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38
제 437화
“거절한다.”
“호오? 왜지?”
과거 천이문은 물었다.
-당신이 선의로 사람을 구함을 알고 있습니다. 허나, 과정이 옳다고 결과까지 좋을 수는 없는 법이지요. 때로는 옳은 과정이 최악의 재앙을 부를 수 있는 법입니다.
그때 그가 진천희에게 경고하며 했던 말.
이 길의 결과를 한낱 진천희가 알 수 있을지 모른다. 아직은.
당시 천이문에게 했던 말을 진천희는 그대로 혈선교에 답했다.
“……그릇된 일을 하며 옳은 결과를 바랄 수는 없으니까.”
“허허허, 진심인가? 당장의 전쟁을 막을 수 있는데 그릇된 일이니 하지 않겠다고?”
“응, 그리고 또 하나 있어.”
“뭐지?”
“내 손으로 너희들 싹 다 볼기짝을 때려 줘야 하거든.”
“허?”
“내가 너희와 함께한다면 영원히 죄를 묻지 못하겠지. 하나의 혈생과를 위해 천 명의 사람을 도살하고, 수만 명의 목숨을 대가로 받아가는 너희를 더는 처단하지 못할 거야.”
“처단? 고작 그것을 위해?”
“나는 그리 대단한 인간이 아니거든. 한번 타협하기 시작하면 계속 타협을 하게 되고 언젠가는 세상의 운명 같은 것을 위해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중요치 않다고 말하는 밥맛이 되겠지.”
“……나름대로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는데, 교섭은 결렬인가?”
“평화적? 이 많은 놈들을 죽여 놓고? 이제 와서?”
진천희는 가운뎃손가락을 들었다.
“크크큭, 좋아. 알겠어. 너는…… 그리 말하지만 숙신족이 죽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거야. 왜냐면 그들조차도 네게 있어서 ‘사람’이니까.”
“마음대로 생각해.”
우드득-
진천희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천천히 생각해 보게나. 우리의 제안은 언제나 유효하니까.”
그 말을 끝으로 환자의 붉은 눈빛이 흐려진다. 그러더니 그대로 혼절하여 쓰러졌다.
풀썩-
“…….”
진천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이자를 넘겨 취조를 하긴 해야겠군.’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방금 대화로 얻은 정보가 꽤 도움이 되었다.
‘혈선교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지만 말이지.’
진천희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현원전단신공을 아무리 돌려도 물속에 목만 내밀고 떠 있는 기분이 든다.
아마, 이렇게나마 버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현원전단신공의 공능이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겠지.
궐련이 다시 피우고 싶었다.
‘하지만 필시 의존을 하게 되겠지.’
제대로 된 정신과의가 여기 떨어지면 모를까, 전공자도 아닌 자신이 스스로 용법을 정해서 먹는 건 위험한 짓이란 걸 안다.
그러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이미 귀에 못 박일 정도로 들어 왔고.
그런 식으로는 이 지옥을 헤쳐 나갈 수 없음을 알았다.
진천희는 잠깐 눈을 감았다.
격하게 울리는 심장 박동 소리를 들었다.
고함 소리 같기도 했고, 살려 달라며 속삭이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하지만 다르게도 들렸다.
‘아, 심마가 끓는 소리군.’
주화입마로 가지 않기 위해서 조절하고 또 조절해 본다.
단순한 명상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게 아니라, 심마로 인해 주화입마가 되지 않기 위한 주천이다.
목구멍으로 뭉근하게 피 냄새가 났다.
심마를 따라 피가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물은 끓는점까지는 물이지. 그것을 넘고 나면 물은 기화(氣化)하고…….’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일까.
끓는점까지는 아직 사람일 터였다.
허나, 그 한계를 넘는다면.
비등점(沸騰點)을 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이 되는 걸까.
진천희는 담담한 표정으로 치밀어 오르는 피를 억지로 삼킨다.
그건 지옥의 맛이었다.
* * *
바람이 불었다.
피비린내가 짙고 자욱했다.
하늘에는 까마귀인지 독수리인지 모를 것들이 군대의 행군에 발맞춰 빙글빙글 날고 있다.
오늘은 성찬의 날.
사람이 사람을 죽여 하늘의 지배자들에게 공양을 하는 날이니.
새들은 그저 식사 준비만 하면 될 뿐이다.
그중, 참지 못한 몇 마리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서둘러 내려앉아 허겁지겁 눈알을 파내고 있다.
사후강직이 시작된 시신이 꿈틀거린다.
지평선까지 이어지는 시신의 밭 속에서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었다.
대장군 육헌이 고안한 귀노진(귀갑비차노를 이용한 방어 진형)은 확실히 단단한 방어를 자랑했다.
와아아아아!
숙신족들이 뿔피리를 불며 덤벼드나 궁기병들의 시신들이 하나둘 지층처럼 쌓여 갔다.
허나 그것도 한계인가.
‘처음에는 교전비 3:1로 숙신족이 세 명 죽을 적에, 제국군 한 명이 죽었지. 그러나 지금은……. 지금은 제국군 두 사람이 죽을 때 숙신족 하나가 사망한다.’
제국군 부군사는 떨리는 손으로 고삐를 틀어쥐었다.
그런 끔찍한 상황이 벌어진 이유는 숙신족의 군사가 다른 전략을 들고 왔기 때문이었다.
한편 숙신족 진영.
“물소는 준비되었나?”
그 말에 숙신족 총군사가 부복하며 말했다.
“예, 칸이시여. 허나, 부족장들의 불만이 높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번에 저놈들을 처리할 것이니 걱정 말라.”
칸이 저 멀리 단단한 방진을 형성한 채로 천천히 이동 중인 제국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수는 무려 십이만!
첫 출진 이후 몇 번의 전투 끝에 제국군은 삼만의 병력이 사라져 있었다.
“군신(軍神)은 내가 직접 상대하겠다. 시작하라.”
그 말에 총군사가 놀라서 눈을 홉떴다.
“걱정하지 마라. 하늘의 영혼이 함께하는 한, 나는 강하다.”
“예, 칸이시여!”
총군사가 신호하자 부관이 뿔피리에 입을 댄다.
부우우우우–!
내력이 담긴 거대한 소리가 사방을 울리고, 숙신족은 반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칸이 말한 대로, 물소의 파도가 나타났다.
시야에 들어온 것만 해도 적어도 수백 마리는 될 법한 물소가 돌진을 시작했다.
십이만이라는 단단한 방진을 형성한 병력에 비하면 적은 숫자.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소 떼의 돌격은 강력한 돌파력을 지니고 있었다.
우우우우우우우-!
두 번째 뿔피리 소리에 따라 물소 떼가 겁에 질려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미 몇 차례 이 공격에 당했던 제국군 지휘관들은 즉시 명령했다.
“소 떼, 소 떼가 다시 온다! 망할 새끼들이 기어이 소를 또 풀어 버렸다! 비차노를 다시 가동하라!”
“X새끼들아, 뭣들 하고 있느냐! 당장 화살 비를 준비하라–!”
“늦으면 우리 다 죽어!”
두두두두두–!
소 떼가 지평선을 훑으며 달려오는 소리는 흡사 지진과도 같았다.
아니, 지진이 맞았다.
사람이 만들어 낸 지진.
제국군이 화살 비를 쏟아낸다.
그런데, 가장 맨 앞.
산처럼 새카만 소가 선두에서 달리고 있었다.
거대한 쇠뿔은 황금으로 호화롭게 장식이 되어 있었고, 그 끝에는 날카롭게 벼려진 창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제국군을 죽인 놈이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칸의 황소였다.
검은 몸체에 새빨간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콰콰쾅!
물소가 방진을 덮친다.
칸의 황소가 첫 전열을 들이박자, 제국군 몇이 그 힘만으로 몸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이었다.
제아무리 무공을 익혔다고 하나, 칸의 황소를 이기지 못하며 내장 조각을 토하고 사망한다.
그러나 소는 인간의 사정 같은 것은 알 바가 아니었다.
두 번째 충돌.
콰광!
귀갑비차노를 들이받아 뒤집고, 그 뒤의 병사들까지 짓이기며 달려간다.
“방진이 뚫렸다!”
“X발 새끼들아! 막아, 막으라고! 여기가 뚫리면 모두가 뒤지는 거야!”
그렇게 뚫리는 방진 위로 숙신족의 화살 비가 하늘을 덮었다.
넓적한 오리 주둥이의 화살촉.
높이 치솟아 해를 가린 화살 비가 이제는 중력을 받아 추락하며 가속한다.
소와 제국군, 가릴 것 없이 몸을 가르며 대지에 내리꽂히기 시작했고.
퍼버버벅!
제국군의 갑옷을 가르며 쏟아졌다.
그건 귀갑비차노도 마찬가지.
몇몇 제국군은 그제야 왜 이놈들이 오리 주둥이 같은 모양의 화살촉으로 그리도 포로들에게 실험을 했는지 깨달았다.
그 화살은 철판을 뚫고 사람의 가죽을 가르고 들어가기에 너무나도 적격이었으니까.
그들은 계속해서 연구와 진화를 거듭하고 있고, 그것을 포로에게 쏘아 실전성까지 더해지고 있다.
방진이 뚫리고, 화살 비가 쏟아져 한번 정리를 끝내자, 이제 숙신족의 기마 돌격 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임무는 간단하다.
귀갑비차노로 만들어진 껍데기가 박살이 났으니, 그 틈으로 들어가 말랑말랑한 속살을 공격하는 것이다.
궁기병들이 화살을 쏘아 대며 원호 공격을 하는 동안, 이 무자비한 숙신족은 월도를 들고 닥치는 대로 병사를 베고, 말발굽으로 짓밟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들은 제국군보다 강했다.
마령술(馬靈術).
중원인들이 무공으로 심기체를 수련하여 더 높은 경지로 탈각한다고 하면.
숙신족들에게는 마령술이 그 역할을 한다.
‘마귀 마(魔)’가 아닌 ‘말 마(馬)’라는 글자에서도 볼 수 있듯이, 숙신족은 말을 타고 생활하며 강해지는 기묘한 무술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원리로 이것이 가능한지 중원인들로서는 알 수 없으나, 그 위력이 막강하다는 것은 이제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마령술을 터득하여 수련한 숙신족의 기마병은 제국군의 정예 기마병 네다섯을 상대할 정도로 강해진다.
그들이 탄 말은 다른 말에 비해 더욱 빠르고 힘이 강해지며, 그들 스스로도 체력적으로 완성된 제국군의 반 배에서 두 배 정도의 근력을 순간적으로 내뿜었다.
그야말로 괴물 같은 병력 그 자체!
거기다가 마령술을 오랜 시간 수련한 자는 무공의 고수만큼 강력해지기도 했다.
그것을 제국은 전쟁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기마 돌격 부대에 속한 이들이 바로 그런 이들.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지친 제국군들을 죽이며 나아갔다.
그들이 전진하며 방진의 안쪽 살을 가르는 사이, 다른 숙신족 궁기병들은 이 거북이 같은 방진 전체를 포위하며 화살을 쏟아냈다.
“빌어먹을……. 저쪽도 오늘 결판을 내려고 단단히 준비했구나!”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부관이 명령을 내렸다.
“방패를 쳐들어 막아라! 막아야 한다!”
“사방이 적입니다!”
“저 새끼들은 우리를 양처럼 몰아서 다 죽여 버릴 생각이야!”
귀갑비차노의 화살이 많긴 하지만, 상대는 이쪽 두 배 정도 되는 대병력!
그런 대병력 전원이 활을 쏠 수 있으니, 화살이 장맛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은 당연했다.
“이건…… 지옥이다. 지옥이야!”
“망할 흉노 새끼들아아아아!”
그때, 그 지옥 같은 전장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분명 낮은 목소리였으나, 왜인지 그 소리가 공기를 타고 흘러 모두가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무릎을 꿇어라. 왕의 어전이다.”
쿠그그그그-
그 순간, 강력한 기마 돌격대들의 발이 묶였다.
그들의 말이 딛고 선 땅이 얼어붙으며, 발굽이 쉬이 떨어지지 않게 된 것이었다.
허나, 그와 별개로 기마 돌격대의 전면은 화로에 들어간 듯 이글거리는 열기로 가득했다.
콰르르르르-
그곳에는 작은 태양이 떠 있었다.
상처투성이의 손 위로 떠오른 태양은 점점 크기를 더해 가고, 그럴수록 기이하게도 주변 지역은 혹한의 빙하처럼 얼어붙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