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19
제 418화
한편 공손영은 눈앞의 복면인을 향해 투기를 끌어올렸다.
츠츠츠츠츠츠.
공손영이 든 검은 신병이기는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명검.
강북 지역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장이 직접 만들어 낸 이 검은 만년한철을 일부 섞은 합금으로, 그 강도와 탄성 모두가 훌륭하며 기운을 머금는 것에도 강점이 있는 병기였다.
이번 습격 전에 제작할 수 있어 어찌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런 검에서 검기가 뻗어져 나와 길어진다.
검의 길이가 삼 척이었는데, 검기는 검을 뛰어넘어 오 척에 다다를 정도.
그걸 본 산동악가의 이름 모를 복면 무인이 눈을 가늘게 뜬다.
복면에 눈구멍이 뚫려 있어 공손영은 그것을 볼 수 있었다.
“어린 녀석이 영약을 밥 먹듯이 먹은 모양이로군.”
“그러는 늙다리 당신은 집안에서 챙겨 주지 않았나 봐?”
“선배에게 예의를 갖추도록.”
“선배? 내 눈앞에는 늙은 도적밖에 안 보이는걸?”
살기가 자욱하게 퍼져 나간다.
“어린 계집아이야. 공손세가를 생각해서 살려 둘 생각이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네 녀석을 죽이고 나면 흑빙독룡도 순해지겠지.”
‘역시 언니의 적이군.’
단순히 공손세가의 견제가 아니라 흑빙독룡 그 자체에 원한이 있는 거라면 말이 달라진다.
상대를 반드시 물리치는 것과는 별개로 공손영은 솜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살기가 그녀의 본능을 건드리며 경고를 울리고 있었다.
확실히 그녀는 무재(武才)이고, 어린 나이에 화경에 오를 정도로 노력도 해 왔다.
세가의 지원을 받아 영약을 먹고, 몇 가지 기연을 겪으며 여기까지 강해졌다.
그러나.
상대는 강호에서 수십 년을 굴러먹은 노강호.
같은 화경이라는 경지에 있다 할지라도, 경험과 연륜에서는 차이가 크다.
게다가 영약이라는 것은 내공의 증진에 효험을 주어 시간을 앞당기는 것뿐으로.
저쪽은 이미 수십 년간 공력을 쌓아 왔으니 영약에 의한 내공의 우위 역시 보지 못한다.
두렵다.
아마 오늘 둘 중 하나는 돌아가지 못하겠지.
그리고 높은 확률로 그게 자신이 될 거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언니의 검이니까. 그러기로 했으니까.’
공손영은 공손현을 떠올린다.
기이하게 뒤틀린 자세와 깡마른 몸.
원래도 식사를 좀처럼 하지 않는 언니이니, 자신이 죽고 나면 정말로 말라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른다는 생각을 하니.
‘입안이 텁텁해지는 게 감주라도 먹고 싶은걸?’
이 와중에도 먹는 것부터 생각하는 스스로가 우습지만 괜찮다.
어찌 되었건 두려움을 잊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공손영도 화경의 고수와 생사결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그러나 죽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으니까.
쾅!
선공은 산동악가의 복면인이 했다.
그는 발을 굴러 바닥을 내리찍었다.
경쾌한 진각.
그 운동력이 다리와 허리를 지나 창으로 이어진다.
전사경의 원리와 함께 찔러진 창은 쾌속무비하여 섬전과도 같다.
그러나 공손영의 가문에 내려오는 공손검법 역시 속도를 주공으로 하는 무공.
번개처럼 반응하며 두 개의 무기가 허공에서 충돌하기 시작한다.
퍼퍼퍼퍼펑!
검기와 창기. 그리고 검날과 창날이 서로 충돌하며 폭음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두 눈을 한 번도 깜박이지 않은 채로 서로를 응시하며 움직였고.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무기가 서로 충돌하는 사이로, 서로가 서로를 향해 나아간다!
그때였다.
휘릭!
창대가 휜다.
기묘한 움직임으로 꿈틀거리더니, 순식간에 그 잔영이 둘로 늘어나고, 다시금 넷으로 늘어난다.
순식간에 수십 개로 잔영이 늘어나며 공손영을 덮친다.
악가창법 천살멸군(千殺滅軍)!
과거 창왕 악진이 비동의 전투에서 사용했던 절세의 무공이 여기서 펼쳐진 것이다.
‘복면을 쓴 주제에 숨길 생각이 요만큼도 없군.’
그러나 그만큼 맞서는 공손영도 만만치가 않다는 뜻.
‘적이 초조해한다는 건 좋은 일이지.’
그녀의 손안에서 검이 빙글 회전한다 싶더니, 그 검영이 순식간에 막을 형성하여 천살멸군의 창을 막아내기 시작한 것!
공손검법 천송만엽(千松萬葉).
천 년을 산 소나무의 수없이 많은 솔잎에 비유한 검공!
그녀를 화경으로 만든 후발선제의 묘리가 다시 손에서 피어난다.
두 절세신공이 충돌하는 가운데, 공손영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녀의 경험으로는 아직 이러한 수준의 공방을 수월하게 진행하기 어려운 터였다.
그리고 결국 빈틈이 드러난다.
검막의 일부가 비고, 그곳으로 귀신처럼 창이 날아들었다.
카캉!
그러나.
창은 긴급히 궤도를 수정하며 뒤로 물러서야 했다.
화살이 표홀히 날아든 덕분이었다.
“감히 비무에 끼어들다니!”
“뭐래. 도둑놈들 주제에.”
공손영. 그녀의 뒤로 활을 든 채 혀를 내밀고 있는 왕각연이 서 있었다.
“감히?!”
눈을 부릅뜬 복면인을 향해 왕각연은 활시위를 매긴다.
그그그극-
화살이 없는 빈 시위를 한계까지 당기며 그녀가 말했다.
“복면을 벗으면 그때 비무로 쳐 줄게. 도둑놈아.”
타앙–!
소리만 들릴 뿐 화살은 보이지 않는다.
“심궁의 경지에 다다른 건가?”
복면인은 즉시 기감을 넓혔다.
그의 창이 보이지 않는 기시(氣矢)를 쳐 낸다.
그 모습에 왕각연은 혀를 내두른다.
‘역시 화경, 그것도 장로급은 되는 것 같은데?’
허나 그녀의 눈은 조금도 흔들리는 법 없이, 두려워하는 법 없이 올곧게 적을 노려본다.
“어째서 그런 경지를 가지고, 그만한 심득을 가지고 수적들과 손을 잡은 거지? 이 도둑놈아.”
파사신궁(破邪神弓) 절초.
아가사아뇩다라(阿迦舍阿耨多羅)–!
산스크리트어를 불교식으로 음차 치환한 이 변초의 뜻은 바로 ‘허공무답’.
-모든 것은 공(空)이며 공(倥)일 뿐이니.
사악한 것을 부수는 파사신궁의 절초가 그녀의 손에서 터져 나왔다.
이 넓은 강호, 인간의 진흙 구덩이 속에서 구르며 왕각연이 얻은 답은 단 한 가지.
은(恩)이든 원(怨)이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는 것.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단 한 가지.
그것은 과연 옳은가.
옳지 못하다면 파사(破邪)할 뿐.
그것이 어릴 때부터 아비에게 협객 이야기를 들어 온 딸이 내린 답이었고.
‘일대일 비무는 지랄, 그건 네놈 생각이고. 이 도적 새끼가!’
자기들이 멋을 부리든 지랄을 하든, 도적놈들 규칙에는 하등 맞춰 줄 생각 없었다.
그런 왕각연의 절초에 맞춰서 공손영 역시 검을 휘두른다.
‘음, 내가 너무 분위기에 휩쓸렸나.’
왕각연이 화살을 날리지 않았다면 공손영 자신도 일대일 비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러면 내공 차와 연륜 차로 황천행이다.
이래서 언니 공손현이 왕각연을 자신에게 붙여 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걸지도 모른다.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는 건 늘 왕각연이었으니.
카가가강!
창대가 화살을 막아 냈으나 공손영의 검 끝은 막아 내지 못했다.
어깨에 깊이 칼이 박힌다.
“죽엇!”
공손영은 다시 검을 휘둘렀다.
* * *
산동악가 복면과 공손영, 왕각연이 분투하는 동안 진천희도 싸우고 있었다.
“독공, 그리고 비파인가. 거기에 은사(銀絲)를 사용한다……. 전형적인 살수로군.”
음공은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비파를 도끼처럼 휘두르며 중간중간 독공을 섞어 쓰고, 거기에 흑천혈사를 암기처럼 사용했을 뿐.
“확실히, 살문(殺門) 쪽이라면 찾기 힘들지. 허나 신기하군. 이만한 독공을 가진 살수가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다니.”
“공주입니다.”
진천희는 한 점 부끄러움도 없이 자신을 공주라 소개했다.
‘음, 역시 공주의 두 번째 조건을 몰라서 그러는 건가.’
역시 무릎도가니를 박살 내어 주면 그도 진천희를 공주라고 인정해 줄 것이다.
그것이 공주!
진천희는 곧바로 비파를 휘둘러 적을 향해 달려가며 소리쳤다.
“그러면. 이제부터 진짜 힘을 보여 드리죠!”
공주처럼 소리치며 진천희가 허공으로 뛰어올라 돌 비파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부여잡으며 강하게 내리찍었다.
이번 일을 위해서 공손세가에 부탁해서 공수해 온 무공이 있었으니…….
신공절학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강호에서 상승 무공으로 알려진 만월부법(滿月斧法)이 그것이었다.
부법이라 함은, 검법과 같이 도끼를 주로 하는 무공.
사실 강호의 주류 무공에 비하면 그 수가 적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이 만월부법은 상승 무공으로 제법 알려져 있었는데, 아주 오래 전 산월족의 무술과 강호의 무공이 합쳐진 무공이라고 했다.
웅웅웅!
만월부법에 의해서 돌 비파가 진동하며 소리를 낸다.
만월부법은 패도(覇道)의 무공!
힘으로 상대를 박살 내고, 그 힘에 진동파까지 얹어서 방어 자체를 박살 내는 무공이었다.
‘실로 공주다운 패도!’
현원전단신공의 소유자인 진천희는 이 무공의 요체를 재빠르게 파악하고, 아주 짧은 시간 안에 팔 성의 경지까지 수련하는 데 성공했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콰아아앙!
“크윽!?”
내리찍는 돌 비파를 양손으로 막아 낸 황보세가의 복면인.
그러나 그 일격에 두 다리가 바닥을 뚫고 내려가 버리고 말았으며, 양팔이 저릿저릿했다.
“이 무슨 위력이란 말인가!?”
황보세가 하면 태생적으로 강골에 괴력을 타고나는 집안이다.
그런 신체 능력에 딱 맞는 벽력신권을 사용하니, 그 위력 역시 가히 뛰어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지금 상대는 그런 황보세가를 힘으로 밀어붙였다.
‘이 내가 힘에서 밀리다니! 믿을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분노하든 말든 두 번째 공격이 날아들고 있었다.
배의 바닥을 뚫고 내려가 자세가 불안정한 그로서는 불리한 상황!
“합!”
콰쾅!
전신으로 호신기를 내뿜으며 주변을 파괴.
동시에 옆으로 몸을 날리며 두 번째 공격을 피해 내고서 배의 갑판 위에 섰다.
진천희와 복면인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며 대치한다. 그리고 이번에 먼저 움직인 것은 복면인이었다.
우르르릉!
벽력신권이 극성으로 발휘된다.
우레와 같은 소리가 그의 두 팔에서 울려 퍼지고, 그의 팔 전체에 뇌전이 충만해졌다.
화경에 이른 자의 벽력신권.
뇌기와 권기가 합쳐져 강기로 화한다.
뇌전강기가 두 팔에 둘러지는 데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눈 한 번 깜박할 사이!
그러나 그사이에 이미 은사가 그의 주변을 휘감고 있었다.
복면인이 전신의 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보인 찰나의 틈 동안, 진천희 역시 은사를 움직인 것!
은사에는 강기는 아니지만, 사기(絲氣)가 서려 있다.
이 은사 자체가 사람을 두부처럼 썰어 버리는 예기를 가진 신병이기!
그러나.
신병이기라고 할지라도, 과연 저 벽력신권의 뇌전강기를 견딜 수 있을 것인가?
촤악!
나선으로 둘러진 은사가 사기를 머금은 채로 좁혀졌다.
흡사 먹이를 노리는 뱀과 같은 움직임에 복면인의 두 팔이 원을 그리며 주변으로 뇌전강기의 파장을 퍼트린다.
콰르르릉!
강기와 기. 그리고 신병이기가 품은 힘이 충돌하며 대폭발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