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4
제 44화
제갈린이 말했다.
“무력당주가 보기에 방위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질문의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그때, 진천희는 가볍게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해 냈다.
삼재보법인데도 전혀 막힘이 없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공격을 피해 나갔다.
그 모습을 보자, 독고중후는 진천희가 다른 보법을 익혀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다면 곤란했다.
의술도 아니고 무공이다. 강호에서 무공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다른 세가의 무공을 만약 미리 익힌 거라면 제갈가의 비전을 익힐 자격이 없었다.
그런데 동작 하나하나 아무리 뜯어 봐도 그것은 분명 삼재보법이었다.
제갈린이 기특한 듯 허허롭게 웃었다.
“설마하니 무력당주께서 방위의 기준을 대나무로 삼는 실수를 하신 것은 아니리라 믿습니다.”
그제야 독고중후는 깨달았다.
‘아, 그렇군. 방위란 곧 상대적인 것. 지형에 사로집힐 이유는 없는 것을……!’
하지만 고작 몇 달 배운 수준으로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소년은 얇은 대나무 위에서 자신만의 방위를 가지고, 좌, 우, 전의 묘리를 펼치고 있는 것이었다.
마침내 진천희가 땅에 무사히 내려앉았다.
“아마 제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기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 무골이 뛰어난 아이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저 배울 만큼의 무골만이 있었을 뿐이지요.”
“그런데 대체 어찌……?!”
스승님은 독고중후의 반응이 즐거운지 눈까지 감고 음미했다.
그 모습은 천하의 기재, 백린의선이 아닌 천하의 팔불출, 제갈린 그 자체였다.
“내공은 분명 무공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무릇 명문세가라면 무골에 그리 집착하게 되는 것이고요.”
“틀리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닙니다. 무골이 좋을수록 내공을 쌓기 좋고, 세가의 비전을 익히기 좋으니 일장이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허나, 무(武)에 있어서 무골은 그저 한 부분에 지나지 않지요. 저 아이는 그저 누구보다 외공을 열심히 수련했을 뿐입니다.”
“외공이라 하면 몸을 단련하였다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갈가의 무인답게 이해가 빨랐다.
“네. 그러합니다. 특히 하체를 집중적으로 단련하였지요.”
“그 정도라면 어느 무인이든…… 충분히…….”
“그 정도가 아닌 것이 중요한 점이지요.”
대체 어느 수준으로 하체를 단련시켰다는 걸까.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갈린은 더는 설명하지 않고 씨익 웃었다. 독고중후가 말했다.
“하지만 방위를 점하는 것은 하체만으로 되지 않지 않습니까? 아무리 몸이 된다 하더라도 머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될 일입니다. 진법에 대한 어느 정도 깊은 심득이 아니면 힘들 텐데…….”
“빠른 사고력은 매우 기본의 기본인 일이지요.”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그런 독고중후를 뒤로하고 제갈린은 진천희에게 다가갔다.
“삼재보법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모양이구나.”
어느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독종도, 그런 독종이 없었다.
남이 봤으면 이가 갈릴 정도의 수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온 진천희였다.
소년은 날아오는 돌을 한 번도 맞지 않고 모두 피해 냈다는 사실보다 그저 이번 시연이 끝나면 유호 새끼를 어떻게 담가 줄지가 더 중요했다.
그러나 표정만은 누구보다 천진했다.
“헤헷, 그리 봐 주셔서 제자는 너무 기쁘네요. 스승님!”
“그래그래. 이제는 미리보(迷離步)의 단계로 넘어가야겠구나.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혹독할 거란다. 할 수 있겠니?”
“미리보(迷離步)가 무엇인가요?”
이미 책을 읽어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하는 연기가 중요하다.
“삼재보법의 다음 단계지.”
삼재보법은 좌, 우, 전. 세 가지의 방위를 점하고 시작한다.
어떻게 보면 오행심법과 비슷했다. 제갈가의 오행심법은 오행 다섯 가지의 속성을 가지고 시작하여 공능이 올라갈수록 오행을 이용해 더 다양한 공능을 사용한다.
화, 목, 수기를 사용하는 풍기.
수, 금, 토기를 사용해 만드는 빙기.
뇌기의 경우, 앞서 만든 풍기에 화, 금, 수를 섞어 만든다.
오행심법의 대성에 이르게 되면 세상 만물의 기를 모두 다룰 수 있게 되며, 상생과 상극을 숨 쉬듯 다루어 천지만물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경지가 된다고 한다.
무림에서 이야기하는 우화등선의 경지다.
사조이신 제갈공명께서는 지구에서 알려진 삼국지의 결말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하늘에 제를 올려 수명을 늘리는 데 성공하였다.
그렇게 원하는 바를 어느 정도 이루신 후, 금분세수를 하여 초야에서 후진을 양성하시고는 마침내 무위자연에 다다라 승천하셨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행심법의 상위 단계인 천지오행심법에 다다르면 동남풍도 불게 한다고 하니, 과연 무협 세계는 무협 세계다 싶었다.
마찬가지로 삼재보법은 세 가지의 방위만을 처음 사용한다.
그러나 오행을 조합하듯 이 세 가지의 방위를 조합하여 9가지, 27가지, 61가지, 81가지, 후에 만변의 방향을 제압하게 된다 한다.
삼재의 3과 오행의 5.
모두 나누어지지 않는 소수로서 동양 철학뿐만 아니라 수학에서도 꽤 의미가 있는 숫자다.
‘각각 페르마 소수로 치면 첫 번째, 두 번째 소수지.’
처음 세 가지로밖에 피할 수 없었던 삼재의 행로들이 미리보(迷離步)에 이르러 더욱 다변한다.
그리고 그 다변을 완료했을 때, 다음 진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보의 다음은 무엇인가요?”
“미리보(迷離步)가 십이 성에 이르게 된다면 천기미리보(天氣迷離步)에 다다르게 된단다. 비전무공이며 신공절학이라고 할 수 있지. 천기미리보에 닿을 수 있는 보법은 천하에 다섯 손가락도 꼽기 어렵지.”
다섯 손가락이 아니다.
진천희가 보기에 천기미리보는 보법 중에 천하제일이었다.
이 천기미리보는 보법이라기보다는 예지에 가깝다.
수많은 불확정 변수 사이로 하나의 행로를 예지해 나갈 수 있는 공능을 지녔다.
어째서 이것이 가능한지는 진천희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극성에 이르게 된다면 어째서인지 가능했다.
다만 천기미리보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중간 가교 역할을 하는 이 미리보(迷離步)가 지독하게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무공을 떠나 자연수와 확률 변수를 계산하는 수학의 영역이었다.
삼재보법에서 미리보로 넘어가는 것 이상으로, 미리보에서 천기미리보로 넘어가는 것은 제갈가 내에서도 극소수만이 가능했다.
왜 삼재보법은 쉬운데 미리보가 지옥인가에 관해서는 심득을 얻으며 알게 되었다.
독하게 파고들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심득이었으며, 무림인의 관점으로 얻을 수 있는 심득 또한 아니었다.
그저 지구인이, 지구의 지식을 가지고 지극하게 얻을 수 있는 진천희만의 심득이었다.
‘이게 진법 개념을 알면 심득이 쉬워지긴 하지. 무협의 진법(陣法)이 아니라 수학의 진법(進法). 그것도 삼진법. 그걸 –1, 0, +1. 즉, 좌, 전, 우에 대치해야 해.’
이른바 균형 삼진법이라고 부른다.
진천희가 보기에 이미 삼재보법도 제대로 파고들어 가려면 까마득하게 어려운 보법이었다.
우화등선하신 사조께서는 무림이 아니라 현대에 오셨으면 양자 컴퓨터를 만들고 계셨을 것 같다.
문제는 천재란 족속답게 후인들의 머리가 못 따라갈 것을 생각 못 하신 거다.
그래도 나름대로 뇌를 확장시키는 헌원전단신공을 함께 만드셨지만 수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난이도가 배가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수학 이론 없이 그냥 오성만으로 심득을 얻으신 우리 사부님은 그냥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진천희가 말했다.
“스승님, 저 그냥 삼재보법을 더 수행한 후 익히면 안 될까요?”
“호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니.”
보통 무가의 제자라면 다음 진도로 나가지 못해 안달이 나는 법이다.
그런데 도리어 진천희는 강호에서 그리 강하지 않다 불리며, 기초의 기초라 불리는 삼재보법이나 더 밟겠다고 하고 있었다.
괴이한 일이었다.
진천희가 한쪽 이마를 찌푸렸다.
“미리보(迷離步)를 익히기 전에 삼재보법을 더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네가 보기에는 삼재보법이 어렵니?”
그 말에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수록 어려워요.”
그 말에 지켜보던 독고중후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보통 고작 삼재보법을 어렵다고 하면 둔재도, 그런 둔재가 없다고 부른다만…….’
왜일까. 눈앞의 소년은 누구보다 삼재보법을 깊이 익히고 있었다.
소년이 보여 준 행동은 보통의 수련생들보다 깊은 심득이 아니면 나올 수 없었던 행로들이었다.
그런 아이가 고작 세 방향 움직이는 것밖에 못하는 삼재보법이 어렵다 하다니.
그때 제갈린이 답했다.
“재미있구나. 사실 나도 삼재보법이 늘 어렵다 생각했단다.”
삼재보법 때 제대로 심득을 얻지 못하면 미리보에서 개박살이 나기 때문이다.
‘허허허, 방향은 다르지만 결론은 나와 같군.’
스승님과는 잘 통하는 부분이 있어 편하다.
보통의 무가였다면 고작해야 삼재보법이나 더 밟겠다고 하니 답답하다 가슴을 쳤을 터.
하물며 제갈린은 진천희의 성취에 자신의 목숨이 달려 있는 처지다.
그런 상황에서도 늘 진천희에게 가장 나은 길을 우선으로 여겼다.
“성급하면 길을 망치는 법이지, 준비가 된다면 그때 시작하자꾸나.”
진천희가 깊게 포권을 했다.
* * *
진천희는 계속해서 삼재보법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갔다.
첫 번째 심득 이후, 두 번째 심득을 얻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세 번째 심득은 첫 번째와 두 번째를 합친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야 했다.
희게 얼어붙은 눈밭 위로 소년의 발자국이 세 방향으로 이어졌다.
움직임은 자유분방했지만, 소년의 발자국이 찍히다 멈출 때는 언제나 삼각수 하나가 끝날 때였다.
멍하니 앉아서 자신의 발자국 수를 세어 보다가 이것을 깨달았을 때 진천희는 생각했다.
‘페…… 페르마가 제갈공명으로 무림 진입하셨나.’
그런 소설이 있다면 꼭 보고 싶다는 생각과 절대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제목은 요즘 시류대로 하면 ‘주인공이 수학을 숨김’ 정도가 어떨까 싶었다.
무협 소설에서는 늘 그랬다.
어떠한 작은 이치가 큰 심득을 숨기곤 했다.
천자문을 읽고 무공의 깨달음을 얻는 주인공이 있었고, 노자의 도덕경이나 공자의 논어에서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궁귀만 해도 불가의 공(空)에서 심득을 얻어 화경에 이르렀다.
어디서 깨달음을 얻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노부의 낫질이든, 개미의 행군이든 상관없었다.
작아도 좋았다, 사소해도 좋았다.
말도 안 된다 싶을 정도라도 상관없었다.
그저 그것이 그것으로, 그것만으로도 세계를 얼마나 담아낼 수 있는가.
그것이 곧 깨달음이며 심득이었다.
수(數)는 세계를 설명하는 가장 직설적인 방법이었다.
작은 깨달음이 진천희의 세계를 확장시키기 시작했다.