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27
제 426화
한참 울던 아이가 뭔가 심경의 변화라도 생겼는지 울음을 그치고는 진천희를 올려다본다.
“옳지옳지. 그래. 이제 아픈 건 거의 다 끝났다.”
진천희는 그리 말하고는 아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돌아가신다고 해도 계속 경과를 지켜봐야 해요. 갑자기 구토를 한다거나 경련, 의식이 없다거나 하면 바로 분타로 뛰어오세요.”
“후유증이 있을까요?”
아버지는 젖은 눈으로 진천희를 바라본다.
“…….”
진천희는 안심되도록 미소 지었다.
“낙관하기는 이르지만…… 있다고 해도 바로 분타로 달려오시면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경과가 좋아서 씩씩하게 잘 클 겁니다.”
단순 두부 골절이라면 평균적으로 한 달 정도 추적 관찰한다.
허나, 이 환자는 최소 반년은 지켜봐야 할 성싶다.
‘특히 아기는 진맥으로 알기가 어려워.’
몸이 너무 작다.
거기다가 장기며 혈도며 아직 완성되기 전이라 구분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다음은 의원으로서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해야 한다.
“허나,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안 됩니다. 그때는 목숨을 장담하기 어려워요.”
“……강호에 은원이 많아 완전히 몸을 피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소이다.”
“적어도 일 년. 일 년이라도 어찌 안 될까요?”
“…….”
아비의 얼굴에 시름이 머문다.
“어디 깊은 산중에 움집이라도 짓고 살 수 있다면야 가능할지도 모르지요. 허나, 아이가 아프면 바로 의각 분타로 달려야 하지 않소.”
그게 문제였다.
아버지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백린의각에 무인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나. 얼마 전에 채용이 끝난 것으로 알고 있소.”
“네. 이미 채용이 끝났습니다.”
“염치 불고하고…… 혹시…….”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안다.
‘으으, 무월한테 빈자리 있는지 물어볼까. 시험을 봐서 통과할 정도의 무력이라면 가능도 할…….’
그러나 이미 그렇게 지난주에 한 명 어거지로 넣었다.
그때 유호가 들어왔다.
“아, 유 총관!”
뭔가 방법이 없는지 물어보려는데 유호가 소름이 돋는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싫습니다.”
“어? 아직 한마디도 안 했는데.”
“뭐 귀찮은 일 시키려는 거 아닙니까. 딱 봐도 성가신 일 종류구만.”
“와! 이제 유 총관 척하면 척이구나. 벌써 내 얼굴만 봐도 다 알아.”
그리 말하며 일부러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게 아닌가.
‘하……. 저 새끼 또 불쌍한 표정 지으려고.’
하루 이틀이 아니다.
유 조교는 진 교수가 필살기를 쓰기 전에 재빨리 말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음, 손님?”
그때 유호가 전음으로 답했다.
[제독태감께서 직접 찾아오셨습니다.]……이게 무슨?
* * *
일단 이다음은 유호에게 맡기고 진천희는 급히 제독태감을 만나러 향했다.
‘구렁이 백 개는 집어삼킨 양반이 직접 온다고?’
차라리 손녀인 한이정이 육부상서에 올랐으니 한이정을 보내든가.
한이정은 육부 중에 호부(戶部), 재정과 지방 행정 담당으로 들어갔다.
호부상서는 민부(民部)상서라고도 부르는데, 알짜배기 중에 알짜배기다.
‘관료 인사 쪽인 이부(吏部)상서로 안 넣은 게 최후의 양심이지. 이건.’
못 넣는 게 아니다.
안 넣으신 걸 거다.
거기다가 이부상서보다 호부상서 쪽이 제독태감을 비호하기는 더 좋을 거다.
재정, 지방 행정은 동창들과 연관되어 있으니까.
그런 사람이 호부상서인 손녀딸, 아니…… 아니 애초에 대충 동창 하나 보내서 심부름꾼으로 쓰면 될 일을 직접 나서서 왔단다.
‘아……. 나는 전직도 안 한 초보자인데 세계관 최강 보스부터 만난 기분이다.’
진천희는 생각했다. 분명 개 같은 일을 들고 왔을 거라고.
‘내 연약한 영혼에 구멍 뚫을 더러운 일이겠지.’
이제 소각주로서 짬이 찬 진천희였다.
좋을 일이 없다. 이건.
좋을 수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다실에 도착하니 스승님이 저 세상 표정으로 제독태감과 앉아 계셨다.
* * *
“소집령?”
“허허허, 그리되었습니다.”
그랬다. 소집령이 왔다.
강호인이 비록 밥 먹듯이 탈법을 하며 살아간다지만, 그래도 제국의 백성이기 때문에 국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첫째 납세의 의무.
십만대산에 계시는 마교 여하륜은 알 바가 아니지만, 호패가 발급된 대부분의 무인들은 아무튼 납세를 해야 한다.
두 번째가 바로 군역의 의무.
황법에 의거하여 부름을 받아 나라를 지켜야 한다.
참고로 마교인 여하륜은 안 진다.
마교 자체가 제국법상 사이비 불온분자 모여 있는 집단이기 때문에 토벌 대상이다.
물론 삼존 중의 하나인 마존이 앉아 계시고 마두들이 있다 보니 토벌해서 얻는 이득보다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에 못하고 있을 뿐이지.
개인이 미니 수소폭탄급의 위력을 낼 수 있다는 게 참으로 개 같은 일이다.
물론 이능을 가지고 계시는 우리의 주왕을 비롯한 황족들이 비슷한 무력으로 쓸어버리는 게 가능하다.
허나, 천마야 여차하면 십만대산 털고 도망치면 된다지만 황제가 황궁을 버리고 튀면 행정은 어쩌란 말인가.
그러다 보니 우리의 십만대산은 제국법상 반역도의 불법 영토 점거이나. 현실법상 어쩌지 못하는 애매한 곳이 되었다.
‘……넌 세금도 안 내고 군역도 안 져서 좋겠다. 하륜아.’
무림 행성 탈세범이자 병역 회피자인 리틀 천마가 부러웠다.
그래도 나름대로 제국이 합리적인 편인 게, 군역의 경우 그만한 돈을 내면 면제받을 수 있다.
그 돈은 제국군을 지탱하는 자금줄 중의 하나.
강호인들이 군대 가서 자기보다 어린 백부장 말을 듣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생긴 제도다.
술 먹다가 백부장한테 한 소리 들은 낭인이 빡 돌아서 상관의 목을 쳤던 전례가 이미 수차례 있어서 생긴 제도다.
무림맹 말도 잘 안 듣는 게 강호인인데 군대 말이라고 잘 들을 리가 없다.
아무튼 대다수의 강호 문파들은 막대한 군역세를 따로 내서 문파원들을 보호한다.
‘문제는 그것과 별개로 내려오는 소집령이지.’
소집령은 군역과는 다르다.
군역은 보통 오 년을 근무하게 되어 있지만, 소집령은 단기적으로 전쟁을 위해 소집하는 것.
반년에서 일 년 정도 소집되는 것이 보통으로.
소집령이 떨어지면 질병이나 천재지변 같은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
물론 소집령이 자주 쓰이는 건 아니다.
제국에서 심각하다 싶은 것만 한다.
‘하륜아. 너는 반역도라 소집도 안 받겠구나…….’
제독태감이 말을 이었다.
“소집령을 좋아하는 강호인은 없겠지요. 허나, 북쪽의 유목민들이 심상치 않은지라 백린의각의 의원들 지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제독태감은 허허롭게 웃으면서 진천희 뒷덜미에 낚싯바늘을 걸었다.
‘그래. 지구나 여기나 전시(戰時)에는 의료인이 가장 먼저 차출되지.’
제갈린은 생각에 잠겼다.
“…….”
제독태감이 말을 이었다.
“의원들을 호위할 호위 무사들도 함께 가겠으나, 일단 기본적으로는 전쟁에 참가하는 것이 아니외다. 물론 후방으로 의원들의 안전도 최대한 신경 쓸 터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말 중에 진실이 몇 개나 될까.
하나는 될까?
진천희는 생각했다.
“또한 책임자로 소각주인 진천희 공자가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다른 세가 역시 전부 소가주들이 책임자로 차출될 것이고요.”
“소각주, 소가주군요.”
백린의선 제갈린의 말에 제독태감이 말했다.
“각 문파의 문주들께서 직접 오신다면야 좋겠습니다만, 문주의 직위를 가진 분들이 쉽사리 움직이지는 않는 법이지요. 허허헛.”
혀가 살살 녹다 못해서 뼈까지 녹일 기세의 독이 담겨 있는 느낌이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백린의선이 답했다.
“……그러면 제가 직접 가지요.”
“허헛. 백린의각은 최근 크게 확장하지 않았습니까? 업무가 막중하실 터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이미 다 해 둔 터였습니다.”
스승 백린의선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주시면야 저야 감사하지요. 제국도 각주님의 공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제가 직접 움직이는 것이니 태감께서도 성의를 보여 주셔야 할 듯합니다.”
스승님이 얼음 같은 눈으로 말하자, 제독태감도 고개를 끄덕였다.
“황상의 총애가 이미 소각주께 있으니……. 당연히 넉넉히 챙겨 드려야지요. 북경에 백린의방과 백린 편의점을 개설토록 아랫것들에게 시키겠습니다. 또한, 제국법령으로 비누를 보급하겠습니다. 비누를 반드시 쓰도록 강제하겠다는 말이지요.”
그 말에 진천희와 제갈린이 동시에 인상을 썼다.
이만한 일을 제독태감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
‘허먼, 오기 전에 이미 내놓을 것들을 준비했다는 뜻인가.’
은왕야. 아니.
황제의 복심(腹心)이 이것인가.
진천희는 생각했다.
‘비누를 제국 전체로 보급하게 되면 그 돈은 엄청날 게 분명해. 하지만……. 돈은 부차적인 문제이고. 그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게 되겠지.’
스승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과연 백린의선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시기에 맞춰 가도록 하겠습니다.”
“아휴, 백린의각의 용과 기린께서 직접 나서신다니……. 이 촌부,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능구렁이 같으니라고.
표정만 보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 좋은 촌부 같아 보였다.
스스로 제독태감이라는 직함을 가졌으면서도, 저렇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 진정 저 사람의 무서운 점이리라.
* * *
제독태감을 보내고 스승님은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기셨다.
“전쟁이라…… 이건 예상치 못한 변수로구나.”
“전쟁……이군요.”
“그래, 전쟁이지. 희야, 너는 유독 이런 문제에 민감한 모양이더구나.”
“예, 안 좋은 경험이 있어서…….”
그 말에 스승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희는 이번 일에서 빠지거라.”
“…….”
도망치려면 도망칠 수 있었다.
아마 그로 인해 백린의각이 많은 부담을 지게 될 터이나, 스승님이라면 어떻게든 무마하실 수 있으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허나.
“괜찮습니다. 스승님.”
아둔한 제자는 도망치는 법을 몰랐다.
진천희는 말을 이어 나갔다.
“국경에서 분쟁이 일어나게 된다면 부술을 익힌 의원이 많이 필요할 것이고, 부술당주가 도망치면 부술당 의원들은 믿을 사람이 없어집니다.”
“버팀목이 되겠다는 거니?”
“도망치지 않겠다는 겁니다.”
한 점 흔들림 없이, 청년은 그저 눈앞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모습이 든든하면서도 어쩐지 위태로워 보이기도 해서, 제갈린은 복잡한 심정으로 제자를 내려다보았다.
진천희가 물었다.
“그런데 스승님, 의각주와 부의각주가 다 국경으로 가 버리면 의각은 누가 운영하죠?”
“유호가 임시 대리 각주가 되겠지. 대신 연구는 잠시 멈춰야겠다만…….”
“크윽…….”
진천희가 가슴을 틀어쥐자 스승님이 말했다.
“양심이 없구나, 희야.”
“역시 스승님께서 의각에 계시는 편이……!”
“그건 나한테 몹쓸 짓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