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20
제 419화
은사는 용케 끊어지지 않았지만 그 힘을 잃고 팔랑거린다.
폭발의 가운데에 있었던 복면인은 입가로 피를 흘렸다.
그 폭발을 몸으로 받아냈으니 무사할 리가 없는 것이다.
‘큭. 은사가 끊어지지 않다니……. 설마 신병이기였단 말인가!’
그것은 복면인이 은사의 정체를 몰랐기에 벌어진 일.
만약 저것이 신병이기라는 것을 알았다면 충돌하는 대신 한 번 더 회피했을 터.
그러나 작은 판단 실수로 중상을 입고 말았다.
‘여기서는 무리해서 빠져나……. 으음!?’
그 순간.
복면인의 무릎 한쪽이 흔들리며 땅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전신이 부들거리고, 통제가 되지 않는다.
진기의 흐름이 가닥가닥 끊어지면서 고통이 더욱 커진다.
“푸학!”
피를 한 움큼이나 토하고서 그는 두 손으로 바닥을 짚는다.
이러지 않으면 쓰러지고 말 테니 어쩔 수 없다.
“어…… 어느새 독을…….”
상대의 독은 충분히 경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미 중독당하고 만 것!
그런 복면인의 앞으로 아름다운 모습의 여성으로 변한 진천희가 돌 비파를 들고서 다가와 섰다.
“처음부터죠. 조금씩 중독시킨 겁니다. 독공은 용독술이 중요하니까요.”
용독술.
그것은 상대를 중독시키는 기술을 의미한다.
단순히 무기에 독을 발라 찌르는 정도가 아니다.
먹는 것에 독을 타기도 하고, 숨을 쉴 적에 독을 흡입하게 만들기도 하며, 피부를 통해 스며들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진천희가 사용한 방법은 바로 세 번째 방법.
“피부를 통해서 스며드는 독. 효과는 낮지만 시간을 들여서 계속 쓰면 이렇게 되니까요.”
“크…….”
쿵.
복면인은 결국 쓰러졌다.
진천희가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공손영과 왕각연도 결판이 나 있었다.
진천희는 비파로 빠르게 복면인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빠악!
‘내가 벽안광의였다면 아혈을 짚거나 관절을 뽑았겠지만, 지금은 공주이니 어쩔 수 없지.’
혈도를 짚는 대신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
그런 잔혹함이야말로 공주의 덕목!
그리고.
‘정파의 특권을 가지고 수적들과 결탁해서 사람을 납치하려 했지.’
원래의 진천희였다면 다른 수적들에게 했던 것처럼 단전을 폐하고 관아에 넘겼을 터.
이다음은 공손현의 일이기에 이 정도 선에서 봐준 셈이다.
‘평생 반성하십시오.’
* * *
배는 본래의 목적지가 아닌 정반대로 향했다.
돛이 부러져서 원래의 속도는 나지 않았으나 붙잡은 수적들을 노잡이로 부려 산동성 황하강 하류까지 그대로 항해했다.
수적들은 살기 위해 노를 저었다.
왕각연은 도망치려고 한 수적을 본보기로 쏘았다.
수적은 핏물을 뱉고는 그대로 쓰러져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어차피 너희 다 죽이는 편이 나는 편해. 도망치고 싶으면 도망쳐. 내 화살을 피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볼 테니까.”
악인에게는 조금의 자비도 없다.
그것이 왕각연의 협(俠).
그녀의 서슬 퍼런 말에 수적들은 고개를 움츠리고 얌전히 노를 저었다.
배는 그렇게 바다와 만나는 그 항구도시에 도착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공손세가와 운룡표국의 무인들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는 공손현이 있었다.
“전서 잘 받았습니다. 공주님.”
“뭘요.”
일부러 공손현은 진천희가 공주라는 사실을 그대로 못 박았다.
‘뭐, 그래도 살수라고 생각하는 자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게 바라는 바지.’
어느 곳에서 파견 보낸 살수인지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미궁에 빠지게 될 터.
공손영은 황보세가와 산동악가의 복면인을 그대로 땅에 던졌다.
쿠웅!
사지가 부러진 상태에서 던졌으나, 둘 모두 화경의 고수.
고통은 커도 목숨이 위험할 수준은 아니었다.
“경지는?”
그 말에 공손영이 눈을 크게 떴다.
“최소 장로급으로 보입니다!”
으으으음–!
무인들이 침음을 뱉었다.
생각 이상의 거물이 잡혔다.
어느 문파의 놈인지는 말하지는 않았으나 이미 모두 짐작하고 있는 눈치였다.
흑빙독룡 공손현은 그 별호만큼이나 서늘하게 웃었다.
“이거이거, 좋은 교섭을 할 수 있겠군요.”
진천희 역시 배에서 내렸다.
“이제 제 할 일이 끝났는지요.”
“아직이지요. 수로채주들을 잡았으나, 수로채를 전부 정리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 부분에서 공주님께서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하긴, 알겠습니다.”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쉬시지요, 공주님. 수고하셨습니다.”
공손현은 기다렸다는 듯 과장된 예법으로 진천희를 안내했고.
진천희는 진짜 공주마냥 기품 있게 그녀를 따라갔다.
* * *
‘역시 남의 도가니 한번 박살 내고 나니 공주 생활도 슬슬 익숙해지는군.’
진천희는 호화 객잔 4층 창가 자리에 앉아 맛있는 것을 먹었다.
여전히 여장을 한 건 마찬가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일의 끝을 볼 생각이다.
[독해……. 내 친구지만 진짜 이렇게까지 독할 일이냐.]왕각연의 전음에 진천희는 담담히 답했다.
[공주 짓도 은근 할 만해. 적성에 맞는 거 같다.] [비파로 사람 부러뜨리는 거?] [독도 뿌리고. 은사(銀絲)로 사지 좀 찢어 주고.]진천희는 담담히 답하며 경단을 입에 넣었다.
달달짭짤쫀득하다.
왕각연이 말했다.
[……이야, 진짜 공주답네.] [전통적인 공주지.]왕각연은 쉽게 납득했다.
‘그래. 생각해 보면 주왕 전하도 예전에 그러셨다지.’
어차피 황위 계승할 때가 되면 남녀노소 할 거 없이 이능 가진 황족들이 모두 골육상쟁을 하는 게 이 동네 아닌가.
대충 분쟁 없는 땅에서 곱게 자란 방계 공주라면 모를까.
황위에 관심이 있는 직계라면 남의 대가리 부수는 건 기본 소양이다.
공주에게 있어 시와 서예, 꽃꽂이, 다도보다 중요한 게 대가리 부수기다.
그런 의미에서 주왕 전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나 사람 죽이는 건 가장 잘하셔서 거기까지 가셨으니까.
왕각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했다. 너는 누구보다 공주다워.]‘음! 내 연기가 꽤 잘 먹힌 것 같군.’
진천희는 그리 생각하며 소룡포를 집어먹었다.
그런 진천희를 지켜보며 왕각연은 생각했다.
‘확실히 전보다 차분해졌어.’
양민이 죽는 것은 참지 않는다.
단, 강호 인간의 분쟁에 관해서는 확실하게 선을 긋는 것처럼 보였다.
왕각연이 강호에서 많은 일을 겪었듯, 친우 역시 그런 것이겠지.
거기다가 정파가 흑도와 규합하여 수적질을 하다가 들통난 거니 더 냉정해질 수밖에.
‘뭐, 나야 편하지만.’
진천희는 습격자들의 복면에 손을 대지 않았다.
왕각연과 공손영에게도 그리하라고 권했다.
모두의 앞에서 정체를 드러내게 되면 당장은 통쾌할 수 있으나, 흑빙독룡 공손현이 앞으로 어찌 일을 처리할지 알 수 없으니 그대로 두라고 했다.
그것마저도 하나의 패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적들을 물리치고 다들 들떠 있던 터라, 만약 진천희가 말해 주지 않았다면 이미 복면을 벗겨서 사방에 알렸을 터.
지금 생각해 보면 자칫 일이 더 커질 수 있었는데 잘 봉합한 셈이었다.
“넌 의원은 의원이구나?”
“음?”
“아니, 그냥 그렇다고.”
왕각연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게 튀김을 입에 넣었다.
바삭-
그때 사내의 청아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울렸다.
“좋은 날씨이지요. 소저분들, 소인이 잠시 소저분들의 시간을 방해해도 될는지요.”
고개를 돌려보니 목소리만큼이나 청수한 인상의 사내가 서 있었다.
눈에 띌 만큼 잘생긴 얼굴에 수수한 청의무복.
진천희도 익히 알고 있는 자였다.
‘어……. 용봉지회 예선전에서 만났던 그놈이네.’
신비문파 창선문의 일인 전승자.
천이문!
어지간한 무협지 주인공은 꿰찰 것 같은 모습이라 어이없어했었지.
그도 그럴 게 무협지 국룰로는 저런 놈이 꼭 주인공이더라.
‘마지막으로 봤을 때 검사지경이었나.’
허나, 기이하게도 예나 지금이나 그의 경지를 짐작하기가 유독 어려웠다.
‘이런 점도 꼭 주인공 같네.’
그런데 이놈이 왜 여기서 이렇게 튀어나오는 거지?
왕각연과 공손영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저딴 놈 모른다는 뜻이었다.
“안타깝지만 저희끼리 있고 싶군요.”
이 시대의 객잔이라는 게 단순히 끼니를 때우기 위한 장소이기도 하고, 젊은 무인들의 헌팅 장소이기도 하지 않나.
허나 뻔히 보이는 수작질을 받아 주기에는 세 사람 모두 큰일을 겪고 왔다.
피곤하다.
그때 천이문이 진천희를 보며 세 사람에게만 들리는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백린의각 소각주 되시는 분께 긴히 할 말이 있습니다만.”
“…….”
그 순간, 왕각연의 눈이 가늘어진다.
공손영은 슬그머니 술병을 거꾸로 쥐었다.
뒤통수를 후려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진천희도 곧바로 답했다.
“일단 앉으시지요.”
“실례를 하여 죄송합니다. 허나, 중요한 일이라…….”
공손영이 말했다.
“그 중요한 일이 댁 뒤통수보다 중요할지는 들어 봐야 알겠군요.”
여전히 그녀는 술병을 거꾸로 쥔 상태다.
천이문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다시 한번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창선문의 천이문이라고 합니다.”
“창선문!”
공손영이 살짝 놀라서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왕각연이 물었다.
“언니, 알아요?”
공손영이 왕각연에게 말했다.
“아, 넌 모르겠구나. 아는 사람은 아는 신비문파야. 창선문은 일인전승으로 비인부전의 법칙을 지키는 곳이지. 삼사십 년 전 창선문의 당대 전승자이자 문주가 화경을 넘어 현경에 올랐었다고 들었어.”
그 말에 천이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께서는 이미 옛날에 등선하셨습니다. 이제는 제가 창선문의 문주직을 수행하고 있지요.”
공손영이 말했다.
“그렇군요. 선사께서는 대단하신 분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진천희는 생각했다.
‘삼사십 년 전 현경이면……. 그러면 지금의 삼존 중 하나인 선존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겠군.’
또한 백린의각에 최근 창선문에 대해 달리 들려오는 게 없는 것을 보니 꽤나 오랫동안 은연자중하고 있던 셈이었다.
‘음……. 그리고 예선에 오자마자 나한테 털린 거군.’
뭐, 그렇게 됐다.
진천희가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지나가다 저를 우연히 발견하신 건 아니신 듯한데요?”
진천희는 멱리를 가리켰다.
이렇게까지 변장을 했음에도 그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굳이 지금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공손영 누나가 계속 술병을 꼬나 쥐고 있는 거고.
각연이는……. 철전을 만지작거리는 폼이 여차하면 미간에 하나 심어 버릴 준비 중인 것 같다.
두 소저는 헌팅 상대로는 최악이다.
천이문은 흉흉한 분위기를 모르는 척 태연하게 진천희를 향해 말했다.
“물론 용건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나중에는 어려우십니까?”
“소각주께서는…… 천기(天氣)에 대해서 아십니까?”
순간, 찻잔을 든 진천희의 손이 짧게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