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25
제 424화
한 달.
왕각연이 보기에 진천희는 평안하게 한 달을 보냈다.
그때의 술자리는 어쩌면 자신이 착각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덤덤하게 남궁세가를 대했고, 공손세가를 대했다.
그저 한 달 동안 산동 지방의 수로채를 싹 뿌리 뽑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동안은 의원 일은 일절 하지 않았고, 다친 이가 있으면 세가의 다른 의원들에게 넘겼다.
의원으로서의 진천희는 잠깐 쉬는 셈이다.
그동안 ‘선희’ 공주의 손에 수적들은 모조리 체포되어 관아로 넘어갔고.
이 과정이 강호 전역에 낱낱이 퍼지면서 파장이 일어났다.
진천희가 여장을 하고 공주 신분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은 끝내 알려지지 않았으나(별의별 헛소문을 만드는 호사가들조차 이상하게도 그것만은 추측하지 못했다) 공손세가와 백린의각이 손을 잡았다는 정황은 여럿 포착됐다.
그래서 나온 소문 중 하나가 혈편왕이 공주로 분장하고 참여했다는 이야기였다.
혈편왕 당아는 채찍의 고수이지만, 동시에 사천당가의 천재로서 독공의 대가이기도 하기 때문.
그러한 이유로 진실은 저 너머로 넘어간 상태에서, 공손세가는 산동악가와 황보세가, 그리고 남궁세가의 중재 끝에 결국 산동성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절강성과 강소성, 그리고 산동성과 요녕성.
이 네 개의 성을 아우르는 유통망을 완성한 것.
배송은 운룡표국이 하고, 공손세가는 자본을 대서 물건을 사다 판다.
거기에 백린의각도 슬며시 백린 편의점과 백린의각을 확장.
그뿐이 아니었다.
연무 도시가 확장을 시작했다.
아낌없이 박아 넣은 대리석과 신기술을 도입해 만든 신식 수로.
요녕성의 지형을 이용해 한층 더 진법을 보강하여 운기조식에 최적화되어 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금혈방과 협력한 궁궐 부럽지 않은 인테리어까지!
연무 도시 시공이 끝나기도 전에 천하 각지의 무인들이 달려들어서 줄을 섰고.
진천희도 시공 완료 전에 사람이 모이는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공사 자재를 나르는 인부조차도 완공이 되고 나면 먼저 대기할 수 있는지 문의할 정도였다.
‘일단……. 어쩔 수 없다. 먼저 온 사람은 순서대로 대기표를 주되, 이 표를 사고팔지는 못하게 하는 게 급선무다.’
과거 진천희는 해외 록 밴드가 한국에 내한했을 때 혼을 팔아 티켓을 구한 경험이 있었다.
목이 터져라 외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 모든 좋았던 기억들이 흡사 꿈을 꾼 것처럼 몽롱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행사장에 있던 여러 폐해들을 사전에 막을 수 있도록 노력했고, 큰 사고 없이 줄을 세울 수 있었다.
‘콜드 P레이는 지금쯤 신곡이 또 나왔겠지.’
지구로 돌아가 봐야 반겨줄 가족은 없지만 그래도 신곡은 듣고 싶다.
향수병이란 이런 건가 보다.
문득문득 그때가 생각나고 치밀어 오르는 그런 거.
그렇게 치밀고 나면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기가 어렵다.
보통 사람이라면 무릎을 끌어안고 울거나, 술을 마시거나, 아니면 고향을 그리는 시가를 짓거나 한다던데.
진천희는 그때마다 닭을 튀겼다.
한국, 배달의 맛까지 재현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프라이드치킨의 맛은 꽤 근접하게 만들었다.
바삭-
고향의 맛이다.
특히 논문 쓰다 뒤질 것 같을 때 살려고 닭을 뜯었다.
분명 인류의 건강을 위해 논문을 쓰고 있는데, 쓰는 자는 불면증과 카페인, 콜레스테롤에 절어 산다.
슬픈 현실이다.
‘엄마 손맛이라는 걸 맛보면서 자라면 좀 다를까 싶긴 한데. 음. 그래도 역시 치킨이…….’
그렇게 진천희는 치킨을 뜯으며 자신을 갈아 연무 도시 7호점을 완성했고.
그런 스스로를 자축하는 의미로 연무 도시 7호점 입구에는 왕관을 쓴 암탉이 날개를 펼치고 있다.
보고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소각주님, 모두가 봉황의 영롱한 자태에 감탄했습니다.
분명 닭을 조각하라 하였는데 인부가 쓸데없이 예술 혼을 불태운 모양이다.
그렇게 개점 당일.
“연무 도시에 가입하신 무림 동도 형제분들. 모두 반갑습니다. 오늘은 연무 도시 7호점이 개점하는 날입니다!”
와아아아아아!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대형 암탉 조각상을 뒤로하고 사회자가 개점을 알렸다.
수많은 강호인들의 환호성 속에서 말은 이어졌다.
“기념비적인 이 날을 위해서, 오늘 유명하신 분을 모셨습니다. 바로! 일타강사로 유명하신 덕무사부(德武師傅) 도현진 사부님이십니다!”
“반갑소이다. 도현진이라고 하외다.”
우우와아아아아–!
강호인들의 목소리가 한결 더 커졌다.
덕무사부(德武師傅) 도현진!
연무 도시가 커지면서 이제는 그에 대해 모르는 이가 없다.
“덕무사부(德武師傅) 도현진! 운기를 그렇게 잘 가르쳐 준다던 그분을 모셔 오다니!”
“역시 연무 도시 7호점. 내가 믿고 있었네!”
“원래 연무 도시는 열리자마자 가야 뭐 하나 더 얻어갈 수 있는 법이지.”
“암, 아암!”
그 모습을 보며 도현진은 생각했다.
‘고작 절정의 무위인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날이 오다니……!’
강호무림의 태산북두로 불리는 무당에서 속가제자로 수학한 것이 어언 수십 년, 제아무리 무당파 출신이라고 하지만 그의 연배쯤 되면 초절정의 경지에 나아가든가, 혹은 죽었거나, 무공을 더는 쓰기 어려운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절정이라는 무위는 강호에서 위상이 높지만, 무당 출신이라는 점을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장로가 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보통은 무림의 혈사에서 십중팔구 사망한다.
운이 좋아 살아남는다고 해도 말년에 작은 무관이나 좀 열고 지역 문파 눈치나 보며 살아가는 게 그 같은 무인의 삶이라 할 수 있었는데.
-원래 천재보다 재능이 좀 떨어지나 착실한 사람이 가르치기는 더 잘 가르치죠. 특히 도 대협은 다른 무인들보다 인내심이 강하고, 말솜씨가 뛰어난 데다가, 이해한 것을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그를 데려온 것은 진천희 소각주.
강호에서는 그를 미쳤다 하여 벽안광의라고 부른다.
그런 그가 거액을 내밀어 빚을 탕감해 주고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무당파에서 배운 것을 전수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알려 드린 것을 배우시고 그것을 가르치면 될 일입니다. 아아, 빨리 배우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정확하게 배우셔야 해요.
그렇게 진천희 밑에서 수많은 강사 후보자들이 무공을 배웠다.
그때 한 무인이 물었다.
‘제갈세가의 무공은 훨씬 심오하고 복잡하다 들었습니다. 범재와 늙은 무인도 익힐 수 있게 만든 것은 높이 칠 수 있으나. 이래서야 저잣거리의 무공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 아닙니까?’라고.
그 말에 모두가 놀란 눈치였다.
그때 벽안광의는 이리 답했다.
-그거면 된 겁니다. 이 무공은 오성이 부족한 무인이라도 쉽게 익혀 목숨을 구명할 수 있게 고안한 무공이며, 결코 신공절학이라고는 할 수 없는 무공이지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것은 소수의 천재를 위한 것이 아닌 다수의 ‘회색’을 위한 거니까요.
회색.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흑도도 백도도 아닌 낭인을 뜻하는 것은 아닌가, 도현진은 생각했다.
그런 관점으로 보니, 과연 이 무공들은 익히기 쉽고 몸을 피하기도 쉬웠다.
사람을 베는 것보다는 방위를 점하고 급소를 피하는 게 우선.
‘허나 극성에 이른다면 충분히 위력적일 거 같은데?’
이것 하나만은 그때 이의를 제기했던 무인과는 다른 관점이었다.
어느 쪽이든 좋다.
그는 그것을 배웠고, 연무 도시에서 무인들을 가르쳤다.
돈을 받고 수강생을 가르치는, 어찌 보면 무관의 형태라 할 수 있다.
다만 일반 무관과 다른 것은 가르치는 강사 모두가 소각주의 밑에서 배우며 월봉을 받으며 가르치는 자들이라는 점.
-‘사부’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지요. 무관의 형태이며, 어찌 보면 그보다 더 얕은 관계니까요. 그러니 ‘강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군요.
벽안광의는 웃으면서 그리 말했다.
그는 생각했다.
‘거대 세가야 태내에서부터 태교를 하고 영약을 먹여 아이를 키운다 하지만, 낭인들 중에서도 가끔씩 무골이 좋고 오성이 뛰어난 자들이 나온다. 그런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무공을 익히게 되면 어떨까.’
그의 제자가 천하 백 대 고수 안에 드는 건 상상도 못 하겠다.
허나, 그래도 어쩌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영약을 밥 먹듯이 먹고 자란 세가의 무인들을 이길지 모른다.
자신이 가지 못한 곳까지 어쩌면 갈지도 모르고.
그게 도현진을 있게 만든 동기.
그랬다.
여기는 요녕성의 성도 심양(沈陽)에서 일 리 떨어진 외곽에 조성된 연무 도시 7호.
그리고 그 개점식을 거행하는 중이다.
입구에는 줄이 쳐져 있고, 입구 앞에는 강호의 무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있었다.
이 개점식에 모인 강호인들의 뜨거운 열기는 가히 현대 지구 월드스타의 공연을 방불케 한다.
거대 암탉 대리석상 앞에서 그는 말했다.
“본인은 본디 무당에서 수행한 속가제자이올시다. 경지는 절정에 불과하나, 이 몸이 키워낸 제자들 여럿이 초절정의 경지가 되었으니. 하늘이 본인에게 후학을 양성하여 강호를 이롭게 하라고 한 듯하외다.”
무당의 속가제자라고 했으나, 무당에서는 그리 많은 것을 배우지 못했다.
그가 무당에 있을 때는 한창 무당파가 썩어 있을 때였으니까.
요즘은 달라졌다고 하나 어차피 만시지탄이다.
그래도 여기서는 무당파란 간판이 도움이 된다.
그 말에 함성이 커지는 건 말할 것도 없었고.
사회자가 급히 손을 들어서 진정시킨 후에야 다음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니 강호의 동도 여러분들은 안심하고 연무 도시 7호점을 이용해 주시면 고맙겠소. 앞으로 석 달간은 이곳에서 강의를 할 것이니, 수강 신청을 하실 분들은 빠르게 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오!”
“와아아아아아!”
“도 사부! 도 사부!”
“우리도 초절정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드아아아!”
그리고 도현진이 연단을 내려갔다.
행사가 물 흐르듯이 이어지고, 결국 사회자가 개점을 알렸다.
“연무 도시 7호점 개점! 지금 등록 하시면 오 할 할인 중! 자아! 밀지 마시고 질서를 지키세요!”
무인들의 부푼 기대 속에서 그렇게 성황리에 연무 도시가 열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청수한 인상의 무명옷을 입은 미청년이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 *
천하의 정세는 천천히 변하고 있다.
정파의 세력이 넓어지고, 사파의 세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든 탓이다.
백린의각은 정사마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그 행보만 놓고 보면 사실상 정파 중의 정파라고 할 수 있었다.
여러 세력이 난립하던 강소성을 백린의각이 완전히 장악하고, 다른 세가나 문파들 이상으로 강소성 전체를 세력화하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오독문은 망한 다음 백린의각에 귀속되어 버렸으며, 수적과 산적들의 행동도 위축되었다.
그뿐인가?
도왕 해사방주는 진천희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정면 대결을 벌였다가 처참하게 당하고 강호 십 대 고수에서 퇴출되는 수모를 겪었다.
해사방은 그 때문에 세력이 위축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사도련에 속했던 문파들 중 셋의 세력이 떨어져 나간 셈이다.
오독문 멸망.
해사방 반 토막.
수적과 산적의 세력은 사분의 일 정도 없어지고.
이는 자연스레 사파와 사파들의 연맹인 사도련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과거 비동 사건과는 다른.
상당한 긴장감을 강호 전체에 두르게 만들었음에 분명하다.
비록 그들이 악인이며, 위법하고 불의하며 불법적인 존재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살아 있는 인간이었다.
그들 스스로 생존하기 위한 본능이 경고를 울리기에 사도련은 결속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전운이 조금씩 깔리는 와중.
혈선문은 아무도 모르게 봉문을 해제하고, 다시금 활동을 시작했으며, 마교의 후계 전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었다.
폭풍 전의 고요가 지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