다고 해도 이런 안정감은 무리다.
“얼마나 연습한 거야?”
공손영의 질문에 진천희가 담담하게 답했다.
“오늘이 처음이에요.”
“뭐?”
“그래도 동생이 선물을 보냈는데 써 줘야죠.”
그리 말하더니, 진천희의 잔상이 흩어진다.
‘삼재보법.’
극성에 이른 삼재보법이 흡사 그림자처럼 사람을 숨겼고, 이윽고 진천희가 다시 나타난 것은 공손영의 머리 위.
‘젠장……!’
후웅-
비파가 그녀의 머리를 쪼갤 것처럼 날아왔고, 공손영은 기다렸다는 듯 후발선제의 묘리로 쳐 냈다.
그 와중에 그녀의 손에서 검강이 발현된다.
카강!
이걸 막아 내는 것과 동시에 반격을 날릴 줄은 몰랐는지, 진천희의 눈이 살짝 커졌다.
진천희의 입 모양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역시 화경?!’
이 녀석, 미리 예상했던 모양이다.
그래, 화경이다.
꼬맹이들이 놀고 있는 동안, 태양지체인 그녀가 화경이 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진천희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으나, 공손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역시 무협은 드래X 볼 전개인가? 주인공이 초사이X인이 되면 동료도 적도 다 초X이어인이 되던데?!’
무언가에 몰입하면 이해 안 가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습관은 여전하다.
콰앙!
반격의 시간. 공손영은 다음 일격을 날렸다.
* * *
모두가 진천희의 검무, 아니, 금무(琴舞)를 바라보았다.
청년의 손에 있는 것은 단순한 비파다.
돌을 깎아 만들었으니 몹시 무겁다는 것 정도는 모두가 짐작할 수 있었다.
청년은 그것을 부지깽이처럼 휘두르며 공손영의 공격을 막고 피하기를 반복했다.
카강, 캉!
신기하게도 청년의 움직임은 원숭이와도 닮아 있었다.
그것도 사원에 머물면서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종류의 악질적인 놈들.
흥겹게 덤벼들다가 재빨리 도망치며, 그렇게 도망치는 퇴로에는 어김없이 한 수가 숨겨져 있었다.
상체는 일부러 약간 구부정하게 자세를 낮추고는 비파를 한 번 휘두르고.
탕!
어깨로 회수하며 한 바퀴 몸을 휘돈다.
타당!
그것을 기본 박자로 삼아서 태을단선검의 궤적을 돌 비파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한참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왕각연이 중얼거렸다.
“아, 그러네. 이거…… 회(回)의 묘리를 쓰고 있어. 공손검법이 쾌와 환을 위주로 움직이는 후발선제의 검이니까. 중(重)과 회(回)를 사용해서 파훼하고 있는 거야.”
그 말에 무인들 모두 진천희의 금로(琴路)를 읽으니, 정말로 무거움과 회전력을 중심으로 공손영의 검로를 방해하고 있었다.
“저걸 돌 비파로?”
누군가가 내뱉은 말에 모두가 침음을 내뱉는다.
그 순간, 진천희가 공손영에게 전음을 날렸다.
[누나, 화경인데 뭔가 정체되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