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16
제 415화
같은 시간 사도련도 보고서를 받아 들었다.
사도련주 술제는 책사에게 말했다.
“책사야.”
“네, 네!”
“나는 이제 그런 거 보기에 늙었어. 비만 오면 뼈가 시린다. 봐라.”
젊은 놈들보다 탱탱한 피부로 술제는 자신은 늙고 병들었다는 것을 열심히 이야기했다.
총군사 사뇌 북궁산산.
사악한 뇌라는 별호답게 온갖 사악하고 기기묘묘한 수를 들고 오는 그녀이나, 유교 세계답게 나이 많은 사람한테는 한 수 접어준다.
물론 그 사람이 월봉을 주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술제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네 말대로면 정파 새끼들이 우리 수적 애들이랑 손잡고 공손세가를 친다는 거잖아?”
“그렇습니다. 수로채 넷이 사라지면 산동성에서 사파의 영향력 자체가 사라질 게 우려됩니다.”
“미끼는 보타문의 검수로 예상되고.”
“네.”
“딱히 우리가 뭐 도와줄 건 없고.”
“안 도와주시게요?”
“보타문 애들 얼마나 성격 더러운지 요즘 젊은 애들은 모르지? 나 때는 말이야, 검후 그 짐승이 ‘아미타불.’ 할 때마다 사람 대가리가 반토막이 났어요. 자비는 얼어 죽을 자비.”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검후의 이야기고…….”
“말조심해라. 검황이 누군지 아직 우리는 모른다.”
검왕과 검후가 비무를 펼쳤으나, 두 고수 모두 어째서인지 결과를 함구했다.
술제가 말을 이었다.
“어쨌든 걔 밑에서 배운 애도 ‘아미타불.’ 하겠지, 안 하겠냐? 거기다가 섬 애들이라 서로 애틋해. 잘 뭉쳐. 자매 하나 뒤지면 셋이서 은원 갚겠다고 강호 끝까지 쫓아온다? 세 명한테 ‘아미타불.’ 당해 볼래?”
술제는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옛 악몽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그러면 진짜로 내버려 둡니다?”
“강호에 수적이 씨가 마른 적이 있냐? 냅두면 언젠가 수채가 또 생길 거다. 지 인생은 지가 챙기라고 해. 이기면 이기는 대로 좋고.”
두 세력 모두 백린의각의 개입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설마하니 공손현이 소백룡을 여장까지 시켜서 앉혀 놓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에 생긴 일이었다.
* * *
황하를 따라 배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뱃머리에 서서 공손영이 일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별거 없어. 이대로 황하를 따라 산동성 끝까지 갔다가, 그냥 그대로 돌아오는 거지. 중간에 관광할 도시가 있다면 좀 즐기면 되는 거고.”
디리링-
진천희는 금을 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배에서 습격하길 원해? 도시에서 습격하길 원해?]공손영의 전음에 진천희가 반문했다.
[공손영 누나는 습격할 거라고 믿으시는 거군요.] [믿는 게 아니야. 그게 당연한 거지. 너는 그러지 않길 바라는구나.]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건 정파가 정파로서의 도리를 지키기를 바랄 뿐이다.
손을 잡아도 되는 상대가 있고, 그렇지 않은 상대가 있다.
수적은 수적이다. 사람을 공격하고 아이들을 납치해 노예로 팔아 버리는 놈들.
아이는 언제나 비싸다.
제국이 비록 노예 제도를 금하고 있다고 해도 이 시대의 공권력은 가까운 칼보다 한없이 연약하다.
굳이 타국까지 가지 않더라도 어딘가의 섬에다가 팔아 버리면 그 아이는 영원히 못 찾는다고 봐도 된다.
‘그게 사파가 하는 일이지. 피를 황금으로 바꾼다는 건 그런 뜻이니까.’
디딩-
진천희는 금을 타며 생각에 잠겼다.
‘산동악가와도 황보세가와도 모두 연이 있어.’
산동악가와는 창왕 악진으로 인해, 그리고 황보세가와는 함께 무림맹으로 향하며 한 솥에서 밥을 먹은 연이 있다.
적이 된다는 것이 그리 두렵진 않았다.
허나, 은원이 생긴다는 것은 두려웠다.
‘분명 그들이 잘못한 일임에도. 어째서 은원이 생기는 것인가.’
공손현이 백린의각에 바친 호사스러운 대가에는 그 은원값도 들어있다.
[부디 아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군요.] [황보세가의 남매가 복면이라도 쓰고 오는 것을 걱정하는 거야?] [불가능한 일은 아니죠.] [그래. 그 또한 가능한 일이지. 그래서 너는 적은 치료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는 있는데, 그들이 만약 섞여 있다면 그때도 치료하지 않을 거야?]디리링-
“…….”
진천희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현을 켜며 음률을 낼 뿐이었다.
‘한때 강호의 이런 부분이 참 좋았던 적이 있었어. 흑도와 백도는 분명할진대 은원은 분명하지 않은, 그런 진흙탕을 즐겁게 읽었었지.’
그리고 그 진흙탕 속에서 이제 아는 이의 시체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각연에게 이것을 물으니 그녀는 묵묵히 활을 정비하다 말고 답했다.
[야. 나는 손속에 사정을 보진 않을 거야. 알지?] [응. 너는 용서치 않겠지.] [그래. 정파이면서 수적과 함께한 놈들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어.]그게 왕각연의 협객도다.
그녀는 앞으로의 은원을 망설이지도, 정에 얽매이지도 않았다.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으로 적의 심장을 관통할 뿐이었다.
‘미끼인 만큼 준비는 이미 만전인가?’
왕각연은 초절정, 공손영은 화경, 거기에 더해 근접 경호하는 열 명 중 다섯은 초절정에 다른 다섯도 절정 고수.
정예 중의 정예가 모여 있다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거기다 초절정의 고수 셋은 공손세가의 고수이고, 다른 두 명의 초절정 고수는 운룡표국의 대표두 둘이다.
운룡표국에는 대표두가 넷이 있는데.
이들이 운룡표국의 핵심 간부이며 최강자들.
화경의 경지인 운룡표국주야 화병으로 자리보전하고 계시지만, 이들은 운룡표국을 결코 떠나는 법이 없었다.
긴 길을 걸어가며 표사들 간에 쌓인 정은 그 어떤 전우애보다 끈끈하다.
사업이 망했다고는 하나 운룡표국주는 인덕이 있는 사람이니 더더욱 그랬다.
그런 자들을 공손현은 망설임 없이 이번 일에 사용했다.
여전히 흑빙독룡을 욕하는 표사들이 운룡표국에 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그녀가 아니었고.
진천희는 그런 점이 무섭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있어 평판이란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인가, 그렇지 않은가 정도이고.
실질적인 인망은 자연스럽게 공손영 쪽으로 향할 테니 모질다고 욕먹는 역할은 자신이 맡으면 된다.
한밤의 갑판 위.
물소리와 금 타는 소리만이 울렸다.
왕각연이 입으로 말해도 좋은지 묻자 황구가 괜찮다는 신호로 낮게 짖는다.
엿듣는 이도 없고, 그나마의 소리도 진천희의 칠현금에 묻힐 터.
그래도 왕각연은 세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공손영 언니는 어쩔 거야?”
“으음…….”
공손영은 진천희의 연주를 들으며 생각에 잠긴다.
만약 정말로 산동악가와 황보세가가 끼어든다면 그때부터는 돌이킬 수 없으리라.
“뭐… 나도 아는 사람 시체는 안 보고 싶은데 말이지. 그 사람도 음……. 나 죽이러 온 거니까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리고 언니가 가라고 했으면 가는 게 맞지. 나는 언니의 칼이니까.”
왕각연이 물었다.
“그게 전부야? 본인 생각은 없고?”
“그치 뭐. 나는 깊이 생각 안 하려고. 나는 언니의 수족이야. 그러기 위해 무공을 배운 거고, 그러니까 언니가 볼 피도 내가 보는 거고, 언니의 은원도 내가 지는 거지. 그거면 된 거야.”
“그러다 죽으면?”
“언니가 엄청 울기야 하겠네. 혹시 알아? 중원이 불바다 될지도 모르지.”
‘오, 의외로 정확하군.’
어두운 강, 미끄러지는 배 위에서 칠현금의 음색이 울린다.
공손영은 생각에 잠기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저래 보여도 언니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양반이라 내가 죽으면 못 견딜 거야. 그러니까…… 언니의 혈채도 지고, 내 목숨도 챙기려면 보이는 상대는 다 목을 따야겠지. 그뿐이야. 끝!”
“단순하네.”
“뭐, 너처럼 협객의 길이라도 열 줄 알았어?”
왕각연의 이마를 찌푸렸다.
“그 정도는 아니어도 음……. 에이, 모르겠다. 일단 나는 정파로서 수적과 만약 연수를 한 흔적이 보이면 그자들은 정파가 아닌, 금수만도 못한 자들이니 쏜다!”
‘음, 공손영도 왕각연도 마음을 정했구먼.’
이제 남은 건 진천희 자신뿐.
두 사람이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의 의미를 알고 있다.
어떤 길을 택할지를 묻는 거겠지.
진천희는 피식 웃었다.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그들이 수적과 연수를 하든 말든 그것은 개개인의 양심에 따른 일. 진천희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게 강호이고.
그게 은원인 거겠지.
디리링-
“저는 좀 이기적으로 굴 겁니다.”
“음?”
“이국(異國)의 공주니까요. 원래 공주님은 좀 이기적이어도 되는 겁니다.”
왕각연과 공손영이 남장을 하고 있듯, 진천희는 여전히 여장 상태다.
수적 놈들이 좀 눈이 밝은 게 아니니 속이려면 제대로 속여야 한다.
진천희가 말을 이었다.
“저는 보타문의 검수일 수도 있지만, 일인전승 신비문파 흑검문의 살수일 수도 있습니다.”
“공주일 수도 있고?”
“네. 공주일 수도 있고요. 아무튼 백린의각의 소백룡은 아닐 겁니다.”
[현원전단신공을 쓰지 않고 싸우겠다는 거야?]푸른 눈동자는 제갈세가의 상징 같은 것.
그 질문에 진천희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답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공주니까요. 돌 비파로 대가리 좀 깨 버려도 공주니까 괜찮은 겁니다.”
차분한 답변에 그만 공손영은 속내를 내뱉고 말았다.
“미친…….”
광기 속에서 진천희는 자기는 공주이니, 공주로서 박살 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왕각연은 뭐가 웃긴지 한참 웃었다.
“와하하, 맘에 든다. 진 공주.”
컹!
“황구도 마음에 든다네요.”
황구는 축근공을 통해서 근골 자체를 바꾸고, 여기에 털도 붙여서 흡사 이국의 양처럼 보인다.
진천희는 그런 황구를 ‘알파카’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짖어 버리면 표가 나니 배 밖으로는 절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건 뇌진도 마찬가지.
극한까지 몸의 근골을 변형시켜 갈매기처럼 보인다.
이 상태로는 나는 건 문제없어도 싸우는 것은 어렵다 보니, 황구 위에서 쉬고 있다.
주인인 진천희가 무슨 생각인지 정찰 명령을 보내지 않았기도 하고.
“밤에 배를 움직이는데도 의외로 암초에 부딪치는 일이 없네요.”
“선장이 경험이 많은 사람이거든. 야간에도 황하를 운행한 경험이 여럿 있지.”
“오……. 상선이 그러기 쉽지 않은데.”
“수적 출신이야.”
진천희는 눈이 살짝 커졌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운룡표국 쪽 분이시죠?”
“응. 운룡표국은 두루두루 덕이 많거든. 표국주에게 감화되어 손을 씻었다고 하더라.”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현을 탔다.
새카맣던 돌 비파는 흰색 유약으로 칠한 데다가 나무를 덧대서 원래의 모습은 자취가 없다.
그건 사마현이 선물한 칠은금도 마찬가지다.
공손가의 무인들은 입이 무겁기로 유명한 데다가 이송했던 무인과 이번 일에 낀 무인들 중에 겹치는 이가 없는데도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공손현도 참 철저하다.
세간에 벽안광의는 빙정검과 권을 주로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기다가 드물긴 하나 넓은 강호에 비파를 무기로 사용하는 고수들은 늘 있었다.
특히 악사로 분장한 살수들이 자주 사용한다.
진천희가 그걸 원숭이처럼 잘 써서 주변을 경악시키긴 했지만.
‘그렇기에 이런 돌 비파가 장인의 손에 제작된 거고.’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는 법.
막말로 진천희가 그걸로 현원전단신공이나 태을단선검을 쓰지 않는 한은 그쪽에서 진천희의 신분을 특정할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