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14
제 413화
등평도수는 말이 쉬워 등평도수이지, 강호에서 등평도수를 할 수 있는 무인은 많지 않다.
제아무리 고수라고 하더라도 바다 한복판에서 배가 침몰하면 나뭇조각 하나 들고 버티는 수밖에 없다.
공손현이 깡마른 몸이 기괴한 방향으로 비틀렸다.
그건 그녀의 습관이다.
“운룡표국을 인수한 공손세가에서 황하 수로를 따라 산동성에 진출 한다고 하면 분명 방해하려 하겠지요. 허나,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은 그쪽도 꺼릴 거라 생각합니다.”
“…….”
이다음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의외의 말이었다.
“허나, 그들이 산동성의 두 세가와 합종연횡을 할 수는 있겠지요.”
그 말에 진천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수적과 명문정파의 무림세가가 물 밑에서 손을 잡는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못 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그녀의 질문에 진천희는 말문을 잃었다.
거대한 종교도 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사람을 도살하지 않나, 재미있게도 정파라고 불리는 자들이 뒤로 이런 짓을 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질 않는다.
‘무림세가란 곧 칼로 황금을 만드는 자들의 집단을 뜻하지.’
그 칼이 정의롭기만 하다면 그만한 황금은 결코 벌 수 없음을 안다.
공손현이 말했다.
“그리 놀라지 않으시는군요.”
“강호는 넓고 깊으니, 촌의(村醫)의 잣대로 서투르게 판단하려 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그 말에 공손현은 작게 생각했다.
‘역시…… 말이 잘 통하는구나.’
중간에 끼어들거나 반박하는 바 없이 우선 공손현의 판단을 존중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백린의각은 그곳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지역을 알고, 경험한 자의 판단을 우선하는 게 맞다.
허나, 그것을 지키는 강호인이 몇이나 되던가.
그런 의미에서 진천희는 최고의 동업자였다.
공손현은 한결 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그들을 전부 끌어들이고, 일망타진을 하려는 계책을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상옥추제(上屋抽梯)계입니다.”
상옥추제.
지붕으로 유인한 뒤 사다리를 치운다는 뜻의 계책으로, 삼십육계의 계책 중 병전계(竝戰計)에 속하는 이십팔계의 책략이었다.
이 계책은 일부러 빈틈을 보여 적을 유인한 뒤 포위하여 처치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과거 진천희와 제갈린이 사용한 조호이산의 계와 유사한 듯하면서도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역시 공손현은 적이 되면 무서운 상대야.’
비단 흑의보다도 새카만 눈동자로 그녀가 진천희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느껴졌다.
이해를 했는가, 이해를 한다면 어디까지 했는가.
그렇다면 앞으로의 계책을 예측할 수 있는가.
‘책사로서의 나를 시험하고 있는 거군.’
진천희는 말을 이어 나갔다.
“결국 수적과 황보세가, 그리고 산동악가를 끌어들여 일망타진한다는 말이군요. 그러려면 미끼가 그럴 듯해야 할 텐데요. 굳이 그런 수를 쓰신다면 제가 없어도 되는 일 아닌가요?”
진천희의 노림수를 깨닫고 그녀가 피식 웃었다.
“일망타진을 한다고 해도, 수적들이 도주하고 그들의 수채가 그대로 남아서야 화근을 남기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소각주께서 그 부분에서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군요. 물론, 미끼 역할도 부탁드립니다.”
‘숨기지 않는군. 하긴, 그만한 대가이니.’
공손세가가 그 정도의 대가를 백린의각에 지불한 것은 그만한 것을 가져가기 위함.
진천희로서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미끼 역할이군요. 역시…… 알겠습니다.”
“그러면 세부적인 계획 말입니다만.”
그녀가 뒤틀린 입술로 작게 계략을 읊조렸다.
그것을 들은 진천희의 얼굴이 살짝 난색을 표했다.
“어…….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예. 완벽해야 하니까요.”
진천희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허어……. 알겠습니다.”
일이 끝날 때까지 중간에 부디 아는 사람을 만나진 말아야 할 텐데.
진천희는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무협 소설에는 그 뿌리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 하나 있다.
* * *
요녕성의 지형은 무척이나 독특해서, 동남쪽으로 길쭉하게 튀어나온 지대가 있다.
이곳에 대련(大連)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항구 도시이며 공손세가의 주요 거점 중 하나.
여기를 통해 하북성, 산동성, 강소성, 절강성, 복건성, 심지어 광동성까지도 배가 간다.
제국의 동남부 지역을 전부 다니기 때문에, 그 무역의 범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다.
물론 해변과 항구까지만 영향이 있을 뿐.
뭍에는 해당 지역을 장악한 세력들이 따로 있으니 내륙까지 영향력을 뻗치기에는 어렵다.
그렇다 해도 제국의 동부와 동남부, 두 지역의 해상은 공손세가의 손아귀.
설령 왜구로 대표되는 해적들조차도 공손세가의 깃발을 보면 도망치기 바쁘다고 할 정도다.
그리고 그 대련의 항구에서 배 한 척이 출발했다.
배는 쭉쭉 나아가, 그대로 산동성의 황하강 하류로 향하고, 잠시 정박하여 배의 손님을 내려주었다.
“천하의 공손세가에서 특별한 손님을 모시고 강호 유람을 한다더군?”
한 표사의 말을 시작으로 앞다투어 다른 소문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국(異國)의 공주가 공손세가에 의뢰해, 운룡표국의 표사들을 보표로 삼아 강호에 유람을 나왔다던데.”
“단순 유람이 아니라던데?”
“허어, 그게 무슨 말인가.”
“배에 황금이 천 관이나 실려 있다는 소문도 있네.”
“말만 들으면 수상쩍기 그지없는 소문이구만.”
“허나, 화려한 배가 목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천하절색인 이국의 공주를 보았다는 자들도 나오고 있다네. 그것도 항관(港官)이 보고 놀랐다는군.”
목격자라. 다른 이도 아니고, 관리가 보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항관이? 진짜인가?”
“거기다가 칠현금 소리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밤에 배에서 들리는 곡조에 많은 이들이 시름을 앓고 있다 들었네.”
“허어…….”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곡이나, 흡사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듯한 애절한 곡조라 하더군.”
“신비로운 여인이로군.”
몽롱한 표정으로 표사들이 저마다 한마디를 했다.
* * *
산동성의 황하강에 있는 수로채는 총 네 개.
이 네 개의 채주가 모여서 회의를 시작했다.
흉악하기 그지없는 각 채주들 사이로 복면인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채주들은 복면인들의 정체를 아는 듯하나, 복면인들은 끝까지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정파 개잡놈들 역겹기 그지없구만.] [칼로 돈 버는 건 똑같은 주제에 겉으로나마 허울 좋게 살려는 거 아니겠나.]사파는 힘이 곧 법이다.
수적들 중에서 가장 강한 자가 채주가 되며, 채주가 된 이상 상당한 고수라 할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을 상대로 복면인들은 전혀 겁을 먹지 않는 기색이었다.
오히려 싸움을 걸고 싶으면 걸라는 듯 태연하기만 했다.
[황보세가와 산동악가에서 보낸 사자들이 맞나.] [그건 틀림없네. 물론 직접적으로 물어본다면 부정할 것이네만.] [이럴 거면 황보세가도 산동악가도 다 같이 수적 깃발 아래서 모이면 얼마나 좋겠나.] [헛소리 말게나. 저자들은 우리 수적과는 비교될 수 없을 만큼 큰돈을 만지는 자들일세. 뭐하려 가문의 위신까지 깎아 가며 수적질을 하겠나.]‘그러면 지금 하는 게 수적질이 아니라고?’
채주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러나 그들이 뭐라고 불평하든 아무 의미도 없다.
아무리 수적질을 하며 사람을 잡아 노예로 팔아먹은들, 거대 세가들이 쥐고 있는 부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
복면인 하나가 말했다.
“이국(異國)의 공주를 호위한다니. 이번 표행에 성공한다면 공손세가의 이름이 더욱 높아지겠군.”
“예, 그럽습죠. 허나, 어쩌면 미끼일 수도 있습니다요.”
“…….”
복면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옆에 있던 다른 복면인이 말했다.
“진짜여도 좋고, 미끼여도 좋다. 이미 저쪽에서 떠들썩하게 판을 벌인 터이니. 그 표행을 실패하게 하여 산동성에서 쫓아낸다면 우리가 이득 아닌가.”
“미끼라 하시면……?”
그 말에 복면인이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우리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말이네만. 인상착의로 봐서는 보타문의 여고수일 가능성이 높네. 보타문은 대대로 검을 잘 쓰는 고수들이 포진되어 있지. 그중에서 외모가 출중하고 검술이 일절인 자가 나서서 이국(異國)의 공주로 치장했을 수도 있지.”
“일리 있는 말이군. 나 역시도 미끼가 아닐까 생각했네.”
미끼로 사용할 인물은 스스로도 검에 소양이 있어야 했다.
두 세가에서 이 시기에 이런 일을 할 만한 여고수들을 추린 후, 그들 중에 행적이 불분명한 자를 추려 보니 남는 건 결국 보타문뿐이었다.
“보타문의 여고수라면 확실히 누가 어디서 활동하는지 추적하기가 어렵지. 애초에 보타표국을 통해 움직이니 말일세.”
“최근 보타표국이 공손세가와 접촉한 일이 있었나?”
“있었네. 목격자도 구했으이. 허나 이국의 공주가 그쪽 고수가 맞는지는 확실치 않으이.”
“십중팔구 맞을 걸세. 그 외의 모든 여고수들을 찾아보았으나, 행방을 알 수 없으면서도, 이렇게까지 시간을 낼 수 있을 만한 자가 많지가 않아. 당장 삼절추호만 해도 무림맹을 통해 위치를 알 수 있지 않던가.”
그 말에 채주들은 왠지 매스꺼워졌다.
[무림맹도 저놈들의 뒤를 봐주는 거군요.] [삼절추호의 정보를 왜 얻어 갔는지는 그들도 모를 걸세. 기껏해야 동맹으로서 지원을 하고 싶다고 핑계를 댔겠지.] [으으…….] [수적질 하루 이틀 하나? 동생. 우리는 그저 저자들 옆에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될 걸세. 만약 미끼라고 해도 황금을 얻을 수 있으니 좋고, 이국(異國)의 공주가 진짜라면 몸값을 받을 수 있으니 더욱 좋은 일이지.]어차피 칼을 쥐고 양민의 피로 돈을 버는 이상 이제 와서 거리낄 건 없다.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
두 세가가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로 했으니 채주들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으리들.”
채주들은 비굴하게 예를 표했다.
복면인은 그 말에 짐짓 거만하게 답했다.
“알겠네. 우리 쪽에 잘 전해 주도록 하지.”
그렇게 황보세가와 산동악가, 채주 넷의 회의가 끝났다.
* * *
황하강의 하류.
즉,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역인 항구 도시 하구(河口)에 배가 도착했다.
민물과 해수가 만나는 그림 같은 풍경을 뒤로하고 아름다운 여성이 내려섰다.
저벅-
그리고 좌우로 잘생긴 미남자 무인 두 명이 그녀를 호위하듯 함께 내려섰다.
미인은 면사를 썼기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흐릿하게 보이는 얼굴선은 틀림없는 절세가인이었고.
그 옆에 선 두 명의 호위 무사들 역시 호방한 외모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선남선녀구나!”
“면사를 쓴 사람은 누구래?”
“쉿, 손가락 내리게나.”
“표사들 말로는 공손세가에서 운룡표국을 인수하면서 시작한 보표 사업의 첫 손님이라고 하더군. 이국의 공주라고 들었네.”
“비록 얼굴은 면사로 가려져 있으나 풍겨 오는 기품은 분명 공주가 맞군그래.”
“그러면 양옆에 함께 가고 있는 미남자들은 공주의 호위 무사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