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21
제 420화
“어느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군요. 그렇다면, 지금의 천기가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호오? 저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만.”
왕각연과 공손영은 ‘이 새끼는 무슨 신종 사이비냐?’라는 눈으로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반면 진천희는 태연하게 그를 상대할 뿐이었다.
천이문이 그런 진천희를 향해 말했다.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이 천기를 완전히 뒤틀어 버린 장본인입니다. 알고 계실 텐데요? 벽안광의 진천희 소각주.”
그 순간, 찻잔과 술잔이 동시에 떨렸다.
그를 중심으로 강렬한 무형지기가 퍼져 나오기 시작한 것.
진천희 역시 태연하게 차를 홀짝였다.
그러나 진천희의 소매가 부푼 것은 그 역시 천이문에 대항해 무형지기를 발출했기 때문.
그그그극-
공손영도 왕각연도 당황한 눈치.
진천희는 차분히 생각했다.
‘천이문. 분명 용봉지회에서는 초절정이었는데…… 지금은 화경이로군. 요새 화경의 고수들을 자꾸 만난단 말이지…….’
이 또한 그가 말한 천기가 흐트러진 영향인 걸까.
그 순간, 서로의 무형지기가 허공에서 충돌했다.
콰광!
탁자가 반으로 쪼개지며 접시가 쏟아진다.
공손영이 칼을 뽑아 천이문의 턱 끝에 가져다 댔다.
스릉-
“술병으로 후려갈길 수준을 넘은 것 같은데, 소협?”
“하하하.”
“본가의 손님을 내 앞에서 위협하려 하다니……. 제정신인가?”
서늘한 목소리로 공손영이 지적했다.
“죄송합니다. 공손 소저. 저는 다만…… 경고를 하러 온 것뿐입니다.”
천이문은 그제야 무형지기를 풀었다. 그러자 진천희 역시 무형지기를 함께 풀었다.
공기가 한결 가벼워진다.
공손영이 다시 검을 검집에 넣었다.
그가 전음을 보냈다.
[진 소각주, 천기가 많이 흐트러졌습니다. 이것을 되돌리는 것만으로도 저희는 적지 않은 부담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 당신은 더 이상 천기를 흐트러뜨리지 마십시오.]그러고는 그대로 등을 돌려 유유히 나가려 했다.
그의 등에 대고 진천희가 전음을 보냈다.
[천 문주께서는 눈앞에 어린아이가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다면 어찌하실 생각입니까?]천이문이 그 말에 걸음을 멈춘다.
진천희가 다시 전음을 보냈다.
진천희는 그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그렇게 호송이 되어 의각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아이를 살리시겠습니까? 아니면 돌려보내겠습니까?]그 질문에 천이문이 답했다.
[그렇다면 구하겠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군요. 그걸 놔두실 소각주님이 아니지 않습니까.]그 말에 진천희가 담담하게 답했다.
[네, 저는 할 수 있는 걸 했습니다. 허나, 최악의 상황을 모면한 게 전부이지요. 그뿐입니다. 제가 나선다고 해도 옛날과 같을 수는 없지요. 본디 병마란 그런 것입니다. 그저 나락까지는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죠.] [……당신은 계속하겠다는 거군요.]천이문과 진천희의 눈빛이 부딪친다.
[당신이 선의로 사람을 구함을 알고 있습니다. 허나, 과정이 옳다고 결과까지 좋을 수는 없는 법이지요. 때로는 옳은 과정이 최악의 재앙을 부를 수 있는 법입니다.]그 말에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지요. 그 또한 맞을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진천희는 그의 말을 끊었다.
[……허나, 그릇된 일을 하며 옳은 결과를 바라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오만입니다.] [저는 그저 가능성을 믿을 뿐입니다.] [그 또한 오만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믿는 것을 오만이라 부른다면, 그 또한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천이문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거울의 양면처럼 서로 바라볼 뿐.
이윽고 그는 결심을 했는지 몸을 다시 돌렸다.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그때까지 건강하시길.]* * *
왕각연과 공손영에게는 적당히 사정을 설명해 주어야 했다.
천기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까지 들어가게 되면 결국 이 일에 연루되게 될 터.
어차피 마교나 혈교가 득세하는 세계이다 보니 둘 모두 신종 사이비라도 뜬 건가 하고 있다.
천이문이 이놈이 결국 혹세무민을 하려는 건가 하는 경계도 있고.
그러다 보니 진천희가 적당히 둘러댄 수준만으로도 충분히 넘어갈 수 있었다.
‘상대가 흑빙독룡 공손현이었다면 어려웠겠지.’
둘 다 무투파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렇게 항구에서 맛있는 것들을 찾아다니며 먹고, ‘이 상황도 색다르지 않나…….’ 하면서 이색 여행을 온 기분으로 즐기고 있는데 공손현이 보낸 사자(使者)가 왔다.
공손현은 수로채를 정리해 달라는 전언을 보냈다.
황보세가와 산동악가의 장로를 사로잡았기에, 두 가문은 이번에는 침묵할 것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다행히 걱정했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군.’
원작의 흑빙독룡이었다면 끝을 봤을 터였다.
허나, 지금은 동생 공손영이 살아 있는 세계.
그때의 공손현과 지금의 공손현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되겠지.’
결국 일이 어디로 튈지는 알 수 없는 거니까.
그리고 지금.
뇌진이 하늘을 날고 있다.
물론, 갈매기의 모습이다.
축근공으로 근골을 바꾸고 깃털은 전문가가 염색했다.
가까이에서 뜯어보면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도 있으나, 멀리서 보면 감쪽같다.
얼마나 지났을까.
멀리 날아간 뇌진이 배로 돌아왔다.
뇌진이 물고 있는 것은 찢어진 깃발 조각.
“수로채를 찾았구나!”
공손영의 얼굴에 크게 화색이 돌았다.
뇌진은 다시 푸드덕 날아갔고, 뇌진이 나아가는 방향을 따라 배를 몬 것도 잠시.
암초가 많고 운무가 자욱한 곳에 자리 잡은 수채가 보였다.
‘와아. 이놈들, 골라도 어떻게 이런 곳을 골랐나 몰라.’
심지어 지세에 인위적인 흔적이 보이는 것이, 야매로나마 풍수사를 쓴 듯했다.
물론 절진이라고 하기에 한참 조악한 것으로, 아마 돈이든 칼이든 들이대고 시켰겠지.
왕각연은 활을 손질하더니 바로 뽑을 수 있도록 등에 맸다.
진천희가 말했다.
“나도 갈게.”
“음? 숨어 있을 거 아니었어?”
“원래 다른 신원이 하나 필요했거든. 이참에 만들지, 뭐.”
“……?”
몇 번 밖으로 돌아다니니 알겠다.
이제 진천희를 향한 시선이 너무나도 많아졌다.
이럴 바에는 잠행을 하지 말고 스승님 생각대로 수백의 무인과 다니는 게 나을 터.
차라리 그럴 바에는 확실한 다른 신원 하나가 생기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황구도 뇌진도 눈에 많이 띄고.’
그럴 바에는 어쭙잖게 조금 하다가 숨지 말고, 다른 무인으로서의 무명을 얻는 게 좋을 터.
‘숨기려는 인상을 남기는 편이 더 이상하지.’
이럴 때는 당당하게 활개 치는 편이 좋다.
진천희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이렇게 말했다.
“가명은 선희 공주가 좋겠다.”
“……오히려 더 활개 치겠다고? 숨겨도 모자랄 터에?”
“그러면 더 걸릴걸?”
“아니, 어째서?”
왕각연이 눈을 크게 뜨고는 한참을 갸우뚱했다.
그녀는 숨겨야 할 것은 꽁꽁 숨기고 남 앞에서 잘 꺼내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늘 배워 왔다.
그런데 오히려 남 앞에서 당당하게 다른 사람인 척한다?
“으으……. 뭐, 그래. 뭔지는 몰라도 공손현 언니는 네 말이 맞다고 하겠지.”
왕각연은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어차피 그녀는 무인이지 책사는 아니다.
진천희가 말했다.
“화경 전이나 초입 사이 정도의 무위만 보여 주면 되겠지.”
즉석으로 설정을 몇 개 더 짰다.
“주력 무공은?”
진천희가 팔을 들었다.
“독공.”
그러고는 허리춤에는 시미터를 찼다.
과거 완농에서 암살자들이 사용했던 무기.
일부러 비밀스럽게 찬 것은 열심히 알아보라는 뜻이었다.
여기에 흰색 돌 비파를 등에 걸고 멱리를 머리에 쓰니 수상쩍은 미모의 여협객이었다.
“세외 말은 할 줄 알아?”
그 순간 진천희의 입에서 유창한 세외어가 튀어나왔다.
완농에 머물면서 배운 말이었다.
왕각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잘해 봐. 망해 봐야 벽안광의가 여장하는 괴벽이 생겼다고 망신이나 당하고 말겠지.”
“괜찮아. 걸려도 사람들은 납득해 줄 거야.”
“……어… 정말 잘 납득할 거다.”
진천희가 해 온 일들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괜히 별호에 광(狂)이 붙은 게 아니니까.
“그러면 가실까요? 선희 공주님.”
왕각연의 말에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지요.”
목소리는 저번과 같은, 상상 속의 공주 그 자체의 목소리였다.
댕댕댕댕-
공손상단의 배를 눈치챈 수적들이 급히 종을 울린다.
모두가 무기를 꼬나 쥐며 수선을 떨기 시작했다.
전투의 냄새다.
디리링-
진천희는 비파를 뜯더니 이윽고 현을 주욱 당겼다. 보랏빛 독액이 비파 현에 스며들었다.
강력한 마비 독.
그러고는 공손영과 왕각연을 따라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 * *
수로채는 쉽게 쓰러졌다.
이미 채주들이 무너졌기 때문일까, 전의를 잃었는지 절반이나 도주를 했다.
진천희가 차분히 말했다.
“똘마니들 일일이 잡을 필요는 없어. 수뇌부들은 이미 잡았으니, 그보다는 근거지를 전부 태워 버려.”
선희 공주의 명에 따라 수로채에 불이 올랐다.
진천희가 말을 이었다.
“중요한 물건은 챙겼으니 여기서는 그냥 놔두는 쪽이 손해야. 그보다는 공손가가 수채를 밀어 버린다는 상징성이 필요해.”
“그래서 불을 올린 거야?”
“응. 나무가 젖어 있는 터라 쉽지는 않았지만 말이지. 그래도 불태우는 편이 모두가 보기가 좋아.”
불타는 수로채를 지켜보다가 진천희가 한마디 덧붙였다.
“앞으로 공손세가에서 수적을 잡으면 배는 노획해서 양민들에게 저렴하게 대여하고 근거지에는 모두 불을 올리도록 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시겠지만.”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건데?”
진천희는 칠현금을 꺼내서 연주했다.
비파도 나쁘진 않았으나, 방금의 전투로 비파에는 피와 독이 스며 있어 관리가 필요했다. 그리고 연주는 칠현금이 더 편했고.
첫 소절을 연주하며 진천희가 말을 이었다.
“공손세가가 하려는 것은 토착 문파를 밀어내고 세력을 키우려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토착 주민들의 민심이 필요하지. 창고 하나 사는 것도 지역 주민의 민심이 없다면 어려운 일이니까.”
“불이 관련이 되어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