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15
제 414화
공주를 위시한 공손세가 일행은 그렇게 특급 객잔으로 향했다.
공주는 아무런 말도 없이 앞으로 걸어갈 뿐이었으나, 언뜻 보이는 콧날과 흰 피부가 분명 미인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공주는 생각했다.
‘왠지…… 죽고 싶다. 내가 이 나이 먹고…….’
그랬다.
진천희와 공손영, 왕각연!
진천희는 여장을, 공손영과 왕각연은 남장을 한 것.
[아니, 고작 이걸로 진짜 걸려들까요?] [언니 말로는 공주가 아니더라도 여고수에 집중하면 그것으로 된 거라고 하더라고.]‘아아…….’
[대의를 생각해. 이 이상으로 확실한 변장이 어디 있겠어. 언니가 정 싫으면 최고급 인피면구라도 구해 준다고 했는데 그건 싫다면서?]그랬다.
공손현이 구해 오려는 건 최고급 인피면구.
고수가 봐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운 인피면구다.
문제는 무림 세계에서 그 정도의 인피면구는 정말로 사람 얼굴 가죽으로 만든다는 점이었다.
리얼 사람 얼굴로 만들었다는 것 때문에 공손세가도 그 정도의 인피면구는 결코 쓰지 않지만.
정 진천희가 여장이 싫다면 사파에서 유통되는 것을 구해 오겠다고 비장한 표정으로 말하는데.
현대인은 맨정신으로 그거 뒤집어쓰고 연기할 자신이 없었다.
[역용술을 쓰는 정도로는 고수들의 눈을 속일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을 거 아니야.]대의.
대의란 대체 무엇인가.
아무리 그래도 진짜 사람 얼굴 가죽을 쓸 수가 없었던 진천희는 눈물을 머금고 궁장을 입고 면사를 쓰고 말았다.
반대로 공손영과 왕각연은 호방한 인상의 멋진 이국의 호위 무사가 되었고.
‘칼 든 유교 사회에서 여장을 하고 남장을 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
얼마나 흔하지 않냐 하면 여장, 또는 남장을 한 게 전래 동화 소재로 나올 정도다.
그게 흔했다면 동화 소재거리도 안 되겠지.
허나, 수천 년을 이어져서 전해 오는 거라면 여전히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의 금기라고 느끼는 거고, 그 금기를 넘은 이야기에 재미를 느끼는 거다.
그렇기에 자꾸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겠지.
물론 예외적인 것도 있긴 했다.
패왕별희 같은 경극 쪽에서는 남자가 여장을 하고 여성의 역을 연기하기도 했으니까.
진천희는 이러한 분석을 머릿속으로 하며 이 상황을 조금 즐기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평생 동안 이런 걸 할 기회가 몇 번이나 있겠어.’
스스로 불혹(40세)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환생 후의 세월까지 합치면 이미 할아버지다.
‘그래도 여전히 40세 이후로는 나이 든 적 없다고 우기고 싶지만.’
끄응.
여전히 불혹인 셈 치기로 했다.
아무튼 ‘불혹’의 진천희는 이 또한 하나의 유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는 사람만 마주치지 않으면 되겠지.’
다행히 여기는 여하륜이나 사마현의 활동권 밖이고, 천우는 무당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속세를 돌아다니며 얻은 깨달음을 갈무리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왕각연이 전음을 보냈다.
[천희야, 이틀만 버텨 봐라.] [나는 마음의 여유를 갖기로 했어.]아직 불혹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는 영혼은 열린 마음을 갖기로 했다.
문득 돈을 계산하는데 계산하던 소저분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린다.
[여장을 하면 남녀를 안 가리는구나. 이야, 내 친구 마성…….] [각연아… 거기까지는 힘들다. 그만……하자.]다음번에는 면사 말고 멱리(삿갓에 얇은 천을 덧대어 얼굴을 가리는 쓰개의 일종)로 바꿀 생각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동네 객잔이며 길거리 음식들이 꽤 맛있다는 거다.
‘호오, 엿으로 금붕어를 만드는 장인분이 계시네.’
진천희는 장인이 하는 모양을 한참이나 살펴보면서 나중에 따라 해 봐야지 결심했다.
장인분은 면사를 쓴 진천희를 보고 화들짝 놀라더니 평소보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오독!
그만 금붕어 지느러미가 부러졌다.
‘음……. 곤란하군. 다들 나만 보면 긴장해. 역시 공주라는 직책이 부담스러운 건가.’
그도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는 운룡표국의 표사들이 무려 이백이나 지키고 있고, 진천희 주변에는 남장한 왕각연과 공손영, 거기에 열 명의 근접 호위까지 따라붙고 있으니까.
“허억, 저 공자님 너무 잘생겼다.”
“이국적이야……. 저 나라에는 미남만 사는 건가?”
낭자들이 속닥이는 어조로, 그러나 배에 힘이 너무 들어갔는지 모두가 들을 만큼 큰 소리로 수군거렸다.
그녀들도 뒤늦게 자기들이 힘 조절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만 웃음을 터뜨리며 멀어졌다.
멀어지면서도 왕각연과 공손영에게 수줍은(허나 힘찬) 손을 흔들어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야, 나 남장하니까 인기가 좀 제법인 거 같아.]왕각연이 으쓱거렸다.
공손세가에서 부른 기술자의 솜씨가 제법인 데다가, 결국 미녀는 남장을 해도 미남이 되지 그 얼굴이 어디 가지 않는다.
진천희라는 미남이 여장을 해도 그 얼굴 어디 안 가고 미녀가 되는 것처럼.
가장 인기가 많은 건 공손영이다.
태양지체의 타고난 무골 때문일까.
그녀는 어릴 때부터 체격이 컸다. 성장기를 거치면서 더 커졌고, 스물이 넘어서도 키가 자랐다.
지금은 일행 중에서 가장 키가 큰 터라 눈에도 잘 띈다.
“오빠, 어디 살아요?”
“오빠, 이번에 가면 안 와요?”
“나이 몇이에요?”
진천희는 분명 미남인데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공손영이 받은 것과 같은 대시를 받은 적이 없다.
이런 것도 분위기에 따라 다른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공손영에게는 왜인지 처자들이 다들 절박한 눈으로 덤벼들었다.
용맹했다.
“오빠!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공손영은 당황하며 이렇게 말했다.
“잠깐, 호위 중입니다. 잠시만.”
“허어……. 목소리는 또 왜 이리 좋아요?”
사파였으면 살기라도 발출해서 물러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공손영 인생에 이다지도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을 일이…….
그때 왕각연이 말했다.
[아이고, 언니. 천송단 동생들이 질투하겠네.]뒤를 돌아보니 똑같이 남장을 한 천송단의 여협객들이 눈을 부라리며 ‘우리 언니한테서 떨어져. 이 잡것들아!’라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이미 인기 많았군.
[여자들에게 인기 많은 얼굴이구나. 공손영 누나가.] [많지……. 저 언니는 원래도 숨만 쉬어도 다들 달라붙었어. 그렇잖아. 저렇게 믿음직하게 잘생긴 언니가 어디 흔하냐고.]여기에 남장까지 하니, 동네 처자들이 설탕 본 개미마냥 달라붙었다.
[대체 어떻게 보이기에.] [성격 좋고 믿음직스러운 게 느껴지는데 각 잡고 좋아하면 인생 크게 조져질 거 같은 그런 매력?]‘아니, 그러면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니야?’
당황하는 진천희에게 왕각연은 차분히 전음을 날렸다.
[개미지옥 같은 매력이 있어, 저 언니는. 아는 사람은 아는 그런 민들레불나방 같은 매력이지.]일생을 모태솔로로 살아왔고, 두 번째 생도 다를 게 없는 진천희는 점점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튼 그놈의 ‘민들레불나방’ 공손영은 양민 상대로 모질지를 못했다.
그리고 그 모태 양기가 만들어 내는 개미지옥에 아녀자들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인생 크게 조져질 거 같은 매력.
그것이 불나방.
그 무서움을 진천희는 모른다.
‘공손영은 무협 주인공을 해도 되겠다.’
요즘 무협은 좀 덜하지만, 옛날 무협을 보면 주인공이 시선만 마주쳐도 여성들이 달뜬 신음을 내뱉으며 찰싹 달라붙는 묘사가 나온다.
당시에도 읽으면서 이게 무슨 개 같은 소리인가 하며 보았는데.
그걸 현실, 그것도 남장 여자에게서 볼 줄은 몰랐다.
[네가 좀 도와줘라.]진천희의 말에 왕각연이 답했다.
[나까지 가면 불난 집에 기름 붓기지. 네가 ‘가가~’라고 하면서 언니 팔짱이라도 껴 보든가.] [살려 줘라.]진천희는 그리 말하며 지느러미 박살 난 금붕어 엿을 먹었다.
‘음. 맛은 괜찮군. 혹시 엿가락이 공기에 닿는 면적이 클수록 더 맛이 부드러워지는 건가?’
서양의 ‘엔젤 헤어’라는 디저트를 떠올리면서 한번 새로운 시도를 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천희는 그렇게 여인들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공손영을 뒤로한 채 다음 먹거리를 찾아 떠났다.
* * *
공손세가와 백린의각이 둔 포석에 대응하여 다른 곳도 차츰 판세를 읽기 시작했다.
우선 무림맹.
무림맹주 악진은 보고서를 읽어 나갔다.
그 옆에서 무림맹 총군사 독고선이 말을 이었다.
“공손세가의 확장, 그리고 수적과 일부 정파가 연합한 것으로 보이는 첩보가 도착했습니다.”
“일부 정파라고 함은?”
“황보세가…….”
거기까지 이야기하고 독고선은 망설이다가 결국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산동악가입니다.”
산동악가는 창왕 악진의 세가.
그는 눈을 감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
“첩보는 틀림없겠지?”
“네. 안타깝게도.”
“……내가 아들 농사를 잘못 지었군. 잘못 키웠어. 아니, 교육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으니 유구무언인가.”
창왕 악진의 얼굴에는 깊은 그늘이 졌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처음으로 걸음마를 뗐을 때를 생각했다.
그 아이가 처음으로 창을 잡았을 때도.
그리고 넘어져서 ‘와앙~’ 하고 울다가 아빠가 오니까 눈물을 쓱쓱 닦고 장부인 척 몸을 일으켰던 때도.
허나, 자랄 때의 기억은 거의 없었고.
마지막으로 아이를 본 건 무림맹의 총회의 때뿐이었다.
차 맛이 떫었다.
자업자득의 맛이었다.
“……황보세가는 의외군.”
“좋은 아버지가 선한 가주인 것은 아니지요.”
집에서는 좋은 가장이어도, 밖에서 쓰레기 짓을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나.
한 면이 선하다고 모든 면이 선하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본디 모순되고 구질구질했다.
그것이 인간이며, 그 인간들이 모인 것이 강호이고 무림맹.
독고선이 말을 이었다.
“또한 황보세가의 이득을 생각한다면 그 편이 낫다는 판단이 들었을 겁니다. 흑빙독룡 공손현이 가주 대리에 앉은 이후로, 공손세가의 확장은 정상이 아닐 정도로 공격적이니까요.”
“그래서 결국 거기까지 손을 댄 것인가.”
“네.”
“……급한 마음에 손을 댄 듯싶으나……. 공손현을 너무 얕본 것 같군. 용봉지회에서 가장 피해를 입지 않은 게 공손세가였네. 그것을 지휘한 건 공손현이었고.”
“짧은 시간 몇 없는 정보로 과감한 판단을 내렸지요.”
“만약 가주로 앉은 게 무력을 가진 공손영이고 그 아래에 공손현이 총관으로서 앉았다면 모를까, 지금은 공손현이 머리에, 공손영이 수족 역할을 하고 있네. 절대 당하고 있을 공손현이 아니야.”
“산동악가를 도우실 겁니까?”
“…….”
그는 아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같은 정파에게 밀리기 싫어 수적과 손을 잡은 아들을.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무림맹주이자 가주로서는 충분히 편의를 봐주었네. 아비와 아들로서는…… 이대로 놔두는 것이 최선이겠지.”
“맹주님께서는 산동악가가 공손세가에 당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이런 일은 사필귀정으로 가기 마련이지.”
그는 거기까지만 이야기하고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허나, 사파와 연수한 게 밝혀진 이상, 자신의 세가라 하더라도 똑같이 대할 것이었다,
“결코 돕지 말고, 혹시라도 무인을 요청하면 답하지 말라. 단, 혹여 공손세가와의 중재를 원한다면, 그때는 돕는다. 피를 덜 흘리게 하는 것이 무림맹의 일이니.”
“공손세가가 원하지 않는다면요?”
“그리된다면 그 또한 사필귀정이지.”
그는 냉정하게 말하고는 다시 쓰디쓴 차를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