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30
제 429화
말이 평야를 달려간다.
사람 몸뚱이보다 기다란 창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병사의 목이 흡사 과일처럼 추수되었다.
달리는 기마 부대를 따라 화살의 비가 쏟아진다.
새카만 화살 비가 태양을 가리고 나면, 어김없이 평야에는 붉은 그림이 꽂혔다.
사람으로 만든 화폭이 흡사 추상화와 같다.
“칸이시여! 우리를 수호하소서!”
숙신족이 사용하는 군마는 다리가 굵고, 체구도 보통 말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그 말이 일제히 달리면 지축이 흔들렸다.
둥, 둥, 둥-
북소리를 따라 후방의 궁수대가 화살을 바꾸었다.
처음 날린 것은 금속 화살, 그다음에 쥔 것은 뼈 화살이다.
금속 화살은 관통력이 높아 갑주를 입은 중원인을 죽이기 좋았다.
반면 뼈 화살은 멀리 날아갈 수 있어 후방 부대를 습격할 수 있다.
숙신족 궁수 부대의 화살 통에는 100개가 넘는 화살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고, 안장 뒤로도 수없이 다양한 화살들이 화살 통에 꽂혀 있었다.
“쏴라!”
뼈 화살이 날아간다. 그것은 200장(약 600미터)이 넘는 거리를 주파하여 적진을 헤집었다.
피피피피핑–!
화 제국의 궁병이 쏠 수 있는 사정거리는 최대로 쳐 줘도 100장(약 300미터) 정도가 고작이다.
국경의 병사들은 기본적으로 단전 호흡법을 알고, 궁술을 익힌다.
강호인의 것과는 다르나 같은 움직임으로, 같은 전열로, 같은 포물선을 그리며 화살 비를 꽂아 낸다.
그러나 숙신족을 중심으로 한 유목 민족의 활은 그것을 가볍게 압살했다.
“크아아악, 죽여. 죽여! 미친 소쟁이들을 죽여야 한다!”
백인장이 광란에 젖어 비명을 지른다.
급소에 박힌 화살이 피를 뿜어냈다.
군의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고통스럽지 않게 죽도록 도와주는 것뿐.
제국의 궁수병들은 낙엽처럼 낙마했다.
“우리 화살로는 닿지 않습니다!”
“엄마, 엄마아아아아!”
미쳐 버린 궁수병 하나가 이미 죽은 전우의 머리통을 끌어안았다.
뼈 화살들 사이로 진기가 담긴 화살이 꽂혔다.
그것은 진짜배기 화살들.
그저 닿은 것만으로 척추를 가르며 대지에 박혀 죽음의 씨앗을 뿌렸다.
“후퇴하라, 후퇴하라!”
장수의 외침이 허망하게 울린다.
그때 북소리가 다시 바뀐다.
두둥, 두둥, 두둥-
그 순간, 모든 숙신족 궁사들이 화살을 바꾸었다.
그것은 철시!
탕!
아군의 명령을 기다리지 못한 성질 급한 화살이 대지에 꽂혔다.
장수는 그 화살을 뽑아들었다.
“이…… 야장 기술은……? 설마 이미 ‘그곳’을 점령한 건가?”
그 순간, 장수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구름인가?
그는 눈을 들었다.
그의 시야를 철로 만들어진 화살들이 가득 채웠고.
그리고 그 화살들이 시야를 뚫고 바닥에 박혔다.
후두두둑!
흡사 개미가 엄지에 으깨지듯, 장수의 사지가 처참하게 으깨져 대지를 적혔다.
둥, 두둥, 둥-
북소리가 바뀐다.
화살은 아직 많았다.
아직도 화살이 많이 남아 있었다.
* * *
산서성 북쪽 경계선에 위치한 단목성.
요새 도시면서 유목민과 거래가 이루어지는, 그야말로 두 문화를 잇는 완농과 같은 기능을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 이제 대군영이 세워졌다.
스승님은 창문을 열었다.
[희야. 먼저 무엇이 느껴지느냐?]그것은 책사로서의 가르침.
실전이었다.
진천희는 눈을 감았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진한 말똥 냄새, 그리고 생각보다 혈향은 없었다.
그에 비해 술 냄새는 어찌나 진한지 사방에 퍼져 있었다.
[패전의 향입니다.] [어찌 그리 생각하느냐?] [생존한 말은 급히 돌아왔기에 이곳에서 똥을 싼 것이고, 혈향이 적은 것은 전우를 돌보며 대피할 시간은 없었기에 부상병을 버리고 왔거나, 또는 최악의 경우 대패하여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고 왔기 때문입니다.] [주향(酒香)은?] [패전의 상황에서 병사들이 도주하는 것을 우려한 장군이 술을 보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일수록 정신을 단단히 정비해야 할 텐데 어찌하여 술을 내리겠느냐?] [그만큼 아군의 충격이 크다는 뜻이지요.] [너는 대패했다고 생각하느냐?]진천희는 한 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다면 큰일이겠구나.]제갈린은 다른 사람 일을 말하듯 느긋하게 전음을 보냈다.
제갈가의 두 책사는 당황하는 법이 없었다.
다만, 선조 때부터 함께해 왔던 가르침이 그들을 무겁게 내리 붙잡을 뿐.
그것은 물 만난 고기와 같으나, 진천희는 그 물 속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물고기이기도 했다.
* * *
굳이 군견의 영역으로 갈 것도 없이, 모든 전쟁은 그 냄새를 남긴다.
과거 베트남전을 겪었던 미군들의 인터뷰와 수기를 찾아보면, 당시 미군들은 베트남군이 자주 먹었던 어간장 냄새로 적이 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베트남군 역시 미군을 알아내는 방법 중에 그 문화권이 향유하는 주식 냄새가 있으리라.
이렇듯 간단한 것부터 화약 냄새와 피와 살점 냄새.
기름 냄새와 가스의 조짐까지.
전쟁터는 특히 많은 냄새들이 정보를 남긴다.
마찬가지로 제갈세가에서는 모든 책사들에게 바람을 읽는 법을 가르쳐주고, 자연히 전장의 냄새로 정보를 얻어내는 법 역시 가르친다.
백린의선은 자신의 제자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가르치고 싶어 했고, 진천희는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책사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뭐, 그렇다 하더라도 아는 척은 하지 말거라. 배우는 것과 등용당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니까.]개파조사님의 삼고초려까지 갈 것도 없다.
은왕야가 작정하고 데려오려고 한다면 목줄 묶여서 가는 수밖에 없다.
단목성 밖으로 이미 많은 군막이 쳐져 있었고.
주왕이 도착하자 단목성주와 이번 전쟁의 책임자인 대장군 육헌이 직접 나와서 그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멀리에서 지켜보며 진천희는 생각했다.
‘역시 의전에 죽고, 의전에 사는 공무원. 군인이라고 해도 피할 수가 없구나.’
“천세, 천세, 천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모든 군병들이 주왕을 향해 창을 들어 맞이했다.
주왕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답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내 분명 바쁜 군병들 붙잡고 이런 거 시키지 말라 하였을 텐데.”
육헌이 답했다.
“허나, 전하께 바치는 예를 거른다면 그것은 나아가 황상께 불경한 죄를 저지른 것과 같습니다.”
“……걔는 그런 거 신경 안 쓸 텐데.”
그렇게 한마디 내뱉더니 곧바로 본인 막사를 찾아 쓱 가 버리는 게 아닌가.
“그럼 다음에 보자.”
진천희 일행에게 인사는 했다.
그게 더 부담스럽다.
백린의각은 전단이라는 이름을 가진 장수의 안내를 받게 되었다.
“백인장 전단입니다. 지금부터 백린의각분들을 안내하게 되었습죠! 불편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제게 말해 주시면 되겠습니다요.”
‘백인장부터는 장수로 임명되긴 하지.’
여튼 전단이 진천희를 데려간 곳은 무림대라는 곳으로, 강호인들을 모아 놓은 부대라 할 수 있었다.
백린의각의 천막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여기에 짐을 푸시고 치료소를 차리시면 됩니다요.”
“알겠습니다. 음, 이 많은 사람들이 다 강호인인가요?”
무림대의 숫자가 꽤나 상당했기에 진천희가 물었다.
“네, 그렇습죠. 남은 무림대는 특별 기동대로 차출될 예정입니다.”
‘호오, 무림인인 내가 이런 소리 하기는 좀 그렇지만. 애초에 군율도, 제대로 된 전략, 전술도 숙지하지 않은 강호인들이라 암습, 기습 같은 곳에 투입해 버리는구나.’
그들의 거대한 자아를 생각하면 그게 맞는 일이긴 하다.
군 입장에서 봤을 때 강호인은, 대체가 불가능한데 막상 쓰자니 엿 같은, 윈도우 같은 역할이다.
업데이트가 개 같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버리고 도스나 리눅스를 쓸 수는 없지 않나.
그런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면 커리어가 바뀌었을 터다.
그렇게 은왕야는 눈물로 강호인 10을 깔았다.
정파와 사파가 충돌하여 리소스가 오지게 꼬일 각오는 했다.
그저 번들로 같이 깔려 있는 백린의각과 화주의각이 디스크 조각 모음 및 백신 기능을 해주길 바랄 뿐이다.
자, 이번 단목성 11은 제대로 돌아갈 것인가.
‘옆 천막에 이미 화주의각이 있군.’
화주의각은 이미 분주하다.
오는 족족 치료를 하고 있다.
잡혀 온 사파 의원들은……. 차마 자신이 흑전의각 소속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는지라 약간 불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왜인지 양 머리를 잘라다가 거꾸로 말리기 시작한 이후로는 그 어떤 병졸들도 그쪽으로는 안 갔다.
위이이잉-
잘린 양 머리에 파리 떼가 꼬이고 있다.
구석에는 제단을 쌓아서 뭔가 제사를 지내고 있다.
‘……흑전의각에서 이런 것도 하나.’
화주의각의 의원들은 최대한 사파 진영에 시선을 안 두기 위해 애를 썼고, 진천희도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힘냈다.
위생이 벌써부터 걱정인데 오독문의 악몽이 떠오른다.
‘아, 요리였군.’
다행히도 잘린 양 머리를 커다란 솥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고약한 냄새가 후욱 끼쳐 온다.
그래도 차라리 먹어서 없애니 의사 입장에서는 다행이에요.
양 머리도 이 시대 기준으로 비교적 신선(?)한 편이고.
진천희가 스승님에게 물었다.
“화주의각이 저렇게 열심히 갈리는데 우리는 강호인만 치료해도 되겠죠?”
“희망 사항을 그렇게 물어볼 필요는 없단다, 희야. 아마 오는 대로 다 치료해야겠지.”
“그래도 황실에서 보낸 의원들이 있지 않을까요?”
“보지 않아도 그쪽도 인력 부족일 게다.”
……그렇겠지.
그래도 진천희 희망 회로, 어떻게든 기동해 봅니다.
“그으……. 의약품은 나라에서 전부 지원해 주고, 가격도 제대로 책정해 준다고 하니 다행이네요.”
“그래. 들고 온 물자도 넉넉하고 추가 보급대도 곧 도착할 터이니 어떻게든 되지 않겠니.”
은왕야갸 특별히 명을 내린 건지 백린의각에 배정된 땅은 꽤 넓었다.
화주의각이 옆에 있다고는 표현했으나, 서로의 대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진천희는 쭈그리고 앉아서 흙을 쥐었다.
“지맥을 봐서는 아슬아슬하게 절진을 짤 수 있는 정도는 되군요.”
“군영에 있는 풍수사가 도와주었겠지.”
[하지만 화공이 계속된다면 근방의 지맥도 씨가 말라서 절진을 유지하기 힘들긴 할 거예요. 스승님.] [응, 그래. 잘 짚어 냈다.]진천희가 맡은 냄새에는 타르와 화약, 기름 냄새가 들어 있었다.
이 세계에서 총은 활에 비해 훨씬 뒤떨어지는 무기다.
내력을 담을 수도 없으며, 연사도 되지 못하고. 심지어 쉽게 부서지는 데다가 폭발하는 일도 잦다.
‘허나, 투석기에 담아서 쏘면 말이 달라지지.’
당장 강호의 TNT인 진천뢰만 하더라도 강력한 무기다.
그런 걸 투석기에 담아서 포위한 진영에 대고 쏜다?
진천희가 말했다.
[군영에 있는 책사가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전술이 크게 실패했군요.] [그래. 많은 병력을 잃었단다. 지금 들어오는 부상병만 하더라도 사상자의 수에 비한다면 극히 일부분이지.]후퇴해서 자리 잡은 군영이 이곳인가.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진천희, 다시 희망 회로를 가동합니다. 삐리리!
[스승님,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책사는 교훈을 얻었을 거예요! 또 날려 먹겠어요?] [허허허, 희야. 우리가 후방이긴 하나 앞으로 두 번만 더 전선을 날려 먹으면 아마 유목민이 쓰는 투석기가 어떤 파괴력을 가졌는지 몸으로 느끼게 될 거란다.]망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