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29
제 428화
“하하하, 이렇게 합류하게 되어 기쁜걸?”
주왕께서는 그만 좀 예를 표하라면서 우격다짐으로 백린의선의 마차에 동승했다.
‘동행이 목적인 모양이구나.’
‘이게 목적이셨구만.’
진천희와 스승님은 같은 마음으로 눈빛을 교환했다.
허나, 왕야께서는 일부러 둔감한 척하는 건지 아주 그냥 상석에 앉아서 행복한 왕야 라이프를 즐기셨다.
진천희는 이렇게 된 거 좋은 시간이나 보내자 싶어서 미리 준비한 다과를 꺼냈다.
가마솥에서 꺼낸 카스텔라다.
진천희는 여기다가 화생기로 표면을 살짝 구운 후에 꿀 시럽을 맛깔지게 뿌렸다.
“오오오! 과연 벽안광의, 대충 하는 법이 없군!”
“즐겁게 드셔 주신다면 소생,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겁니다.”
“음…… 그래도 황공하다는 표현까지 안 가서 좋긴 한데 더 편히 말하면 안 되겠느냐?”
“으음.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래!”
주왕은 기쁜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천희의 카스텔라를 먹었다.
“으음! 진미로고! 백린의선, 자네를 질투하네. 어떻게 이리도 요리를 잘하는 제자를 들였나.”
“저래 보여도 속을 여간 썩이는 게 아닙니다.”
“그래도 이런 진미를 먹을 수 있다면 그 정도는 감당할 만하지.”
그녀는 호탕하게 웃으며 진천희를 탐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욘석! 소백 공주에게 답장 좀 길게 써라.”
“네, 네?”
진천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으이구, 그 녀석도 어쩌다 이런 놈에게 꽂혀서는. 되었으니까 답장이나 길게 써라.”
‘그동안 나름대로 꽤 예를 갖추어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했나?’
역시 황족.
‘그 정도 격식으로는 부족하단 말인가! 역시 고문헌을 뒤져서 제대로 된 예를 서신에 담아야…….’
진천희는 소백 공주가 들었으면 분통이 터졌을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길게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거면 됐겠지.”
그녀는 ‘딸아, 이 엄마는 할 거 다 했다.’라는 눈으로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동상이몽 속에서 제갈린만이 홀로 부채로 표정을 가릴 뿐.
스승님은 왠지 두 사람의 모습이 퍽 우스운 모양이었다.
* * *
주왕은 진천희의 금 타는 소리를 들으며 행복에 젖어 있었다.
“네놈은 정말 도둑놈의 갈고리 같은 놈이다. 해어지고 나서도 계속 생각나니, 원.”
“네, 제 밑에서 일하던 상의원들도 제 요리는 계속 생각난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나름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루어졌다.
“우리 소백이한테 서신 많이 보내야 한다.”
“네. 맡겨 주십시오.”
주왕야는 진천희가 만들어 내는 가락을 따라 흥얼흥얼거리다가 문득 본론을 꺼냈다.
“이번 발호한 유목 민족은 숙신족이라 불리네.”
“숙신족이요?”
진천희의 말에 주왕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외의 유목민들은 여러 갈래의 부족으로 살아간다만…… 이 숙신족은 특히나 큰 세력을 가진 부족이지. 이들이 이번에 다른 부족들을 통합하여 그들의 언어로 왕을 칭하는 ‘칸’이 되었다고 하고.”
지구 별 진천희는 왠지 칭기즈 칸이 떠올랐다.
주왕야는 말을 이었다.
“그런 숙신족이 현재 남하 중이지. 그 수를 들었나?”
그 말에 진천희가 고개를 저었다.
“음…… 은이랑 금이가 제대로 은폐하긴 했구나. 허나, 어차피 곧 알려지긴 할 게다. 이런 건 시간문제이니까.”
“적은 수는 아니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래. 30만이다.”
30만!
그 말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어, 엄청난 숫자네요.”
“그래. 무시무시하지. 그보다 더 무서운 게 무엇인 줄 아느냐? 유목 부족답게 남하하면서 약탈을 해 보급을 챙기는 특성이 있지. 심지어 유목민답게 기동력 역시 일절이니, 위험하지.”
‘와…… 이건 생각도 못 했네.’
숙신족.
산서성 북쪽 경계 지역.
산서성에서 북으로 올라가면 넓은 초원과 황야, 그리고 고원 지역이 펼쳐진다.
한랭 지역이 쭉 펼쳐지는데, 제국 쪽에서 추측하기로는 수백만가량이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단다.
물론 제국 전체의 인구에 비하면 이십 분의 일 정도지만, 유목 민족 특성상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기마술과 궁술이 일절.
거기다가 유목 민족 대대로 내려오는 무예가 별도로 존재하는데.
그 자체만 본다면 무공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나, 기마술과 합쳐졌을 때 가공할 위력을 보인단다.
“그……렇군요.”
“안색이 좋지 않군. 벽안광의.”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 되어 그렇습니다.”
“안심하게. 백린의각은 후방 부대에서 치료에 전념하도록 해 주겠네. 또한 백린의각의 무력 부대를 전투 병력으로 차출하지 않을 것이네.”
으음, 제독태감부터 주왕까지 모두 다 안심하라고 하고 있다.
걱정하지 말라고.
‘뭐지? 곧 지옥불이 떨어지니까 미리 우산 챙기라고 조언해 주는 건가?’
만약 본 투 비 무림별 양민이었다면 황상의 복심과 왕야의 확언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허나, 인류사를 통틀어 용팔이와 정치인 이빨은 믿을 게 못 된다는 걸 배운 지구인이다.
이걸 곧이곧대로 믿을 리가.
‘진법을 어떻게 깔아야 이 한 몸 지키지?’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정신.
정말 후방으로 보내 줄지는 알 수 없다만…….
‘일단 주왕님의 무력을 생각하면 안전하지 않을까? 스승님도 계시고?’ 하는 생각이 2% 정도 들긴 한다.
“왕야께서 총사령관으로 가시는지요?”
“아니아니. 내가 그런 귀찮은 걸 맡을 리가. 나는 같은 제국민을 죽이는 걸 잘하지, 이족을 상대로 싸운 경험은 미진하네.”
황위 다툼 때 있던 내전을 뜻하는 것이리라.
그것을 그렇게 조소하며 말씀하실 줄은 몰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승님이 물었다.
“그러면 총사령관에는 누가 앉게 되는 것입니까?”
“육헌.”
그 말에 스승님의 눈이 살짝 커졌다.
“육헌. 그가 벌써 대장군이 되었나 보군요.”
그 말에 주왕이 답했다.
“워낙 뛰어난 자이니 늦은 감이 있어. 그리고 보니, 육헌이 과거 칠양절맥이었던 것을 제갈린 그대가 치료했었다지? 제국의 명문이자 권문세가인 육가(家)의 장자였던 육헌 말이야.”
육가.
과거 옛날 삼국시대 육손의 가문.
지금은 제국의 권문세가 중 하나다.
대대로 관리를 배출해 온 명문가로, 장군들도 꽤나 배출해 온 전적이 있다.
‘스승님의 옛날이야기가 이렇게 튀어나올 줄은.’
제갈린은 담담히 답했다.
“예, 절맥증은 음절맥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구음절맥이 있다면, 그 반대인 구양절맥도 있는 법이지. 육헌은 구양까지는 아니고 칠양절맥이지만 말이지.”
“당시에는 다행히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겸손이 지나치군. 구음만은 못하다고 하나, 칠양 역시 불치병이 아니었나. 그것을 치료해 내었으니 육가의 은인이지. 암!”
육가는 백린의각의 중요한 후원자 중의 하나다.
막연히 제갈가와 연이 있나 보구나 했었는데,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왕야는 진천희에게 물었다.
“칠양절맥을 치료하면 어찌 되는지 아느냐?”
“음…… 자료가 없어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백린의선. 제자에게 그것을 가르쳐주진 않은 모양이군.”
그 말에 제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당시에는 우연히 영약이 맞아떨어져서 된 것이기에 의술이라 할 건 못 됩니다. 더는 그 영약을 찾을 수 없기도 하고요.”
“그런가. 너무 엄격하군그래. 나였다면 방방곡곡에 자랑했을 텐데 말이지.”
주왕은 턱을 문지르더니 진천희에게 말했다.
“칠양절맥을 치료하면 초양지체가 된단다. 태양지체에 버금가는 체질로 변화하지.”
“아하…….”
“그러다 보니 열양진기 계열의 무공을 익히면 아주아주 강해질 수 있지. 대장군이라는 직위 자체가 강하다고만 되는 건 아니다만.”
“어째서죠?”
진천희가 일부러 모르는 척 맞장구를 쳐 주자 왕야는 신이 났다.
“대장군이라는 존재는 병법에도 조예가 깊어야 한단다. 전략 전술에 뛰어나지 못하다면 그는 대장군감이 아니지! 그래서 장수는 지장과 무장으로 나뉘는데, 지장이자 무장인 자는 흔치 않지.”
“그렇군요.”
지구 별 사회생활을 하듯, 진천희는 열심히 추임새를 넣어 주었다.
주왕은 그런 진천희가 썩 마음에 들었다.
‘역시 주왕부에 꼭 필요한 인재란 말이지.’
그녀가 말을 이었다.
“관우를 왜 만인지적이라고 불렀겠느냐. 또 어째서 지금은 수호신으로 받들어 사당까지 세워 모시겠느냐? 지장이자 무장이며 충의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란다.”
“아하…….”
“여포는 분명 무장으로서는 관운장을 능가할 정도로 강했다고 하나, 병법의 귀재는 아니었지.”
“그렇군요!”
“전략을 짜는 것은 책사라지만, 전술에서는 지력과 무력을 동시에 갖춘 자가 승리하는 법이지.”
“그렇다면 전술에서 막혀서 전략이 틀어지는 경우도 흔하겠군요!”
이미 제갈가의 시조는 제갈량이다.
진천희는 주왕야에게 열심히 ‘잘한다, 잘한다!’ 박수를 쳤고.
주왕야는 으쓱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추임새가 어찌나 절묘하던지 사회생활 원투 데이가 아닌 짬밥이었다.
“그렇지. 전략은 큰 그림. 전술은 전투에서 사용되는 기술과 방법으로 전략의 하위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결코 지장이 될 수 없지.”
“오오…….”
진천희는 눈을 빛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 의미로. 대장군은 전략과 전술에 능수능란하고, 지장이자 무장인 자가 아니면 대장군이 되기 어렵단다.”
주왕은 책사 가문에 대고 열심히 자신이 아는 것을 설파했고.
책사 가문은…… 책사이기에 열심히 모르는 척을 했다.
조직 생활이 아무리 엿 같아도 적응을 해야 책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왕 정도면 꽤 괜찮은 주군이었다.
스승님이 흐뭇하게 부채를 부치며 말씀하셨다.
“당시 육헌이 고수가 될 것이야 예측했으나, 대장군의 자리에 오를 줄은 몰랐습니다.”
‘스승님의 옛 지인이라…… 나름대로 친구라고 할 만하려나?’
다른 세가에 대해 말할 때와는 확실히 다른 억양이 느껴졌다.
무림 세가 쪽이 아니니 어쩌면 은원이 덜 얽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주왕이 말을 이었다.
“하하하, 칠양절맥을 치료해 내고 나서 이 녀석이 백린의선이라는 별호를 달게 된 것이다. 강호의 누구도 오 성 이상의 절맥을 치료한 적이 없었으니까. 물론, 거기에는 육가(家)가 적극적으로 협력하였고.”
“우와…….”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저의 제자는 구음절맥인 저를 치료한 것을요. 이것이 바로 청출어람 아니겠습니까.”
그 순간, 스승님 주변으로 후광이 반짝였다.
“역시, 백린의선은 본인 칭찬은 아무래도 상관없고 제자 자랑이 가장 우선이구만.”
팔불출이 너무 티가 났나.
그러거나 말거나 제갈린이 말했다.
“아, 그런가요. 그렇지 않아도 제자가 만든 새 당과에 대해 자랑을 할까…… 했습니다만. 심지어 붕어 모양입니다.”
“아, 아니! 자랑을 해야지! 그건 해야지!”
주왕이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역시 사람을 포섭하려면 일단 위장부터 잡는 게 가장 상책이었다.
진천희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간식을 더 꺼내야겠군.’
스승님의 제자 자랑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