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22
제 421화
“수적들이 가장 노략질을 많이 하는 건 공손상단 같은 거대한 세가의 배가 아니야. 그건 얻을 게 크니까 큰마음을 먹고 저지르는 거지. 밥으로 치면 별식.”
“그러면 주식(主食)은?”
“양민의 배지. 수적에게 가장 피해를 입는 건 양민이야. 그리고 그 양민들은 자신들을 대신해서 누군가가 수적을 심판해 주길 바라고. 같은 방식으로 수적을 처리함으로써 기억을 심는 거지.”
“공손세가의 기억?”
“정확히는……. 흑빙독룡의 기억. 그녀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그리고 얼마나 양민에게 필요한 존재인지.”
흑빙독룡 공손현은 악명을 원했다.
책사로서 냉혹하고 잔인하다 하며 사람들이 경외하길 바랐다.
덕은 동생인 공손영이 쌓으면 될 일.
그것을 설명한 후 진천희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가주가 된 이상 그녀도 민심이 필요해. 그게 제대로 된 세가의 경영 방식이야.”
“은인 꼬맹이는 민심이라는 걸 굉장히 중히 여기는구나.”
공손영의 말에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세가들 중에는 양민을 착취하는 형태의 세가도 있지만요. 그게 사파죠.”
“정파는 선을 지킬 뿐이야.”
“음. 그걸로는 부족해요.”
작은 행정 하나를 하는 데도 지역 주민이 나서서 돕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예산이 몇 배로 차이가 난다.
‘배타적인 지역 주민이 있는 곳이면 당장 촌장부터 돈을 주고 포섭을 시작해야 하지.’
그렇게 돈을 줘도 힘들 때가 많다.
백린의각의 상권이 이렇게 넓어지고, 표행로가 구축된 것은 그만큼 민심을 등에 업고 상당한 정보를 손에 넣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왜 수적들 배는 파는 게 아니라 저렴하게 빌려주는 거야?”
“다른 수적이 도로 사서 그걸로 다시 수적질을 할 수 있거든요. 빌려주는 거라면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야 하고, 대여하는 쪽 양민 신원도 확실해야 하니 그 부분에서는 안심이죠.”
“호오.”
공손영은 왜 언니가 그토록 진천희를 탐냈는지 알 것 같았다.
“알았어. 바로 이야기할게. 아마 무조건 허락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만은 볼 수 없어요. 제가 말하는 건 어디까지나 하나의 제안일 뿐이고, 공손가 내부 상황은 또 모르니까요. 또 다른 생각이 있을 수도 있고.”
이 녀석은 자기 말이 무조건 맞다고 자만하지도 않는다.
‘볼수록 마음에 든단 말이지.’
하필 콱 잡고 있는 게 백린의선이라서 문제다.
그저 그런 세가였으면 어떻게든 잘 꼬셔서 데려올 수도 있을 텐데.
* * *
그렇게 첫 번째 수로채를 처리한 후, 두 번째 수로채를 처리하기 전에 보급을 하러 황하의 항구로 향했다.
배에서 내리려고 보니 왠지 낯익은 무복이 보였다.
‘남궁세가?’
가슴의 문장은 분명 남궁가의 상징이었고.
안력을 돋구어 보니 남궁세가의 창궁무애검단이었다. 그리고 가장 선두에 있는 것은.
‘남궁운……?’
진천희는 재빨리 멱리를 푹 써서 얼굴을 가렸다.
비록 전문가의 솜씨로 외모를 바꾸었다고는 해도 혹시나 알아볼까 싶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황구가 눈치 없이 꼬리를 흔들며 남궁운에게 알은체를 하려고 했다.
컹……?
진천희가 재빨리 알파카 황구 입을 틀어막았다.
‘쉿, 걸리면 안 돼.’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이자 황구가 그제야 꼬리를 흔드는 걸 멈추었다.
아무리 근골을 변형하고, 전문가가 양털을 붙여 그럴듯하게 분장했다고는 하나 하는 짓은 영락없는 개다.
삑-!
뇌진이 거 보라는 듯 황구의 이마를 쪼았다.
황구는 시무룩해져서 안으로 들어갔다.
‘후, 다행이다. 잘 숨겼어.’
진천희는 자연스럽게 일행을 따라 하선했다.
남궁운은 공손세가의 무인들에게 예를 표하고는 공손영에게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궁세가에서 무슨 일인지요?”
공손영이 묻자 남궁운이 예의 사람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지나가는 길에 상선을 보았다고 한다면…… 믿지 않으시겠지요. 사실은 할 말이 있어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그때 왕각연이 진천희에게 전음했다.
[아니야. 언니는 믿어. 그냥 믿었을 거야.] [공손영 누나가 얼마나 단순한지 남궁가는 몰라?] [알아. 아는데 과소평가하고 있어. 언니의 단순함을 한 달 안에 세가를 말아먹을 인재 정도로. 사실은 일주일 안에도 말아먹을 수 있는 위인인데…….] [그……렇군.]진천희는 공손영을 바라보았다.
호방한 외모에 시원시원한 목소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햇살 같은 따뜻함을 주는 밝은 에너지.
허나, 너무 밝아서 깊게 얽히면 인생 조져질 것 같은 느낌이 있다고 왕각연은 평했다.
사람 인생을 조지는 건 잘 모르겠지만 공손가는 확실히 조질 수 있을 거 같긴 하다.
남궁운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마침 훌륭한 명주를 준비했습니다. 애주가로 유명하신 공손 소저시라면 즐거이 마실 수 있을 겁니다.”
술이라는 말에 공손영의 눈이 빛났다.
왕각연이 전음을 보냈다.
[망했다. 언니는 술이라면 죽고 못 사는데.] [애주가?] [좋게 말해 애주가고……. 그냥 동이째 마셔.]엄청나군.
[남궁운 이놈, 언니한테 뭔가 수작질을 하려는 모양인데.] [정보라도 얻어 내려는 건가?]그 말에 왕각연이 생각에 잠겼다.
[아니……. 공손현 언니는 애초에 공손영 언니에 대해 알고 있어서 진짜 중요한 기밀 정보는 말 안 해 줘.] [……그럼 무슨 수작질을?] [일단 너도 가자. 천희야.]‘아……. 남궁운한테 이 모습 걸리고 싶지가 않은데.’
그때 남궁운이 멱리를 쓴 진천희에게도 한마디 건넸다.
“이국에서 오신 공주님이라 들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한잔하시는 것에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진천희가 낭랑한 목소리로 답했다.
“술은 잘 못합니다만…… 소협께서는……?”
“하하하, 강호인이 술을 못 마셔서야 되겠소이까.”
그렇군.
요로결석 이후로 전혀 반성하지 않았군!
분명 진천희가 자신의 손으로 계속 그렇게 술을 처마셨을 때 올 고통을 미리 맛보여 주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마신다고? 돌았나?’
놀랍지도 않았다.
‘후우, 내가 화내면 뭐 해. 내가 고친 몸뚱이 지가 막 쓰겠다는데. 저러다 아랫배 붙잡고 객사하지. 미친놈.’
진천희는 생각했다.
나는 화나지 않았다.
남궁운이 저럴 것은 이미 예측했다.
그러니까 나는 전혀! 화나지 않았다!
어차피 인간이란 어리석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존재.
이런 걸로 화내면 의원 생활 오래 못 한다.
반복해서 생각을 했다.
‘나는 화 안 났다. 나는 화 안 났다. 나는 화 안 났다.’
남궁운이 말했다.
“그러면 공주께서도 함께…….”
“알겠습니다. 강호의 풍류, 꼭. 즐겨 드리겠습니다.”
어쩐지 공주님 억양에 힘이 들어간 것 같지만 남궁운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로 했다.
공주는 생각했다.
‘그래. 내가 같이 가는 건 어디까지나 공손영 누나가 털리지 않도록 돕기 위해서지. 남궁운 요로 사정은 내 알 바 아니지.’
의원 말 안 듣는 환자가 어디 한둘인가?
진천희는 다시 되뇌었다.
‘그래, 나는 화 안 났어. 어차피 지 인생 지가 사는 거지.’
* * *
“저희 남궁세가에서 안 그래도 이 명주를 만드는 양조장과 계약을 했는데, 덕분에 매일 극상의 명주를 마실 수 있게 되었지요.”
‘그래. 매일 마시는군.’
자제를 하는 정도도 아니다. 그냥 평소처럼 사는 거다.
진천희는 마음속으로 불경을 외웠다.
지구에서도 이런 일이야 흔하지 않던가.
아무리 치료를 하고, 주의를 주어도 환자는 결국 습관대로 산다.
결국 바꾸지 못하고 병이 더 깊어져서 오는 경우들.
모든 사람들이 교훈을 얻고 삶의 방식을 바꾸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후, 원래 그런 거지. 의사 말 쥐뿔도 안 듣고 자기 몸을 자기가 망치는 것도 그 또한 자유.’
비록 저 배때기를 자신이 고쳤다고 해도 도로 망가뜨리는 건 환자의 의지 아닌가.
이 병신 같은 짓을 계속 하든 말든 진천희 자신이 알 바가 아니지.
옆에 앉아 있던 진천희의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자 왕각연이 입을 열었다.
“어어, 남궁 소가주. 요로결석으로 인해 술을 마시면 안 된다 들었는데 괜찮으십니까?”
“하하하, 그리고 보니 왕 소저께서는 진 아우와 친분이 있으셨지요. 진 아우가 제법 그런 부분에서는 빡빡합니다만. 허나,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
“그 요로결석. 해결 방법을 찾았으니까요?”
‘……그게 무슨?’
멱리 아래로 진천희의 눈이 커졌다.
만약 술을 마셔도 요로결석을 예방하는 법이 있다면 그건 지구에도 없는 의술이다.
자신도 모르는 해결책을 남궁운이 찾아낸 건가?
진천희는 의원으로서 순수하게 궁금해졌다.
“그 방법이 무엇인가요. 남궁 대협?”
진천희는 뒤에 ‘대협’도 붙여서 물어보았다.
그런 방법을 발견한다면 대협이라고 부를 만했으니까.
남궁운이 말했다.
“그것은…… 아주 극미세한 진기 운용을 수련하여 스스로의 배를 내리쳐 내가중수법을 사용하는 겁니다. 그리하면 재발하는 요로결석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네?”
“몸 안의 독기를 내공으로 밀어내는 정도는 내가기공의 고수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그것을 응용하고 발전시킨 것이죠.”
왕각연이 어이가 없어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자기 배를 자기가 때린다는 뜻입니까? 남궁 소협……?”
“네. 물론 아픕니다. 아프죠. 허나, 술을 마실 수 있다면 이 정도의 고통쯤은 감수할 수 있습니다.”
“…….”
진천희와 왕각연은 잠시 말을 잃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둘의 옆에서 공손영은 술을 퍼먹는 중이라 셋의 대화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중이었고.
멍하니 있다가 진천희가 물었다.
“그……. 남궁 소협. 혹시 인체 내부의 콩팥 위치는 공부를 하셨는지요?”
“하하하, 대충만 알고 있소.”
“어어. 그러면 정식으로 의술을 배우신 적은……?”
“없소! 하지만 이리하면 될 거라는 확신은 있소.”
“그러면 내가중수법을 이용한 파쇄법의 실습이라든가, 전문가에게 배운 적은…….”
“전혀 없소!”
“그러면 그냥 자기 아랫배를 주먹으로 퍽퍽 치신다는……?”
“어허! 미세내가중수법이라니까. 오해 마시오. 본인의 내공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오.”
남궁운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공주의 얼굴이 멱리를 쓰고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어째서인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묘하게 분노한 기색도 느껴졌다.
공주가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하지요. 제가 이 돌 비파로 남궁소협의 머리를 때려 보겠습니다. 미세내가중수법으로 치는 것이니 그 지능도 고쳐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네……?”
그 순간, 새하얀 비파가 남궁운의 머리를 섬전처럼 후려쳤다.
빠악!
“크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